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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누워만 있어도 괜찮을까"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쉬었음'과 '고립' 사이를 오가는 청년들

얼마 전 읽은 책 <이렇게 누워만 있어도 괜찮을까>(안예슬 지음, 이매진 펴냄) 이야기로 시작하려 한다. 비수도권 지역에 사는 여성청년들의 고립에 대한 내용이었는데, 책에서 만난 '지방 여성 청년들'의 고립 경험은 흔히 상상하는 고립생활과는 다른 이야기가 많았다. 이들이 겪었던 고립 경험은 일을 하는 중에도, 가족과 함께 사는 중에도, 학교를 다니는 중에도 생겼다. 특히, 여성이자 청년인 이들은 가부장적인 지역사회 문화와 불안정한 노동의 문제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현실에서 고립상태로 접어들게 된 자기 자신을 탓할 수밖에 없었던 경험을 털어놨다. 책에 등장한 이들은 모두 '일이 없는 공백기'에 고립을 경험했다. 또 한편으로는 일을 하면서 겪게 된 어려움으로 고립을 경험하기도 했고, 일을 하고 있지만 다른 소통 창구가 전무하기 때문에 고립을 경험하기도 했다.

청년이 느끼는 고립감의 시작을 따라가 보면, 일을 통해 느낄 수 있는 사회적 쓸모와 괜찮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 사회적 관계, 그리고 가족을 떠나 오롯이 혼자서 바로 설 수 있는 독립이라는 상황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듯 보였다. 그럼에도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로 진입하는 청년 시기에 일은 청년들이 느끼는 고립감의 가장 깊은 곳에 위치한 핵심이기도 했다. 그렇기 때문에 청년의 고립감은 성별이나 지역을 불문하고 나타난다. 다만 고립상태에 더욱 취약한 조건은 있다. 수도권이나 광역시가 아닌 지역일수록, 일의 안정성이 낮을수록, 가부장적인 문화가 강한 집단의 하층에 있을수록, 가구의 소득과 자산이 낮을수록 등 고립의 취약 조건은 존재한다.

ⓒ게티이미지뱅크

청년의 사회적 고립에 주목하는 이유

사회적 고립이 청년기에만 일어나는 현상은 아니다. 그러나 청년의 사회적 고립에 주목하는 것은 청년이 이행기적 특수성을 지닌 집단이기 때문이다. 즉, 청년기의 생애 이행과업인 진로설정, 취업 등 일과 근로소득 확보, 독립 등을 달성하지 못핼 때 청년 개인의 전 생애과정과 사회의 활력 제고에 미칠 파장을 고려하여 정책의 조기 개입이 필요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청년정책에서 청년의 사회적 고립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을 2010년대부터다. 세계적으로 니트(NEET: Not in Education, Employment or Training) 상태의 청년을 조기에 발견하고, 금전적인 지원을 포함하여 역량강화, 직업 연계, 후속관리까지 하는 청년보장체계를 만들고 있다. 유럽연합의 청년보장제도, 일본의 히키코모리 지원정책, 미국의 단절청년 지원정책, ILO에서 권고하고 있는 적극적 노동시장정책 등이 그러하다.

우리나라에서도 무직 상태이면서 교육이나 직업훈련을 받지 않는 니트 상태의 청년이 전체 청년 인구 중 최대 20% 정도로 추정하고 있다. 최근에는 청년정책의 방향이 고용 중심에서 청년의 삶 전반에 대한 종합지원정책으로 확장하면서 학교나 직업으로부터 단절뿐만 아니라 사회적 활동으로부터의 단절까지 포함하는 니스(NEES: Not in Education, Employment and Social Activity)상태로 정책을 확장하고 있다. 니트와 니스는 '단절'이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니트는 생계유지나 경제활동이 없는 상태이고, 니스는 여기에 더하여 사회적 관계 자본까지 결핍된 상태라는 차이점이 있다. 사회적 관계 단절에 대한 관심은 특히, 코로나19 기간을 거치면서 청년 개인 수준이 아니라 가족, 사회, 나아가 국가 단위의 구조적인 문제라는 점을 다시 한 번 확인하면서 청년의 사회적 고립에 대해 정책적 개입을 선언하기 시작했다.

청년의 '고립'에 접근하는 정책

국가인권위는 지난 6월, 보건복지부에 사회적 고립청년에 특화된 사회복지 지원체계를 마련하라는 내용을 골자로 한 권고문을 발표했다. 이에 보건복지부는 취약계층 청년들의 안정적인 자립을 돕기 위한 <청년복지 5대 과제>를 발표했다. 복지부의 새로운 과제에서는 사회적 고립청년을 포함하여 가족돌봄 청년, 자립준비 청년 등 취약계층 청년들을 별도로 명시했다. 전통적인 사회복지 영역에서 일할 능력이 있는 신체 건강한 청년층은 정책의 대상이 아니었다. 그러나 급변하는 환경에서 제도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사회안전망 밖의 청년들, 즉 취약계층 청년을 명시한 것이다.

발표자료에 따르면 청년은 다른 연령층에 비해 복지정잭 대상에서는 소외되어 있고, 일부 정책이 있지만 정책 대상이나 규모가 매우 제한적으로 취약계층 청년을 별도로 정하여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정부가 명시한 취약계층 청년은 전국에 약 10만 명으로 추정하고 있는 가족돌봄 청년, 약 51.6만 명으로 추정하고 있는 고립은둔 청년, 매년 2000여 명씩 아동복지시설에서 퇴소하는 자립준비 청년, 그리고 우울 위험군에 해당하는 청년과 기초생활수급자 청년이 이에 해당한다. 이 중 고립은둔 청년에 대한 대책으로 전담인력을 통한 밀착 사례관리, 심리정서 프로그램 지원, 가족에 대한 지원 그리고 은둔 상태의 청년 대상 공동생활 지원 등이 담겼다. 청년복지 과제 이외에도 고용노동부에서 시행하고 있는 '청년도전지원사업'은 구직단념청년, 자립준비청년 등 고용분야에 취약한 청년에게 접근가능한 일경험을 제공하여 사회적 고립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니트 상태에 대한 지원정책이라 할 수 있다.

지방자치단체에서도 사회적 고립청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전국 44개 지방자치단체에서 사회적 고립청년 관련 조례를 제정하고 있다. 특히, 서울시는 사회적 고립은둔 청년에 대한 종합대책을 내놓았다. 청년의 고립 정도에 따라 활동형 고립, 비활동형 고립, 은둔형으로 분류하고, 유형에 따라 맞춤형 지원사업을 제공하겠다고 발표했다. 청년포털을 통해 신청과 접수를 받고, 고립정도에 대한 자가체크를 통해 유형별 지원기관(시민단체, 복지관 등)을 통해 상담, 활동(자아탐색, 진로역량, 커뮤니티, 관계회복 등) 그리고 일경험을 지원하는 내용이다.

다만 청년들의 일과 생활이라는 현실을 고려하면 '고립'상태에 대한 접근만으로는 근본적인 해결이 어렵다. 고립을 경험하고 있는 청년들 중 절반 이상은 아동·청소년기에 이미 고립 경험이 있었다는 점에서 조기 개입은 청년이 아니라 아동·청소년기부터 시작해야 한다. 한편으로는 히키코모리 문제가 청년기에서 중장년기까지 옮아간 일본의 사례를 반명교사 삼아야 한다. 청년이 겪는 사회적 고립은 오랫동안 고착하기도 하지만, 일의 공백에 따라 고립과 그냥 쉬는 상태를 오가기도 한다. 그렇기에 청년에게 일에 접근할 수 있는 다양한 기회를 보장하는 것은 청년의 사회적 고립문제에 접근하는 중요한 열쇠다.

'그냥 쉬었음' 청년을 노동시장으로

정부는 지난 11월 15일, 청년층 노동시장 유입 촉진방안을 발표했다. 최근 구직활동을 하고, 일해야 할 연령대의 청년들이 '그냥 쉬었음' 상태에 오랫동안 머무는 현상을 심각하게 받아들여 정책 대응책을 내놓은 것이다. 실제 지난 10월, 통계청이 발표한 고용동향에서 경제활동인구(15세부터 65세까지) 전반의 고용률이 나아졌지만 청년인구(15세부터 29세까지)의 고용률은 전년 동월대비 8만 2천여 명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그냥 쉬었음' 청년은 청년인구의 4.9%인 41만 명으로 청년인구 중 일하고 싶지만 일하지 못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는 문제와 더불어 '그냥 쉼' 상태의 청년이 계속 늘어나고 있다는 문제가 동시에 불거졌다.

최근 들어 '그냥 쉬었음'을 응답한 청년이 늘어난 원인은 고질적인 문제인 노동시장의 이중구조와 수시채용, 경력채용이 늘면서 청년들이 진입할 신입채용의 문이 좁아진 탓이다. 또한 코로나19 기간 동안 확대되었던 분야의 일자리가 줄고, 공공부문의 일자리 제공 또한 대폭 감소한 이유도 있다. 쉬었음 청년의 유형을 분류한 연구자료에 따르면, 직장경험이 있고 구직의욕이 높은 유형이 57%로 가장 많지만, 적성에 맞지 않거나 일하면서 소진을 경험하여 구직 의욕이 낮은 유형과 지속적인 취업 실패로 쉬었음 기간이 길어진 유형이 증가하는 추세다.

이에 대한 정부의 대응은 유형별 노동시장 유입 촉진방안으로 재학생에게는 양질의 일경험 기회를 확대하고, 맞춤형 고용서비스를 확충한다. 재직자에게는 노동시장 이탈을 방지하기 위해 신입사원 직장적응 지원, 청년친화적 기업문화 확산을 지원한다. 구직자에게는 특화된 일경험과 경력설계를 집중적으로 지원한다. 취약계층에 대한 지원은 앞선 청년복지 5대 과제에 포함된 내용이다. 정부는 이번 발표에서 '특화 일경험' 프로그램을 강조하고 있다. 저임금이라도 취업상태로 진입할 경우, 청년의 니트 상태 탈출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에 저임금에 진입한 후 경력관리와 직업훈련을 통해 더 나은 일자리로 이동을 지원한다는 방향이다.

'고립'과 '쉬었음'의 상태를 반복적으로 오가는 청년들에게 마음상태부터 일경험까지 정책의 선택지가 체계적으로 펼쳐지고 있는 것 같다. 다만 종합적인 계획의 실제 실행 단위를 살펴보면 과연 계획이 제대로 이행될 수 있을까 의문이 든다. 고립과 니트상태에 있는 청년을 발굴하는 현장의 인력은 결국 기존 고용센터, 복지관, 학교 등에 의존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교육-고용-복지 공동데이터 연계는 가능하겠지만, 데이터에 접근할 인력은 결국 공무원 신분이어야 할텐데 이에 대한 공무원 인력 증원 계획은 보이지 않는다. 고립과 니트 상태에 있는 청년을 발굴하더라도 이들을 실제 지원하는 인력은 4개 시·도에 설치될 청년미래센터(가칭) 소속의 인력으로 충당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더욱 아쉬운 점은 청년이 '쉬었음'과 '고립' 상태를 반복하는 가장 큰 이유로 '괜찮은 일자리'에 대한 접근이 어렵다는 현실, 노동시장 이중구조의 문제와 경력 중심의 채용문화라는 진단이 있지만 정작 정책 개입은 근본적인 문제에 닿지 않는다는 점이다. 민간의 신규채용을 늘릴 수 있는 방법, 정부의 공공일자리를 확충해서 청년의 일경험 기회를 보장하는 방법 등은 고려하고 있지 않는다.

청년의 고립감, 그냥 쉬는 상태는 단순한 개인의 문제로 치부되기도 한다. 개인주의 성향이라 직장에 적응을 못한다는 평가로, 눈이 너무 높아서 취업을 안 한다라거나 심리적으로 약해서라는 오해로. 그러나 청년의 고립과 그냥 쉬는 상태를 더 이상 개인의 문제로 떠넘겨서는 안 된다. 고립 상태의 청년이 얼마나 늘어나는지, 또 청년이 고립감에서 벗어나는 요인은 무엇인지를 사회 전반의 활력을 가늠하는 지표로 중요하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 정책의 방향은 문제의 근본에 보다 닿기를, 정책의 실행은 현장의 상황을 고려하여 충분한 자원과 지원이 담보되길 바란다.

*내가만드는복지국가는 의제별 연대 활동을 통해 풀뿌리 시민의 복지 주체 형성을 도모하는 복지단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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