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경기도 김포시를 서울특별시에 편입하는 방안을 당론으로 추진하겠다는 국민의힘의 느닷없는 발표에 정치권이 발칵 뒤집혔습니다.
'뜬금없다'라는 반응이 첫 메시지였을 만큼, 제1야당 더불어민주당은 당황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2022년 광역단체장 선거에서 호남권과 제주도를 제외하고는 유일하게 민주당 소속으로 당선된 김동연 경기도지사가 ‘경기북부특별자치도(경기북도)’를 속도감 있게 추진하던 참이었거든요. 김 지사 역시 여권에서 불쑥 나온 이슈에 감정적인 반응을 보였습니다.
그러나 논란이 거듭되면서 민주당도 이대로 끌려갈 수만은 없다는 판단이 선 모양입니다. 처음엔 읍면동 행정체계까지 전면적으로 개편하는 '행정 대개혁' 구상으로 맞불을 놓았다가, 별 호응이 없자 '지하철 5호선 김포 연장'안을 꺼내 들었습니다. 이것마저 화력이 충분치 않다고 보았는지 며칠 전에는 국회에 '국가 균형발전 TF'를 설치하자는 역제안까지 내놓았습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국민의힘은 밀어붙이는 분위기입니다. 아예 대놓고 판을 키우고 있습니다. 부산 사하을에서 내리 5선을 지낸 조경태 의원을 위원장으로 하는 특별위원회를 발족했는데요, 애초 '수도권 주민 편익 개선 특별위원회'라는 가칭으로 논의되던 이 기구는 '뉴시티 프로젝트 특별위원회'로 몸집을 불려 출범했습니다. 서울·부산·광주 등 '3축 메가시티' 조성을 추진하겠다는 구상입니다. 자신감이 붙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선거를 앞둔 정치권에서는 흥미로운 일들이 벌어지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만, 이번 이슈는 뻔한 중간평가 성격의 내년 국회의원 선거 물줄기를 돌려놓을 수 있는 강한 폭발력을 지녔다는 점에서 특히 제 관심을 끌었습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김포시 서울 편입에서 출발한 메가시티 쟁점화는 여권의 영리한 총선 전략이라는 게 제 결론입니다. 제가 '영리한'이라는 단어를 선택했다는 점을 주목해 주십시오. '이 정책이 좋다', '나쁘다'라는, 가치에 기반한 판단을 내리기 전에 선거를 코앞에 둔, 그리고 꼭 이겨서 여대야소 국회를 만들어야 하는 국민의힘으로서는 해볼 만한 카드를 꺼내 들었다는 차원의 평가입니다.
기억하시겠지만, 지난달 11일 치러진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서 무려 17.15%포인트의 큰 차이로 민주당 진교훈 후보가 당선되었습니다. 수도권의 무서운 정권심판 민심이 확인된 결과라는 점에서는 여야 간 이견이 없었습니다.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내년 국회의원 선거를 치른다면 결과는 백전백패라는 게 국민의당의 판단이었을 겁니다.
현재 경기도의 국회의원 의석은 모두 59석입니다. 지난 2020년 총선에서 민주당이 51석을 차지해 압승을 거두었고, 2022년 대통령선거에서도 이재명 후보가 윤석열 후보를 제치고 경기도에서 1위를 차지했습니다. 대선 직후 윤석열 대세론 속에서 치러진 지방선거에서마저 민주당의 김동연 후보가 경기도지사에 당선됐습니다.
경기도는 민주당의 단단한 지지기반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민주당은 내년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이 기세를 이어가 경기도를 석권하겠다는 목표를 감추지 않을 정도로 자신만만한 상황이었습니다. 반대로 국민의힘은 다음 선거마저 경기도를 민주당에 내어준다면 수복은 요원한 일이 될 거라는 다급한 처지에 놓이게 되었죠.
그런데, 왜 김포시였을까요? 국민의힘의 전략을 분석해보기 위해 경기도의 선거지형을 살펴보겠습니다. 저는 내년 경기도 선거를 내다볼 수 있는 지표로 소득수준을 선택했습니다. 소득의 변화가 수도권 표심에 미치는 영향은 여러 데이터로 확인할 수 있는데요, 소득이 높아진 지역은 보수화되는 경향성이 상당히 일관되게 나타납니다.
2019년 12월부터 2022년 12월까지 3년간의 1인당 월평균 소득 변화를 보면, 경기도 59개 선거구 중 22개에 해당하는 지역의 소득 증가액과 증가율이 경기도 평균에 비해 높게 나타납니다. 지난 2020년 총선에서는 이들 지역 중 성남분당갑을 제외한 21개 선거구에서 모두 민주당 후보가 당선되었습니다.
2024년은 어떨까요? 경기도 평균을 상회하는 소득 증가율이 민주당에 의미하는 건, 보수화 가능성이라는 노란 신호가 켜진 전략 지역으로 저 21개 선거구를 관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이들 선거구는 최근 몇 차례의 선거에서 민주당 득표율의 변동 폭이 특히 크게 나타난 지역들로 분석됩니다. 굳은 땅이라기보다 어떤 모양으로든 움직일 수 있는 말랑말랑한 진흙 같은 느낌을 떠올리시면 됩니다. 그렇다면 국민의힘으로서는 이 지역들이 '경기 공략'의 최우선순위 선거구들이라는 이야기입니다.
김포시와 더불어 메가 서울 구상에 함께 거론되는 광명시, 구리시, 하남시 등의 선거구 역시 여기 해당합니다. 이 지역들은 소득 증가율이 높다는 것 외에도 서울을 둘러싼 도넛 형태로 형성돼 있으며, 주요 교통로를 중심으로 서울과 경기를 잇는 축선 상에 주택지구가 조성된 도시들이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이런 조건들을 생각해보면 민주당이 비판은 할지언정 대놓고 반대하지 못하는 상황도 이해가 갑니다.
정리해보겠습니다. 국민의힘이 쏘아 올린 김포시 서울 편입 구상은 메가톤급 논쟁을 불러일으키며 단번에 전국적인 이슈로 부상했다는 점, 여권의 정국 주도력 강화와 공세적 전선 형성에 성공적으로 기여하고 있다는 점, 중도·무당층 등 중간지대 유권자들에게 정권심판과 견줄만한 매력적인 아젠다를 제시했다는 점, 찬반 공식 입장을 정하기 껄끄러운 이슈로 민주당을 곤혹스러운 처지에 빠뜨렸다는 점 등에서 자체적으로는 성공적인 출발이라고 평가할만합니다.
여론의 반응은 어떨까요? 지난 2일 발표한 리얼미터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김포 등 서울 근접 중소 도시의 서울시 편입 찬반'에 대해 전국의 응답자 503명 중 58.6%가 반대했습니다. 찬성한다고 밝힌 사람은 31.5%였습니다.
'반응이 상당히 부정적이네'라고 생각하며 좀더 살펴보니 공감할만한 단서가 포착됩니다. 바로 이 정책의 추진 배경에 관한 인식인데요, 응답자의 58.8%는 김포 등 서울 편입이 '정치적 이해에 따른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국민의힘이 명분으로 내세웠던 '해당 지역 주민의 필요에 따른 것'이라는 주장에 공감하는 응답 비율은 27.3%에 불과했죠. 선거만을 겨냥한 국민의힘의 불순한 의도가 결국 자충수가 될 거라는 일각의 전망이 어느 정도 근거가 있다고 볼 수 있는 결과입니다.
날이 갈수록 눈덩이 불어나듯 논란이 커지고 있습니다. 앞으로 여론환경이 어떻게 조성되어갈지 좀 더 지켜봐야겠습니다만, 메가시티 프로젝트가 총선을 5개월 남짓 앞두고 물밑에서 벌어지던 여야의 치열한 수 싸움을 수면 위로 띄운 것만큼은 확실합니다.
그러나 앞의 여론조사 결과에서도 알 수 있듯이, 기선제압에 성공한 여권이 의도한 대로의 성과를 거두려면 정치적 목적을 넘어서는 진정성, 즉 시민들이 더 나은 삶의 조건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하려는 진지한 노력이 국정운영 전반에 걸쳐 확인되고 인정받아야 할 것입니다.
선거에서는 더 절실해 보이는 쪽이 유권자의 마음을 얻어 승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만에 하나 총선 패배를 우려하는 절박감에서 나온 국민의힘의 이 구상이 표심을 공략하는 데 성공한다면, 그래서 국민이 윤석열 정부의 잘못을 심판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잃어버리게 된다면, 민주당이 설 자리는 사라지겠죠.
선거의 성격을 규정할 정도로 막강했던 청계천 복원(2002년 서울시장 선거), 행정수도 이전(2002년 대통령선거), 뉴타운(2008년 국회의원 선거), 무상급식(2010년 지방선거) 등의 이슈를 기억하시죠? '하자'는 쪽과 '안 된다'라는 쪽이 맞붙으면 대개는 하자는 편에 손을 들어주게 돼 있습니다.
민주당은 여전히 반전의 계기를 만들어내지 못한 채 허둥대는 것처럼 보입니다. 여권 내부에서 나오는 비판에 흐뭇하게 미소 짓고 있을 때가 아닙니다. 분발해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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