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생 미등록 아동 문제 해결을 명분으로 '보호출산제' 법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된 가운데, 임신과 양육 과정 전반을 아우르는 근본적 대안이 아니라 아동의 권리 침해 등 부작용이 예상되는 땜질식 처방을 택했다는 비판이 나왔다. 보호출산제는 신원을 감추고 싶어하는 산모가 의료기관에서 익명으로 출산할 수 있게 하고 상담 및 의료 지원을 제공하는 제도다.
국회는 지난 6일 본회의에서 이른바 '보호출산제' 법안으로 불리는 '위기 임신 및 보호출산 지원과 아동보호에 관한 특별법'을 재석 230인 중 찬성 133인, 반대 33인, 기권 63인으로 통과시켰다.
정의당 강은미 의원은 표결에 앞서 한 반대토론에서 "원치 않은 임신 예방과 양육에 대한 지원이 부족한 현실은 방치한 채 이 법만 통과되면 보호출산제는 아동을 유기하는 통로로 악용될 우려가 있다"고 주장했다. 강 의원은 "장애아동의 유기가 우려된다"며 "기형아 검사를 통해 임신 중이나 출산 직후 아동의 장애 유무를 알 수 있다. 장애아동을 키우기 어려운 사회적 환경을 감안한다면 장애아동임을 인지하는 순간 익명출산제를 고민하게 만들 것"이라고 지적했다.
강 의원은 "또한 이 법은 미성년자와 장애 임산부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한다"며 "미성년자와 장애 임산부는 보호자가 보호출산을 대신 선택할 수 있다. 이는 임산부 당사자의 의사와 상관없이 보호자에 의해서 아이를 익명으로 출산하게 만들 수 있다"고 했다.
이어 "아이는 친생 부모를 알 수 없어 아동의 알 권리도 침해한다. 아이는 특별한 이유가 있을 때만 부모의 정보를 알 수 있다"며 "친생 부모의 정보를 모르는 건 삶의 뿌리를 잃게 만들고 상처를 안은 채 세상에 부유하게 만드는 것이다. 보호출산제를 통해 출산된 아이들은 부득이한 양육 포기가 아니라 출생을 감춰야만 하는 아이, 버려져야만 하는 아이로 낙인 찍힌 채 살아가게 된다"고 했다.
강 의원은 "고아 호적을 만드는 것도 문제"라며 "과거 해외입양 과정에서 신속한 입양 절차를 위해 친생 부모가 있는 아동도 고아 호적으로 만들어 해외입양 보낸 관행이 있었다. 해외 입양자들은 지금도 고통받고 있다. 이 고통을 지금 태어날 아이들에게 다시 만들어줘서는 안 된다"고 했다.
그는 "이 법안으로는 여성도 보호하지 못한다"며 "아동 살해와 유기 사건의 대부분은 원치 않은 임신, 경제적 어려움 등 사회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서 발생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어려움을 해결하는 지원은 턱없이 부족하다. 결국 경제적 형편이 어렵거나 체류 자격 등 갖가지 이유로 여성들은 보호출산제 하나의 선택지만 강요받게 될 것"이라고 했다.
그는 "보호출산제는 여러 부작용이 있다. 그래서 보편적인 임신과 양육에 대한 모든 체계가 마련된 이후에 최후의 수단이 되어야 한다"며 "그 누구도 경제적인 사정이나 장애 때문에 아이를 포기하는 일이 없도록 체계 마련이 우선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진보당 강성희 의원도 반대토론에 나서 "보호출산제는 누구도 보호하지 못한다"며 "2019년 UN 아동권리위원회는 종교단체가 운영하면서 익명으로 아동 유기를 허용하는 베이비박스를 금지하고 병원에서 익명으로 출산할 가능성을 허용하는 제도의 도입을 최후의 수단으로 고려할 것을 촉구했다"고 말했다.
그는 "국제인권단체인 휴먼라이츠워치(HRW)도 UN 권고를 다시 한번 강조하며 보호출산제 도입을 재고해 달라고 요청했다. 대한민국은 UN 여성 차별 철폐 조약의 비준국"이라며 "이에 따라 여성의 권리를 보장하고 경제적 이유로 아이의 양육을 포기하는 여성이 없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누구도 보호하지 못하는 보호출산제, 단호히 반대한다"며 "임신과 출산, 그리고 양육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에 거쳐 발생하는 갈등에 대해 우리 사회가 어떻게 대응할지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먼저"라고 주장했다.
휴먼라이츠워치는 지난 4일 한국 국회의원들에게 보낸 공개서한에서 "미등록 아동을 초래하는 구조적인 문제와 근본 원인은 내버려둔 채 익명 출산 및 출생 신고를 통해 미등록 아동과 원치 않는 임신의 문제를 다루는 것은 매우 우려스러운 일"이라며 "이 법안은 오히려 가부장적인 구조와 제도, 장애인 차별, 미혼모와 원치 않는 임신을 둘러싼 사회적 낙인을 강화시키고 있다"고 우려했다.
이 단체는 "이 법안은 이주 여성을 포함하여 모든 여성이 자신의 아기를 등록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며 "여성 및 아동권리 활동가들은 또한 이 법안이 원치 않는 임신을 예방하거나 자신이 낳은 아이를 직접 기르기를 원하는 여성들이 그렇게 할 수 있도록 하는 지원하는 정책보다 아기를 포기하는 것을 더 쉽게 만들 수 있다고 우려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한국 정부는 유엔 여성차별철폐조약의 비준국으로서 여성의 자율성과 사회경제적 권리를 보장하고, 경제적인 이유로 아이의 양육을 포기하는 여성이 없도록 할 의무가 있다"며 "보호출산제 법안의 도입을 재고해 달라"고 요청하는 한편 △ 모든 여성에게 안전한 낙태 서비스를 저렴하게 제공 △ 낙태약 시판 승인 △ 낙태 건강보험 적용 △ 불법적 베이비박스 운영 금지 △ 도움이 필요한 미혼모와 그 가족에게 경제·주거 지원 △ 국제 기준에 부합하고 과학적이며 연령에 맞고 인권에 기반한 의무 성교육 이행 등의 조치를 취해 달라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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