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로지 부(父)만 자유로웠던 아주 긴 역사
("[특별기고] 여성을 익명출산으로 내몰지 마라, 안전한 임신중지권 보장이 먼저다"(2023년 7월 9일) 기고문 중에서 "엄마 책임만 묻는 영아 유기, 아빠는 어디로?"에 사용되었던 문구 재인용. 필자주)
해외입양의 다른 말은 혼외출산에서 태어난 이들에 대한 국가의 추방이었다. 그 과정에 '미혼모(unwed mother)'는 사회복지사들이 양육을 포기시키고 해외입양을 장려하기 위해 수입된 용어로 계속 사용됐다. 처음 한국에선 정부 차원 연구대상으로 삼은 미혼모들은 10대 미혼모, 리틀맘 등 청소년 미혼모였다. 그러나 2007년 릭 보아스 박사에 의해 한국미혼모지원네트워크가 만들어지고 미혼모에 대한 인식을 외치며 등장한 이들은 30~40대 미혼모였다. 한국은 혼인·혈연·입양만으로 가족을 구성할 수 있는 사회다. 한부모와 미혼모는 부(父)의 존재와는 별개로 아이를 키우는 사람들로 한국에선 주로 많은 사건과 사고에 등장한다.
2016년 대구 입양아동 사망 사건, 2020년 당근마켓 영아 유기 사건, 출생 미등록으로 사라진 유령 아이들 사건, 그리고 영아 유기와 영아 살해에 이르기까지 '미혼모'는 사건의 중심에 있었다. 아이를 유기할 수 있는 베이비박스는 영화의 소재로 등장하면서 급기야 익명출산 주장이 나오기 시작한 것도 영화 <브로커> 상영 이후였다.
미혼모에 대한 사회적 지원은 조금씩 늘어갔지만 사건과 사고는 줄지 않았고 언론기사의 선전성은 점점 수위가 높아져갔다. 사건의 본질인 돌봄의 공백이자 빈곤의 세습은 전혀 언급되지 않은 채, '비정한 엄마' '20대 친모', '나홀로 출산' 등 부(父)는 사라지고 모(母)만 다시 소환되기 시작하였다.
미혼모가 마주한 또 하나의 현실은 해외입양이었다. 2011년 제1회 '싱글맘의 날' 이래로 미혼모와 해외입양인들이 함께 국가를 상대로 소송과 기자회견을 하였고 제대로 된 입양법 개정을 요구했다. 이런 노력을 통해 2013년 입양특례법이 개정됨에 따라 낳자마자 안아보지도 못하고 입양을 보낼 수밖에 없던 아이들을 키우게 됐고 '양육미혼모'라는 호칭을 얻게 됐다.
보편적 출생등록 네트워크(UBR KOREA)가 만들어진 것은 2017년 이후다. 모든 아동이 출생신고될 권리를 지키기 위해 아동인권단체와 미혼모 단체 그리고 해외입양인과 국내입양인들이 함께 간헐적으로 모이다가 2020년 양천구 입양아동 학대 사망사건 이후 <보호출산제에 관한 특별법안>이 불쏘시개가 되어 더 적극적인 활동을 해왔다.
그러나 같은 사건을 두고 베이비박스를 운영하던 곳에서는 '위기영아 보호상담지원'을 하겠다고 나섰으며 2023년 수원에서 영아 2명이 살해된 사건 이후 해외입양을 보내던 기관들과 함께 '보호출산법 시민연대'가 꾸려졌다. 또 미혼모의 입장을 대변한다며 생긴 지 1~2년도 안 된 단체에서 낙태는 안 되니 온갖 사연의 임신부들을 보호하기 위해 보호출산제를 찬성한다는 내용의 글을 발표하고 나섰다.
2010년부터 해외입양인, 국내입양인, 입양부모들과 함께 활동해오면서 2020년 입양연대회의(입양의 공공성 강화와 진실규명을 위한 연대회의)와 함께 활동해온 변화된미래를만드는미혼모협회 인트리 입장에선 이런 주장을 납득하기 힘들다.
지난 6월 29일 아동인권단체, 입양인들, 미혼모단체들이 오랫동안 주장해왔던 '보편적 출생등록'을 입법화한 '출생통보제'가 국회를 통과했다. 이제 한 고비를 넘어선 셈이다. 현시점에서 '보편적 출생등록'을 이야기함에 있어, 우리는 '부(父)만 자유로웠던' 시대에 결코 자유롭지 않았던 해외입양인, 국내입양인, 시설에서 보호받는 아이들, 더 나은 입양을 위해 공공성 강화를 주장하는 입양부모들, 미혼모와 혼자 아이를 키우는 모든 이들에 주목해야 한다.
이제 와서 보호출산제를 꺼내 들어 아이들의 생명을 살리자는 주장은 다시 '부(父)만 자유로웠던' 시대로 돌아가고자 하는 것이다. 문 닫을 아동보호시설에 아이들을 보내 시설장의 성(性)을 물려주고 해외입양 아동의 수를 늘렸던 시대, 익명출산한 여성에게는 산전산후 각종 지원을 하며 아동의 정체성을 알 권리와 생명권을 양자택일해야 하는 문제로 몰아가는 퇴행적인 역사를 계속 이어갈 순 없다.
폭력을 최소화하는 방법 : 관찰자적 관점 vs 참여적 관점
현장에서 가장 힘든 점이 있다면 미혼모와 관련된 입법을 하고 실행하는 관료 대부분이 '관찰자적 관점'으로 일을 하는 것이다. 심지어 연구자와 취재하는 기자들도 마찬가지다. '나'와 '그들'을 철저히 분리시킨다. 가부장적인 가족의 도덕과 윤리의 잣대로 미완의 가족으로 불리는 미혼모를 관찰하는 일, 해외입양인들의 목소리를 국내 정치에 반영하지 않고 해외입양 기관들이 여전히 가족센터를 위탁받는 일, 보호시설의 아이들과 장애인들이 시설 밖에서 생활하는 것에 대해 우려하는 일 등이 해당된다. 내게는 자유와 보호일 수 있지만, 당사자에겐 자유를 빼앗기는 폭력일 수 있다.
물론 당사자가 아니어서 이해하기 힘든 점은 분명 있다. 내부에서도 미혼모와 한부모의 입장이 다르고 해외입양인과 입양부모들과의 입장도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혼외출산에 처한 이들의 다양하고 특수한 입장을 보편적 출생등록에 담아내야 하며, 공공성을 강화하여 불이익을 최소화하고, 무엇보다 발언권 없이 태어나는 아이들을 가장 우선으로 놓고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에는 이견이 없다. 폭력을 최소화하기 위해 우선 필요한 것은 바로 '관찰자적 관점'의 법 개정이 아닌 '참여적 관점'의 법 개정과 제도 만들기가 필요하다. 가부장적인 가족제도 속에서 잠재적인 호모 사케르를 더 이상 만들지 않을 참여적 관점이란 무엇인가? ('호모 사케르'는 조르조 아감벤의 책에 나온 개념으로 국가의 보호를 받지 못한 채 죽어간 이들을 말한다. 필자주)
근대화 이후 호주제가 폐지되고 가족관계등록법이 생겨난 후 가족제도 안에서 가장 약하다고 판단되는 이들 즉, 혼외출산의 아이들은 해외로 추방되었고 시설에 수용되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들의 권리를 최우선으로 보장해줄 때가 왔다.
베이비박스를 늘리고 익명출산을 조장하는 것으론 더 이상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해외로 보내진 입양인들과 요보호 시설에서 보호종료를 마친 이들이 출생에 대해 알권리를 주장하는 일, 아이를 낳고 혼자 키우는 여성들에게 일자리와 돌봄 지원을 늘리는 일, 병원 밖에서 출산한 위기의 여성들이 출생등록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법 개정 등이 '참여적 관점'에 기반한 접근이다.
지금도 어느 정부 부처가 이 일들을 맡아야 할지 고민이라고 한다. 아동의 관점에서 이 문제를 해결한다고 하지만, 아동을 임신한 여성인 모(母)에게 모든 책임을 돌리면서 어느 누구도 부(父)의 책임은 묻지 않는다.
부처들은 다시 관찰자적인 입장에서 손쉬운 해결책을 내어놓을 것이다. 각 부처는 서비스 전달체계에 이용자 수를 늘릴 것이고, 가난한 이들에게는 현금을 나눠주는 손쉬운 통치를 이어갈 것이다. 아이들은 또다시 보호시설에 수용되거나 해외로 입양보내지고 미혼모들은 미혼모들끼리 공동시설에서 익명으로 출산하고 입양기관의 배를 불리게 할 것이다. 남은 고아는 고아들끼리, 장애인들은 장애인들끼리 살게 되는 손쉬운 방법으로 관리되고 감시될 것이다. 그렇게 해왔던 모든 일들이 '부(父)만 자유로웠던' 시대의 잔재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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