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복지부의 국민건강증진종합계획이 제시하는 비전은 '모든 사람이 평생 건강을 누리는 사회'다. 이 계획의 목표는 두 가지다. 하나는 건강수명을 연장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건강형평성을 제고하는 것이다. 이는 소득수준별 건강 수명 격차와 지역별 건강수명 격차를 줄이는 것으로 구체화된다.
그런데 과연 건강형평성이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또 건강형평성이 달성되었다는 것은 어떠한 상태를 의미하는 것일까? 건강형평성은 단일한 상태로 정의될 수 있는가? 정책성과를 평가하기 위해서는 정책의 목표가 분명해야 한다는 점에서 건강형평성 정의와 관련된 일련의 질문들은 윤리적, 역학적, 정책적 차원 모두에서 중요한 문제다.
최근 캐나다 연구팀은 건강형평성을 다양한 윤리적 기준에 따라 정의한 후 이를 역학 모델과 결합시켜 어떠한 방식의 개입이 인구집단의 건강 개선에 가장 효과적인지 찾아내고자 했다.(☞ 바로 가기 : 윤리와 역학을 연결하기: 건강형평성의 윤리적 기준 모델링) 이 연구는 당뇨병을 사례로 역학 모델의 효과를 검증했다. 연구 자료는 2015~2016년 캐나다 통계청에서 실시한 캐나다 지역사회 건강 설문조사 자료를 활용했다.
이 조사는 12세 이상 캐나다인 10만3766명의 표본으로 구성되어 있으나 분석은 20세 이상의 응답자를 대상으로 했다. 그중 당뇨병이 이미 있거나, 임신 중이라고 보고한 응답자, 교육이나 소득, 체질량 지수 정보 등이 누락된 응답자들을 제외했다. 최종 표본 수는 7만5044명이었으며 여성은 54%였다.
이 연구에서는 건강형평성을 각각 다른 기준으로 정의한 후 체질량 지수가 25kg/m² 이상인 사람의 체중 감량 효과와 그에 따른 당뇨병 예방 효과를 검증하기 위한 역학 모델링을 시도했다. '당뇨병 인구 위험 도구(Diabetes Population Risk Tool, DPoRT)'를 사용하여 시나리오별로 평균 10년 당뇨병 위험을 추정하고 예방되거나 지연된 당뇨병 사례 수를 모델화했다. 각 시나리오는 다음과 같다.
(1) 건강 충분성(health sufficiency)은 DPoRT 고위험 임계값(≥16.5%)을 초과하는 개인이 임계값 아래로 내려올 시 건강형평성이 달성된 것으로 본다. 임계값 이하에 남아있는 불평등은 윤리적으로 제거해야 할 문제로 간주되지 않는다.
(2) 건강 평등(health equality)은 각 개인의 당뇨병 위험이 모든 인구집단 가운데 가장 낮은 당뇨병 위험의 집단에서 관찰된 위험의 평균값과 동일할 때 건강형평성이 달성된 것으로 본다. 이 시나리오에서는 인구집단을 당뇨병 위험이 낮은 집단(<5% DPoRT 위험), 중간인 집단(5%~<16.5% DPoRT 위험), 높은 집단(≥16.5% DPoRT 위험)으로 분류하는데 위험이 중간인 집단과 높은 집단이 체중 감량 조치의 대상이다.
또한, 이 연구에서는 당뇨병 위험의 차이가 사회적 불평등의 결과일 경우에도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점을 반영하기 위해 교육 변수를 사용하여 다음의 시나리오를 추가로 모델링했다.
(3) 사회적-건강 충분성(social-health sufficiency)은 학사 학위 미만 응답자를 대상으로 DPoRT 위험이 임계치(16.5%) 아래로 감소할 경우, 건강형평성이 달성된 것으로 본다.
(4) 사회적-건강 평등(social-health equality)은 학사 학위 미만의 응답자를 대상으로 각 개인의 당뇨병 위험이 학사 학위 이상 그룹에서 관찰된 위험의 평균과 동일할 때 건강형평성이 달성된 것으로 본다.
연구진은 분석대상자의 기본 특성에 따른 10년 DPoRT 위험 정도와 2025년 예상되는 당뇨병 사례 수, 윤리적 목표 달성 정도와 관련된 분포를 추정한 후, 시나리오별로 대상 인구의 체중 감량 중재로 인한 당뇨병 발생률을 예측했다.
연구 결과, (1) 건강 충분성 시나리오에서는 18%의 체중 감량이 기준으로 설정되었으며 10년 DPoRT 위험은 비개입집단의 경우 6.3%, 개입집단의 경우 15.8%였고 개입을 통해 예방된 당뇨병 사례 수는 40만1932건으로 추정됐다. (2) 건강 평등 시나리오에서는 30%의 체중 감량이 기준으로 설정되었고 10년 DPoRT 위험은 비개입집단의 경우 4.2%, 개입집단의 경우 6.3%였으며 개입을 통해 예방된 당뇨병 사례 수는 102만9645건으로 추정됐다.
(3) 사회적-건강 충분성 시나리오에서는 18%의 체중 감량이 기준으로 설정되었으며 10년 DPoRT 위험은 비개입집단의 경우 7.1%, 개입집단의 경우 16.0%였고 개입을 통해 예방된 당뇨병 사례 수는 32만2143건으로 추정됐다. (4) 사회적-건강 평등 시나리오에서는 30% 체중 감량이 기준으로 설정되었고 10년 DPoRT 위험은 비개입집단의 경우 6.0%, 개입집단의 경우 7.9%였으며 개입을 통해 예방된 당뇨병 사례 수는 70만1341건으로 추정됐다.
각 시나리오에서 필요로 하는 개입 횟수의 경우는 다음과 같았다. 건강 충분성 시나리오는 6년간 3400만 번의 개입이, 건강 평등 시나리오는 10년간 8980만 번의 개입이, 사회적-건강 충분성 시나리오는 6년간 1240만 번의 개입이, 사회적-건강 형평 시나리오에서는 10년간 4520만 번의 개입이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요구되는 개입 횟수가 적다는 점에서 건강 충분성을 목표로 하는 정책이 현실적인 실현가능성은 더 높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예방되거나 지연된 당뇨병 사례 수는 건강 평등을 기준으로 삼을 때가 가장 많았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달성 가능한 목표가 반드시 더 효과적인 목표가 아닐 수 있다는 것이다.
한편 교육과 관련된 당뇨병 불평등의 감소를 목표로 하는 두 시나리오에서는 아무런 개입을 하지 않았을 때보다 불평등이 유의미하게 감소하였지만, 앞선 (1), (2) 시나리오보다 당뇨병 사례를 예방하거나 지연시키는 효과는 더 적었다. 이는 교육 변수만 고려한 개입 정책으로는 불평등 문제 해결에 충분치 않다는 사실을 시사하는 결과로 해석할 수 있다.
이상의 연구 결과는 건강형평성에 대한 다양한 윤리적 정의에 따라 대상 인구집단, 필요로 하는 개입의 횟수, 얻을 수 있는 예방효과 등이 서로 다름을 보여준다. 즉, 인구집단 내에서 발생하는 '부당한' 건강 차이를 효과적으로 줄이기 위해서는 역학과 윤리가 결합되어야 한다. 이때 우리가 지향하는 윤리가 '어떤' 윤리인지도 분명히 정의해야 한다.
일차의료 만성질환관리 시범사업이 시행된 지 5년 차다. 이 사업에서는 동네 의원을 중심으로 지역 사회에서 고혈압과 당뇨병을 관리할 수 있도록 환자에게 식습관이나 운동에 대한 교육과 상담을 제공하고, 환자가 자신의 질병 관리 계획을 세우는 것을 도우며 지속적으로 환자를 관리한다. 정부는 이미 건강생활실천지원금이라는 인센티브를 제공해 환자들의 참여를 유도하고 있는 한편, 내년 본 사업 전환을 앞두고 향후 초회 수가 하향 조정과 지속 관리 수가 상향 조정 등을 통해 의원 참여를 높일 계획이다.(☞관련 기사 : <라포르시안> 9월 6일 자 '등록환자 60만명 육박 만성질환관리 시범사업, 수가 등 개선')
정책 참여율을 높이기 위한 구체적 방안들을 논의하기 전에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이 있다. 이 정책에 내재된 건강형평성에 대한 정의는 무엇인가. 우리가 줄이고자 하는 '부당한' 건강 차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우리는 어떠한 상태에 도달하고자 하는가. 건강형평성이 구호에 그쳐선 안 된다.
*서지 정보
- Smith, B. T., Warren, C. M., Rosella, L. C., & Smith, M. J. (2023). Bridging ethics and epidemiology: Modelling ethical standards of health equity. SSM-Population Health, 1014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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