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이 '가상자산을 보유한 국회의원들에게 이해충돌 소지가 없다'고 주장하며 상대 당 소속 의원들을 향해서도 확전을 자제하고 있다. 그러나 해당 의원들이 가상자산 관련 법안을 발의한 이력도 있는데다, 최근 극한 대립을 펼쳐온 여야가 갑자기 '신중'해진 것을 놓고 동료 의원들에 대한 봐주기 아니냐는 지적도 일부 나온다.
양당은 가상자산 보유 의원의 국회 윤리특별위원회 제소를 머뭇거리고 있다.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지난 28일 원내대책회의 뒤 기자들과 만나 2억6000만 원을 가상자산에 투자했다고 밝힌 민주당 김홍걸 의원에 대해 "굳이 윤리위에 제소하지는 않겠다"고 말했다. 400회 이상 가상자산을 거래한 것으로 알려진 권영세 통일부 장관을 제소하겠다던 민주당도 역풍을 우려해 거래내역을 확보할 때까지 제소를 유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치권은 가상자산 보유 의원의 이해충돌 의혹도 부인하고 있다. 국회의원의 가상자산 보유·거래 내역을 신고받은 국회 윤리특별위원회 윤리심사자문위원회는 지난 27일 신고 의원 11명 중 100회 이상 1000만 원 이상 가상자산을 누적 거래한 의원 5명 중 현재 소속된 상임위원회와 이해충돌 소지가 있는 의원은 없다고 김진표 국회의장과 교섭단체 원내대표에게 보고했다.
이에 윤 원내대표는 윤리자문위의 보고를 받은 뒤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우리 당 소속 의원들은 이해충돌 여지가 있는 상임위원회에 한 분도 안 계신다"고 말했다. 이소영 민주당 원내대변인도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민주당 소속 의원 중 가상자산 보유·거래와 관련해 이해충돌 가능성이 있는 의원은 없다"고 강조했다.
정치권이 가상자산 보유 의원들에게 이해충돌 소지가 없다고 주장하는 근거는 국회법에 국회의원의 이해충돌이 소속 상임위원회 활동에 관한 것으로 규정돼 있기 때문이다. 실제 가상자산 보유 사실을 신고한 의원 중 가상자산 관련 입법을 담당하는 정무위원회나 과세 관련 입법을 담당하는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의원은 없다. 하지만 가상자산 보유 의원의 법안 발의 이력을 들여다보면 미심쩍은 부분이 전혀 없지는 않다.
김홍걸·권영세·이양수 등 수천만 원대 코인 보유 의원, 가상자산 관련 법안 발의
지난 27일 발표된 국회 공보를 통해 국회의원의 가상자산 보유·거래 내역을 보면, 해당 이슈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해 가상자산을 보유했다는 의원들의 해명이 곧이 들리는 경우도 있다. 예컨대 민주당 김상희 의원은 신고 시점인 지난 5월 31일 기준 67원을 페이코인으로 보유했고, 누적 거래횟수는 12번, 거래 총액도 매수가액 30만6144원, 매도가액 27만3383원으로 소액이다. 민주당 전용기 의원도 지난 5월 31일 기준 누사이퍼 등 2종의 코인으로 총 3만1452원을 보유했다고 신고했다. 전 의원은 100만 원 입금으로 거래를 시작해 9번의 매수와 5번의 매도를 거쳐 최종적으로 14만 6197원을 출금했다.
하지만 수천만 원 대의 가상자산을 보유했던 의원들도 있고, 이들 중에는 가상자산 관련 법안을 발의한 경우도 확인됐다.
2억6000만 원을 가상자산에 투자했다고 밝힌 민주당 김홍걸 의원은 지난 5월 31일 기준 비트코인 등 4종의 코인으로 총 7302만 6311원을 보유했고, 국회공보와 별도로 기자들에게 메일로 거래내역을 공개했다. 스스로는 "규제 법안"이라고 주장하지만 김 의원은 가상자산 사업자가 투자자 보호 센터를 마련하게 하는 특정금융정보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호기심에 3000~4000만 원을 투자했다"고 시인한 권영세 의원의 신고 내역은 가상자산 변동 내역에 "등록사항 있음" 한 줄뿐이다. 권 장관은 가상자산 과세 유예를 담은 소득세법 개정안 등 4건의 가상자산 관련 법안을 공동발의했다.
국민의힘 이양수 의원은 21대 국회 임기개시일 에이다 등 14종의 가상자산으로 총 2120만 356원을 보유했고, 지난 5월 31일 기준 보유액은 2만5529원이었다. 세부 거래내역은 공보에 등록되지 않았다. 이 의원은 가상자산 과세 유예를 담은 소득세법 개정안 등 2건의 가상자산 관련 법안을 공동발의했다.
이밖에 지난 5월 31일 기준 292만3853원을 가상자산으로 보유했지만 거래내역은 공보에 등록되지 않은 국민의힘 유경준 의원은 가상자산 과세 유예를 담은 소득세법 개정안을 공동발의했다.
거래내역과 함께 지난 5월 31일 기준 139만 8097원을 가상자산으로 보유했다고 공보에 등록한 무소속 황보승희 의원도 가상자산 소득공제 상향을 담은 소득세법 개정안을 공동발의했다. 황보 의원 역시 거래 내역은 공개하지 않았지만, 보유했던 코인이 총 87종에 달하는 것으로 밝혀져 눈길을 끌었다. 해당 코인들을 한 차례씩 모두 매수했다 매도하기만 해도 거래 횟수는 190여 회에 달하게 된다.
가상자산 관련 법안 발의 사실이 확인되지 않는 의원들을 보면, 국민의힘 이종성 의원은 클레이튼 등 2종의 가상자산으로 지난 5월 31일 기준 0원을 보유했고, 거래내역은 공보에 등록되지 않았다. 국민의힘 김정재 의원의 가상자산 변동내역은 "등록사항 있음" 한 줄뿐이다.
경실련 "국회의원 및 배우자, 직계존비속 가상자산 전수조사 이뤄져야"
국회의원의 가상자산 보유와 관련 시민사회에서는 의원 본인의 자진 신고로 일을 마무리할 것이 아니라 의원 및 배우자, 직계존비속에 대해서도 전수조사가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시민단체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은 "국민의힘과 민주당은 결의안을 통해 '가상자산 자진신고, 권익위 전수조사'를 약속했지만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며 "그나마 국회법 개정을 통해 가상자산의 자진신고가 이뤄졌지만, 그 과정에서 등록 대상자의 범위를 직계존비속이 아닌 본인으로 국한시켜 한계를 지니고 있다"고 지난 26일 지적했다.
경실련은 "권익위 전수조사조차 국민의힘과 민주당이 서로 상대 당을 물고 늘어지면서 정작 개인정보동의서를 제출하지 않아 진척이 없다"며 "국회의원 가상자산 관련 의혹이 더 커진만큼, 국민의힘과 민주당은 권익위에 소속 의원들의 개인정보 동의서를 제출해 철저한 조사가 이뤄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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