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대복지를 위해 운영되는 복지회관에서 지휘부의 '황제식사'를 위해 장병들이 혹사돼 왔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지휘부는 회관병들에게 메뉴에 없는 특별요리를 요구해 저렴한 가격으로 제공받았고, 장식이나 서빙 등 일반손님과는 다른 서비스를 대접받기도 했다.
26일 군인권센터에 따르면 경기도 고양시 소재 육군 제9사단 사단장 정광웅 소장 이하 사단 지휘부는 사단 복지회관인 백마회관에서 이 같은 지위남용을 일삼아왔다. 제보에 따르면 이 같은 관행은 김진철 전 9사단장(현 육군본부 군수참모부장) 재임시절부터 이어져왔다.
백마회관은 육군규정121 '복지업무규정' 제3조 5호에 따른 편익부대 복지시설로, 부대 임무 중심의 생활문화권 조성을 위해 설치된 영외 복지회관이다. 현역 군인, 사관생도, 군무원 등 군 관계자 및 그 가족 등이 이용할 수 있다. 보통은 부대 밖으로 멀리 나가기 어려운 장병들이 가족, 친지들과 면회 등을 할 때 많이 쓰인다.
군인권센터에 따르면 9사단 지휘부는 이 백마회관을 개인 레스토랑처럼 사용하며 일반 손님들은 누릴 수 없는 특혜를 받아왔다. 회관 메뉴판에 없는 특별 메뉴나 디저트를 요구하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16첩 반상, 제철 회, 수제 티라미수까지 … "회관병들 자기 집 요리사처럼 부려"
해당 회관에선 상시메뉴, 식사류 메뉴, 예약 메뉴 등으로 나뉜 총 32개 메뉴를 주문할 수 있는데, 지휘부는 여기에 속하지 않는 16첩 반상 한정식, 홍어삼합, 과메기, 대방어회 등 원하는 메뉴를 별도로 요구해 제공받았다. 본래는 '양식코스'에만 제공되는 디저트 메뉴도 지휘부에겐 메뉴에 관계없이 제공됐으며, 아예 수제 티라미수 등의 특별 디저트가 지휘부 전용으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김형남 군인권센터 사무국장은 "해당 메뉴들은 정식으로 편성되지 않은 메뉴인만큼 재료 또한 회관에서 그때그때 직접 공수했으며, 가격 또한 일반 식당보다 저렴한 회관 수준에 맞춰 임의로 결정됐다"라며 "회관 메뉴가 상대적으로 저렴한 이유는 군 복지의 일종인데, 지휘부 편익만을 위해 장병들의 노동력을 착취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회관 측이 메뉴판에 버젓이 존재하는 메뉴를 일반 손님들에겐 제공하지 않고, 고위급 인사 접대용으로만 판매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제보에 따르면 회관 메뉴판에 있는 '양식코스', '양식코스(특)' 등의 메뉴는 지휘부 등에게만 제공됐고, 일반 손님이 주문할 경우 "조리 가능 인원이 없다"는 이유를 들어 판매하지 않았다.
군인권센터가 파악한 바로 지난해 10월부터 올 7월까지 사단 지휘부는 최소 120회의 예약 모임에서 이 같은 '특혜' 메뉴를 제공 받은 경우만 89회에 이른다. 특별메뉴를 주문한 모임이 12회, 수제 티라미수가 포함된 특별 후식을 제공받은 모임이 45회, 수제 티라미수를 제외한 특별 후식을 제공 받은 모임이 21회, 양식코스를 주문한 모임이 11회였다.
이밖에도 △주말 제공 메뉴를 평일에 요구한 경우 △달걀 프라이 등 메뉴에 없는 서비스를 요구한 경우 △같은 메뉴를 일반 손님보다 더 다양하게 제공받는 경우 등이 군인권센터 측에 제보됐다.
VIP룸에서 '황제접대', 지인 대리예약 등 부당사용 … "장병들은 과로로 쓰러져"
군인권센터는 메뉴 제공 건 이외에도 △김종오실(VIP룸) 내에서 이루어지는 주류, 음식 리필 서비스 △음식 및 냅킨 등 장식 서비스 △일반 플라스틱 식기가 아닌 사기 그릇 사용 등 일반 손님에게 제공되지 않는 장병들을 활용한 서비스 업무 또한 지휘부의 '복지회관 갑질' 사례로 지목했다.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은 "장병들은 조선대학교 학군단 출신인 김진철 전 사단장을 위해 수제 티라미수 위에 초콜릿 가루를 뿌려 조선대 마크를 장식하기도 했고, 소주병을 직접 커스터마이징하기까지 했다"라며 "9사단 지휘부는 백마회관을 개인 레스토랑으로 여기며 황제처럼 대접받는 것을 당연히 여기다가, 급기야 소주병 커스터마이징 같은 기상천외한 요구까지 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같은 특별대우는 공식 행사 외 가족식사 등 사단장이 사적으로 가지는 모임에도 똑같이 적용됐다. 예약자 본인은 모임에 참석하지 않고 대리 예약을 통해 복지회관을 지인들에게 사용할 수 있게 해주는 경우에도 마찬가지였다.
센터에 따르면 김진철 전 사단장은 자신이 다니는 교회 신자들을 위해 자신은 참석하지 않는 교회의 식사 자리를 자신의 명의로 예약해 회관을 이용하게 했다. 한 주임원사는 민간인 지인의 상견례를 위해 회견 VIP룸을 예약해준 뒤 양식코스를 제공하기도 했다.
임 소장은 "복지회관에서 현역 군인이 사적 모임을 갖는 것은 문제가 아니지만, 특별대우를 받거나 자신이 믿는 종교신자들을 위해 자기 이름으로 회관을 사용하며 특별대우를 받게 해주는 등의 일은 명백한 부당 사용"이라고 지적했다.
지휘부를 위한 이 같은 '황제식사 접대'를 위해 장병들은 일반적인 범주를 넘어선 초과근무에 시달렸고, 결국 과로로 쓰러지는 장병도 나왔다. 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오후 9시 마감으로 운영하는 백마회관엔 일평균 100~130명가량의 손님이 찾아 회관병들은 그 자체로도 격무에 시달린다.
군인권센터는 "백마회관은 21시에 마감이지만, 영업 후 뒷정리, 다음 날 지휘부 행사 세팅으로 회관병들은 정시에 퇴근할 수 없다”라며 “21시 퇴근을 기준으로 회관병들은 주당 68시간 이상의 격무에 시달리고 있다"고 주장했다. 회관병들에게 부여되는 개인정비시간은 평일 오전 8시부터 12시까지 일 4시간에 불과했으며, 그마저도 주말에는 보장되지 않았다.
김 사무국장은 "현재 10명의 회관병들 중 1명이 (과로 등으로) 쓰러져 입원한 상태지만, 이들은 평시에 몸이 아파도 서로에게 업무가 전가되는 것이 미안해 제대로 병가를 쓰지도 못하는 상황"이라며 "말년 휴가자 등을 제외하면 지금도 5명의 근무인원이 하루 100~130명 손님을 감당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군인 노동력 착취하는 복지회관 문화, 그 자체로 구시대적 발상"
육군규정121 복지업무규정은 부대복지시설 운영 병력(회관병 등)은 복지관련 편제 병력 범위 내에서 활용해야 하고, 초과 시는 민간인을 고용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육군 9사단은 10명의 근무인원 중 2명만을 편제 병력으로, 나머지 8명을 비편제 병력으로 운용하고 있다. 임 소장은 "9사단은 규정까지 위반하며 비편제 병력을 8명이나 복지회관에 데려다 놓고, 호화로운 사단 지휘부 접대에 쓰고 있는 셈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코로나19 이후론 복지회관 운영을 직영에서 (민간) 위탁으로 바꾸거나, 운영 인력을 (군인이 아닌) 민간인으로 대체하는 경우도 많다. 그런데 그렇게 되면 부대 지휘부가 특혜를 받기가 어려워진다"라며 "백마회관이 규정 상 편제 인력보다 5배나 넘는 인원을 운용하며 무리하게 운영되고 있는 까닭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김 사무국장은 "애초에 복지회관은 국방부가 장병복지 차원에서 인가하고 운영하는 것 아닌가" 물으며 "복지를 시행하려면 국방부가 직접 예산을 들여 민간위탁을 주고 (회관을) 운용해야 할 것인데, 장병들의 노동력을 갈아넣어서 장병들 복지를 실현하겠다는 건 아주 구시대적인 발상"이라고 지적했다.
임 소장 또한 "이런 구시대적인 발상이 우리 군을 병들게 하고 국민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것"이라며 "어느 부모가 자기 자식이 군대에서 지휘관 냅킨을 접고, 술을 나르고, 생전 만들어 본 적도 없는 티라미수 만드는 일을 할 것이라 상상하겠나" 꼬집었다.
한편 육군본부는 이날 오후 입장문을 내고 "해당 사안을 엄중하게 인식하고 있다"며 "복지회관 운영에 관련하여 제기된 사안들에 대해 전반적으로 살펴보고, 비정상적으로 운영되는 부분에 대해서는 법과 규정에 의거 필요한 조치를 엄정하게 취할 것"이라고 밝혔다.
육군은 "이번 사안을 모든 복지회관들이 그 취지에 부합하게 운영되는지 점검하는 계기로 삼겠다"라며 "육군 내 모든 복지회관을 점검하고, 회관관리병들의 복무 여건과 근무환경에도 깊은 관심을 갖고 살펴볼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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