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군기무사령부(기무사)가 2016년 탄핵 정국에서 박근혜 당시 대통령에게 보수단체 활동 강화 등을 "국정운영 정상화 방안"으로 보고한 문건이 공개됐다. 문건을 공개한 군인권센터는 지난달 국방부가 입법예고한 방첩사령부령 개정안이 이러한 "군 정치개입을 합법화하는 방안"이라고 지적했다.
군인권센터는 21일 오전 서울 마포구 군인권센터 교육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지난 2016년 12월 5일 기무사 정보융합실에서 작성한 '안보·보수단체 활동 강화 추진' 보고서를 공개했다. 해당 문건엔 탄핵 여론을 무마하기 위해 애국단체총협의회 등 소위 '태극기 부대' 집회를 주도한 보수단체들의 활동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골자로 담겼다. 기무사는 문건을 통해 박 전 대통령에게 "주요 안보 보수단체 단체장 격려 전화"를 권유하는 등 일종의 정치적 제언을 내놓기도 했다.
구체적인 내용을 보면 기무사는 당년 안보·보수단체가 몇 개이고 회원 규모는 어느 정도인지 파악하고 해당 단체들의 집회·성명·광고 등 활동 사항을 박 전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그러면서 기무사는 "일부 안보 보수단체들은 국정운영 정상화를 위한 활동(을) 적극 전개"하고 있다며 해당 "활동 강화를 위한 노력"을 지속하겠다고 했다.
또한 보고서에서 기무사는 "대부분 단체들이 현 시국상황 영향으로 활동이 위축되고, 예비역 단체를 대표하는 재향군인회가 회장 부정선거로 인한 대행체제 장기화로 활동이 저조한 실정"이라며 이들의 "적극적인 활동 전개 유도"를 꾀해야 한다고도 했다. 이어 기무사는 애국단체총협의회, 성우회, 경우회, 자유총연맹 등 구체적인 단체명을 언급하며 해당 단체들에 대한 '박 대통령의 격려전화'를 기무사 측 조치 의견으로 명시했다.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은 해당 문건을 두고 "예비역 및 보수단체와 기무사가 긴밀히 연결되어 있었음을 방증하는 문건"이라며 "기무사가 이들 단체를 사주해 박근혜 전 대통령의 퇴진 반대 시위를 물밑에서 적극 조직하는 역할을 해왔던 것"이라고 주장했다.
보고서에 담긴 '조치 의견'에 대해서도 임 소장은 "단순한 정보 보고를 넘어선 정치적 조언을 한 것"이라며 "정치적 중립 의무를 어기고 정권의 친위부대로 활동하며, 대통령에게 국면 반전 방안을 직보하는 보고서까지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김형남 센터 사무국장은 "(센터는) 기무사 정보융합실에서 생성한 문건들의 제목 목록을 제보 받았고, 이를 정보공개청구하면서 이번 보고서를 입수했다"고 문건 입수 배경을 밝혔다. 센터의 정보공개청구에 기무사(현 군사안보지원사령부)는 정보를 비공개 처리했지만, 센터는 소송을 통해 올해 7월 대법원의 일부 승소 판결을 받고 해당 문건을 입수했다.
이날 센터는 "문건을 입수했을 당시엔 기무사가 군사안보지원사령부로 이미 해편된 상태였고, 사령부 측에선 이전과 같은 보고 체계가 없어졌다 밝혔기 때문에" 문건을 공개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다만 센터는 "지난달 14일 국방부가 입법예고한 '국군방첩사령부령 일부개정안'을 확인한 결과, 기무사의 불법적인 보고 관습이 방첩사를 통해 합법화될 수 있다는 판단에" 해당 문건을 공개하기로 결정했다.
앞서 지난 20일 센터는 '군사안보지원사령부를 국군방첩사령부로 개편하고 권한과 업무 범위를 확대'하는 것을 골자로 한 국군방첩사령부령 개정안이 "기무사 시절보다 더 방대하고 광범위한 권한을 방첩사에 부여한다"며 규탄 기자회견을 열었다.
해당 기자회견에서 임 소장은 이번 개정안이 "(방첩사) 조직의 성격과 임무, 권한을 송두리째 군부 독재 시절로 되돌리려는 법령 개정"이라고 지적했다. (관련기사 ☞ '전두환 보안사'가 부활?…윤석열 정부 '방첩사령부' 만들기 논란)
임 소장은 21일 기자회견에서도 "오늘 회견은 (박근혜 정부 당시의 기무사가 아닌) 윤석열 정부의 국군방첩사령부령 일부개정안이 핵심"이라며 "박 전 대통령 당시 기무사가 작성한 보고서는 '방첩사가 비대한 권한을 가질 때 어떤 (불법적인) 일을 할 수 있을지'를 보여주는 사례"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그는 "센터는 방첩사 등의 해체를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라며 "방첩사는 군 기밀 보안유지, 방산 기술 유출 방지, 간첩 대응, 군 쿠데타 감시 등 고유 업무에 집중하되 자신의 고유 업무에만 집중하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임 소장은 방첩사의 업무범위 등에 대한 통제 방식으로 "국정원의 민간인 사찰 등을 방지하기 위해 국정원법이 있는 것처럼, 군 정보기관에 대해서도 예산 및 활동범위 등에 대한 국회의 통제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한편 21일 국방부 대변인실은 군인권센터 측 기자회견과 관련해 "(개정안은) 신기술 도입에 따른 직무수행에 대한 법적근거를 마련하고 직무 범위를 구체화하기 위한 것이며 3불 원칙(정치관여 행위, 직무를 벗어난 민간사찰, 권한 오남용 금지)은 변함없이 유지할 것"이라고 밝혀왔다.
국방부는 "공공기관의 장이 법령에 근거하여 요청한 경우에 정보업무를 수행한다는 조항"에 대해서도 "법령에 근거해서 요청한 경우에만 협조가 가능하다는 제한적 조항”이라며 센터 측 주장에 대해 “강한 유감"이라는 입장을 표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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