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가 납치자 문제와 관련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조건 없는 대화를 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데 대해 북한은 일본이 새로운 결단을 내리면 못할 것이 없다고 대응했다.
29일 박상길 북한 외무성 부상은 담화를 통해 "만일 일본이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변화된 국제적흐름과 시대에 걸맞게 서로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대국적자세에서 새로운 결단을 내리고 관계개선의 출로를 모색하려 한다면 조일(북일) 두 나라가 서로 만나지 못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 공화국정부의 입장"이라고 밝혔다.
앞서 27일 기시다 총리는 도쿄에서 열린 일본인 납북자의 귀국을 촉구하는 국민 대집회에 참석해 납북자 문제 해결을 위해 김 위원장과 조건 없이 만날 준비가 돼 있다며, 북한에 이를 위한 고위급 협의를 갖자고 밝힌 바 있다.
박 부상은 기시다 총리의 제안을 완전히 무시하지는 않았지만 과거에 얽매이지 말자는 입장을 밝혔는데, 이는 납치자 문제는 이미 해결됐으니 이제 양국 수교와 같은 북한이 원하는 다른 사안을 논의하자는 뜻을 표명한 것으로 읽힌다.
박 부상은 "지금 일본은 '전제조건 없는 수뇌회담'에 대하여 말하고 있지만 실지에 있어서는 이미 다 해결된 납치문제와 우리 국가의 자위권을 놓고 그 무슨 문제해결을 운운하며 조일 관계개선의 전제조건으로 내세우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일본이 무엇을 하자는 것인지, 무엇을 요구하려고 할지 잘 모르겠지만 만일 다른 대안과 역사를 바꾸어볼 용단이 없이 선행한 정권들의 방식을 가지고 실현 불가능한 욕망을 해결해보려고 시도해보는 것이라면 그것은 오산이고 괜한 시간낭비"라며 납치자 문제를 논의할 생각은 없음을 분명히했다.
박 부상은 "지나간 과거를 한사코 붙들고 있어 가지고는 미래를 향해 전진할 수 없다"며 "일본은 말이 아니라 실천행동으로 문제해결의 의지를 보여주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일본 총리가 김 위원장 및 북한과 조건없는 대화를 하자는 입장을 표명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기시다 총리만 해도 지난해 9월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유엔총회 일반토의 기조연설에서 북한과 전제 조건 없이 만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는 당시 연설에서 "북일 평양선언에 근거하여 북한에 의한 일본인 납치와 핵·미사일 문제 등 여러 현안을 포괄적으로 해결하고, 불행한 과거 청산 및 수교 실시에 대한 방침에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기시다 총리 외에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일본 총리도 납치자 문제 해결을 위해 이와 유사한 입장을 강조해왔다. 이에 기시다 총리의 이번 발언은 납치자 문제 해결을 위한 집회에 참석했기 때문에 밝히게 된 의례적인 입장 표명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다만 북한이 핵 보유를 고수하고 핵무력을 법제화한 와중에도 납치자 문제 해결을 위해 대화를 강조했다는 점에서 아베 총리 집권 당시의 입장 표명과 상황이 다소 달라진 측면은 있다.
그러나 북한이 이달 말부터 다음달 초까지 위성 발사를 계획하고 있다고 공개했고 일본이 자신들 영역에 발사체나 잔해물이 떨어질 경우 이를 파괴하겠다고 밝히고 있어, 당분간은 양국 간 대화를 위한 분위기가 조성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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