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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안의 미군'은 섹슈얼리티, 계급, 경제, 지역에 투영돼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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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안의 미군'은 섹슈얼리티, 계급, 경제, 지역에 투영돼 왔다

[인터뷰] <동맹의 풍경> 저자 엘리자베스 쇼버 오슬로대 교수

"우리는 미국을 몰랐다. 미군이 인천항에 도착한 1945년 9월 8일, 일본 경찰은 미군을 환영하러 나온 조선인 두 명을 총살했고, 200여 명의 부상자가 생겼다. 환영 인파는 흩어졌고 미군은 일본의 보호 속에 등장했다." (정희진 해체, 글로벌 자본주의 시대의 주한미군과 한국사회)

<동맹의 풍경 : 주한미군이 불러온 파문과 균열에 대한 조감도>(엘리자베스 쇼버 지음, 정희진 기획.감수.해제, 강경아 옮김)는 주한미군의 존재를 통해본 한미관계, 이것이 실제 한국사회에 어떻게 투영돼 왔는지, '국제정치'가 어떻게 '개인'에게 영향을 끼치는지 분석하는 책이다. 

미군이 한국 사회에서 국가라는 차이만이 아니라 섹슈얼리티, 계급, 경제, 지역 등의 변수가 작동하는 방식과 맞물려 어떻게 존재하고 해석돼 왔는지 주목한다. 

"우리가 매춘부고 양공주고 창녀라고 하더군요." (외국인 파티에 갔다가 스캔들에 휘말린 한국인 여성)

"미군은 우리를 자기네들 같은 진짜 남자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카투사 복무를 마친 대학생 주황)

"지하철에서 아무도 내 옆에 앉고 싶어하지 않을 때 어떤 느낌인지 아세요?" (주한미군 파울로)

이 책을 쓴 엘리자베스 쇼버 오슬로대학교 교수는 <프레시안>과 인터뷰에서 한국사회에서 주한미군이 인식되는 방식이 미국의 식민지로 있다가 독립하면서 동맹관계를 맺고 미군이 주둔하게 된 필리핀과는 차이가 있다고 설명했다.

"내가 잠시 거주했던 수빅만이나 미 해군기지가 있던 지역에서는 미군 주둔에 대한 향수를 느끼는 이들이 많은데, 이는 한국에서 거의 찾아볼 수 없는 모습이다. 이런 향수는 부의 불평등과 관련이 있다. 말하자면 미군 주둔 때는 '돈이 돌았다'고 느끼는 것이다. 필리핀은 외국인의 직접 투자와 해외 노동자의 송금에 크게 의존하는 신생 산업국이라서 미국에 대한 의존도가 높을 수밖에 없는데, 필리핀보다 경제적으로 부강한 한국에서 이는 이미 지나간 문제일 것이다."

그러나 미국의 식민지였던 필리핀도 미군 범죄에 대한 반발 여론으로 1991년 상원에서 필리핀 내 미군기지 임대 연장이 거부되면서 수빅만 등 주요 미군기지가 철수됐지만, 한국에서 미군 철수는 분단이라는 현실 앞에서 말도 꺼내기 힘든 주제다.

게다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국제 정세가 급변하자 한국과 필리핀은 평등하다고 보여지지 않는 미국과의 '동맹'을 강화하는 흐름을 똑같이 보이고 있다. 미국 입장에서 보자면, 중국과 러시아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계속된 미국 중심의 일극 체제에 본격적으로 반발하고 나선 상황을 억누르기 위해선 기존 '동맹'을 동원하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 적극적으로 호응하고 있는 윤석열 정부는 "일본의 보호 속에 등장한 미군"을 1945년 한국이 받아들였던 것처럼 2023년 일본과의 극적인 관계 개선을 꾀하고 나섰다.

주한미군이 한국사회를 조직하는데 어떤 영향을 미쳐왔는가를 미시사적으로 살펴보는 <동맹의 풍경>은 '가치 외교'를 내세워 "빠르게 가"고 있는 윤석열 정부가 놓치고 있는 지점들이 무엇인지 보여주고 있다. 쇼버 교수는 주한미군의 동학을 추적하는 작업이 유의미한 이유를 "군사주의 해체"의 가능성과 필요성에서 찾았다.

"안타깝게도 역사를 통해 배울 게 있다면 제국의 여명이 항상 매우 평화로운 시기는 아니라는 점이다. 세계가 다극화되는 가운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서 볼 수 있는 민족주의, 쇼비니즘, 유해한 민족 중심주의가 만연해질 것이다. 이러한 현상을 막기 위해서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군사주의를 구성했다가 다시금 해체할 수 있는 사회적 과정으로 이해하는 데 주력해야할 것이다."

▲<동맹의 풍경>, 엘리자베스 쇼버 지음, 강경아 옮김, 나무연필 펴냄. ⓒ나무연필

다음은 쇼버 교수와 진행한 서면 인터뷰 주요 내용이다. 

윤석열 정부 들어 대폭 강화된 한미동맹, 고조되는 긴장

프레시안 : 주한미군의 의미는 한국 현대사에 있어 결정적이며 핵심적이기도 하다. 한국어판 서문에서 "명백한 초강대국인 미국이 한국에서 차츰 영향력을 잃어가는 과정을 추적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최근 들어 중국과의 경쟁, 우크라이나 전쟁 등을 계기로 미국의 군사적 이해관계에 있어서 한국의 역할은 더 중요해지고 있고, 동맹을 근거로 압박해온다. 보수정권인 윤석열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에 무기 지원 가능성을 언급해 러시아가 반발하는 등 큰 논란이 일고 있다. 이런 흐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쇼버 : 불과 몇 달 전에 <동맹의 풍경> 서문을 쓰며 이야기했던 것들을 넘어서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윤석열 대통령의 미국 순방을 통해 한미동맹은 대폭 강화된 듯하다. 필리핀 역시 지난 5월 1일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주니어 대통령이 백악관을 방문해 오래 되었지만 때론 흔들리곤 했던 미국과의 파트너십을 재확인했다. 미국이 이러한 관계를 공식화하면서 중국, 러시아, 북한과의 긴장 또한 고조되고 있다. 나는 개인적으로 한국이 가까운 이웃 국가들과 우호적인 관계를 이어가길 바란다. 현재 유럽은 러시아의 끔찍한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해 새로운 냉전 시대로 빠르게 돌입했으며, 유럽과 러시아의 관계가 언제 완전히 무너질지는 아무도 알 수 없는 상태다.

프레시안 : 이 책은 주한미군이라는 존재가 군사주의, 제국주의, 가부장제, 자본주의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한국 사회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다루고 있다. 이런 측면에서 한국이 아시아에 다른 미군이 주둔하거나 주둔했던 나라인 일본, 필리핀 등과 가장 큰 차이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쇼버 : 지난 몇 년간 필리핀에서 현장 연구를 해왔기에, 여기에서는 필리핀과의 차이를 논하겠다. 필리핀은 1898년 이래로 수십 년간 미국의 식민지로 있다가 독립한 뒤 1947년 군사기지협정(MBA, Military Bases Agreement)을 체결하면서 미국과 동맹 관계를 맺었다. 그런데 1991년 필리핀 상원에서 이 협정을 갱신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이는 한국과의 결정적인 차이점일 것이다.

하지만 1999년 이후 필리핀은 미국과 수차례 새로운 협정을 체결하는데, 여기에는 미국이 별도의 시설을 마련하지 않은 채 필리핀의 시설을 이용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그렇게 미국은 오늘날까지도 필리핀에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내가 잠시 거주했던 수빅만이나 미 해군기지가 있던 지역에서는 미군 주둔에 대한 향수를 느끼는 이들이 많은데, 이는 한국에서 거의 찾아볼 수 없는 모습이다.

이러한 향수는 부의 불평등과 관련이 있다. 말하자면 미군 주둔 때는 '돈이 돌았다'고 느끼는 것이다. 필리핀은 외국인의 직접 투자와 해외 노동자의 송금에 크게 의존하는 신생 산업국이다. 그렇기에 미국에 대한 의존도가 높을 수밖에 없는데, 필리핀보다 경제적으로 부강한 한국에서 이는 이미 지나간 문제일 것이다.

프레시안 : 1992년 윤금이 사건은 한국 사회에 큰 충격을 줬다. 책에서도 지적했던 것처럼 이 사건이 알려지는 과정에서 그동안 "양공주"라는 멸칭을 감내해야 했던 기지촌 여성들은 "민족의 딸"로 승격화됐다. 그러나 윤금이 씨가 "민족의 딸"로 불려지기 위해서는 너무나도 끔찍하게 훼손된 시신이 전국민 앞에 전시되어야만 했다. '페미니즘'은 '좌파 민족주의'와 맞물려 작동하기 힘들어 보인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쇼버 : 사회운동 진영에서 폭력의 피해자를 어떻게 다뤄내야 할지의 문제는 꽤 예민하고 난감한 사안이다. 소셜미디어가 넘쳐나는 오늘날에는 끔찍한 살인사건을 피해자의 존엄에 반하는 방식으로 다루는 게 훨씬 쉬워졌다.

예를 들면, 2015년에 필리핀의 수빅만에서는 트랜스젠더 여성인 제니퍼 로드가 미군 해병에 의해 살해되었다. 좌파 운동가들은 살인범의 유죄 판결을 끌어내는 캠페인을 벌이면서 그녀의 끔찍한 시신 사진을 공개했다. 이런 방법이 아니고서는 관심을 갖지 않을 많은 이들의 호응을 끌어내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민족주의 운동에서는 좌우를 막론하고 페미니즘 의제와 엇나가는 수사와 전술을 종종 사용하곤 한다. 나는 좌파 민족주의와 페미니즘이 양립할 수 없다고 보진 않는다. 다만 양자의 전술 중 무엇을 받아들일지의 문제는 결국 그 운동에 발 들인 더 큰 규모의 연대자들의 행보에 달려 있을 것이다.

젠더화된 한미관계와 미군 기지촌 '위안부'

프레시안 : 한국 여성이 제국주의 군대에 의해 성착취를 경험한 역사는 미군만이 아니다. 앞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있으며, 이 역시 아직 해결되지 않고 있다. 식민지 당시 비자발적으로 끌려갔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도 이 문제를 처음으로 공론화한 것이 1990년대 초반이다. 여기엔 한국의 가부장제가 강력하게 작동했다. 미군 기지촌 위안부에 대한 국가 폭력을 처음 인정한 판결도 2022년에서야 가능했다. '식민지' 남성은 자신의 억압받는 남성성을 보상받기 위해 자국의 여성을 더 억압하고 통제하려고 한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쇼버: 전 세계 각지에 대한 인류학 연구를 살펴보면, 지역에서의 젠더 억압은 식민주의의 역사와 매우 밀접하게 상호작용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 면에서 그런 문제제기는 매우 타당하다. 이번 책에서는 '위안부' 문제를 짧게만 언급했는데, 나는 '위안부'들이 오랫동안 침묵할 수밖에 없었던 역사가 내가 책에서 논한 젠더화된 한미 관계 문제와 연결되어 있다고 본다. 이와 더불어 실제로 기지촌 여성 문제와 같은 이야기가 왜 그토록 조명받지 못했는지 질문하는 것도 중요하다.

나는 이 책에서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특정한 국제적 압력에 대한 역사적 대응으로서 한국에 폭넓게 퍼져 있는 군사주의에 주로 초점을 맞추었다. 물론 이러한 군사주의는 매우 젠더화된 이데올로기이다. 달리 말하자면, 군사주의는 어떻게 남성이 현지 여성보다 더 권력을 움켜쥘 수 있는지를 명확하게 보여준다.

프레시안 : 미국은 여전히 한국에 주둔하고 있지만 대중들의 관심에선 어느 정도 사라진 것 같은 분위기다. 이런 변화가 용산 기지 이전으로 인한 물리적 공간 이동 때문일까, 아니면 한국의 빠른 경제성장으로 인한 변화된 정체성 때문일까?

쇼버 :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는 속담이 있지 않나. 용산기지 이전이 상당한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이는 내가 최근에 진행하고 있는, 항구가 도시 생활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와도 일맥상통한다. 전 세계 대부분의 군사 기지와 마찬가지로 항구 역시 도심에서 점점 더 멀어지고 있다. 그래서 항구에서 일어나는 여러 활동, 소음, 공해 등도 사람들의 관심에서 더욱 멀어지고 있다. 선원들 역시 과거에는 주요한 노동계급으로 꼽혔지만, 지금은 대부분 외딴 항구에 머물러 있을 뿐이다.

물론 항구 도시에 며칠만 머무는 선원들과 달리 미군은 한국에 훨씬 더 오래 머무른다. 이들은 휴가 때 종종 서울 시내로 나가 즐기기도 한다. 다만 내가 만난 많은 군인들은 외출할 때 군인으로서의 정체성에 주목하기보다는 관광객이나 영어 교사 등 다른 외국인들과 어울리려고 했다.

프레시안 : 후속 연구를 포함해 책에서 못다한 말이 있다면? 한국 독자들에게 특별히 전하고 싶은 말은?

쇼버 : <동맹의 풍경>의 기반이 된 연구를 한 지는 꽤 오래 되었지만, 한국 독자들이 이 책을 흥미롭게 읽어주었으면 좋겠다. 이후에 나는 다른 주제와 국가(필리핀, 독일)에 대한 연구를 진행했다. 그렇지만 내가 아는 한 한국은 사회적으로 매우 역동적인 곳 중 하나이기에 여전히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앞서 언급했듯이 나는 현재 항구 도시와 해양산업 문제를 연구하고 있는데, 해양산업은 전통적으로 남성이 주도해온 경제 분야로 한국 역시 상당히 핵심적인 역할을 해왔다. 최근에는 스칸디나비아의 조선소에서 활용된 크레인 이야기에 푹 빠져 있다. 1974년 스웨덴 말뫼의 코쿰스 조선소에는 당시로선 세계에서 가장 큰 크레인이 설치되었다. 그만큼 조선업이 활황이었는데, 도시의 랜드마크였던 이 크레인은 1997년에 마지막으로 사용되었으며 현대중공업에 단돈 1달러에 매각되었다. 이 크레인이 해체되어 울산으로 향하는 광경을 보면서, 말뫼 시민들은 눈물을 흘렸다. 오랫동안 생사고락을 함께해왔던 크레인의 마지막을 목격한 이들의 반응이었을 것이다. 조선소는 문을 닫았고, 말뫼는 산업도시에서 지식도시로 변모했다. 하지만 옛 조선소의 터에서 그 역사를 되짚어보며 이에 관한 공연을 하는 이들을 송민지 선생과 함께 인터뷰하고 있다. 현재 유럽에서 조선업은 그 입지를 잃었으며, 소비재의 90퍼센트 가까이를 동아시아에서 만든 선박에 의존해 실어 나르고 있다.

▲엘리자베스 쇼버 교수. ⓒ엘리자베스 쇼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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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홍기혜

프레시안 편집·발행인. 2001년 공채 1기로 입사한 뒤 편집국장, 워싱턴 특파원 등을 역임했습니다. <삼성왕국의 게릴라들>, <한국의 워킹푸어>, <안철수를 생각한다>, <아이들 파는 나라>, <아노크라시> 등 책을 썼습니다. 국제엠네스티 언론상(2017년), 인권보도상(2018년), 대통령표창(2018년) 등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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