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에 시달리는 노후
이◯◯ 할머니는 2014년에 할아버지가 돌아가시자 혼자 살게 되셨다. 평소에도 이가 안 좋으면 치과로, 눈이 안 좋으면 안과로, 허리가 아프면 정형외과로 가서 약을 잔뜩 타온다. 혼자 살다보니 갈수록 우중충한 기분이 든다. 이 역시 병원을 찾아가 도움을 구하지만 병원에서는 우울증 약을 처방해줄 뿐이다. 결국 약이 과해 어지러운 상황이 오지만 상담하러 의사에게 가봤자 뾰족한 얘기도 못 들으니 스스로 판단해서 약을 줄인다. 그나마 운동이라도 열심히 하려고 했지만 오히려 허리뼈가 어긋나서 보호대가 없이 걸어 다니기도 힘들어졌다. 그렇게 3년이 흐르니 몸은 안 좋아지고 우울증은 심해졌다.
결국 아들 내외가 같이 살자고 했다. 30년 넘게 살던 남양주에서 인천 아들네 집으로 옮겼다. 거기서 새로 성당에 가고 새로운 경로당에 다니게 되었다. 자신이 오랫동안 살던 곳에서 낯선 곳으로 오게 되어 적응하는데 꽤 고생을 했다. 그런데 겨우 적응했다 싶을 때 아들 내외가 김포로 이사하게 되었다, 또 새로운 성당과 새로운 경로당에 가게 되었다. 이제는 귀가 더 안 들리고 기운도 더 없다. 그러다 보니 혹시 치매라도 걸리게 되면 어쩌나 할머니 본인은 물론 아들 며느리도 불안하기만 하다. 할머니의 입에서는 "이렇게 아무 쓸모도 없이 100살을 살면 무슨 소용인가? 이젠 빨리 죽지도 않는다는데…"라는 탄식이 절로 흘러나온다.
돌봄이 필요하더라도 살던 곳에서 살고 싶어
고령화 저출산 시대에 대한 두려움의 근거는 차고 넘친다. 다른 나라보다 고령화 속도가 훨씬 빠르고, 노인인구 증가로 의료비가 급증하고, 연금이 불안정해지고, 사회복지서비스 대상 및 비용이 증가할 것이라는 말은 이제는 현실이 되었다. 설상가상으로 2021년 기대수명은 여성은 86.6세, 남성은 80.6세이지만 건강하게 생활할 수 있는 건강수명은 그보다는 12년 정도는 짧다. 즉 병약한 노인으로 12년 정도는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대한민국 국민 1명의 평균 연간 외래진료 횟수는 14.7회로 OECD 1위고, 평균 재원일수는 19.1일로 2위이다. '3개월 이상 5개 이상 약물을 만성적으로 복용하는 75세 환자 비율' 역시 자료를 제출한 7개국 평균은 48.3%였지만 우리나라는 70.2%로 가장 높다.
고령화는 단순히 비용의 문제만으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 이◯◯ 할머니의 사연처럼 노인이 처한 상황을 전체적으로 조망해야 한다. 노쇠한 자신을 돌봐줄 사람이 없어 30년을 살던 고향에서 연고 하나 없는 낯선 곳으로 이주해야 했고, 건강을 위해 처방받은 약과 운동 때문에 오히려 건강을 해치는 상황에 직면해야했다. 이◯◯ 할머니의 사례는 단지 하나의 안타까운 사례 정도로 치부할 이야기가 아니다. 2020년 노인실태조사에서는 거동이 불편한 노인의 56.5%가 평소 살던 곳이나 지역사회에서 살기를 원한다고 응답했다. 이 한 줄의 보고가 갖는 의미를 음미해 볼 필요가 있다. 행복하고, 건강한 노년과 고령화 위기에 대한 대안은 노인들이 자신의 모든 삶이 있는 고향에서 가족에 의존하지 않는 '돌봄'을 받으며 노후를 보내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의 빈약한 대응
보건복지부는 2023년 1월 9일 발표한 업무추진계획에서 고령화저출산에 대한 대응으로, 지역사회 중심 노인돌봄 체계로 전환하기 위해 재택의료센터를 확대(현 28개소 → 2026년 80개소 목표)하겠다고 했다. 작년 12월에 공모한 '장기요양 재택의료센터 시범사업'은 의료기관 28곳이 참여해 장기요양 수급자 450여명에게 올해 11월말까지 지속적인 재택의료서비스를 제공한다. 또한 2023년 7월부터 2025년까지 12개 시군구에서 노인 의료․돌봄 통합지원 시범사업을 시작한다. 이 사업은 입원이나 노인요양시설 입소 가능성이 높은 75세 이상의 노인을 대상으로 실시한다.
돌봄과 요양은 이미 상당 부분 민간 시장에 의존되고 있고, 노인돌봄은 더 심하다. 2만5000여곳에 달하는 요양원 등 노인돌봄 시설 가운데 공공이 차지하는 비중은 미미하다. 2019년 사회서비스 실태조사에 의하면 개인사업체 57.4%, 법인·단체 45.1%, 국가·지자체 1.9%에 불과하다. 이 와중에 안상훈 대통령실 사회수석비서관은 지난해 9월 윤석열 정부 복지 서비스 정책 방향에 관한 브리핑에서 "전 국민의 요구가 분명한 돌봄·요양·교육·고용·건강 분야의 서비스 복지를 민간 주도로 고도화하겠다"고 밝혔다. 지금까지와 무엇이 다르고, 미래를 위해 무엇을 고민하고 있는가?
이미 우리는 코로나19 상황에서 긴급돌봄, 격리대상에 대한 돌봄제공 등 위기를 겪었다. 노인요양시설을 폐쇄하고, 노인 돌봄 서비스를 중단하고, 노인복지시설도 문을 닫았다, 노인들은 갈 데가 없고 움직이지 못하니 건강이 더 악화되고 우울감과 고립감이 증가했다. 돌봄이 가장 절실할 때 국가는 버팀목이 되어 주지 못했다.
돌봄 서비스에 대한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협력자를 키워야 한다
현 상황에서 정부가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올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그렇다면 무엇이 대안이 될 수 있을까? 정부나 시장이 아니라 시민들이 스스로 의료, 돌봄 문제를 해결해보는 방안도 있지 않을까? 실제로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출자한 자본으로 의료기관과 돌봄기관을 만들고, 지역사회를 통한 돌봄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례가 다수 존재한다. 그 중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전국 30여개 지역에 설립되어 있으며 약 7만 명의 조합원이 참여하고 있는 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이하 의료사협)이다.
의료사협은 정부가 목표로 하지만 제대로 시행하고 있지 못하고 있는 만성질환관리와 예방적 의료, 방문의료 서비스 등을 제공하고 있다. 그 외에도 먹거리·영양돌봄사업, 주거 안전 개조서비스, 서로돌보는 건강리더의 양성 등 건강을 위한 일상적인 노력을 지역사회 관계망을 통해 수행하고 있다. 이들은 일차의료를 통해 가족주치의 서비스를 제공하고, 단순히 병을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예방에 초점을 맞추고, 궁극적으로는 지역주민 하나하나가 이웃들의 관계 속에서 건강한 삶을 살 수 있는 시설과 환경을 만들고자 한다. 안산의료사협 등 전국의 의료사협은 마스크를 만들어 배포하고 보건소의 일손이 딸리자 방역에 동참하고, 고립된 노인들에게 건강의 안부를 묻는 전화를 돌리고, 같이 산책하는 등 주민들의 건강을 지켜나갔다. 은평구의 살림의료사협은 민간임에도 퇴원환자 회복 재활서비스를 위한 중간집(케어 B&B)를 운영한 바 있는데, 이 사업은 우리나라 지역사회통합돌봄 사업에서 반드시 필요한 병원과 집을 잇는 중간집을 한국 최초로 시도한 것이다.
이러한 치료 중심에서 예방중심, 관계중심 의료돌봄으로의 전환은 조합원의 만족도뿐만 아니라 의료비 절감 효과도 있다. 2021년 ~ 2022년까지 안성의료사협을 대상으로 건강보험심사평원에서 연구한 '가치기반 지역사회 중심 건강관리 모델 개발 연구'는 1인기준 연간 40만 원 정도의 의료비 절감 효과가 있음이 증명되었다. 예방, 돌봄을 통한 의료비 절감은 의료보험 재정 문제와 지자체의 돌봄 예산 절감에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노인들의 삶의 질을 개선해준다.
고령화 저출산사회의 심화로 인한 돌봄 사업체 증가는 필연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경제 영역에서의 자립적 수익모델은 수월치 않다. 공익을 중요한 가치로 여기는 사람중심 사회적 경제 사업체의 실패는 정부의 고령화저출산시대의 의료돌봄 정책의 실패로 이어질 것이다. 정부는 적극적으로 사회적 경제를 통한 사회서비스의 확충에 나서야 하며 관련 법 제정에도 주민참여 조직에 대한 지원 방안을 포함하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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