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시안>이 나원준 경북대 교수(경제학)의 새로운 연재 '좌회전 경제'를 시작합니다. 나원준 교수는 여러 진보적 매체에 글을 써 왔습니다. 나 교수는 정부의 적극적인 재정 활동이 필요함을 오랜 기간 주장해 왔습니다다. 나 교수는 앞으로 매월 1회씩 재정 문제를 비롯해 우리 경제가 떠안은 과제들을 점검하고 진보적인 대안을 제시할 예정입니다. 편집자.
최근 언론 보도를 보면 여당과 기획재정부(이하 기재부)가 추진해온 재정준칙 법제화가 어쩌면 곧 실현될지 모르겠다. 법안에 담긴 재정준칙은 관리재정수지(통합재정수지에서 국민연금 등의 흑자액을 제외한 것)가 적자 3%를 넘지 않도록 하고 국가채무비율이 60%를 넘어서면 관리재정수지 적자를 2%까지만 허용하자는 내용이다. 기존에 반대 입장이 분명했던 더불어민주당 기획재정위원회 위원들이 이번에는 소위원회에서 사실상 합의해줬다는 이야기가 무성하다. 타법과의 연계협상으로 재정준칙 도입 가능성이 커졌다는 이야기도 제법 들려온다.
지난 3월 14일 국회 공청회에서 국민의힘 의원들과 정부가 제출한 국가재정법 일부개정법률안에 반대 진술했던 필자로서는 그런 이야기들이 뜬소문이길 바라지만, 코로나19 감염 확산에 따른 사회경제적 위기감이 지배적이었던 2020년이나 2021년에 비하면 올해 분위기가 조금은 달라진 듯도 하다. 찬반의 논점을 흐리는 주장들이 엇갈려온 탓도 있을 법하다.
그놈의 지난 정부 탓
사실 두 시간을 훌쩍 넘겨 진행된 그 날 공청회에서는 필자가 절망했던 순간이 몇 번 있었다. 특히 한 위원이 지난 정부가 재정 중독에 빠져 돈을 펑펑 쓴 탓에 결국 물가가 폭등했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을 때 그랬다. 그러나 국제통화기금(IMF)이 발표한 일반정부 재정수지를 보면 지난 정부 기간 2017년 2.2% 흑자, 2018년 2.6% 흑자, 2019년 0.4% 흑자, 2020년 2.2% 적자, 2021년 0.0% 균형이었다. 포퓰리즘이나 재정 중독이라고 불릴만한 수준이 전혀 아니다. 같은 기간 선진경제권 평균은 2017년과 2018년 2.4% 적자, 2019년 2.9% 적자, 2020년 10.4% 적자, 2021년 7.2% 적자로 나타났으니, 지난 정부 기간 한국은 재정 중독과는 거리가 가장 먼 나라였다.
그뿐만이 아니다. 자본시장연구원이 2022년 공개한 국내 인플레이션 결정 요인 실증연구 결과를 보면 소비자물가의 급등 원인은 원자재 가격 변동과 공급망 차질로 상당 부분이 설명된다. 수요 측 요인의 영향은 단 1%, 즉 100분의 1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재정은 수요 측 요인과 연관되므로 이와 같은 결론은 재정지출 때문에 물가가 오른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시켜준다. 최근 인플레이션은 전 세계적인 현상이다. 그런데 어떻게 지난 정부의 정책이 글로벌 인플레이션의 원인이라는 것인가. 한마디로 억지에 불과하다. 그런데 그런 억지 논리가 재정준칙 도입을 촉구하는 근거로 둔갑했으니 이를 어찌할 것인가.
재정 중독? 포퓰리즘? 근거 없는 억지!
경제가 완전고용 수준에 있다고 가정할 때 현재의 정책으로 달성되는 재정수지인 구조적 재정수지를 다른 나라들과 비교해 보면 한국 정부의 재정정책 기조가 상대적으로 어땠는지 확인할 수 있다. IMF 추산에 따르면 1995년부터 2021년 사이에 한국에서 구조적 재정수지가 적자로 나타난 적은 2020년 단 한 해 뿐이었다. 코로나19 위기가 절정에 달했던 한 해를 제외하면 한국 정부가 이십여 년 동안 늘 세수 범위 내로 지출을 한정해 흑자를 달성하는 긴축 기조를 유지해온 셈이다. 반대로 선진경제권 평균값은 1990년 이래 매년 늘 적자였다.
2021년 한국의 일반정부 총부채는 국내총생산(GDP)의 51.3%였다. 반면 선진경제권 평균은 117.9%로 한국의 두 배가 넘었다. 총부채에서 보유 금융자산 등을 차감한 순 부채는 2021년에 GDP의 20.9%에 그쳐 선진경제권 평균 86.2%와 차이가 더 벌어졌다. 실정이 이러함에도 기재부와 보수적인 재정학자들은 시급히 재정준칙을 도입해 허리띠를 더 졸라매자고, 더 건전해지자고 한다.
포스트 코로나의 국가적 과제와 재정의 역할
경제적 합리성만 놓고 따지더라도 포스트 코로나 시대 국가재정은 한국경제가 직면한 다면적 불확실성과 대전환의 과제를 염두에 두고 전략적 기민성을 발휘할 수 있도록 충분히 탄력적으로 운영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산업전환과 기후위기 대응, 불평등과 저출생 등 사회적 위기 대응을 비롯해 한국경제가 마주한 대전환의 과제는 하나 같이 만만치 않다. 이 과제들과 씨름하며 한국경제의 미래 경로를 열어가야 할 전환기에 재정은 전략적으로 편성되어 국가적 임무의 달성에 기여해야 한다. 그런데 이 정부는 기후위기나 각종 사회적 위기에 대한 제대로 된 계획은 없으면서 재정준칙 도입으로 재정운영의 신축성부터 제한하려 드는 모양새다.
물론 고물가가 상당 기간 지속될 가능성을 감안하면 적자지출보다 증세로 재원을 조달하는 편이 낫다. 적자지출은 전략적 공공투자에 국한하고 일반 지출은 증세로 조달하는 원칙도 검토될 수 있다. 단 세입 기반을 확충해가는 과도기적 단계로서 재정구조가 불안정한 전환기에는 필요에 따라 적자지출을 신축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것이 경제에 나쁘지 않다. 본격적인 증세 없이 현 정부의 부자 감세 기조 하에서 개정법률안의 재정적자 상한선을 지키려면 상당한 정도로 긴축적인 재정운영이 불가피하다. 그렇게는 국가적 임무를 달성하기 어려울 수 있다.
증세 없는 재정준칙은 나쁜 축소 균형을 불러올 것
똑같은 재정적자 3%라도 내용에 따라서는 좋은 경제적 균형의 산물일 수 있고, 나쁜 경제적 균형의 산물일 수도 있다. 충분한 증세에 기반한 재정적자 3%가 국가적 임무를 달성하고 경제의 역량이 커지는 좋은 확장 균형이라면, 감세로 긴축이 강제되면서 나타나는 재정적자 3%는 경제가 수축되는 나쁜 축소 균형이다. 증세 없는 재정준칙은 긴축이고 곧 축소 균형을 불러온다.
그런데 한국경제는 저출생 고령화로 이미 인구구조가 경제 정체의 원인이 되고 있다. 적극적인 인구정책은 부동산과 사교육의 고비용 구조를 바로잡는 포괄적인 대책을 요구하므로 재정투입만으로는 해결 안 되는 어려운 문제이지만 그렇다고 재정투입 없이 될 문제도 아니다. 특별히 재정의 장기적인 지속가능성은 궁극적으로 납세의 의무를 부담할 생산연령의 부양 인구 규모와 밀접히 연관되어 있음에 주목하자. 그렇다면 실효납세자 수를 실효수혜자 수로 나눈 재정부양비율이야말로 장기에 있어 재정의 지속가능성과 직결된다고 볼 일이다.
한국경제로서는 이 재정부양비율의 하락을 막아내지 못한다면 결국 경제와 재정이 모두 쪼그라드는 나쁜 균형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개정법률안의 재정준칙은 저출생을 이미 어쩔 수 없는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는 소극적인 태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재정부양비율의 하락에 손 놓고 있다. 그것은 앞으로 인구구조가 변하고 그래서 재정소요가 늘어날 수밖에 없으니 이제부터는 지속적으로 긴축해야만 한다는 논리다. 그런 식으로는 나쁜 축소 균형을 피할 수 없다. 그 과정에서 국가의 역할은 포기된다.
증세 없는 재정준칙으로는 불평등 해소도, 기후위기 대응도 못 한다
어디 그뿐인가. 개정법률안의 재정준칙은 또한 공적 안전망 확충을 요구하는 시민들의 목소리를 전혀 담아내지 못한다. 재정준칙의 기계적인 준수 과정에서는 복지재정이 최우선적으로 삭감 대상이 되기 쉽다. 우리는 그런 현상을 여태 너무나 자주 목도해 왔다. 이미 심각한 수준에 도달한 불평등과 양극화를 지금보다 더 악화시키면서까지 정부와 여당은 기어코 재정비율 숫자 값 몇 개를 고집해야 하겠는가.
특히 최근 발표된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 6차 보고서의 경고를 무겁게 받아들인다면 지금이야말로 재생에너지 공급을 공공부문 주도로 획기적으로 늘리기 위해 대규모 재정을 투입하는 일종의 '빅 푸시(big push)' 전략이 시급히 요청되는 상황임을 부인하기 어렵다. 우리한테는 시간이 없다.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산업정책의 전환은 성격상 더 미룰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재정준칙 없이도 국가재정법을 선진적인 재정규범으로 발전시킬 수 있다
유럽연합(EU) 재정준칙의 역사는 이번 개정법률안에 담긴 것처럼 고정된 숫자를 못 박는 방식의 재정준칙이 현실에서 작동할 수 없음을 잘 드러내는 사례다. 심지어는 독일조차 2003년 이후 준칙을 지킨 해가 거의 없다. 남유럽 국가들은 2011년부터 2013년까지 재정준칙을 지키려고 무리하게 재정을 긴축했다가 심각한 경제위기를 겪기도 했다. 그런 경험 때문에 2020년 이후 EU 21개 회원국은 부작용 큰 재정준칙 적용을 중단한 다음 재검토에 착수한 상태다. 이번 개정법률안이 도입하고자 하는 EU 방식의 재정준칙은 그렇게 역사 속에서 이미 실패했다. 왜 우리는 실패한 역사를 반복하려고 하는가.
기실 우리의 기존 국가재정법 자체가 상당히 엄격한 수준의 '재정규범'으로 간주할 만한 특징들을 갖추고 있다. 지금은 국가재정법을 다듬어 세계적으로 모범적인 재정규범을 만들 생각부터 해야 한다. 어떻게든 예산 통제를 강화하려고 재정준칙까지 밀어붙이는 기재부 권력에 기대할 일은 아니겠지만, 현 상황에서 제대로 된 정부라면 대외적으로 한국을 재정준칙이 없는 나라가 아니라 상대적으로 개방적이고 신축적이어서 가장 선진적인 재정규범의 발전을 이끄는 나라로 홍보해야 옳다.
재정준칙에 근거한 재정총량의 제한은 기재부의 예산 통제를 뒷받침하는 또 하나의 강력한 수단이 될 것이다. 그것이 기재부가 그토록 줄기차게 재정준칙 법제화를 추진해온 이유다. 필자는 묻고 싶다. 우리는 사회정책 확대와 공공성 확장 의제의 전선 한 축이 이대로 무너져 내리는 것을 지켜보고만 있을 것인가. 재정준칙 도입을 내용으로 하는 이번 국가재정법 일부개정법률안은 절대로 통과되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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