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6일 환경부는 국토교통부가 제출한 제주 제2공항 전략환경영향평가를 조건부 동의했다. 이것은 정당한 절차로 볼 수 없다. 사회적·정치적 약속의 파기 장면이 먼저 떠오를 수밖에 없는 일이다.
이미 도민의 결정이 있었다. 제주도의회의 중재로 국토부와 제주도민은 도민여론조사 방식을 통해 제주 제2공항 건설 여부를 결정하자고 합의했고, '공항건설 반대'로 결정이 났다. 어떤 절차가 더 필요한가? 제주도민은 스스로 살길을 선택한 것이다. 개발과 성장의 가치가 우리 삶을 뼛속 깊이 지배하고 있는 현실에도 제주도민은 거꾸로의 결정을 했다. 왜 그랬을까? 도민들은 제2공항 건설로 인하여 제주도와 도민의 삶이 매우 빠르게 망가질 것을 경험적으로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연간 관광객이 1500만 명인 지금도 제주도는 이미 관광수용력을 상실하고 있음이 여러 가지 증거로 드러나고 있다. 관광객 1000만 명을 더 받기 위해 공항을 하나 더 짓는다면 그 결과가 제주에 어떤 충격을 줄지를 충분히 가늠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관광객이 연간 500만 명이던 시절, 나는 아주 운이 좋게도 직장발령으로 인해 2006년부터 3년을 평화의 섬 제주도에서 살았다. 둘째 아이도 제주도에서 낳았다. 둘째에겐 기억이 없겠지만 아내와 큰아이는 제주 3년을 가장 행복했던 시절이라고 얘기한다. 그와 같은 시절이 또 올까 싶다. 그때의 제주도는 아직 시골의 인심이 남아있던 곳이었다. 어릴 적에나 경험했던 인심을 제주도에서 경험했다. 아파트 동 모임에 참여했다. 우리 동이 좀 유별나기는 한 것 같았다. 그만큼 동 대표와 총무가 열성이었다. 소원하다 싶으면 가족모임을 했다. 아파트 앞 식당에서 막걸리와 함께 수다를 떨었다. 아재들끼리 맥주내기 족구시합, 당구시합을 하며 제주도의 짠맛을 맛봤다. 귤 수확 철이 되면 엘리베이터 앞에는 노란 컨테이너박스에 귤이 가득했다. 먹고 싶은 만큼 가져가란다. 신기했다. 제주도가 육지 사람을 경계한다는 말은 적어도 나에겐 와 닿지 않았다.
여름은 조금 끈적이긴 했지만, 이국적인 맑고 푸른 바다를 맘껏 즐길 수 있었다. 주로 곽지, 협재해수욕장을 찾았다. 비양도가 코앞에 보이고 용천수가 몽골몽골 올라오는 신기하고 깨끗한 바다와 넋을 놓을 수밖에 없는 석양은 그야말로 신비였다. 가을에 중산간 도로를 드라이브 할 때 억새밭의 풍경과 눈부시게 푸른 하늘을 보면 감탄과 함께 황홀경에 빠져들기에 충분했다. 겨울에 눈이 올 때면 목장을 찾아 러브스토리를 찍었다. 아내가 제주와 제주의 친구들과 이별할 때 펑펑 울었던 기억이 지금도 선명하다. 초등 5학년까지 제주 생활을 했던 큰아이는 애기뿔쇠똥구리와의 귀한 인연으로 생태학자를 꿈꾸며 공부하고 있다.
그렇게 아름답고 소중했던 제주가 많이 변했다. 제주와 제주사람을 잊지 못해 우리는 자주 제주를 찾았다. 안타깝게도 그때마다 변해가는 제주를 목격했다. 중산간까지 올라와 지어지는 펜션과 빌라촌, 마을의 모습을 바꿔버리는 대형식당, 도심의 교통체증, 예전 같지 않은 바다는 제주를 갈 때마다 나를 신경질적인 투덜이로 만들었다.
세상이 온통 경쟁력, 경쟁력 한다. 그렇다면 제주도의 경쟁력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사람의 손이 타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이국적인 남쪽나라 섬의 풍경, 화산섬이 가져다주는 독특함, 대문이 없는 제주도의 인심이 아닐까? 관광객의 증가와 함께 더해진 난개발은 제주도의 가치를 무너뜨리고 있다. 제주도가 아까운 도민들은 그것을 알아차린다. 제2공항이 들어서고 이에 더해 강정을 통해 크루즈선이 들어온다면, 이를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이미 언론을 통해 쓰레기와 생활하수 처리문제, 지하수 오염과 고갈의 문제, 연안의 오염문제가 심각함을 알 수 있다. 양식장과 축산 증가로 인한 폐해가 심각한 상황에 이르렀다는 보도를 쉽게 찾을 수 있다.
늦었는지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멈춰 서서 돌아보아야 할 것 같다. 관광산업 구조와 형태를 시급히 새로 설계할 때가 되었다. 입도를 섬의 환경수용력 적정선으로 제한할 수 없다면 공항건설계획 폐기가 가장 시급한 최우선의 방안이 되어야 할 것이다. 바르셀로나, 암스테르담, 베니스의 교훈을 잊지 말고 지금의 제주라도 더 망가지지 않게 지켜야 한다. 보라카이처럼 섬을 폐쇄할 수밖에 없는 지경까지 가면 안 되지 않겠는가? 제주를 지키려는 제주도민을 응원한다. 제주 제2공항 건설을 저지하며 안전하고 정의로운 제주를 지키기 위해 싸우는 동료시민들을 응원하며, 세종시민이지만 여기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본다.
이 기고는 <제주투데이>에도 공동으로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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