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를 놓고 한 판 도박이 벌어지고 있다. "기후 도박"이라니, 아닌 밤중의 홍두깨도 아니고 무슨 소리일까? 혹한과 폭설로 한국에서는 난방비 폭등의 책임을 놓고 윤석열 정부를 지지하는 여당과 문재인 정부에 참여했던 야당 인사들이 갑론을박을 벌이고 있다. 이런 한국인의 무책임, 나아가 북극 제트 기류의 약화로 인한 기상 이변에 전 인류의 목숨마저 위태로운 상황에 이르게 한 인류의 무책임을 도박에 비유하는 게 아니다. 미래의 기후변화가 어떻게 진행될지에 대한 예측과 관련해서 실제로 돈을 건 도박이 진행 중이다. 이런 기후 도박을 개설한 주최자는 매사추세츠 공과대학 경영대학원의 앤드루 맥아피(Andrew McAfee) 교수다.
맥아피 교수는 사실 정보통신기술의 혁명이 경제와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는 학자다. 구체적으로는 인터넷과 플랫폼의 개념을 기업에 적용한 <엔터프라이즈 2.0>이라는 책을 발간했을 뿐만 아니라, <제2의 기계 시대>, <기계와의 경쟁>이라는 도서도 집필했다. 이런 책들이 경영학 필독서에 선정될 정도로 맥아피 교수는 큰 명성을 얻었다. 게다가 그는 대중 강연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2013년에는 "미래의 일자리가 어떤 모습일까"라는 주제로 테드(TED)에서 강연해 유명해졌다.
이처럼 학계와 대중으로부터 호평을 얻고 있는 맥아피 교수가 기후 도박을 벌이는 데에는 나름의 근거를 가지고 있다. 바로 2019년에 발간한 <포스트 피크: 거대한 역전의 시작(More from Less)>에서 이유를 꼼꼼히 설명하고 있다. 이 책에서 맥아피 교수는 자신이 많은 사람들과 달리 기후변화 문제의 해결을 낙관적으로 전망하는 네 가지 근거를 제시하고 있다. 자본주의, 기술 발전, 대중의 인식, 반응하는 정부라는 요인들이 적절히 작동하기 때문에 지구온난화가 무난히 해결될 것으로 그는 전망했다.
맥아피 교수는 선진화된 자본주의 시장 경제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탁월한 사회 체제라고 주장한다. 과거에 자본주의의 태생적 한계를 비판했던 이론가와 실천가들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예측은 실현되지 않았으며, 지금까지도 대안이 제시되지 않을 정도로 자본주의는 우월한 경제 체제로 세계를 장악해나가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자원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자본주의의 특성이 온실가스를 포함한 오염물질의 배출을 효과적으로 줄여나가는 원동력이 될 수 있다고 맥아피 교수는 주장했다.
또한 맥아피 교수는 과학기술이 문제의 해결책이라는 믿음을 강하게 지니고 있다. 맥아피 교수는 산업화 이전의 뉴욕에서 마차로 인한 오염이 심각했지만, 자동차의 등장으로 인해 손쉽게 처리되었던 사례를 들고 있다. 보다 직접적으로 개인용 컴퓨터처럼 전력을 많이 사용하는 낡은 기술들이 지금은 스마트폰처럼 에너지 저소비형 첨단기술로 대체되었기 때문에, 기후변화 문제도 기술 발달을 통해 해결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그렇지만 나머지 두 가지 요인은 설명력이 확연히 떨어지는 문제가 있다. 대중의 인식 확대가 문제 해결의 실마리라는 주장은 타당하다. 그렇지만 사람들의 인식이 기후변화 문제의 해결을 낙관할 만큼 충분한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을 수 있다. 예를 들면, 미국에서는 민주당과 공화당 지지자로 양분된 기후 인식의 격차가 수십 년째 해소되지 않고 있다. 한국에서는 다행히 기후 이슈가 정쟁의 대상이 되지 않지만, 일반 국민은 기후 문제보다 경제성장이 더 중요하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물론 중국이나 인도뿐만 아니라 저개발국의 성장지상주의는 두말할 필요도 없다.
마지막으로 '반응하는 정부'는 더 문제가 많다. 미국에서 공화당 출신의 트럼프 대통령은 파리협정을 탈퇴했다. 뒤이은 민주당의 바이든 대통령은 취임 첫 행정명령으로 파리협정 복귀를 선언했다. 정부에 따라 기후 정책 입장이 갈팡질팡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기후변화가 개별 국가의 현안이 아니라 인류 전체의 문제라는 사실이다. 자국 내 이슈는 국가별 정부 조직 내에서 정책적 해결이 가능하겠지만, 지구적 문제에서 국가 간 협상은 쉽지 않다. 1992년 기후변화협약을 체결한 이래로 많은 전문가와 환경단체들이 온실가스의 의무 감축만이 해결책이라고 목소리를 높였음에도 불구하고 지구적 문제를 담당하고 있는 유엔은 30년째 강제 할당을 못하고 있다.
그래도 맥아피 교수는 자신의 주장에 대한 신념을 바탕으로 "미래 예측 도박 사이트(Long Bets)"에 돈을 걸고 있다. 즉, 2029년까지 미국의 에너지 사용량과 자원 소비량이 줄어들 것이라는 14가지 도박을 개설하고 있다. 따라서 누구라도 미국이라는 나라가 시장, 기술, 국민, 정부라는 조건을 충족하는 국가인지에 대해 의문을 품고 있다면, 도박 사이트에 접속해서 반대쪽에 베팅할 수 있다.
다만 기후 낙관주의자인 맥아피 교수는 도박판을 벌이면서 돈을 잃고 싶지 않았는지, 은근슬쩍 논의를 미국으로 돌리고 있다. 즉, 책에서는 지구적 기후 문제에 대한 장밋빛 전망을 제시했지만, 정작 돈을 걸 때에는 일개 국가로 제한했을 뿐만 아니라, 탄소가 아닌 에너지 소비와 관련해서 큰소리를 치고 있다.
미국이 아무리 에너지 소비를 줄인다고 해도 환경오염 산업이 외국으로 이전한 뒤 제품의 역수입이 증가할 경우에는, 온실가스를 눈에 보이지 않게 다른 나라로 옮길 수 있다. 만약에 그가 기후변화 문제에 정말 자신이 있었다면, 2029년 혹은 2050년의 온실가스 배출량과 관련해서 미국 아닌 지구적인 차원에서 줄어들 것인지에 대한 예측으로 도박판을 개설했어야 했다. 반면에 강산이 세 번 바뀔 동안에도 더디기만 한 기후협약의 추세를 감안하면, 온실가스 감축은 쉽지 않은 목표라고 짐작된다. 결국 잘못된 문제 정의로 눈속임에 불과했던 맥아피 교수의 기만적 도박에는 아직까지 댓글만 달려 있을 뿐이지, 아무도 반대편에 돈을 걸지 않고 있다.
맥아피 교수보다 더 유명할 뿐만 아니라 경영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피터 드러커(Peter Drucker)는 "미래를 예측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 미래를 만드는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기후변화 관련 미래 예측은 맥아피 교수의 전망과 달리 암울할 가능성이 크다. 지구온난화를 해결하고 탄소중립을 달성하는 유일한 방법은 예측이 아니라 미래를 만들어가는 수밖에 없다. 확률이 낮은 베팅일 수 있겠지만, 한국에서도 거대한 역전을 만들어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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