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도덕 등 교과서에서 '성소수자' 용어를 삭제한 교육부의 2022년 교육과정 개정 행정예고를 두고 인권단체 및 성소수자 당사자들이 규탄 행동에 나섰다.
이들은 성소수자를 사회적 소수자의 사례에서 배제하는 등 소위 "우경화 경향"이 짙게 보이는 개정안의 내용적 문제점과 더불어, 일부 보수단체가 주로 주장해온 내용들만이 일방적으로 반영된 데 대해 교육부 의사 결정 과정의 민주적 정당성 또한 문제로 지적했다.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과 1555명의 연명자들은 15일 교육부를 규탄하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하고 우편·팩스·이메일 등을 활용해 교육부를 상대로 의견제출 활동에 돌입했다.
이들은 특히 "성 정체성을 확립하는 과정인 청소년기에 교육과정 안에 성소수자가 사회적 소수자의 구체적 예시로 들어갔을 때 발생할 여러 청소년들의 정체성 혼란을 우려했다"는 장홍재 교육부 학교교육지원관의 설명을 두고 "이미 학교 안에 존재하는 성소수자 학생의 존재를 지우는 것일 뿐만 아니라, 성소수자 정체성이 교육 등 외부적인 영향에 의해 '조장'될 수 있다는 시대착오적이며 비과학적인 관점"이라고 비판했다.
앞서 교육부가 지난 9일 행정예고한 초·중등학교 및 특수교육 교육과정(2022년 개정 교육과정)을 살펴보면, 고등학교 통합 사회 성취 기준 해설의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예시에서 '성소수자'가 삭제됐다. 도덕과 교과서 내 '성평등'이란 용어 또한 '성에 대한 편견'으로 바뀌었다. '성평등' 용어의 사용은 '양성 이외의 성에 대한 인정'을 쟁점으로 인권단체 등과 보수성향 정치·종교단체들이 각을 세워온 사안이다.
무지개행동은 성명에서 "필요한 것은 성소수자의 존재를 교육과정에서 지우는 교육이 아니라, 성소수자를 포함한 모든 청소년이 자신의 성적지향과 성별정체성을 자유롭게 탐색하며 각자의 다양한 정체성을 확립해 나갈 수 있도록 필요한 정보를 충분히 전달하는 것"이라며 이번 행정예고안이 "성소수자를 이 사회에 없는 존재로 만들어 버렸다"고 강조했다.
사단법인 청소년 성소수자 지원센터 띵동,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아동청소년인권위원회 또한 같은 날 공동성명을 내고 "교육과정에서조차 '성평등'을 '성평등'이라 하지 못하는 지금의 상황은 그 자체로 성평등하지 않은 현실의 민낯"을 보여준다며 "성평등한 교육과정을 경험하지도, 그 필요성을 이해하지도 못한 채 교육과정 개정을 다루는 기성세대가 지금의 아동·청소년들이 학교에서 성평등 교육을 받을 권리를 가로막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들은 2019년 유엔(UN) 인권고등판무관 사무소가 "아무도 뒤에 남기지 않는(Leaving No One Behind) 원칙의 가장 중요한 내용으로 '성소수자를 교육환경에 포함시키는 것'을 명시"했던 예를 들어 "국제사회의 요구에도 불구하고 개악된 '2022년 교육과정 개정안'을 내놓은 교육부의 처사는 우리 모두를 부끄럽게 만든다"고 주장했다.
"보수·종교계 의견만 '국민의견'? … 교육부, 공청회 난입한 보수단체 주장만 반영"
이번 개정안을 발표하면서 교육부는 "쟁점이 지속되는 시안에 대해서 교육과정 개정 협의체, 교육과정심의회 등을 통해 쟁점사항을 논의하는 과정을 거쳤다"고 밝혔다. 그러나 단체들은 교육부가 "국민의견 중 아주 일부 주장에 불과한" 보수·종교 단체의 논리만을 개정안에 중점적으로 반영했다고 지적한다. '쟁점' 사안에 대한 절차적 정당성이 확보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교육부가 지난 9월 국민참여소통채널을 통해 수집했다고 밝힌 '성소수자' 표현 삭제 및 '성평등' 용어 변경에 대한 '국민의견'은 전국학부모단체연합, 동성애동성혼반대국민연합 등 보수·기독교 성향 시민단체 연대체인 '교육 정상화를 바라는 전국네트워크' 등이 주로 주장해온 의견이다.
이들은 지난 9월 28일과 30일 한국교원대학교에서 개최된 도덕, 사회 교과별 공청회 당시에도 현장 기자회견을 열고 △차별금지법을 지지하는 교육 반대 △성평등 용어 삭제 등을 요구한 바 있다. 공청회가 시작되자 장외 시위에 참여했던 이들 중 일부는 장내에 배석해 "성평등 반대" 등의 구호를 외치며 소요를 일으키기도 했다. 당시 도덕과 정책연구진은 '도덕 교과 특성 등을 고려해 성평등 용어를 유지한 개정안을 공청회 시안으로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달 8일 같은 장소에서 열린 총론 공청회에선 보수단체 소속의 한 목사가 무대에 난입, 종합발표를 위해 무대에 올랐던 최서현 전국 특성화고 노조 위원장에게 물리력을 행사하며 공청회가 파행에 이르기까지 했다. 당시 최 위원장은 "보수단체의 폭력과 욕설에 교육부가 제대로 대응하지 않고, 무책임하고 무능하게 대처"했다며 교육부의 사과를 요구했다.
시안이 변경된 흐름에 따르면, 공청회 당시 도덕과 정책연구진이 제출한 시안에선 존재하던 '성평등' 표현이 파행 수준의 공청회 등을 거치면서 일방적으로 삭제된 것으로 보인다.
무지개행동은 성명에서 "공청회를 폭력과 혐오 선동의 장으로 만들며 파행으로 몰고 간 보수세력의 손을 들어 준 것과 다름없는 결과라는 점에서 의사결정과정의 민주적 정당성 역시 묻지 않을 수 없다"며 "교육부가 시안 개발에 참여한 연구진들과의 어떠한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내용을 수정해 행정예고를 했다는 점에 대해 연구진들 역시 크게 반발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민변 아동청소년위와 사단법인 띵동 측 또한 성명을 통해 "(시안 마련 당시) 각계의 전문가들은 명백히 성소수자 혐오에 기반하고, 교육에서의 성평등 관점을 크게 후퇴시키는 차별적 주장들에 대해 즉시 문제를 지적"했지만 결국 교육부는 "국민의견 중 아주 일부 주장에 불과한, 혐오와 차별의 논리를 받아"들였다고 비판의 뜻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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