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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 점령지 병합투표 '압도적 찬성' 빌미 확전 위기…"핵 사용" 재차 협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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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 점령지 병합투표 '압도적 찬성' 빌미 확전 위기…"핵 사용" 재차 협박도

러, 우크라 수복 시도 '주권 침해' 주장 핵 사용 우려…CNN "핵 사용 가능성 이전보단 크지만 여전히 매우 낮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점령지에서 행한 러시아 편입에 대한 의견을 묻는 이른바 '주민투표' 결과 압도적 찬성 의견이 나옴에 따라 이를 빌미로 러시아가 새로운 전쟁 명분을 얻고 확전을 꾀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점령지를 정식으로 러시아 영토로 병합할 경우 이를 수복하려는 시도를 '주권 침해'로 자의적으로 해석할 수 있어서다. 러시아가 최근 부분 동원령을 내려 병력을 충원하고 있는 데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핵 위협에 이어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국가안보회의 부의장은 "필요시 핵무기 사용"을 명시적으로 언급하며 위기감이 최고조에 달하고 있다. 한편 부분 동원령을 피하려는 러시아 남성들의 탈출이 계속되는 가운데 유럽 내 우크라이나인들을 포함한 인접국 주민들의 우려가 나온다.   

러시아 국영 <타스> 통신은 28일(현지시각) 러시아 점령지역인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의 도네츠크주와 루한스크주, 남부 헤르손주와 자포리자주에서 23~27일 러시아 편입에 대한 의견을 묻는 이른바 '주민투표'에서 대부분의 주민이 편입에 찬성했다고 보도했다. 매체는 도네츠크와 루한스크의 경우 찬성률이 99.23%, 98.42%에 달하고 자포리자 주민 93.11%, 헤르손 주민 87.05%도 찬성표를 던졌다고 전했다. 투표율도 78.86%(헤르손)~97.51%(도네츠크)에 달한다고 설명했다. 메드베데프 부의장은 28일 텔레그램을 통해 "투표 결과는 명확하다. 러시아로 돌아온 것을 환영한다!"고 밝혔다. <뉴욕타임스>(NYT)는 영국군 정보당국을 인용해 오는 30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의회 연설이 예정돼 있다며 이는 공식 합병에 대한 의회 투표가 이날 이뤄질 수 있음을 시사한다고 추측했다.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발렌티나 마토비옌코 러시아 상원 의장은 합병 인준 투표가 의회에서 다음달 4일 치러질 가능성을 제기했다.

외신은 이번 투표가 강압적으로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워싱턴포스트>는 27일 익명을 전제로 취재에 응한 한 루한스크 주민이 무장한 사람들이 집집마다 방문해 투표 용지를 수거해갔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이 주민은 투표 때 신분 증명이 요구되지 않았고 이름과 주소만 제시하면 됐다면서 이것이 이후 결과 조작을 더 쉽게 하기 위한 것 같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다만 그는 몇몇 주민들은 핵보유국인 러시아 아래로 편입되면 "우크라이나가 더 이상 이곳을 포격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고 전했다. <뉴욕타임스>의 보도를 보면 점령지인 우크라이나 자포리자주 멜리토폴 시장 드미트로 오를로프는 "그들이 (문을) 쾅쾅 두드리고 초인종을 누르고 주민들에게 투표용지를 건네며 기표할 곳을 소총으로 가리켰다"며 이번 투표가 협박으로 이뤄져 결과는 무의미하다고 말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27일 영상 연설에서 "점령지에서 벌어지는 이 우스꽝스러운 촌극은 주민투표를 모방했다고 말하기조차 어려울 지경"이라고 비난했다.

국제사회는 이 투표 결과를 인정하지 않을 것임을 다시 한 번 강조했다. <로이터> 통신을 보면 27일 린다 토머스 그린필드 유엔(UN) 주재 미국 대사는 미국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우크라이나에 대한 어떤 변화도 인정하지 않을 것과 러시아의 철군을 요구하는 결의안을 제출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린필드 대사는 "러시아의 가짜 주민투표가 받아 들여지면 닫을 수 없는 판도라의 상자가 열릴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린필드 대사는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러시아가 이 결의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할 경우 미국은 이 문제를 유엔 총회 회부할 것을 촉구하겠다고 엄포를 놨다. 앞서 23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도 이 투표를 규탄하며 미국은 절대 결과를 인정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서방은 투표를 비난하며 새로운 제재를 준비 중이다. <로이터> 통신은 27일 익명을 조건으로 취재에 응한 미국 관료를 인용해 미국 정부가 "가짜" 투표 결과를 지켜본 뒤 수 일 내에 11억달러(약 1조5870억원) 규모의 새로운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 패키지를 발표할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27일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도 성명을 내 가짜 투표 결과나 러시아의 불법적인 우크라이나 영토 병합 시도를 인정하지 않을 것이며 러시아에 대해 "새로운 제재를 가할 것"이라고 밝혔다.

투표 결과는 최근 몇 주 간 우크라이나 북동부에서 크게 후퇴한 러시아에게 새로운 전쟁 명분을 제공할 전망이다. 침공 당시 며칠이면 끝날 것으로 예상된 전쟁이 장기화되고 이달 들어 우크라이나군의 영토 수복 기세가 거센 데다 지난 15일 상하이협력기구(SCO) 정상회의에서 서방 제재에 동참하지 않고 있는 중국이 이 전쟁에 "의문"을 제기하며 수세에 몰린 푸틴 대통령의 돌파구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난 21일 내부 지지를 고려해 자제해 왔던 부분 동원령까지 내리면서 러시아가 투표 결과를 근거로 전쟁 명분을 '주권 보호'로 전환하고 확전을 준비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이번 투표는 점점 노골화 돼 가는 러시아의 핵 위협과 맞물려 위기감을 키우고 있다. 27일 메드베데프 부의장은 텔레그램에 "핵무기 사용에 관해"라는 제목으로 글을 올리며 "나는 다시 한 번 상기시켜야겠다. 러시아는 필요시 핵무기를 사용할 권리가 있다"고 밝혔다. 그는 "필요시"라는 조건을 부연하며 "우리, 또는 우리의 동맹이 이러한 종류의 무기(핵무기)로 공격 받을 경우, 혹은 우리 국가의 존립이 재래식 무기를 사용한 침략으로 위협 받을 경우"라고 설명했다. 메드베데프 부의장은 또 러시아가 핵무기를 사용하더라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는 "워싱턴, 런던, 브뤼셀의 안보"를 훨씬 중시하기 때문에 "분쟁에 직접 개입하지 않을 것"이라고 냉소했다. 앞서 21일 푸틴 대통령은 "영토 보전"이 위협 받는다면 "모든 수단을 동원하겠다"며 핵무기 사용을 시사했다.

투표 결과를 빌미로 합병 승인이 이뤄져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점령지를 자국 영토로 공식 편입할 경우 러시아가 우크라이나군의 이 지역 탈환 시도를 자국 영토에 대한 공격으로 자의적으로 해석할 가능성이 있다. 특히 투표 결과가 러시아 쪽이 밝힌 핵무기 사용 조건인 "영토 보전" 등의 명분으로 사용될 수 있어 우려가 커진다.

우크라이나 쪽은 러시아의 핵 위협에도 영토 탈환 계획에 변함이 없다고 밝혔다. <워싱턴포스트>를 보면 젤렌스키 대통령은 주민 투표가 우크라이나군의 영토 방어에 변화를 주지 않을 것이며 크림반도를 포함해 모든 점령지를 수복하겠다고 강조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푸틴 대통령의 "핵 협박"에 대응해 서방이 "예방 조치"를 취할 것 또한 촉구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서방 국가들에 탱크, 장거리 미사일 등 주요 무기 지원을 요구해 왔다. 미국과 독일은 탱크 제공에 동의하지 않은 상태다. 미하일로 포돌랴크 우크라이나 대통령 보좌관도 27일 <로이터>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위험"이 있더라도 점령된 모든 영토 수복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우크라이나는 미국산 무기로 러시아 영토를 공격하지 않기로 합의했지만, 미국 관리들은 불법적으로 병합된 영토에는 이 제한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미국 CNN 방송은 27일 당국자들이 러시아가 핵무기를 근시일 내에 사용할 계획이 있다는 징후는 발견하지 못했지만 사용 가능성이 6~7개월 전보다는 크다는 점은 우려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방송은 다만 당국자들은 여전히 실제 사용 가능성은 지극히 낮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동원령 피한 러시아 탈출 계속…"탈출 남성들 중 푸틴 지지자 존재" 인접국 우려도

한편 부분 동원령을 기피하기 위한 러시아 탈출 행렬이 계속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외신들은 위성사진 판독 결과 26일 러시아와 조지아 국경 근처에서 수 킬로미터(km)에 이르는 차량 정체가 발견됐다고 보도했다. 조지아 내무부는 러시아로부터 하루 입국자 수가 약 1만 명으로 전 주의 두 배에 달한다고 밝혔다. 27일 유럽연합(EU) 회원국의 국경 수비 업무를 담당하는 프론텍스는 지난 19일부터 25일까지 거의 6만6000명의 러시아인이 EU 국가에 입국했으며 이는 전주보다 30% 증가한 수치라고 밝혔다. 러시아인이 비자 없이 입국할 수 있는 국가 중 하나인 카자흐스탄 내무부는 카자흐스탄에 지난주 9만8000명의 러시아인이 입국했지만 6만4000명이 떠났다고 밝혔다. 러시아 독립언론 <노바야가제타유럽>은 러시아 정부 소식통을 인용해 동원령 뒤 26만1000명이 러시아를 떠났다고 보도했다.

러시아 정부는 국경을 폐쇄하진 않았지만 조지아 국경 지대에 동원소집 센터를 개설할 예정이라고 영국 BBC 방송이 보도했다. 당국은 국경 지대에서 "동원 연령의 시민"에게 소집 통지서를 발부할 예정이다. <뉴욕타임스>는 이미 국경을 넘으려 대기 중이던 남성들이 소집 통지서를 받았다고 덧붙였다. 러시아 인권단체 OVD-info는 21일~26일 사이 동원 반대 시위에 참여해 구금된 인원이 2397명에 달한다고 밝혔다. 

카타르 방송 알자지라는 징병을 피하려 탈출하는 이들이 반드시 전쟁에 반대하는 것은 아니라고 짚었다. 지난 24일 동원을 피하려 러시아에서 조지아로 도피한 알렉세이(24)는 이 매체에 도네츠크와 루한스크에 대한 우크라이나의 "탄압"을 언급하며 "전투가 왜 발생했는지는 이해하지만 나는 다른 누군가의 제국적 야망을 위해 죽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같은 이유로 조지아로 도피한 러시아인 볼로댜(24)도 "나는 애국자지만 정치에 관여하지 않고 가족들이 내가 살아있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조지아 언론인인 라샤 바두카디아는 매체에 "러시아 정부에 반대해 조지아로 오는 사람들도 있지만 문제는 이런 사람들만 오는 게 아니라는 것"이라며 "푸틴 대통령과 그의 체제를 지지하지만 자신의 목숨을 희생하고 싶진 않은 사람들도 있다"고 지적했다. 

독일 방송 도이치벨레(DW)는 독일 내 우크라이나인들이 동원을 피해 탈출하는 러시아인들이 독일로 들어오는 것에 반대하고 있다고 27일 보도했다. 독일 거주 우크라이나인인 카테르냐 리에츠 라쿨은 우크라이나 침공을 지지하는 상징으로 사용되는 "Z" 표시가 국경을 넘으려는 러시아인들의 차량에 새겨져 있거나 일부는 문신으로 몸이 새겨져 있다는 소셜미디어(SNS) 영상을 지적하며 이들은 "반체제 인사가 아니라 단지 자신의 목숨이 위협받지 않기를 바라는 사람들"이라며 망명 허용이 동원에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할 뿐 아니라 안보 문제를 야기할 명백한 정치적 실수라고 주장했다.

▲27일(현지시각) 러시아 편입에 대한 찬반을 묻는 투표가 치러진 러시아 점령지 우크라이나 동부 도네츠크주 투표소에서 선거관리위원이 투표용지를 확인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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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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