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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극우세력, <안네의 일기>도 '금서'로 지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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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극우세력, <안네의 일기>도 '금서'로 지정하다

텍사스 한 학군에서 성경 등 12권 '도서관 비치 금지 도서' 공문 보내

미국 텍사스주 교외의 한 학군에서 성경과 <안네의 일기> 등 12권의 책을 학교 도서관 비치 도서에서 제외하기로 했다는 사실이 알려져 논란이 일고 있다.

텍사스주 포트워스 교외의 켈러 독립 학군(Keller Independent School District)은 16일(현지시간) 지역내 초중고등학교 도서관에 해당 도서 목록을 첨부해 "오늘까지 해당 도서들을 도서관 책꽂이와 교실에서 수거해야 한다"고 지시했다.

미국 유대인들의 소식지인 <JTA>(Jewish Telegraphic Agency)는 이날 해당 학군의 교육과정 담당 이사가 이런 내용의 공문을 이메일로 보냈으며 보수 성향의 학부모와 교육위원들의 요청에 기반해 이런 결정을 내렸다고 보도했다.

켈러 학군에서 '금서'로 지정한 <안네 프랑크의 일기 : 그래픽 노블>(Anne Frank's Diary: The Graphic Adaptation)은 이스라엘의 영화 제작자 아리 폴먼과 삽화가 데이비드 폴론스키가 원작을 기반으로 그래픽 노블로 각색한 작품이다. 2019년 이 책이 처음 나왔을 때 <뉴욕타임스> 등 언론들이 극찬하기도 했다.

켈러 학군의 교육위원회는 지난해 금지 여부가 논의되다가 빠졌던 이 책이 이번에 왜 ‘금서’로 추가됐는지에 대한 이유를 밝히지는 않았다. 단지 지난해 논의 당시 안네가 사춘기 시절에 많은 이들이 가질 수도 있는 동성에 대한 끌림 등을 말한 대목이 문제로 제기됐다고 이 언론을 보도했다. 이 내용은 <안네의 일기> 원작에도 포함된 부분이다.

<안네의 일기>는 독일 출신 유대인 소녀 안네 프랑크가 나치 점령기에 가족들과 은신처에서 지내는 2년간 쓴 일기를 묶어낸 책이다. 안네는 1944년 8월 독일의 한 유대인 수용소에서 사망했으나, 이 일기는 가족 중 유일한 생존자인 아버지 손에 들어가 1947년 출판된 뒤 세계적인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이 책은 2009년 유네스코 세계 기록 유산으로 등재됐다.

극우세력의 '금서' 지정 운동…노골적으로 '소수자'들을 탄압하는 '배타주의'에 기반

정치적으로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을 지지자들, 종교적으로는 복음주의 기독교(evangelical) 세력이 주도하는 미국 내 극우성향의 '문화전쟁(Culture War)'은 학교 내에선 특정 도서를 교육과정에서 배제하는 '금서' 운동의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이들 극우성향의 학부모들은 학군내 교육위원회를 장악해 금서를 지정하고 이를 통해 교사들의 교육 내용을 통제, 감시하고 있다.

이들이 주로 문제를 삼고 있는 책들은 미국 내 인종차별에 대해 비판적이거나 동성애에 대해 우호적인 관점의 책이나 영상물들이다. 이들은 미국의 법과 제도가 인종차별적 인식에 기반한다고 주장하는 '비판적 인종이론(Critical Race Theory)' 관련 교육, 동성애를 포함한 성소수자에 대한 교육 등에 대해 반대한다.

지난 2020년 대선을 전후로 'CRT 교육 반대'는 극우세력들을 결집시키는데 주요한 '촉매제' 역할을 해왔으며, 지난해 11월 버지니아 주지사 선거에서 공화당 후보였던 글렌 영킨은 'CRT 교육 반대'를 주요 공약으로 내세워 당선됐다.

이처럼 'CRT 교육 반대'가 주요 이슈가 되면서 텍사스 뿐 아니라 공화당 세력이 우세한 다수의 '레드 스테이트'에서 금서 운동이 활발히 일었다.

그러나 학부모들의 압력으로 금서로 지정된 목록을 살펴보면 그 정당성에 선뜻 동의하기 힘들다.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요크에서는 2020년 10월 전원 백인인 교육위원회에서 특정 책과 영상 자료에 대한 교육 금지 지침을 내렸다. 이 목록에는 흑인 인권 운동가인 로자 파크스 관련 책, 2014년 노벨평화상을 받은 파키스탄의 여성 교육 운동가 말랄라 유사프자이의 전기, 아카데미 작품상 후보에 올랐던 영화 '히든 피겨스'의 원작 소설, 어린이 교육 프로그램인 '세서미 스트리트'에서 인종주의를 다룬 내용, 미국의 공영방송인 PBS에서 만든 인종차별 관련 다큐멘터리 등이 포함돼 있다.

텍사스 휴스턴의 한 학군에서는 흑인 소년이 백인들이 다수인 사립 중학교에 진학해 적응하는 과정을 다룬 <뉴 키드(New Kid)>라는 책을 금서 목록에 포함시켰다. 이 책은 그래픽 소설 중 최초로 지난 2018년 뉴베리상을 받아 주목을 받았다. 이 상은 해마다 미국 아동문학 발전에 가장 기여한 책에게 주는 상이다.

테네시주 맥민 카운티 교육위원회는 지난 1월 아트 슈피겔만 작가의 만화 <쥐>를 교육 과정에서 빼기로 했다. 이 책은 작가의 아버지의 삶을 통해 유대인 수용소의 참상을 그리고 있는 작품으로, 슈피겔만은 1992년 퓰리처상을 받았다. 맥민 카운티 교육위원회는 여성의 나체를 그린 장면이 등장하며 욕설 등이 나온다는 이유로 이 책을 금서 목록에 넣었다.

이처럼 '마녀사냥'식으로 진행되는 금서 지정 운동에서 '반유대주의'도 하나의 잣대로 작용하고 있다는 사실은 슈피겔만 작가의 <쥐>에 이어 <안네의 일기>를 통해서도 확인된다.

켈러 학군은 언제부터 이 책들에 대한 금지가 적용되는지에 대해 명시하지는 않았지만, 이런 사실을 접한 다수의 학부모들이 반발하고 있다고 이 언론은 전했다.

▲켈러 학군에서 금서로 지정한 <안네의 일기> 그래픽 노블. ⓒ<JTA> 화면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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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홍기혜

프레시안 편집·발행인. 2001년 공채 1기로 입사한 뒤 편집국장, 워싱턴 특파원 등을 역임했습니다. <삼성왕국의 게릴라들>, <한국의 워킹푸어>, <안철수를 생각한다>, <아이들 파는 나라>, <아노크라시> 등 책을 썼습니다. 국제엠네스티 언론상(2017년), 인권보도상(2018년), 대통령표창(2018년) 등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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