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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과 2019년의 미국 대통령의 약속이 지켜졌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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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과 2019년의 미국 대통령의 약속이 지켜졌다면

[정욱식 칼럼] 한미연합훈련에 관하여(중)

1990년대 초반 이른바 '북핵'이 불거진 이후 이 문제는 한미연합훈련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어왔다. 첫 반전은 1992년 1월에 일어났다. 노태우 대통령과 조지 H.W 부시 대통령이 당시 세계 최대 규모의 군사훈련이었던 '팀 스피릿 중단'을 공식 발표한 것이다.

한미 양국은 공식 발표에 앞서 이를 북한에 통보했다. 그러자 북한도 남북기본합의서와 한반도비핵화공동선언을 체결하고 국제원자력기구(IAEA) 안전조치협정에도 가입했다. 그러나 팀 스피릿 훈련 중단 선언으로 흥(興)한 한반도 정세는 이 훈련의 재개로 망(亡)하고 말았다. 한미 국방장관이 1992년 10월 8일 워싱턴에서 열린 한미연례안보협의회의(SCM)에서 팀 스피릿 훈련 재개 방침을 발표하고 이듬해 훈련 재개에 들어간 것이다.

그러자 북한은 팀 스피릿 훈련 재개 및 IAEA의 특별사찰 결의를 강력히 비난하면서 1993년 3월 핵확산금지조약(NPT)에서 탈퇴를 선언했다. 북한의 NPT 탈퇴는 이 조약이 1970년에 발효된 이후 처음이었다. 이에 따라 NPT 탈퇴는 북한이 핵무기 개발 의사를 분명히 한 것으로 간주되었다 이른바 '북핵 위기'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당시 주한 미국대사로 팀 스피릿의 중단 결정을 이끌어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던 도널드 그레그는 이 훈련의 재개야말로 한반도 정책의 "가장 큰 실수"라고 회고했다. "남북관계와 북미관계에서 이루어졌던 모든 긍정적 성과가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고 본 것이다.

아마도 한미 대통령의 약속이 지켜졌다면, 이후 상황은 판이하게 달라졌을 것이다. 초기 단계에 있었던 북핵문제가 진즉에 해결되어 30년 동안 이 문제로 골머리를 앓는 상황이 없었을 수도 있다.

쓰러진 김정일과 강해진 한미연합훈련

2008년 8월에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뇌 관련 질환으로 쓰러지자 이명박 정부는 '흡수통일의 꿈'을 꾸기 시작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김정일의 죽음이 다가오고 있고 그의 죽음이 북한 붕괴로 이어질 테니 한국은 이를 기다리면서 통일을 준비해야 한다는 취지로 "기다리는 것도 전략"이라고 말했다. 정부 안팎에선 "북핵문제의 궁극적인 해법은 통일에 있다"는 말도 공공연히 나왔다.

말로만 끝난 것이 아니었다. 김정일 유고 시 한미연합군을 북한에 투입해 대량살상무기를 확보하고 북한을 무력으로 통일하는 방안도 검토되었다.

이러한 방안은 한미연합훈련으로 구체화되었다. 2009년 2월 중순∼3월 초에는 '키 리졸브 및 독수리훈련'이 예고되어 있었다. 북한은 이 훈련의 실시 여부를 새롭게 출범한 오바마 행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한 '풍향계'로 삼고선 유엔사와의 장성급 회담을 통해 이 훈련의 취소를 요구했다. 그러나 미국은 한미군사훈련은 연례적이고 방어적인 것이라며 북한의 요구를 일축했다.

하지만 '방어적'이라고 보기에는 너무 자극적이었다. 한미연합군의 수뇌부는 수시로 김정일의 건강문제를 거론하고, 북한 급변사태 발생 시 한미연합군의 투입 필요성을 공개적으로 언급하면서 연합훈련에 이러한 내용도 포함된다고 밝혔다.

북한의 반발 수준도 급격히 올라갔다. 한미군사훈련 기간 동안 북한의 영공과 그 주변을 통과하는 남한 민항기들의 "항공안전을 담보할 수 없게 되었다"고 위협했다. 또 미국이 미사일방어체제(MD)로 북한의 로켓을 요격할 수 있다고 언급하자, "우리의 평화적 위성에 대한 요격은 곧 전쟁을 의미한다"며, "가장 위력한 군사적 수단으로 보복 타격전을 개시하게 될 것"이라고 응수했다.

이러한 상황 전개는 북한의 핵무장 여부에 대한 판단에도 중대한 영향을 미쳤던 것으로 보인다. 김정일이 한미동맹의 무력 흡수통일 시도를 억제하려면 결정적인 한 방을 갖고 있어야 한다고 여겼을 가능성이 높았다는 것이다.

북한이 4월에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개발로도 이용될 수 있는 위성 발사를 강행하고 5월에 핵실험에 나서면서 '조선반도 비핵화의 종말'을 언급한 것도 이러한 분석을 뒷받침해준다. 이는 적극적인 외교를 다짐했던 오바마 행정부가 전략적 인내로 후퇴하게 되는 결정적인 배경이 되기도 했다.

2019년 여름에 무슨 일이

2019년 여름에 있었던 일도 주의 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하노이 노딜 트라우마'에 시달리던 김정은 위원장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6월 10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친서를 보냈다.

김 위원장은 "우리 사이의 깊고 특별한 우정이 북미관계의 진전을 이끄는 마법의 힘으로 작용"할 것이라며 3차 북미정상회담 의지를 강력히 피력했다. 이틀 후 트럼프도 답장을 보내 "당신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한다"며 "당신과 나만이 두 나라 사이의 문제를 풀 수 있다"고 화답했다.

그리고 6월 30일 세계를 놀라게 한 '깜짝쇼'가 펼쳐졌다. 트럼프가 트위터로 판문점에서 만나자고 제안하자 김정은이 수락한 것이다. 김정은은 "우리가 맞닥뜨리는 난관과 장애를 견인하고 극복하는 신비로운 힘이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 지난 2019년 6월 30일 문재인 (오른쪽)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왼쪽) 미국 대통령,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판문점에서 만났다. ⓒ로동신문

하지만 김정은이 품었던 확신이 실망으로 바뀌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트럼프는 판문점에서 김정은에게 한미연합훈련 중단을 약속했었다. 그런데 존 볼턴 당시 백악관 안보보좌관에 따르면, 볼턴은 7월 24일 정의용 청와대 안보실장과 회동을 갖고 연합훈련을 실시하기로 합의했다.

김정은의 '권언'은 이 와중에 나왔다. 그는 7월 25일 실시된 단거리미사일 시험 발사를 지도한 자리에서 "남조선 당국자들이 세상 사람들 앞에서는 '평화의 악수'를 연출하며 공동선언이나 합의서 같은 문건을 만지작거리고 뒤돌아 앉아서는 최신 공격형 무기반입과 합동군사연습 강행과 같은 이상한 짓을 하는 이중적 행태를 보이고 있다"며 불만을 쏟아냈다.

그러면서 "바른 자세를 되찾기 바란다는 권언을 남쪽을 향해 오늘의 위력 시위 사격 소식과 함께 알린다"고 덧붙였다. 그런데도 8월 들어 한미 국방부가 연합훈련을 실시할 것이라고 발표하자 김정은은 8월 5일 트럼프에게 친서를 또 보냈다.

"나는 도발적인 연합군사훈련이 중요한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조미실무회담에 앞서 취소되거나 연기되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며 "이 훈련은 누구를 겨냥한 것이냐"고 물었다. 그러면서 "나는 너무 기분이 나쁘다. 이 감정을 당신에게 숨기고 싶지 않다"고 썼다.

이를 두고 <분노>라는 책을 통해 두 정상의 친서를 소개한 밥 우드워드 워싱턴포스트 부편집인은 김정은이 "낙담한 친구나 연인" 같았다고 표현했다.

급기야 8월 11일 시작된 한미연합지휘소훈련에는 '수복지역에 대한 치안·질서 유지'와 '안정화 작전'까지 포함되었다. 사흘 후에는 국방부가 2020~2024년 국방중기계획을 공개하면서 5년간 무려 290조 5000억 원의 국방비를 투입하겠다고 발표했다.

"단계적 군축" 추진을 비롯한 남북정상회담의 합의정신과 김정은의 '권언'이 철저하게 무시당했다고 판단한 북한은 막말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8·15 경축사에서 한반도 평화경제론을 역설하자, "삶은 소대가리도 앙천대소할 노릇"이라며 "남조선 당국자들과 더 할 말도 없으며 다시 마주 앉을 생각도 없다"고 못 박았다.

판문점 '번개팅'에서 트럼프는 한미연합훈련 중단을 약속했고 김정은은 북미실무회담 개최 동의로 화답했었다. 그리고 북한은 북미실무회담을 8월 중순경에 열자고 미국에 제안해놓고 있었다. 하지만 북미실무회담이 있어야 할 자리를 한미연합훈련이 대신하고 말았다. 연합훈련 강행 소식에 낙담한 김정은이 실무회담을 뒤로 미룬 것이다.

만약 이때 연합훈련을 중단키로 했던 트럼프의 약속이 지켜졌다면, 그 이후 상황은 크게 달라졌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트럼프는 이미 방위비 분담금 대폭 인상에 정신이 팔려 있었고, 문재인 정부는 전시작전권 환수를 위해서는 그 조건을 충족시켜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었다. '뭣이 중헌디'라는 탄식이 절로 나오는 순간이었다.

전향적 결단이 사라지면서

돌이켜보면 한미연합훈련에 대한 문재인 정부의 행보는 오락가락 그 자체였다. 취임 초기였던 2017년 6월 중순 문정인 통일외교안보 특별보좌관은 "북한이 핵과 미사일 활동을 중단하면 미국의 전략자산 전개를 포함한 한미연합훈련 규모 축소를 미국과 논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국내 보수 진영에서 거세게 반발하자, 청와대는 "청와대에서 책임질 만한 분이 문 특보에게 연락해 한미관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엄중하게 말했다"며 진화에 나섰다.

6월 하순에 문재인은 워싱턴행 전용기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북한의 핵실험과 미사일 시험 발사를 '나쁜 행동', '악행', '불법', '도발'로 규정하면서 북한과 중국이 제안한 '쌍중단'을 거부했다. 쌍중단을 수용하면 갓 출범한 트럼프 행정부와 마찰이 일어날 것이라는 우려가 컸던 탓이다. 그런데 정작 트럼프는 한미연합훈련에 불만을 갖고 있었다.

한미연합훈련에 대해 강경한 태도를 보였던 문재인은 평창올림픽이 다가오면서 변화를 꾀하기 시작했다. 2017년 12월 19일 미국 <NBC>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한국과 미국은 한미연합훈련의 연기 가능성을 검토하는 것이 가능하다"며 "나는 미국에 이를 제안했고, 미국은 현재 이를 검토하고 있다"고 밝힌 것이다.

▲ 평창 동계올림픽 개최를 약 두 달 앞둔 지난 2017년 12월 19일 문재인 당시 대통령은 미국 방송 와 인터뷰에서 한미 연합 군사 훈련 연기 가능성을 언급했고 이 발언은 이후 2018년 평화 국면을 여는 계기가 됐다. 사진은 문재인 당시 대통령이 인터뷰하는 모습. ⓒ청와대

이듬해 1월 4일 트럼프와의 전화통화에서는 3월로 예정되었던 '키 리졸브/독수리훈련'을 평창대회 이후로 연기하기로 합의했다. 이를 계기로 북한의 평창대회 참가와 남북정상회담, 그리고 북미정상회담이 숨 가쁘게 전개되었다. 연합훈련 연기라는 전향적인 결단을 통해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본격화한 것이다.

중간에 삐걱거림도 있었다. 4·27 판문점 남북정상회담 보름 후이자 최초의 북미정상회담을 앞두고 한미 양국은 연합공중훈련인 '최대의 천둥(max thunder)'에 돌입했다. 이 훈련에는 세계 최강으로 불리는 F-22 스텔스전투기 8대 등 100여 대의 공군전력이 동원되었다. 괌에서 출격하는 전략폭격기인 B-52의 투입도 거론되고 있었다. 그러자 북한은 이에 강력히 반발하면서 5월 16일로 예정되었던 남북고위급회담을 일방적으로 연기해버렸다.

이는 남북한 사이의 '엇박자'를 잘 보여준 사례이다. 2018년 3월 초에 김정은을 면담한 정의용은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연기된 한미연합훈련 재개와 관련해 김정은이 "4월부터 예년 수준으로 진행하는 것을 이해한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이 전언은 국내외에서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한미연합훈련에 극도로 반감을 표했던 북한이, 그것도 최고 지도자가 이해를 표한 것으로 해석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해석은 북한이 맥스 선더를 빌미로 남북회담을 무기한 연기하자 비난으로 돌변했다. 김정은이 말을 뒤집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정의용에 따르면 김정은은 이런 얘기도 덧붙였다. "한반도 정세가 안정기로 진입하면 한미훈련이 조절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당시 상황을 복기해보면, 김정은이 이해의 뜻을 나타낸 것은 평창올림픽으로 연기된 '키 리졸브/독수리훈련'이었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북한은 4월 초에 이 훈련이 실시되었을 때 반발하지 않았다.

그러나 4·27 판문점 남북정상회담 직후에 미국의 전략자산까지 투입된 형태로 맥스 선더가 실시되자 "남조선당국과 미국은 역사적인 4·27선언의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우리 공화국을 반대하는 대규모의 연합공중훈련을" 실시했다고 반발했다.

문재인 정부의 두 가지 역설

문재인 정부 안팎에선 평창올림픽을 앞두고 한미연합훈련을 연기하기로 한 결정이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의 문을 여는데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가 많다. 이는 거꾸로 2019년 2월 '하노이 노딜' 이후 이러한 전향적인 결단이 사라진 것이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좌초의 주요 요인이라는 것을 말해준다.

전향적 결단과 퇴행적 선택의 엇갈림이 보여주는 주목할 만한 결과도 있다. 남북정상회담을 가장 많이 한 정부는 바로 문재인 정부이다. 동시에 1971년 남북대화가 공식적으로 시작된 이래 공식적인 남북대화가 가장 오랫동안 단절된 정부도 문재인 정부다. 또 문재인의 대선 공약 가운데 가장 잘 지켜진 것이 국방비 증액이다. 동시에 대선 공약 이행이 가장 부진한 분야도 대북정책이다.

이 두 가지 역설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대북정책과 국방정책이 따로 노는 한, 지속가능한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는 불가능하다는 점을 잘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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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욱식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는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군사·안보 전공으로 북한학 석사학위를 받았습니다. 1999년 대학 졸업과 함께 '평화군축을 통해 한반도 주민들의 인간다운 삶을 만들어보자'는 취지로 평화네트워크를 만들었습니다. 노무현 정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통일·외교·안보 분과 자문위원을 역임했으며 저서로는 <말과 칼>, <MD본색>, <핵의 세계사> 등이 있습니다. 2021년 현재 한겨레 평화연구소 소장을 겸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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