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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총기규제 '1보 전진, 2보 후퇴'…상원·대법원 같은 날 다른 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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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총기규제 '1보 전진, 2보 후퇴'…상원·대법원 같은 날 다른 판단

미 상원 30년만에 총기규제안 통과…대법원은 뉴욕주 총기규제법 '위헌' 판결

지난달 뉴욕주 버팔로와 텍사스주 유밸디에서 연이어 일어난 총기참사로 총기규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미국에서 연방대법원과 상원이 같은 날 상반된 결정을 내렸다. 대법원이 공공장소에서 총기 소지를 금지하는 뉴욕주법에 위헌 판결을 내린 날 상원은 30년만에 의미 있는 총기규제법을 통과시켰다.

23일(현지시각) 미 대법원은 집 밖에서의 총기 소지를 제한하고 필요할 경우 면허를 받도록 한 뉴욕주 주법이 수정헌법 2조에 위배된다고 판결했다. 법원은 "잘 규율된 민병대는 자유로운 주의 안보에 필수적이므로 인민이 무기를 휴대하고 소지할 권리가 침해되어선 안 된다"는 내용의 헌법 2조를 "자기방어를 위해 집 밖에서 권총을 소지할 개인의 권리를 보호"하는 것으로 봐 이 같은 결정을 내렸다고 밝혔다. 이 결정은 뉴욕주뿐 아니라 유사한 법이 있는 캘리포니아주·하와이주·매릴랜드주·매사추세츠주· 뉴저지주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9명의 대법관으로 구성된 미 대법원은 도널드 트럼프 미 전 대통령이 임명한 보수 성향 법관 3명의 비롯해 6명의 법관이 보수 성향을 띄고 있어 보수 다수라는 평가를 받는다. 이번 결정엔 트럼프가 임명한 3명의 대법관인 브렛 캐버노, 닐 고서치, 에이미 코니 베럿을 포함해 존 로버츠, 새뮤얼 알리토, 클라렌스 토머스 대법관이 찬성 의견을 표명했다. 스티븐 브라이어, 엘레나 카간, 소니아 소토메이어는 반대 의견을 표명했다.

뉴욕주법안 존치를 주장한 대법관들은 총기 폭력 피해에 초점을 맞췄다. 브라이어 대법관은 규제 파기를 주장하는 대법관들이 당면한 총기 폭력 사건들을 외면하고 총기규제가 미국의 역사적 전통에 부합하는지 여부를 따지는 데 매몰돼 있다고 비판하며 "우리 앞에 놓인 문제는 민주적으로 선출된 관료들이 심각한 총기 폭력을 해결하기 위한 법을 제정하는 것을 수정헌법 2조가 제한할 수 있는 정도에 관한 것이다. 그런데 지금 법원은 문제의 심각성이나 본질에 대한 토론 없이 이 문제에 대한 답을 주장한다"고 했다.

반면 뉴욕주법안 파기를 주장한 대법관들은 법안이 총기폭력을 막는 데 소용이 없으며 헌법에 위배된다고 주장했다. 알리토 대법관은 "뉴욕주법은 버팔로 총격범을 막지 못했다"며 "총기난사를 결심한 사람이 집 밖에서 권총을 소지하는 것이 불법인 것을 알면 멈추겠나"라고 대량총격은 총기규제와 관계 없다고 주장했다. 지난달 10명의 목숨을 앗아간 뉴욕주 버팔로 총격사건 가해자는 합법적으로 총기를 구매했다.

토마스 대법관은 공공장소에서 권총을 소지하기 위해 "적절한 이유"를 요구하는 뉴욕주법이 헌법을 위반했다고 해석했다. 토마스는 종교 및 언론의 자유를 규정한 수정헌법 1조 등 기타 어떤 다른 헌법상의 권리도 개인이 정부 관료들에게 특별한 필요를 증명하기를 요구하지 않는다며 "자기 방어를 위해 공공장소에서 무기를 소지할 수 있는 헌법상 권리는 다른 권리들과 완전히 다를 규칙을 적용 받는 '2급 권리'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토머스는 학교, 법원, 정부청사 같은 "민감한" 공공장소에서 총기 소지를 금지할 수 있지만 그 장소의 범위가 너무 넓어서는 안 된다며 "간단히 말해 맨하튼섬을 '민감한 장소'라고 선언할 수 있는 역사적 근거는 없다" 고 덧붙였다. <뉴욕타임스>(NYT)는 토머스 대법관의 주장에 대해 다른 제반 권리를 행사하는 데는 치명적 무력 사용이 거의 수반되지 않는다는 비판이 나온다고 보도했다.

대량총격과 총기규제는 관계가 없다는 주장에 버팔로 총기난사가 예로 동원된 데 대해 버팔로 주민들은 분노했다. 버팔로 총격으로 86살 어머니를 잃은 가넬 휘트필드는 <뉴욕타임스>에 대법관의 발언이 부적절했다며 "만약 버팔로에 대해 언급하고 싶었다면 백인우월주의에 대해서 말해야 했다. 법원이 완전히 정치화됐다"고 비난했다. 매체는 분석 결과 신원조회 강화, 대용량 탄창 구매 금지 등 더 엄격한 총기규제법안이 있었다면 1999년 이후 446명의 희생자를 낸 35번의 대량총격을 방지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대법원은 총기 휴대를 위해 면허를 발급하는 제도 자체는 인정했다. 캐버노 대법관은 면허 신청자의 지문을 채취하고 신원조회 및 정신건강 기록 조회, 총기 취급 및 관련한 법률 교육을 이수하도록 하는 "객관적인 면허 발급 제도"는 "특별한 필요성"을 증명해야 해 담당 관료에게 "무제한의 재량권을 주는 뉴욕주의 제도와는 다르다"고 설명했다. 캐버노는 따라서 "객관적인 면허 발급 제도"를 가진 43개 주는 기존 제도를 운영하는 데 문제가 없고, 뉴욕주와 비슷한 제도를 운영하는 뉴욕주 포함 6개 주도 다른 43개 주와 같은 객관적 요건만 적용한다면 면허 발급 제도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판결 발표 뒤 캐시 호철 뉴욕 주지사는 기존 총기 제한을 유지할 수 있는 새 조치를 마련하기 위해 이르면 다음달 주의회를 재소집하겠다고 밝혔다. 호철은 "우리는 이미 심각한 총기폭력 위기에 대응하고 있다. (이 위기에) 불을 지필 더 이상의 땔감은 필요치 않다"고 말했다. 유사한 법을 가지고 있는 매릴랜드주 민주당 의원들도 기존 법안을 수정할 것을 검토하고 있다고 <뉴욕타임스>가 전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이날 대법원의 결정에 "깊이 실망했다"며 "이는 상식과 헌법에 어긋나는 일이며 우리 모두를 심한 곤경에 빠뜨릴 것"이라며 비판했다.

<워싱턴포스트>(WP) 편집위원회는 이날 판결에 대해 "대법원의 보수적인 다수 대법관들이 위험한 총기 친화적 도그마에 빠져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가장 최근의 신호"라며 "나라가 총기 폭력으로 더 많은 생명을 잃는 대가를 치를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날 여론조사기관 갤럽은 대법원에 대한 신뢰가 사상 최저로 하락했다고 밝혔다. 갤럽은 이달 1일부터 20일까지 미국 성인 1015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25%의 미국인만이 대법원을 신뢰한다고 답해 지난해 36%에서 신뢰도가 급락했다고 설명했다. 이는 지난 2014년 기록한 최저 신뢰도(30%)보다도 5%포인트나 낮은 것이다. 갤럽은 이 같은 신뢰도 하락이 대법원이 임신중지권을 보호하지 않는 움직임을 보인 뒤 발생했다고 설명했다.

상원은 30년만에 총기규제법 통과…NYT "같은 날 총기규제 상반된 판단으로 혼란 깊어져"

한편 이날 밤 10시께 미 상원은 거의 30년만에 총기규제법안을 승인했다. 미 상원 의원들은 지난달 버팔로 총기난사와 21명의 목숨을 앗아간 텍사스 유밸디 초등학교 총기참사가 연이어 벌어진 뒤 공화당 의원 10명을 포함한 초당적 협의체를 꾸려 12일 합의에 이르렀고 이날 법안은 65대 33으로 최종 승인됐다. 민주당과 공화당이 50대 50으로 갈라져 있는 상원은 하원에서 올라온 총기규제법안을 연이어 좌절시켜 왔다. 법안에는 15명의 공화당 의원의 찬성이 있었고 공화당 의원 2명은 기권했다.

법안은 21세 미만이 총기 구매시 청소년 범죄 기록 및 정신 건강 기록을 포함해 신원조회를 강화하고 조회 기간도 현행 3일에서 10일로 늘리는 방안을 담았고, 법원이 위험인물로 간주한 이들의 총기 소지를 제한하는 소위 '적기법'을 제정하기 위한 자금을 주에 지원하는 방안, 현행 배우자에게만 적용되던 가정폭력 가해자의 총기구매 제한을 데이트 폭력 가해자에게까지 확대 적용하는 것 등을 담았다.

바이든 대통령이 요구했고 하원에서 통과한 21살 미만의 반자동 무기 구매 금지안은 이법 법안에 담기지 않았고 이번에 통과된 21살 미만 총기 구매자 신원조회 확대 법안도 10년 뒤에 만료된다는 점은 한계로 지적된다.

<뉴욕타임스>는 "같은 날 두 정부 부처가 총기 규제를 놓고 정반대 방향으로 분열했다"며 "나라의 총기정책 방향의 혼란이 깊어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버팔로 총기참사 유족인 휘트필드는 같은 날 대법원이 총기규제를 후퇴시키는 결정을 내리고 상원이 총기규제법안을 통과시킨 데 대해 나라가 "한 걸음 전진하고 두 걸음 후퇴한 것"이라고 개탄했다.

▲ 23일(현지시각) 총기규제를 촉구하는 시위가 벌어진 미국 뉴욕에서 한 시위 참가자가 "그들은 우리가 죽기를 바란다"는 팻말을 들고 있다. 이날 미 연방대법원은 모든 미국인이 공공장소에서 총기를 휴대할 권리가 있다고 판결했다. ⓒ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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