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13일 2차 조각 명단을 발표하면서 고용노동부·농림축산식품부를 제외한 모든 부처의 장관 후보자 면면이 공개됐다. 지난 10일의 1차 인선 때에 비해 오히려 '윤석열 색깔'이 더 강해졌다는 평이다. 특히 윤 당선인과 대선후보 단일화를 하면서 공동정부 지분을 갖고 있는 안철수 인수위원장 측 인사는 이번 인사에서 역시 단 1명도 포함되지 않았다.
출범을 앞둔 '윤석열 정부' 경제팀은 국민의힘 전현직 의원 기용 폭이 커졌다. 1차 인선에서 발표된 추경호 경제부총리 후보자와 2차 인선에 포함된 이영 중소기업벤처부 장관 후보자는 국민의힘 현역의원이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 그리고 인구·가족·복지 업무가 주가 되며 '사실상의 경제부처'가 된 여성가족부 김현숙 장관 후보자는 국민의힘 전신 정당에서 의원을 지낸 전직 의원들이다.
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후보자는 학자 출신이지만 현재 인수위에 참여하고 있고, 이종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후보자는 윤 당선인이 대선후보 시절 '반도체 과외'를 했던 개인적 인연이 주목받고 있다.
여기에 명실공히 당선인의 최측근인 한동훈 법무장관 후보자를 필두로, 당선인과 고교 동문인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후보자, 대선캠프에서 특별고문을 맡았던 박보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자 등 윤 당선인과의 개인적 인연이 두터운 인물들이 눈에 띄고 있다. 이들이 인사청문회를 통과해 장관으로 임명된다면 '친윤(親윤석열)' 인사 일색의 내각이 되는 셈이다.
외교안보 부처에서도 이날 박진 외교장관 후보자, 권영세 통일장관 후보자 등 현역의원이 대거 기용됐고, 1차 인선에 포함됐던 이종섭 국방장관 후보자도 인수위원을 맡고 있다.
윤 당선인과 특별한 개인적 인연이나 정치적 접점이 없는 국무위원 후보자는 학자·연구자 출신인 김인철 교육부총리 후보자, 한화진 환경부 장관 후보자와 관료 출신 조승환 해양수산부 장관 후보자 정도다.
특히 1차 인선에 포함된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문화체육관광부, 보건복지부에 이어 2차 인선에서 발표된 교육부, 행정안전부, 통일부, 중소기업벤처부 장관 자리는 이른바 '안철수계(系)' 인사의 입각이 거론되던 자리였으나 실제로는 단 1자리도 안철수계에 돌아가지 않았다.
한덕수 국무총리 후보자는 인선 발표 후 윤 당선인이 먼저 자리를 뜬 상태에서 취재진으로부터 '안 위원장이 추천한 인사가 지명되지 않은 것 아니냐'는 질문이 나오자 "공동 국정운영이란 기조에서 후보들이 다 테이블에 올라와서 검토가 됐다는 말씀을 드리고, 그러나 최종적으로 여러 가지를 고민하고 검토한 결과 최종적으로 오늘 발표한 후보들이 선정됐다"며 "안 위원장과의 공동정부, 공동 국정운영이라는 점이 다소 반영이 안 돼 있다면 그 기조는 앞으로 계속 (다른) 직책에 대한 후보자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검토될 것"이라고 답변했다.
한 후보자는 "국무위원, 장관 후보자 (인선) 단계는 정부 구성에 있어서의 초기 단계"라며 "초기 단계에서 여러 분의 후보가 검토되고 필수적으로 검증이라는 단계를 거쳐야 한다. 이런 과정에서 어떤 분이 좀더 적당하고, 어떤 분이 덜 적당하고, 이런 검토가 이뤄지는 과정에서 하나의 인선 기준이나 정책 방향에서 딱 들어맞는 인선이 이뤄지지 않는 경우도 있을 것"이라고 했다. 결과적으로 '공동 정부'라는 기준에 맞지 않는 인선이 이뤄졌음을 시인한 발언으로 보인다.
한 후보자는 "그러나 중장기적으로 보면 추가적으로 여러 공직이나 국정 운영과 관련된 직책의 인선이 이뤄질 것이기 때문에, 그런 과정에서 기자가 지적한 통합과 협치, 안철수 위원장과의 공동 국정운영 등의 부분이 어떤 형태로(든) 반영되는 쪽으로 계속 검토가 이뤄질 것"이라고 부연했다.
인사발표 직전 윤석열-안철수 1시간여 회동…'0명' 통보했나?
이와 관련, 인사 발표 직전인 이날 오전에 윤 당선인이 안철수 인수위원장과 1시간여가량 별도 회동을 한 것으로 알려져 눈길을 끈다. 윤 당선인은 이날 10시를 조금 넘은 시각에 통의동 인수위 건물로 출근했는데, 출근하기 전에 미리 안 위원장에게 함께 회의를 하자고 요청한 것으로 보인다.
윤 당선인은 이날 오전 11시 30분부터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 등 국가 원로 인사들과 오찬이 예정돼 있었으나, 불과 오찬 행사 시작 4분 전인 11시 26분에야 통의동 인수위 건물을 나섰고 오찬장에는 11시38분에 도착했다.
그런데 윤 당선인이 건물 밖을 나오자마자, 곧바로 안 위원장도 뒤이어 나왔다. 두 사람 모두 취재진의 질문에는 답을 하지 않고 곧바로 차를 타고 떠났다.
안 위원장은 당초 이날 10시30분부터 서울 마포구의 한 고등학교 현장 방문이 예정돼 있었으나 행사 시작 10분쯤 전에 이를 11시로 한 차례 순연했고, 그럼에도 11시 15분까지 그가 현장에 나타나지 않자 신용현 인수위 대변인이 기자들과 참석자들에게 "안 위원장이 오기로 했는데 나오기 직전에 당선인과 같이 회의를 하게 갑자기 일정이 잡혔다. 그래서 그것이 끝나자마자 오시기로 해서 (행사를) 30분 미뤘는데, 그게 예정보다 많이 길어지는 것 같다"고 알렸다.
결국 이 행사는 안 위원장이 불참한 가운데 먼저 시작했고, 안 위원장은 11시47분경 행사 중간에 도착했다. 통의동에서 학교 현장까지 이동에 약 20분이 걸렸으니, 원래대로라면 오전 10시~10시10분에는 출발을 했어야 했던 셈이다.
이런 상황을 종합해보면, 윤 당선인은 출근 전에 미리 안 위원장에게 회의를 요청했고, 이에 안 위원장이 10시 반 예정 일정을 30분 미룬다고 기자단에 공지(9시53분)했으며, 두 사람은 윤 당선인의 출근 직후(10시10분경)부터 11시25분경까지 1시간여 동안 "회의"를 같이했다는 얘기가 된다.
원로 오찬이나 고등학교 현장 방문이라는 행사 특성상, 시간 엄수가 중요한데도 이들이 예정된 일정에 늦을 만큼 긴요하게 나눌 이야기는 이날 오후 발표가 예정된 인사 문제였을 확률이 높다.
윤 당선인은 앞서 이날 출근길에 기자들이 '오늘 인사 발표에 안철수계가 포함되느냐'고 묻자 "인사 원칙에 부합하면 어느 계(系)도 상관없다. 거기에 부합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라며 "능력과 인품을 겸비하고 국민을 잘 모실 수 있는 것이 인사 기준"이라고 했었다. 이는 능력 위주 인선이라는 "원칙"이 중요할 뿐, 안철수계 배려 등은 고려 사항이 아니라는 뜻으로 해석됐다.
이에 따라 오후 인사 발표에서도 안철수계가 아예 포함되지 않을 거라는 관측이 나왔는데, 두 사람의 "회의"가 이뤄진 것은 바로 이 시점이었다. 실제로 윤 당선인은 이날 몇 명의 장관 후보자가 발표되는지 인사 발표 규모에 대해 기자들이 묻자 "올라가서 봐야 한다"며 즉답을 하지 않았다.
윤 당선인은 다만 최종 검토 대상에 안 위원장 추천 인사도 포함됐는지에 대해서는 "추천은 다 받았다"고 했으나, 결국 안 위원장 측 인사라고 볼 수 있는 이들의 입각이 사실상 무산되면서 '공동정부' 구상은 위기를 맞게 됐다. 특히 이태규 인수위원의 사퇴에 이어 안 위원장 본인도 전날 "인선 과정에서 특히 제가 전문성이 있는 분야에 대해서는 조언을 드리고 싶었지만 그런 과정은 없었다"고 아쉬움을 표하기도 했었다.
한편 이들의 "회의"가 끝난 직후인 11시30분경에는 인수위원직 사임 의사를 밝힌 이태규 의원의 후임으로 국민의힘 박수영 의원이 인수위원으로 임명됐다는 인수위의 발표도 나왔다. 인수위 대변인실은 "안 위원장은 13일 인수위 기획조정분과 이태규 위원 후임으로 박수영 의원을 선임했다"며 "박 인수위원은 기존에 맡고 있던 당선인 비서실 정무특별보좌역과 기조분과 인수위원직을 겸임한다"고 밝혔다.
이 의원의 후임으로 국민의힘 현역 의원이 임명된 것과 관련해서도 안 위원장에 대한 배려의 의미, 특히 기조분과에 추경호·이태규 인수위원을 나란히 배치했던 의미에 부합하지 않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예상된다.
대선 기간 안철수 캠프 상임선대위원장을 맡았고, 안 위원장 측에서 교육부총리 후보로 추천한 것으로 알려진 최진석 서강대 교수는 이날 SNS에 쓴 글에서 "새 정부는 앞으로 어떨까? 어떤 사람들이 권력을 구성하는지를 보면 알 수 있다. 그렇게 어려운 일 아니다"며 "박근혜와 이명박 정부 때의 사람들이 그대로 다시 다 돌아왔다. 각성의 세례를 통과한 냄새는 나지 않는다"고 비판적인 의견을 보여 눈길을 끌었다.
최 교수는 "인간과 사회를 진화시키는 큰 힘이 각성 능력이다. 상황이 바뀌었는데도 같은 방법만 계속 쓰다가 실패를 자초하거나 실수를 반복하는 경우는 모두 각성하지 않아서"라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각성의 결여 사례로 "'폐족'들이 다 다시 돌아와 문재인 대통령의 권력을 만들었다"는 것을 꼽으며 "부동산 등 노무현 대통령 때의 실정을 그대로 반복했고 결국 5년 만에 정권을 내줬다. 폐족이라 자학했던 기억이 있으면, 각성해서 실정을 반복하지 않아야 할 텐데 사람에게는 그것이 그렇게 쉽지 않은 것"이라고 하기도 했다.
최 교수는 " 새 정부 권력에 매우 이질적인 힘이 하나 포함되어 있다. (그것은) 안철수"라며 "박근혜 이명박 때 사람들이 대부분인 권력에 이질적인 안철수가 포함되어 있는 것은 박근혜 이명박 정권의 재판이 되지 않게 할 유일한 송곳"이라고 안 위원장의 역할론을 강조했다. 그는 "대한민국을 한 단계 도약시키려는 전혀 새로운 꿈을 실현하고 싶다면, 전혀 새로운 세력을 형성하는 일 이외에 다른 길은 없는 것 같다"고 주장했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