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접전이다. 이재명, 윤석열의 지지율이 1~2%p 차이로 좁혀졌다. 흐름은 이재명 상승세, 윤석열 하락세다. 지각변동은 안철수의 결렬 선언으로 시작됐다. 수세적 단일화 구도를 돌파하기 위한 안철수의 여론조사 단일화 제안과 결렬 선언까지의 일주일 동안 이른바 '묻지마 정권교체' 구도에 상처가 났다. 안철수는 적폐교대가 아닌 더 좋은 대한민국을 위한 정권교체가 필요하다고 했다. 이를 위해 구체제 종식이 중요하다고 했다. '정권교체냐 아니냐'로 진행돼 온 이번 대선구도가 야권 내부로부터 흔들리기 시작한 것이다.
강력한 정권교체 구도를 흔들기 위한 이재명의 전략적 카드는 '국민통합정부론'이었다. 적대적 공생관계를 유지해온 기득권 양당체제를 깨고 다양한 정치세력이 참여하는 국민통합정부를 만들어야 대결의 시대를 넘어 위기의 시대를 돌파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정권교체보다 중요한 것은 정치교체이며 이를 위해서는 심상정, 안철수가 주장해온 정치개혁 과제를 민주당이 먼저 실천해야 한다는 의지도 표현했다. 이재명의 '명동선언'은 야권 단일화 국면을 뒤흔들 프레임 전환의 서막이었다. 대통령 4년 중임제 개헌, 대통령 결선투표제 도입, 위성정당 방지와 연동형 비례제 도입을 위한 선거제도 개혁, 지방선거 중대선거구제 법제화 등 다당제를 실현을 통한 연정의 제도화 의제들이 대거 포함됐다.
지난 25일 선관위 주최 2차 TV토론에서 이런 프레임 전환의 상징적 장면이 연출됐다. 정치분야 토론에서 정치개혁, 통합정부를 앞세운 윤석열 포위전략이 표면화된 것이다. 물론 심상정, 안철수가 민주당의 주장을 액면 그대로 신뢰하긴 어려울 것이다. 민주당은 두 후보의 비판을 겸허히 수용해야 한다. 민주당은 TV토론에서 이재명이 인사실패, '내로남불', 편가르기, 분열의 정치, 민생 실패, 무능과 오만 같은 단어가 민주당을 향하고 있다고 성찰했듯이 심상정, 안철수의 날카로운 비판을 전적으로 수용할 필요가 있다. 다행히 민주당은 일요일에 의총을 열어 정치개혁 제도화를 위한 당론 채택을 할 예정이라고 한다. 이재명과 민주당이 공학적 단일화를 넘어 국민통합정부 실현을 위한 실질적 정치개혁을 단행한다면 '국민통합이냐, 정권교체냐'로 전환된 프레임 전쟁에서 더 유리한 고지를 차지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대선 직후 치러질 지방의회 선거에서 민주당이 기득권을 내려놓고 중대선거구 확대를 의결한다면 통합이라는 '가치 프레임의 폭포수'를 더욱 힘차게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조지 레이코프에 따르면 모든 선거에서 가치가 정책을 이긴다. 정책이 아주 인기가 높을 때도 그렇다. 가치는 프레임 형성의 원천이며 논리의 영역이 아니라 대부분 무의식적 차원에서 작동한다. 정책은 프레임의 폭포수에 연결될 때 비로소 기억되고 확산된다. 이번 대선의 가치는 공정, 통합, 평화, 안전 같은 것이다. 공정의 가치는 양당 후보 부인들 문제와 결부되면서 무력화했다. 통합은 분열과 대결의 시대를 끝내고 싶은 무의식과 연결되며, 평화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의미를 강화했고, 안전은 코로나 재난으로 방역과 민생 측면에서 아주 중요한 가치다.
위기의 시대, 대전환의 시대에 국민통합의 가치는 특히 정치의 영역에서 다른 가치에 우선한다. 평화와 안전, 민생 문제도 국민통합을 통해서만 더 잘 극복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야권 단일화 국면을 절묘하게 파고든 이재명의 국민통합정부론이 순식간에 강력한 프레임으로 떠오른 이유다. 이재명이 정치적 아웃사이더이기 때문에 좀더 큰 설득력을 갖게 됐다. 또 양당체제 극복과 다당제 실현은 이재명의 지론이기도 했다.
나아가 이재명의 국민통합론을 부각시킨 데는 이준석의 분열주의적 선거전략이 한몫했다. 이준석은 갈라치기 전략에 입각한 세대포위론으로 한때 재미를 좀 봤다. 특히 '여성가족부 폐지' 같은 극단적인 갈라치기 전략은 일시적으로 이대남을 포섭하는데 성공했지만, 20대 여성유권자들의 은밀한 결집이라는 반대급부로 이어졌다. 실제로 커뮤니티를 비롯한 소셜 미디어 공간에서 20대 여성들의 윤석열 비토현상은 선거가 임박하면서 더욱 뚜렷해지고 있다.
이준석의 가장 큰 실책은 뭐니뭐니 해도 안철수에 대한 조롱과 협박으로 단일화 국면을 파탄낸 것이다. 이준석은 마치 낮에는 국민의힘 대표이고 밤에는 '펨코당' 대표인 것처럼 제1야당 대표에 걸맞지 않은 거칠고 천한 말들을 쏟아냈다. 이번 정권교체 프레임에서 안철수가 차지하는 가치와 비중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하지만 '삼수생' 안철수의 내공은 이준석의 경박함을 완전히 뛰어넘었다. 윤석열은 안철수의 제안을 무시했고, 기습적으로 결렬 선언을 하자 정권교체의 의미가 반감되면서 이재명의 국민통합 '인코스'를 허용하게 된 것이다.
이번 대선에선 오만과 겸손의 사이클이 나타난다. 이재명이든 윤석열이든 오만할 때 지지율이 떨어지고 겸손할 때 지지율이 올랐다. 국민통합론은 겸손의 가치를 내포한다. 나아가 국민통합론은 권력 독점이 아니라 권력 나누기이며, 무엇보다 공적 가치, 즉 정치가 존재하는 이유를 환기시킨다.
물론 아직 대선이 끝나지 않았고, 초박빙 접전이 이어지고 있다. 변수도 많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외교안보의 대변화를 예고하고 있고, 오미크론 대유행도 어디로 튈지 모른다. 아주 희박해 보이지만, 윤석열이 무릎을 꿇고 안철수의 모든 요구조건을 들어주는 선택을 할 가능성도 존재한다.
전략은 통제할 수 없는 외부적 변화를 고려하되, 통제할 수 있는 것에서 최선을 다할 때 이길 확률을 높일 수 있다. 이재명과 민주당은 어렵게 만든 '국민통합'이라는 프레임의 폭포수 아래 정치개혁과 안보, 평화, 코로나 재난극복 등을 위한 효능감 있는 정책을 결합시켜내야 한다. 설득력을 높이려면 반성과 성찰의 태도는 언제나 중요하다.
정권교체 프레임은 여전히 강력하다. 그리고 이 프레임은 기득권 내로남불에 대한 심판의지를 품고 있다. 이재명의 상승 흐름이 형성됐지만 방심은 절대 금물이다. 이재명의 전략적 집중이 중요하고 민주당의 실천의지는 필수적이다. 나아가 외부의 국민통합추진위원회 같은 조력도 필요하다. 하나의 흐름을 만들고 끝까지 유지해야 한다.
'국민통합이냐, 정권교체냐.' 초박빙 선거 판세 속에서 치러지는 막판 프레임 전쟁의 최후 승자는 누가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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