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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일화 프레임'을 넘어설 안철수의 '라스트 듀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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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단일화 프레임'을 넘어설 안철수의 '라스트 듀얼'

[2022년 대선 읽기] "진영 대결정치를 국민 연합정치로 대전환할 새로운 상상력 절실"

대선 시계는 빨라지고 상황은 점점 긴박해지고 있다. 하지만 판세는 정중동의 양상을 보이고 있다. 여론조사마다 또 조사방식에 따라 약간의 편차는 있지만, 윤석열이 이재명을 1~6%p 앞서고 있는 가운데 안철수 지지율은 10% 내외로 하향 정체 중이다. 이재명은 박스권에 갇혀 정권교체 구도를 깨지 못하고 있고, 잠시 안철수로 향하던 정권교체 흐름도 윤석열로 결집하는 양상이다. 엠브레인퍼블릭 등 4개 기관이 합동으로 진행하는 NBS 조사에서만 정권교체 여론이 줄어든 것으로 나오는데, 이는 질문 자체가 다르기 때문이다. NBS는 '정권교체냐 정권연장(재창출)이냐'를 묻는 대신 '정권교체냐 국정안정이냐'를 묻는다. 차원이 다른 가치를 비교하는 잘못된 질문이다. 정권교체를 바란다고 국정안정을 바라지 않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NBS 조사는 항상 다른 조사들의 평균값보다 이재명 지지율이 높게 나오는 경향을 보인다.

대선이 채 한 달도 남지 않은 상황의 판세는 새로운 정책이나 일방적인 네거티브만으로 잘 바뀌지 않는다. 민주당 일각에서 이른바 '샤이 진보'를 말하며 이재명의 승리를 낙관하는 주장도 나오지만 이는 역사적으로 검증된 적이 없는 희망사항이자 정신승리일 뿐이다. 호남이 더 결집하면 이긴다는 주장도 마찬가지다. 호남 인구가 전체 인구의 10% 정도니까 산술적으로 호남에서 10%p 지지율이 오르면 전국적으로 1%p가 오르게 된다. 물론 수도권 등에 미치는 영향이 있을 수 있으나 이는 직접적이지 않고 미미한 수준이다. 이 정도로 5%p 안팎의 차이를 극복하기는 어렵다. 호남이 결집하면 영남도 결집하는 반대급부도 일부 존재한다. 이기는 길을 찾지 않고 이기고 싶다는 마음만 강한 것이 정신승리다. 이런 정신승리의 위험성은 진단 자체를 잘못함으로써 판을 뒤흔들 전략적 대전환을 방해한다는 데 있다. 돌을 곰으로 오인하면 겁쟁이처럼 깜짝 놀라기는 하겠지만 생명의 위협을 받지는 않는다. 하지만 곰을 돌로 오인하면 인류의 생존이 위태로워진다. 특히 대선이 임박한 시점에서 위기를 위기라고 느끼지 못하는 한 희망은 없다.

현재 대선판의 가장 강력한(혹은 유일한) 변수는 안철수다. 언제부터인가 안철수는 못 해도 2등은 하는 거대 양당체제의 문제를 환기하는 상징적 인물이 됐다. '3등' 안철수는 거대 양당이 쳐놓은 '단일화 그물'에 갇혀 수면 위로 오롯이 튀어 오르지 못하고 수세적인 대응을 반복해야 했다. 안철수에게 쏟아지는 핵심 질문은 언제나 '단일화를 할 거냐 말 거냐'였고 안철수는 그때마다 완주 의지를 확인하고 또 확인하는, 마치 '타임루프'에 갇힌 듯한 답답함을 자신도 느끼고 국민도 느껴야 했다. 안철수의 국가 비전도 단일화 방탄유리에 막혀 국민들 마음에 잘 전달되지 않는다. 안철수는 어떻게든 이 답답한 상황을 넘어서야 새로운 길을 만들 수 있다. 어쨌든 안철수는 또다시 이재명·윤석열보다 먼저 대선판 최후의 결투에 나서야 하는 숙명적 존재가 됐다.

14세기 프랑스의 '중세 미투'를 소재로 거장의 저력을 다시 증명한 리들리 스콧의 영화 <라스트 듀얼: 최후의 결투>는 역사를 전진시키기 위해서는 새로운 차원의 질문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타락한 권력의 상징인 자크(아담 드라이버)가 친구이자 정적인 장(맷 데이먼)의 아내 마르그리트(조디 포머)를 강간한 사건을 세 명 각자의 입장에서 전개하는 독특한 구조를 가진 작품이다. 법정은 이미 진실을 가릴 수 없을 만큼 타락했고, 왕은 장과 자크의 목숨을 건 결투로 진위를 가리기로 결정한다. 이기는 자가 진실이라는 것. 하지만 이 영화가 말하고 싶은 진짜 이야기는 두 남자의 결투가 아니라 세상과 여성의 결투였다. 마르그리트의 관점이 이 영화의 주제인데, 두 남자 모두 자신의 이익과 명예를 위해 싸울 뿐 여성인 마르그리트는 하나의 도구로 취급했다는 사실을 폭로한다. 마르그리트의 목숨을 건 '중세 미투'야말로 세상을 바꿀 숭고한 싸움이었던 셈이다.

안철수에게 여러 선택지가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승리를 위한 길은 단 하나이거나 아예 없을지도 모른다. 분명한 점은 안철수가 새로운 길을 열기 위해선 질문을 바꿔야 한다는 사실이다. '단일화를 할 것인가, 말 것인가?' '윤석열과 할 것인가, 이재명과 할 것인가?' 같은 뻔하고 지루한 질문만으로는 승리를 위한 길도, 안철수다운 길도 찾기 힘들 것이다. 비본질적인 남성들의 결투 이면에 있는, 세상을 바꿀 진짜 계획을 내놓아야 한다. 많은 핍박과 조롱을 받으면서도 꿋꿋하게 살아남은 10년 차 정치인 안철수의 존재 이유는 여전히 '새정치'다. 적대적 공생관계인 양당체제를 극복하고 다당제와 협치를 제도화하는 것이 안철수가 지난 10년 동안 이루지 못한 새정치의 출발점이다.

지난 대선에서 3등을 함으로써 빛이 바랬지만, 지지율 1·2위를 다투던 2017년 4월 23일에 한 안철수의 '광화문 미래비전 선언문'은 지금 읽어도 생생하다. 

"안철수의 집권은 낡은 기득권 정치질서의 종말을 의미합니다. 한국 정치의 대변혁이 시작됩니다. 양극단 계파패권세력은 몰락하고, 합리적 개혁세력이 오직 국익과 국민을 위한 협치의 시대를 열어갈 것입니다."

이것이 안철수가 정치에 불려 나온 이유이고 역대급 비호감 후보의 선택을 강요받고 있는 2022년 대선에서도 여전히 유효한 핵심 가치다.

▲국민의당 안철수 대선 후보가 지난 1월 24일 UNIST(울산과기원) 이차전지 산학연 연구센터를 방문해 청년연구자들과 간담회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안철수에게 이번 대선의 의미는 단지 이재명·윤석열·안철수·심상정 가운데 한 명을 고르는 선거 이상이어야 한다. 물론 대선을 코앞에 둔 시점에서 무슨 헛소리냐고 비판할 수도 있다. 하지만 3등 도전자인 안철수는 프레임 자체를 바꿔야 한다. 극단적인 진영 대결정치에서 대전환의 위기를 극복할 합리적인 연합정치로 전환하는 모멘텀으로 만들어야 자신의 공간이 열린다. 이것은 최근 안철수가 '닥치고 정권교체'가 아니라 '더 좋은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한 정치교체'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것과도 일맥상통한다.

안철수는 이제 단일화 질문에 대한 수세적 대응이 아니라 예를 들면, 정치개혁을 비롯한 대한민국 혁신과제를 안철수의 새정치 의제로 제시하고 이와 뜻을 함께할 세력과 능동적으로 연대하는 길을 찾아야 한다. 이 나라를 과거가 아니라 미래로, 대결이 아니라 통합으로 이끌 정치 청사진을 제시해야 한다. 정권교체 프레임에 갇혀 어쩔 수 없는 선택을 강요받고 있는 국민들의 새로운 정치적 상상력을 자극해야 한다. 지금 이런 새 판을 짤 사람은 오직 안철수뿐이다. 안철수의 에토스에도 전적으로 부합하는 일이다.

현실의 아수라판으로 한 걸음 더 가 보자. 이준석은 이미 안철수에게 백기투항을 최후 통첩하듯 공식화했다. 안철수를 향한 이준석의 언어엔 조롱이 가득하다. 누가 봐도 도가 지나친 독설이다. 이준석은 미국 공화당 전략가인 칼 로브의 갈라치기 이론을 아주 낮은 수준에서 실행하고 있는 정치인이다. 윤석열에게 단일화는 확실한 승리의 길이지만, 안철수가 완주해도 이긴다는 달콤한 속삭임에 둘러싸여 있다. 만약 우여곡절 끝에 윤석열과 단일화를 한다고 해도 제대로 존중받기는 어려울 것이다. 적어도 윤석열과의 단일화를 통해 낡은 양당체제를 극복하고 안철수가 원하는 새정치를 실현할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한나라당의 확장을 저지하기 위해 정치를 시작했다'고 한 2012년 가을의 약속과도 배치된다.

민주당은 안철수에게 가장 깊은 상처를 입힌 존재다. 2012년 대선 패배의 책임을 안철수에게 뒤집어씌운 일이나 지난 대선에서의 드루킹 사건도 안철수의 기억엔 또렷하다. 친문 패권주의와 운동권 독선주의, 조국 사건의 내로남불까지 안철수가 민주당을 싫어할 이유는 수두룩하다. 만약 민주당이 안철수와의 단일화를 원한다면, 추상적인 말의 상찬이 아니라 위성정당 등 과거에 대한 반성, 다당제 제도화 등 정치혁신에 대한 분명한 약속 등을 먼저 실천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이재명은 민주당과 결이 다르다. 민주당의 아웃사이더인 이재명은 최근 '양당 독재체제'의 개혁 필요성을 언급했다. 다당제와 연정에 대한 신념도 확고한 것으로 알고 있다. 생각하기에 따라서 안철수의 입장에서 보면 이재명이야말로 낡은 기득권 집단으로 퇴화한 민주당을 혁신할 수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이재명·안철수 두 비주류 도전자의 케미로 산업화, 민주화 시대가 낳은 한국 정치의 낡은 카르텔을 무너뜨릴 절호의 모멘텀을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재명과의 1대 1 단일화 논의는 또다시 낡은 프레임 안에 갇힐 우려가 있으며 그 효과가 얼마나 될지도 미지수다. '윤석열과 잘 안되니 이재명과 하려고 한다'는 냉소에 갇히면 명분도 실리도 얻기 어렵다.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가 필요하다. 안철수가 만약 이재명, 심상정, 김동연 등을 포함한 합리적 진보와 보수를 아우르는 연합정치, 공동 정부 프레임으로 이 국면을 능동적으로 전환할 수 있다면, 이것은 안철수 자신이 처음 정치에 나왔을 때 실현하고자 했던 그 새정치의 기틀을 만드는 획기적 사건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진영 대결정치를 국민 연합 정치로 전환하는 것이야말로 안철수의 존재 이유를 다시 한 번 증명하는 길이자, 이번 대선에서 가장 의미 있는 성과를 만들어낼 수 있는 새로운 전략이기도 하다.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 12개 부문 후보에 오른 제인 캠피온 감독의 신작 <파워 오브 도그>에는 '내 영혼을 칼에서 건지시며 내 유일한 것을 개의 세력에서 구하소서'라는 성경 시편이 인용된다. 낡은 과거 부패세력에게서 국민을 구할 정치적 대전환을 꿈꾸는 것은 여전히 불가능한 일일까? 

얼마 남지 않은 투표일 이전에 '안철수의 생각'이 '안철수의 선택'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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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승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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