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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가 손주'에게도 필요한 보편적 복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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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가 손주'에게도 필요한 보편적 복지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보편주의의 재인식: 보편과 선별은 대립적인가?

보편 vs 선별의 재인식

사회정책에서 보편주의(universalism)와 선별주의(selectivism)는 주로 사회적 급여를 어떻게 할당하는가의 문제와 관련된다. 흔히 보편주의가 사회적 급여를 '권리'로 보고 모든 시민을 대상으로 하는 원리라면, 선별주의는 주로 자산조사를 통해 판별되는 개인의 필요에 기초하여 급여를 지급하는 원리라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실제로 보편주의와 선별주의는 매우 복합적인 개념이며, 현실에서 칼로 자르듯 간명하게 구분하기 어렵다. 보기에 따라서는 동일한 프로그램이 보편주의로도 선별주의로도 구분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보편주의라는 용어가 개별 프로그램 수준에서 사용되는지(예를 들어 '보편적 무상급식') 혹은 국가나 체제 수준에서 사용되는지(예를 들어 '보편적 복지국가')에 따라 상당히 다른 함의를 갖기도 한다.

보편주의와 선별주의는 그 개념의 복잡성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비교적 널리 알려져 있다. 지난 10여 년간 복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탓도 있지만, 2010년 전후 무상급식 논쟁을 시작으로 정치권과 언론의 복지 논쟁이 종종 '보편 vs. 선별'의 구도 하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2010년 당시 무상급식을 둘러싼 논쟁은 '재벌가 손주에게도 무상급식이 필요한가?'라는 상징적인 질문으로 요약할 수 있으며, 결국 보편적 무상급식이 도입되는 것으로 한 국면을 지났다. 그리고 이 논쟁은 많은 시민들에게 '재벌가 손주까지도 지원하는 프로그램이 보편적 복지'라는 기억을 남겼다.

보편주의 논쟁의 2라운드는 보편적 기본소득(universal basic income, 이하 '기본소득')의 등장으로 촉발되었다. 기본소득은 보편적 무상급식과 동일한 원리로 모두에게 권리로서 지급하지만, 학령기 아동이 있는 가정을 대상으로 하는 급식과 달리 모든 개인을 대상으로 하기에 종전의 보편적 프로그램보다 '더 보편적인'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보편주의 논쟁의 제2라운드는 마치 '더 보편적인 기본소득' 대 '덜 보편적인 기존 복지국가'의 대립처럼 구도가 짜여진 것이다.

▲ 오세훈 서울시장은 2011년 8월 자신의 직을 걸고 무상급식 찬반 주민투표를 실시했다. YTN 화면 갈무리.

보편주의와 보편적 복지국가는 다르다

그러나 보편주의와 선별주의에 관한 이와 같은 대립적 인식에 문제가 있다는 점은 이미 지난 2017년 칼럼에서 다룬 바 있다.(☞ 관련 기사 : '보편 복지', 인식의 확장이 필요하다) 당시의 내용을 다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보편주의(universalism)는 '필요를 가진 모든 사람이 동등한 사회 급여나 복지 서비스 수급권을 갖는 것'을 의미한다. 의무교육이나 건강보험이 여기에 해당된다. 반면 선별주의(selectivism)는 '서로 다른 처지에 있는 이들을 서로 다른 제도로 보장'하는 것을 의미한다. 똑같이 공적 노후 보장의 필요성이 있을 때, 인구 전체에게 동일한 연금 제도를 적용하는 방식이 보편주의라면 공무원·임금노동자·자영자·농어민에게 각각의 제도를 적용하는 방식은 선별주의다. 즉 보편주의와 선별주의는 필요에 따른 할당 원리의 차이로 접근해야지 선악의 이분구도로 보는 건 곤란하다.

둘째, 오직 빈곤층만을 대상으로 하여 엄격한 자산조사를 거치는 방식의 '선별' 역시 선별주의의 한 유형이지만, 그것이 모든 선별주의를 대표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빈곤층만을 대상으로 하는 할당방식은 '잔여주의'로 구분하는 경우가 많으며,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선별주의에 대한 오해는 대개 선별주의와 잔여주의를 동일한 것으로 이해하는 것에서 비롯된다. 잔여적 복지가 문제가 되는 것은 복지의 대상을 오직 빈곤층만으로 제한하기 때문인 것이지, 서로 다른 필요를 가진 이들을 선별하기 때문이 아니다. 즉, 생계급여처럼 빈곤층만을 위한 선별복지는 필요하다. 다만, 대부분의 복지가 빈곤층만을 대상으로 설계되는 것은 복지가 시민의 보편적 권리로 확장되지 못한다는 점에서 잔여주의이고 그래서 비판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셋째, 어떤 복지국가도 보편적 프로그램이나 선별적 프로그램만으로 구성되지 않으며, 필요에 따라 보편과 선별을 혼합한다. 우리가 '보편적 복지국가'라고 부르는 '포괄적 복지제도를 통해 시민 대부분의 사회적 위험에 집합적으로 대응함으로써 연대와 평등을 추구하는 복지국가' 역시 마찬가지다. 이런 국가들에서 보편적 프로그램이 발달한 것은 사실이지만, 보편적 프로그램 못지않게 선별적 프로그램들도 다양하게 운영되고 있다. 역사적으로 보면 오히려 개별 프로그램 수준에서 보편주의를 지나치게 고집하지 않고 보편주의의 원칙 위에서 다양한 할당원리를 적절하게 혼합한 국가들에서 '보편적 복지국가'가 발전했다.

요컨대 개별 프로그램 수준에서 가급적 '모든 시민에게 동등한' 급여나 서비스를 제공하고자 하는 '보편주의'가 정책수단이라면, 보편주의와 선별주의를 포괄하는 다양한 할당원리를 결합하여 형성되는 '보편적 복지국가'는 정책목표에 해당한다. 만약 우리가 규범적으로 더 두터운 복지국가를 지향한다면 그 목적지는 '보편적 복지국가'가 되어야지, '더 보편적인 프로그램'이 되어서는 안 된다. 보편주의와 선별주의를 대립적인 것으로 놓고 한쪽이 옳고 다른 쪽이 틀린 것처럼 접근하는 논쟁의 구도가 부적절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보편주의와 선별주의, 그리고 '필요(needs)'

보편주의와 선별주의 논의에서 또 한 가지 생각해볼만한 것은 복지국가의 '필요'와 '권리' 문제다. 서두에 흔히 보편주의는 시민의 '권리'에 선별주의는 개인의 '필요'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는 점을 언급한 바 있다. 그러나 '보편주의=권리', '선별주의=필요'라는 인식은 이 두 이념형의 할당원리를 정확하게 이해하는데 적절하지 못하다. 모든 사회정책은 그 정책에 대한 필요를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보자. 전통적 복지국가에서 가장 보편적인 현금급여로 여겨지는 사회수당 역시 급여 수급자들이 가진 공통의 필요를 전제로 한다. 예를 들어 아동수당은 '아동을 가진 모든 가정은 양육에 대한 비용이 소요된다'는 필요를, 노인수당은 '모든 노인은 소득의 단절이나 급격한 감소를 겪는다'는 필요를 전제한 것이다. 보편적 사회서비스는 더욱 분명하게 서비스 이용자의 필요와 연관된다. 건강, 아동보육, 노인돌봄, 장애인돌봄, 교육훈련 등의 서비스는 그 서비스 이용자가 건강, 보육, 돌봄, 교육훈련의 필요를 가지고 있다는 전제 위에서 운영된다.

사회정책의 근간으로서의 '필요'

사회정책에서 인간의 필요(human needs)는 개인이 한 사회에서 인간다운 삶을 살기 위해 필수적인 조건을 가리킨다. 이는 경제학에서 이야기하는 선호(preference)나 욕망(wants)과 구분되는데 선호나 욕망이 본질적으로 주관적인 개념인 반면 필요는 어느 정도의 보편성·객관성을 갖출 것이 요구된다. 필요는 개인 자신뿐 아니라 사회적인 관점에서도 필수적으로 보장되어야 하는 것으로 인정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일정한 보편성과 객관성이 전제된다. 사회정책은 이와 같은 '필요'에 대한 사정(assessment)에 기초하여 운영된다. 예를 들어 개인의 바람이 주관적으로는 똑같이 절박하더라도, 그리고 소요되는 재원이 비슷하더라도 고급 스포츠카에 대한 요구와 희귀병 치료약에 대한 요구는 다르게 취업되어야 한다는 것이 사회정책의 필요 개념이다.

인간의 필요를 이렇게 정의하고 보면, 보편주의라고 해서 인간의 필요와 무관하게 오직 권리에만 기초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하게 알 수 있다. 반대로 선별적 혹은 잔여적 제도는 보편적 제도에 비해 좀 더 엄격하게 필요를 판단하지만, 일정한 필요가 확인되면 그에 부응하는 급여나 서비스가 제공된다는 점에서 권리에 기초한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의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는 일정한 소득과 재산상 요건에 해당할 경우 다른 조건을 고려하지 않고 소득을 지원한다. 비록 그 실질적에 있어서는 사각지대 문제가 지적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기초생활보장제도 도입이 '국민최저선(national minimum)'이 권리로서 제도화된 것이라고 받아들여진 것에는 이런 배경이 자리한다.

요컨대 모든 사회정책은 '필요'와 '권리'의 결합이다. 가장 보편적 제도도 가장 선별적(잔여적) 제도도 필요나 권리, 어느 한쪽에만 근거하지 않는다. 원칙적으로 사회정책이 보장하는 사회적 권리는 '어떤 필요가 있을 때 이를 만족할 수 있는 사회적 권리'이며, 보편주의는 '필요에 대한 보편적 충족'을 의미한다. 다만 어떤 프로그램을 운영하기 위한 시민의 필요를 사정(assessment)할 때, 그 시민이 자신의 필요를 시장에서 구매할 수 있는가를 엄격하게 따지기 위해 자산조사를 결합한다면, 이는 상당히 강한 정도로 잔여적 프로그램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다.

보편적 기본소득과 필요 기반의 느슨함

기본소득을 둘러싼 복지국가 논쟁에서 제기된 논점 중 하나는 기본소득을 보편적 사회정책으로 볼 수 있냐는 문제였다. 기본소득을 보편적 사회정책의 하나로 볼 수 없다는 주장은 사회정책은 '필요'에 대한 대응인데 기본소득은 애당초 필요를 고려하지 않고 무조건적으로 지급되기에 사회정책의 범주에서 벗어난다는 것이다. 반대의 입장에서는 기본소득이 가장 이념형적인 보편주의라고 본다. 이 입장에서 보편적 사회정책의 원리는 시민의 권리 보장에 있는데, 기본소득은 가장 권리를 강조하는 접근이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한 가지 질문하고 싶은 것은 과연 기본소득에는 '필요'라는 요소가 없는지에 대한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기본소득이라는 아이디어가 많은 관심을 모으게 된 것에는 노동시장의 불안정성 증가, "4차 산업혁명"에 따른 일자리 감소 가능성, 유급노동 이외의 활동을 보장할 필요성 그리고 이처럼 변화하는 환경에 대한 기존 복지 프로그램의 부정합 등이 꼽힌다. 이는 명백하게 기본소득 역시 사회구성원의 어떤 '필요'에 근거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그리고 그 필요의 많은 부분은 불안정 노동과 관련되어 있다.

기본소득 역시 기존의 복지 프로그램들과 마찬가지로 사회구성원의 필요와 그 필요를 충족할 권리라는 구조 안에 있다. 그리고 제도의 설계를 토대로 살펴볼 때 상당히 보편적인 제도라고 하겠다. 그런데 기본소득이 추구하는 보편성과 무조건성이 그 제도의 배경이 되는 '필요'와 적절히 조응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있다. 기본소득의 필요가 '불안정 노동'으로부터 비롯된 '소득의 필요'라고 본다면, 그것은 '모든 시민' 공통의 필요라고 보기는 어렵다. 아무리 노동시장 불안정성이 증가했다고 해도 모든 노동시장 참여자가 불안정 노동에 종사하지는 않는다.

요컨대 기본소득은 하나의 보편적 사회정책 프로그램이지만 정책의 '필요'를 종전의 사회수당보다도 매우 느슨하게 사정한다. 기존의 보편적 현금급여인 사회수당이 비용발생(아동수당)이나 은퇴로 인한 소득단절(노인수당) 등 좀 더 분명한 필요에 기초한 것과 대비된다. 이는 기본소득의 특성 중 하나인 '무조건성' 때문이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보편적 프로그램도 수급자의 '필요'에 기초한다는 관점에서 보면 기본소득의 무조건성은 이 프로그램을 더 보편적인 것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무조건성은 기본소득의 필요 기반을 매우 느슨한 것으로 만들고 있으며, 이 점이 기본소득을 경제적으로 효율적이지 않을 뿐 아니라 심지어 낭비적으로 만든다.

생태적 복지국가와 '필요(needs)'

사실 최근 복지국가를 둘러싼 환경변화는 복지국가의 필요 기반을 '느슨하게'할 것이 아니라 더욱 '견고하게' 할 것을 요구한다. 이는 자산조사 등을 거쳐서 필요를 더 '엄격하게' 평가해야 한다는 이야기와는 다르다. 그보다는 개개인이 가진 필요를 좀 더 정확하게 판단하고 그에 맞추어 급여와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며, 필요 기반에 대한 사회적 합의의 수준을 높여가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전통적 복지국가와 달리 현재의 복지국가는 시민들이 가진 필요의 '다양성(diversity)'에 부응해야 한다. 보편주의는 보편적 프로그램의 대상이 되는 시민들의 필요가 상당 부분 동질적이라는 전제 위에서 발전해온 개념이다. 그러나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는 과거에 비해 그 다양성이 크게 증가했다. 전통적인 노동-자본의 계급 구도 외에 성별, 인종, 민족, 장애상태, 종교, 성적지향 등 계급 외의 다양한 차이에 따른 다양한 필요가 제기되고 있을 뿐더러 노동 그 자체도 과거처럼 균질하지 않다. 따라서 현대의 보편주의는 정책적 측면에서는 서로 다른 상황에 있는 집단들의 필요에 부응하는 다양성을 추구하고, 정치적 측면에서는 차이를 넘어선 연대를 강화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다양한 필요에 부응하는 사회정책을 위해서는 이전보다 더욱 견고한 필요기반이 요구된다.

복지국가의 필요기반 강화에 대한 또 다른 요구는 기후위기 대응이라는 인류사적 요구에서부터 비롯된다. 사실 보편적 복지국가는 그 가장 성공적인 형태로 꼽히는 북유럽 모델에서조차 매우 생산주의적인 기반 위에서 만들어졌다. 복지국가는 기본적으로 분배에 초점을 둔 체계지만 그 분배가 다시 생산에 기여할 것을 요구해왔고, 이를 통해 분배의 파이를 확대하고 지속하는 것이 전통적 복지국가 모델의 기반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녹색전환이라는 새로운 도전은 과연 성장이 무한할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과거에 제기되던 복지국가의 '지속가능성'이 주로 재정 문제에 주목했다면, 지금부터의 지속가능성은 생태적·사회적 측면에 좀 더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이와 같은 환경 변화는 복지국가가 보장해야 하는 '필요' - 인간의 무한한 욕구를 상징하는 '욕망(wants)'과 구분되는 개념으로서의 필요 – 개념을 더욱 정교하게 하고, 이를 통해 성장의 한계선 안에서 이루어지는 지속가능한 발전의 기반으로서 보편적 복지국가를 새롭게 개념화할 것을 요구한다. 전통적인 의미에서 필요의 보편성·객관성이 그 필요를 가진 개인들이 속한 사회 안에서의 인정을 요구했다면, 이제는 공간적으로는 지구적 차원에서, 시간적으로는 후세대까지를 고려해서 인정받을 수 있는 필요의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이는 보편적 복지국가의 필요 기반에 대한 논의가 과거보다 훨씬 더 심층적인 차원으로 발전해야 할 필요성을 시사한다.

요컨대 우리는 좀 더 견고한 기반 위에서 '필요 기반의 보편주의'를 발전시켜야 한다. 보편주의는 모든 사회 구성원의 인간다운 삶을 보편적 권리로서 보장하지만, 이를 위해 서로 다른 위치에 놓인 사회 구성원들의 필요를 사정하고 각각의 필요에 부응하는 정책을 제시해야 한다. 이를 위해 보편주의의 필요기반을 과거보다 더 발전시켜야 하며, 그것이 이루어질 때 서로 다른 상황에 놓인 시민들 간의 차이를 넘어선 연대가 가능할 것이다.

*내가만드는복지국가는 의제별 연대 활동을 통해 풀뿌리 시민의 복지 주체 형성을 도모하는 복지단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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