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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미 공동운명체, 게임체인저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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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미 공동운명체, 게임체인저 될까?

[좋은나라 이슈페이퍼] 남북-북미 정상회담, 한반도 미래는?

역사적

2018년 들어와 가장 자주 듣는 말 중 하나가 '역사적'이라는 단어일 것이다. 평창올림픽과 남북의 극적 화해 국면, 11년 만의 남북정상회담, 그리고 싱가포르에서 또다시 역사적 상황이 전개되었다. 6월 12일, 전쟁과 분단의 시대를 마감하고 새로운 공존과 평화의 시대로 향하는 출발의 문이 열린 날이다. 센토사섬 카펠라호텔의 양쪽 회랑에서 김정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이 중앙으로 걸어 나와 나눈 12.5초 간의 악수는 70년 묵은 적대감과 수년간 임계점까지 다다랐던 위기가 극적 반전을 맞는 순간이었다. 4월 27일이 분단과 전쟁의 상징이었던 판문점이 평화로운 한반도를 여는 새로운 상징이 되었던 것처럼, 6월 12일은 한 때 '죽음 앞의 섬'이라는 별명을 지닌 해적과 폭력, 전쟁과 학살의 어두운 역사를 지닌 센토사섬이 평화의 섬으로 재탄생되는 날이었다.

불과 반년 전만 해도 한반도는 전쟁 직전의 위기 상황까지 치달았지만, 이후 변화의 속도와 규모는 전례가 없는 것이었다. 극적 변화이지만 우연으로 치부할 수는 없다. 심상정 정의당 국회의원이 "세상에는 절대 불가능할 것 같은 일들이 일어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촛불이 그랬고 한반도 평화의 문이 또 그렇게 열리고 있다"면서 "그러나 우리 앞에 새롭게 열리는 이 역사는 결코 우연이 아니다 () 반전의 반전을 거듭하면서도 오늘의 역사적 회담에 이르게 된 것은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에 대한 남·북·미 정상의 확고한 의지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 지적은 주목할 만하다.

2018년 벽두 김정은의 신년사와 2월 평창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는 시작되었다. 당시 한국을 방문한 김여정 북한 노동당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은 김정은 위원장의 친서를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북한 초청의사와 함께 전달하였고, 3월 5일 대북특사단이 평양을 방문하였다. 서울로 돌아온 특사단은 4월말 남북정상회담 개최와 핵실험과 미사일 실험에 대한 유예와 북미대화 용의를 전해왔다. 곧바로 특사단은 미국을 방문해 이를 전달했고 트럼프 대통령은 예상을 뒤엎고 조기 북미회담 개최를 선언했다. 이후 새로 임명된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2차례 전격 방북해 비핵화와 체제보장에 대한 합의를 추진하였고, 북미정상회담 의제를 조율했다. 이런 가운데 4월27일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이 개최되었고, 남북관계 개선, 종전선언, 군비통제, 남북교류와 함께 완전한 비핵화를 통한 핵 없는 한반도 실현에 합의했다.

협상을 이어가던 중에 결정적 고비가 찾아왔다. 미국 측의 볼턴 안보보좌관을 위시한 강경파들이 리비아모델의 압박하자 북한이 반발했고, 트럼프는 북미회담의 전격적인 취소 결정을 내렸다. 그러나 북미 양국의 발 빠른 노력으로 북미정상회담은 수습 국면에 접어들었고, 김영철의 방미와 함께 트럼프의 회담 확정을 이끌어내었다. 이어서 뉴욕, 싱가포르, 그리고 판문점의 여러 채널의 협상이 정상회담 직전까지 가동되었고, 특히 정상회담 전날 심야까지 실무회담이 계속되었다. 마침내 6월12일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은 개최되었고 우호적인 분위기에서 단독정상회담, 확대회담, 오찬, 그리고 4개항의 공동성명 발표와 조인식까지 이어졌다.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 공동성명 4개항

1. 미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평화와 번영을 위한 양국 국민의 바람에 맞춰 미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새로운 관계를 수립하기로 약속한다.

2. 양국은 한반도의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평화체제를 구축하기 위해 함께 노력한다.

3. 2018년 4월 27일 판문점 선언을 재확인하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향해 노력할 것을 약속한다.

4. 미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신원이 이미 확인된 전쟁포로, 전쟁 실종자들의 유해를 즉각 송환하는 것을 포함해 전쟁포로, 전쟁실종자들의 유해 수습을 약속한다.


엇갈린 평가


미국의 어느 언론은 북미 두 정상의 만남을 '만화 같다(cartoonish)'라고 표현했고, 회담 당사자 김정은 위원장까지 "전 세계가 이 순간을 지켜보고 있는 것 같다. 전 세계 많은 사람들이 이 회담을 공상과학 영화 속 장면으로 여길 것 같다"고 조응했지만, 동시에 비현실적 반전이 동반하는 불안과 의심도 없지 않다. 이는 불과 수개월 전만 해도 전쟁이 임박한 것처럼 말 폭탄을 교환했던 사이였음을 감안하면 이해할 측면도 있다. 우호적 분위기와 함께 공동성명에 서명까지 했음에도 시간이 흐를수록 부정적 평가가 커지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일단 북미정상회담의 표면적인 성공, 그리고 전환점으로서의 성공적인 출발에 대해서는 국내외 평가가 대부분 일치한다. 냉전체제를 마침내 무너뜨릴 수 있는 역사적인 회담이자 악화일로의 한반도 상황에 평화의 새로운 전기가 마련되었다는 것에는 대부분 동의한다. 북미의 정상이 만남으로써 북한과 미국 사이의 적대감과 한반도의 긴장을 크게 완화시켰다는 것에는 이의를 달기 어렵다. 회담이 성사될 때까지 트럼프 대통령의 갑작스런 취소 결정 등 우여곡절이 있었고, 회담 직전까지 혹시라도 있지 모를 파행의 우려가 있었던 것을 감안한다면 공동성명까지 채택할 수 있었던 것은 성공으로 평가할 수 있다는 것이다. 북한에 대한 오랜 불신과 트럼프에 대한 비판적 의식을 가진 미국의 일반 대중들조차도 대체로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미국의 몬 머스 대학의 설문조사에서는 약 70퍼센트가 긍정적인 평가를 했고, 트럼프 지지율 역시 소폭이나마 높아졌다.
그러나 물론 여전히 오피니언 리더, 전문가 집단, 정치인, 주요 언론들은 내용에 있어서 기대나 예상보다 미흡하다는 평가가 주류를 이루었다. 북미 간 새로운 관계 형성,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공동노력,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 노력, 전쟁 실종자들의 유해 송환 등 4가지 합의 사항에는 당초 기대했던 비핵화-체제보장에 대한 구체적인 로드맵에 대한 합의 도출과 타임라인, 그리고 싱가포르에서의 남-북-미 종전선언 등은 없었다. 특히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비가역적인 핵폐기를 의미하는 CVID의 표현이 담기지 못한 것에 비판이 집중되었다. 일각에서는 두 정상이 단계적, 동시적 비핵화 해법에 인식을 같이 했다는 점도 미국이 지나치게 양보했다는 증거로 제기하고 있다.

미국은 그동안 CVID가 받아들일 수 있는 유일한 결과라면서 일괄타결을 요구해왔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보수세력들은 비핵화에 대한 구체적인 조치를 합의문에 담지 못한 이상 아무리 좋게 포장한다고 하더라도 실패라면서 비판 일색의 평가를 내놓았다. 비판 가운데 두드러진 것은 미국이 북한 비핵화에 대한 확실한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하고 북한에게 일방적으로 너무 많은 양보를 했다는 주장이다. 비판자들은 공히 김정은이 이번 회담의 승리자라고 부르면서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국가, 국제사회에서 철저하게 소외된 국가의 독재자가 세계 최강의 패권국가인 미국의 지도자와 어깨를 나란히 함으로써 세계적 지도자로 부상한 것만으로도 엄청난 이익을 봤다는 것이다.

정상회담의 성과에 대한 비판들은 상당한 설득력을 가진다. 비핵화의 로드맵이 빠져버린 것은 못내 아쉽다. 하지만 세계역사상 정상간 공동선언들이 그랬듯이 디테일보다는 원칙과 약속 위주로 구성되어있다는 점에서 모호성만으로 평가절하하기 어렵다. 물론 구체적 실행방안과 타임프레임이 담겼으면 좋았었겠지만 한편으로는 과욕일 수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발표문에 담지 않은 합의, 즉 비공개 합의가 있을 상당한 가능성을 염두에 둔다면 섣부른 판단은 조금 유보할 필요가 있다. 정상회담 전날 심야에 전격적으로 열린 북미 실무회담은 합의를 위한 막판 줄다리기보다는 그동안 미국이 요구했던 북한의 비핵화에 대한 과감한 초기 조치, 소위 '프런트 로딩(front loading)'에 대한 김정은 위원장의 결심을 전했을 가능성이 더 높은 것 같다. 이는 폼페이오가 정상회담 하루 전에 백악관 출입기자단을 상대로 한 브리핑에서 "미국이 받아들일 수 있는 유일한 결과는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CVID)'"라고 자신 있게 말했던 것과 트럼프가 정상회담 당일 새벽에 증오자와 패배자들을 비난하며 성공을 확언했던 것을 통해 추론해볼 수 있다. 물론 어느 정도 수준까지 합의가 되었는지는 아직 정확하게는 알 수 없다.

한국 정부의 입장과 입지

북미정상회담에 대한 한국 정부의 입장은 충분히 예상된 것이었다. 어느 누구보다 가슴 졸이며 북미정상회담의 성공을 바랐던 한국으로서는 사실 어떤 경우에도 성공으로 간주하고 거기서부터 시작할 수밖에 없다. 회담 직후 북미정상회담이 사전에 또는 도중에 돌발 사태가 일어나지 않았다는 점과, 결과 역시 다소 모호한 점이 있다고 하더라도 확실한 실패라고 할 수 없다는 점에서 일단 안도했다. 여러 비판에도 불구하고 한반도의 평화를 여는 역사적인 시작이라는 점에서 전폭적인 지지를 표명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6·12 센토사 합의'는 지구상 마지막 냉전을 해체한 세계사적 사건으로 기록될 것이라면서, "5월 26일 통일각에서 김 위원장을 다시 만났을 때, 어제 트럼프 대통령과 통화하면서 조심스레 회담의 성공을 예상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한국 정부는 무엇보다 북미공동선언을 도출하고 여기에 양국 리더가 서명한 것은 큰 성과로 평가하는 동시에, 한반도 문제에 대한 트럼프의 생각 및 인식 변화에 주목하고 있다. 불과 수개월 전까지만 해도 곧 전쟁을 벌일 것 같은 트럼프가 한반도에서 더 이상의 전쟁은 없을 것이라는 자세로 돌아선 것이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는 것이다. 북한 체제보장과 완전한 비핵화의 교환에 관해서도 비록 최고 높은 수준은 아니지만 상호간에 양보의 수준을 고심 끝에 맞춘 것으로 판단했다. 즉 CVID 라는 표현이 빠진 것과 종전선언이라는 표현이 들어가지 않은 것이 균형이라고 인식하고, 미국 내부에서 가장 강력하게 요구했던 직접적인 CVID가 비록 공동성명에 빠지기는 했지만, 판문점선언에서와 마찬가지로 '완전한 비핵화'가 사실상의 CVID라고 해석했다. 역사적 전환점이자 새로운 평화질서로 가는 시작으로서 정상이 큰 틀에서 총론에 합의했다면 이후로 폼페이오와 김영철 부위원장 (또는 다른 고위급 인사)간의 후속회담이 이어진다는 점도 다행으로 간주하고, 구체적인 타임라인과 비핵화 방법론은 이 과정에서 본격화될 것으로 차후에 여기서 나올 가능성이 많은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한국 정부는 북한의 비핵화에 대한 진전 여부에도 관심이 많았지만, 정반대로 한국에게 불리한 합의가 트럼프와 김정은 사이에서 나올까봐 상당한 우려를 했었다. 예를 들면 꾸준히 의심했던 ICBM만 파기하고 북한의 핵무기에 대해 인정한다거나, 트럼프가 자주 의중을 내비추었던 미군 철수 등이 그런 것이었는데, 이런 일은 결국 없었다. 비록 트럼프가 기자회견 중에 갑자기 언급한 한미연합 군사훈련 취소가 국내외 파장을 불러일으켰지만, 대응가능하다는 입장이다. 과거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우호적인 환경 조성을 위해 1994년 3월에 예정되어있던 팀스피리트 훈련을 취소한 적이 있었다는 점을 상기하면서, 한국 정부와의 사전 협의가 불충분했음에도 결과적으로 한국의 내부 정치역학과 여론으로 인해 먼저 제기하기 어려운 문제를 트럼프가 제기한 것은 어떤 측면에서는 한국정부의 부담을 덜어준 측면도 있다는 것이다.

이번 북미정상회담에서 가장 긍정적인 성과 중 하나로 한국의 입지가 커진 점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전술한 한미군사훈련 취소 결정 과정에서의 한미 합의가 원활하지 못하다는 점에서 한국 패싱이라는 일부 비판이 없지 않지만, 그동안 강조해온 북미정상회담에 대한 남북정상회담의 길잡이 역할이 재확인된 점은 큰 성과가 아닐 수 없다. 공동성명에 판문점 선언을 재확인하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향해 노력할 것을 약속한다'고 못 박은 것은 한국이 단순한 중개자가 아니라 방향도 정하고 경계선도 정한 유능한 길잡이라는 것이 재확인 된 것이다. 또한 남북정상회담에서 분명히 했던 북핵문제가 남북관계를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남북관계 개선을 통해 비핵화와 평화체제로 가겠다는 올바른 방향을 북미정상회담에서도 이어진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외에도 북미정상회담을 전후해 한국은 북한과 미국의 '보증자(guarantor)' 역할을 했다. 북미 간 뿌리 깊은 불신구조에서 비핵화와 체제보장을 교환해야만 하는데 그간 미국은 북한의 비핵화 의지의 진정성을 한국에게 묻고, 북한은 미국의 북한 체제보장의 진정성을 반복적으로 물어왔다. 트럼프의 취소 발표가 있은 후 남북정상이 판문점에서 재차 만났을 때 김정은 위원장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보증 받고자 한 것도 자신이 핵을 포기했을 때 과연 미국의 체제보장이었던 것은 회담 이후 문 대통령의 기자회견에서도 확인된 바 있다. 트럼프 대통령도 마찬가지였다. 문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의 비핵화의 진정성을 지나치게 '과장세일(oversale)'한다는 미국 내 비판에도 불구하고 트럼프는 지속적 신뢰를 보였다. 북미정상회담 전날 40분간, 그리고 회담 직후에도 20분간 통화했으며, 기자회견 중 여러 번 문재인 대통령을 언급하고 감사를 표시했다. 그리고 정상회담 직후 폼페이오 국무장관을 서울로 보내 한국 정부에게 설명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CVID 근본주의에 대한 경계

이 지점에서 반드시 지적해야 할 것은 CVID에 대한 맹목적 근본주의 문제다. 판문점선언과 싱가포르선언 모두 완전한 비핵화, 즉 CD라고 명문화하고 있음에도 미국에서는 'V'와 'I'가 빠졌다고 비판한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실현가능한 수준에서의 사실상의 CVID를 규정하고 있다. 먼저 북한이 가장 반발하는 'I'는 빠지는 것이 맞다. 주권국가로서 상황이나 조건의 변화가 있어도 입장을 바꿀 수 없다는 것은 무리한 요구다. 미국이 북한의 행동에 따라 체제보장 약속을 변경할 수 있듯이, 북한도 미국이 약속을 깰 경우 바꿀 수 있다고 인정하는 것이 공평하다. 박근혜 정부가 일본과 맺은 위안부합의에서 주장하는 비가역성의 부당성을 우리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검증을 말하는 'V'는 방법론의 차원으로 완전한 비핵화라는 말에 포함되어있다. 따라서 완전한 비핵화를 명기한 것은 현실에서의 가능한 최대치라고 할 수 있다. 오히려 내용적으로는 판문점선언보다 강한 표현인 '단단하고 흔들리지 않는(firm and unwavering)' 완전한 비핵화 약속이라는 점에서 진전이라고 할 수 있다.

"Do not trust, but verify!" 즉, 믿지 말고 검증하라는 것은 미국의 강경 세력들을 중심으로 북한의 비핵화에 대해서 불문율처럼 견지해온 원칙이었다. 북한에 대해 없는 신뢰를 억지로 가지려 애쓰기보다 아예 불신을 가정하고 철저하게 검증하는 편이 낫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원칙은 북한이 핵무기를 완성한 이후에는 효용성이 반감한다. 즉 북한이 핵을 가지기 전까지는 검증만으로도 비핵화가 가능할 수도 있었으나, 핵을 완성한 후에는 완성된 핵무기의 은폐가 용이하다는 점에서 검증과 더불어 북한의 자발적 신고와 폐기에 대한 신뢰가 동반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CVID를 거의 종교처럼 절대화하는 것은 일을 어렵게 만들 뿐이다. 남아공의 비핵화 과정에서 상당히 협조적이었음에도 IAEA(국제원자력기구)가 비핵화의 완성이라는 결론을 내리기까지 17년이 걸렸다는 것을 감안하면 사찰과 검증, 그리고 북한의 자발적 신고에 의한 폐기를 통해 일단 빠른 시간 내에 '현실적 CVID'를 우선적으로 달성하고, 이후 대북 감시체제를 통해 관리하는 방안이 더 효율적이다.

북한이 비핵화를 실천하고, 미국이 북한의 체제안전을 보장하는 교환구조는 출구에서는 균형을 이룰 수 있지만, 입구에서는 상당히 불균형적이라는 점도 반드시 지적되어야 한다. 북한은 비핵화에 대한 진정성을 보여주기 위해서라도 여러 선제적 행동이 필요한 반면, 미국은 북한의 비핵화 이전에 제공해줄 수 있는 것은 그리 많지 않다. 북한이 핵실험과 장거리미사일 발사 유예조치, 풍계리 핵실험장은 이미 나왔고, 트럼프가 기자회견에 밝혔던 미사일엔진 실험장 폐쇄 외에 가능한 것들은 ICBM(대륙간탄도미사일) 폐기, 일부 핵물질과 핵무기 반출 또는 폐기 조치 등이다. 이에 반해 미국은 종전선언과 불가침 선언 정도인데 행동이라기보다는 약속이다. 북한이 대미 신뢰부재의 상태에서 가장 고민하고 있는 부분일 것인데, 미국의 강경파들은 입구에서 인권이나 생화학무기 철폐까지 압박하고 있는 것은 비핵화를 더 어렵게 만들 뿐이다.

역사적 부조화와 한반도의 미래

과연 4월 말의 남북정상회담과 6월초의 북미정상회담이 한반도와 동북아 지형을 혁명적으로 변화시키는 게임체인저가 될 수 있을까? 무수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역사적 회담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고, 한국을 중심으로 한 긍정적 견해들 속에서도 2퍼센트 부족한 결과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다. 그러므로 북미정상회담은 한반도 평화체제로 가는 첫걸음을 뗀 것이며, 문 대통령의 언급처럼 앞으로 숱한 어려움이 있겠지만 다시는 뒤돌아가지 않겠다는 의지가 중요하다. 앞으로의 수개월이 너무도 중요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성공이라는 자화자찬이 허언인지는 북한의 과감한 선제조치를 포함한 비핵화의 구체적 실천 여부에 달려있다.

많은 사람들이 한반도에 냉전을 종식시키는 역사적 전환점에 대한 얘기를 하고 있지만 상황은 생각보다 호락호락하지 않다. 무엇보다 한반도의 현재는 주변 국제정치 상황과는 부조화가 존재한다. 1990년대에 세계가 냉전이 종식되고 독일통일을 이룰 때 우리는 분단과 냉전체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도리어 심화되었었다. 그런데 지금은 한반도에서 추진되고 있는 평화프로세스와 달리 동북아에서는 최근의 무역전쟁 양상에서 보듯이 미중 패권경쟁이 현저하고, 역내국가들의 배타적 민족주의와 안보 포퓰리즘의 기세도 확장일로에 있다. 어려운 상황이지만, 그럼에도 역설적인 것은 이렇듯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에 대한 동북아 6개국 전략적 이익이 이 정도로라도 수렴된 적은 거의 없었다. 남북이 적극적으로 주도할 경우 주변국이 방해할 명분이나 이익이 극복하지 못할 정도로 크지 않다.

지금부터는 트럼프의 불예측성이나 김정은 위원장의 전략적 선택을 의심하기보다, 역진하지 않도록 분위기를 만들고 기정사실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앞에서도 지적한 바 있지만 이번 공동성명을 통해 한국의 역할이 부쩍 커질 공간이 생겼다. 판문점 선언을 재확인한다는 표현도 그렇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기자회견 내내 문 대통령의 존재감에 의지하고 있었다. 북미양국의 불신구조에서 싹트는 신뢰의 배아는 한국의 보증을 받고 싶어 한다. 그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왜냐하면 비핵화가 한반도프로세스의 중요한 관문이기는 하지만 일부일 뿐이기에, 그리고 잠시 비켜나있던 자리에서 다시 중심으로 가서 주도해야 하기 때문이다. 서로 다른 정체성과 이념, 그리고 정치적 배경을 지닌 남북미 리더가 한반도의 평화프로세스의 출발점에서 운명의 한 배를 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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