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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즘] 13년 지켜만 본 우리는 '방관자', 그리고 모두 '가해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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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즘] 13년 지켜만 본 우리는 '방관자', 그리고 모두 '가해자'다

"13년 전 기자로서 책임을 다하지 못한 나 역시 방관자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이하 게티이미지뱅크, 네이버 블로그

먼저 불의의 교통사고로 젊은 나이에 유명을 달리한 4명의 청춘에게 삼가 조의를 표합니다. 그리고 당시 큰 부상을 입고 현재도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1명의 젊은이의 쾌유를 기원합니다.

13년 전 똑같은 그 자리에서 같은 사고로 2명의 생명을 잃은 그 날을 잊지 않고 살았다면 지난 달 20일 불법 좌회전하던 트럭을 추돌해 짧은 생을 마감하는 일이 없었을텐데하는 생각에 본 기자 역시 고개를 숙이고 반성하며 후회를 하게 된다.

나 역시 방관자였다. 젊은 4명의 목숨이 희생되는데 책임을 통감할 수 밖에 없는 방관자 말이다.

시간을 거슬러올라가 지난 2008년 11월 9일 오전 4시 45분. 이번 사고 현장 그 자리인 전북 전주시 덕진구 산정동 안덕원 지하차도 인근에서 불법좌회전하던 그랜져 승용차의 운전자 남성(26)과 조수석에 타고 있던 여성(44)이 그 자리에서 숨지고, 승용차를 추돌한 승합차 운전자는 부상을 입는 사고가 있었다.

당시 난 이 사망사고를 다룬 기자중 하나였다.

그 날을 더듬어본다. 그 때 이번처럼 도로구조를 변경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기자이기전에 전주시민으로서, 또 운전자의 한 사람으로서 외쳐댔다면 이번 사고처럼 4명의 소중한 목숨이 희생되는 일은 결코 없었을 것이다.

누구를 탓하기 전에 먼저 기자로서의 책임을 거듭 자문해보면서 이번 사고로 세상을 떠난 4명의 젊은이들에게 다시한번 속죄하는 마음을 가져본다.

4명이 사망한지 벌써 13일째다.

얼마 전 경찰은 불법 좌회전을 하던 화물트럭 기사(61)를 교통사고처리 특례법 위반(치상·치사) 혐의로 검찰에 송치했다.

경찰은 트럭기사를 검찰에 송치하면서 이렇게 밝혔다.


트럭 운전자가 교통법규를 위반한 사실이 명백하다고 보고 신속히 조사를 진행했다.
앞으로 유사한 사고가 재발하지 않도록 안전대책 마련에도 적극 나서겠다.


그렇다. 당연히 유사사고가 발생하면 큰일난다. 아니 직무유기다. 그런데 경찰의 이같은 말은 13년 전에 있었야했다. 너무 늦은감이 있다고 말을 하고 싶어도 시간이 너무나도 지났다.

트럭기사 당연히 처벌을 받아야 한다. 그 날 트럭기사는 자신의 목숨을 내놓고 운전한 것 뿐만 아니라 타인의 생명마저 앗아간 비극을 만든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누가 뭐래도 용서받을 수 없다.

트럭기사를 검찰에 송치했다고 끝낼 일이 아니다. 기자인 나를 포함해 경찰도, 그리고 전주시도, 도로교통안전공단 등등 사망사고와 관계된 모든 이들 역시 방관한 책임이 분명 있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사망사고에 진심으로 책임지려는 모습이 보이지 않는 것 같다.

사고 대책으로 중앙분리대 화단을 설치하는 것 하나로 그 책임을 다하려고 하는 분위기다. 13년 전, 그리고 2021년 7월의 책임은 벌써 종적을 감춘 것 같다.

아마도 관련기관들이 얽혀져 있어 그 책임이 분산된 탓도 있는 것 같다. 즉, 모두가 그동안 방관자로 살아온데 이어 이번에도 방관자로 한 발 물러서 있는 것 같다.


'방관자효과'(傍觀者效果)다. 제노비스 신드롬이라고도 하는 이것은 주위에 사람들이 많을수록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돕지 않게 되는 현상을 뜻하는 심리학 용어이다. 또는 어떠한 사건이 일어났을 때,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행동하는가에 따라 판단해 행동하는 현상을 의미한다.

방관자의 수가 많을수록 어느 누구도 도움을 받을 가능성이 적다. 모호함, 응집성 및 책임 확산을 비롯해 여러 가지 요인이 방관자 효과에 기여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대중적 무관심' 또는 '구경꾼 효과'라고 하기도 한다.

"왜 내가 나서야하는지, 다른 사람들도 있는데"라는 생각을 하기가 쉬워진다. 이런 생각 때문에 13년 동안 눈치를 살펴가면서 미뤄온 것이다. 60m 길이에 불과한 중앙분리대 화단 하나를 설치하는데 너무나도 오랜 방관자로 우리는 생활해 왔다.

"내가 안 해도 누군가는 하겠지"라는 그 무지한 생각 때문에 우리는 4명의 젊은 친구들을 잃었다.

이 뿐만 아니다.사고장소를 4745일(13년) 동안 방치해두면서 숱한 운전자들이 죽음의 문턱까지 가는 일도 비일비재했을 것이다.

법규를 위한해가면서 운전하는 양심없는 운전자들이 가장 문제이긴 하지만, 그런 곡예운전과 같은 일을 저지르지 못하도록 진즉 우리가 관심을 쏟아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너무나도 크다.

13년 전에도 중앙분리대 화단을 설치하려고 경찰과 전주시가 논의했다는 것이 확인됐다. 주변 상가를 핑계로 내세우며 설치하지 못했다는 것이 이유였다.

이제 더 이상 '죽음의 도로'로 불리는 이곳의 오명을 말끔히 씻어내기에 앞서 13년 세월을 눈치 하나로 버텨왔던 무책임한 방관자들을 다시한번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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