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코로나발 경기침체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는 국민총생산(GDP) 세계 10위 안에 들어설 전망이다. 인구 5천만 명 이상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 이상인 국가가 가입하는 주요 선진 7개국(G7)에서도 이탈리아를 제쳤다는 뉴스가 나온다. 국가부채도 GDP 대비 45.5%에 그쳐 선진국 평균인 131.4%의 3분의 1 수준으로 양호한 상태다.
국가와 대기업의 곳간은 풍족해졌지만, 가계의 주머니는 비어가고 보통 시민들이 느끼는 행복감은 말이 아니다. 올 3월에 2021년 유엔 행복지수가 발표되겠지만, 지난해의 61위에서 나아질 것 같지는 않다. 10위 안팎의 국부와 60위 안팎의 행복감. 도대체 이 큰 괴리는 왜 어디서 발생한 것일까?
부유한 국가와 가난한 국민
지난해 K-방역이 세계의 모범 사례로 떠올랐다. 긍정적으로 보자면 공동체를 고려한 시민의식이 돋보였다고 볼 수 있으나, 부정적으로 보자면 스스로 자신의 자유와 행복을 강하게 추구해본 적이 없는 역사적 결과로 볼 수도 있다. 타인과의 관계를 중시하는 동아시아 특유의 철학은 자유와 평등의 근대세계를 여는 데는 장애가 되었지만, 코로나와 같은 공동체의 위기 상황에서는 큰 힘을 발휘했다. 사물은 언제나 빛과 어둠, 양면성을 지닌다.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은 개인의 자유와 행복에 대한 보다 절실한 추구다. 산재사망률, 자살률, 출산율 등 불명예스러운 지표가 지난 수십 년간 1위를 달렸음에도 이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과 미래에 대한 설계는 찾아보기 어렵다. 시민들이 강하게 요구하지 않으니 정치적 해결이 지지부진한 것이다. 그 결과, 역사상 처음으로 지난해 인구 감소가 시작됐고 40년 후면 지금의 절반까지 줄어들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우리 사회는 과연 이 충격을 감당할 수 있을까? 다가오는 미래가 걱정스럽다.
걱정스러운 것이 하나둘이 아니지만, 시민사회의 약화가 가장 큰 걱정이다. 시민사회가 성장하는 만큼 성숙한 정부와 사회를 가질 수 있는데, 시민사회의 성장에 관심을 기울이는 이는 많지 않다. 약한 시민사회가 성장하기 위해서는 '지원은 하되, 간섭은 하지 말아야 한다'는 원칙이 필요하지만, 권력을 가진 국가나 자본을 가진 시장은 자신들이 가진 자원을 나눌 생각을 하지 않거나, 조금만 내놓고 생색내고 간섭하는 데 익숙하다. 하루하루를 사는 데 급급한 시민들도 여유가 없다. 그 결과가 부유한 국가와 대기업, 가난한 중소기업과 불안하고 불행한 시민으로 나타났다.
여의도에서는 거대 양당이 편을 나눠 시끄러운 싸움을 하고 있지만, 시민들의 행복과 안녕을 증진하는 데 얼마나 도움이 될지 의문스럽다. 임진년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침략을 앞두고 조선 양반들이 당쟁을 그칠 줄 몰랐듯이, 기후위기·불평등·인구감소 등 국가와 사회는 점점 위기로 치닫고 있는데도 그들만의 정쟁은 그칠 줄 모른다. 이유가 무엇일까? 장 자크 루소가 질타했듯이, '선거 하루만 주인이 되는 대의민주주의'의 본질적인 한계일 수도 있다. 결국, 쓰러지고 죽는 이들은 비빌 언덕이 없는 민초들이다.
한국 사회의 후불제 민주주의
한국 사회를 혹자는 '후불제 민주주의'라고 불렀다. 시민들이 싸워서 민주주의를 쟁취한 것이 아니라, 저절로 주어진 민주주의라는 말이다. 서구에서는 노동자와 여성들이 참정권을 얻기 위해 수백 년 동안 많은 피를 흘려야 했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해방과 함께 누구에게나 참정권이 부여됐다. 참정권만 보면 거의 공짜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4.19혁명과 5월 광주항쟁, 1987년의 민주화운동과 촛불 시민혁명 등 빛나는 성취들이 있기도 했지만, 유럽에서 역사적으로 민주주의를 위해 흘린 피에 비교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우리가 제대로 된 민주주의를 위해 갚아야 할 외상값이 아직은 많다. 다만, 그 외상값이 폭력적인 방식으로 나타나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학습 능력이 뛰어난 민족답게 유럽이 300년에 걸쳐 성취한 민주주의를 우리는 30년 만에 빠른 속도로 제도적·절차적으로 구축했다. 하지만 여전히 실질적인 내용은 부족하다. 무엇보다 민주주의가 지역과 생활 속으로 들어가지 않고서는 민주주의의 참맛을 보기는 힘들다. 문재인 정부 초기에 헌법 개정안을 내면서 '연방제에 준하는 지방자치'를 하자고 제안했지만, 이를 눈여겨보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생활 속에 뿌리내린 민주주의야 말로 민주주의의 완성태라고 볼 수 있다. 생활과 마을 속에서 민주주의가 구축된다면 우리에게 남은 빚은 거의 갚았다고 볼 수 있고, 국가 GDP와 행복지수 간의 큰 간격도 사라질 것으로 보인다.
복지국가가 '행복코디네이터'를 찾아 나선 이유
신년을 맞아 복지국가소사이어티에서 행복코디네이터를 찾아 나섰다. 마을민주주의를 일구고, 동네복지를 만들어갈 사람들이다. 마을민주주의, 동네복지를 개척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지만, 우리 사회가 행복사회로 진일보하기 위해서는 피할 수 없는 길이다. 87년 이후 지난 한 세대가 민주주의의 제도와 절차를 단단하게 만드는 시기였다면, 이제는 좋은 내용으로 채워야 할 때다. 그게 바로 복지국가이다. 맹자가 '흐르는 물은 웅덩이를 채우지 않고서는 앞으로 나가지 않는다(流水之爲物也, 不盈科不行)'라고 했던 것처럼, 우리 사회는 지난 30년 동안 절차적 민주주의라는 웅덩이를 채운 후 이제 새롭게 나가야 할 때가 되었다. 복지국가소사이어티는 바로 이 새로운 물줄기를 여는 이들을 '행복코디네이터'라고 이름 짓고 물길을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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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왜 행복코디네이터(이하 행복코디)라고 이름을 지었는가?
A. 복지국가만이 행복사회를 만들어갈 수 있다. 한국 사회는 대표적인 저부담·저복지 국가이기에 국부와 시민의 행복 간에 괴리가 크다. 유엔에서 발표하는 국가별 행복 순위를 보더라도 복지 수준이 높을수록 시민의 행복감이 높다. 지난해 발표에서는 북유럽의 복지국가 5개가 모두 상위 7위 안에 들었다. 둘째로 '행동하는 복지'의 줄임말이다. 말만으로는 복지의 강화가 이뤄지지 않는다. 복지를 강화하려면 각자의 주머니에서 더 많은 돈을 내야 한다. 증세를 하려면 사회적 신뢰가 있어야 하는데, 낮은 신뢰는 우리 사회의 가장 큰 장애다. 현재로서는 사회적 신뢰를 회복하는 데 왕도가 보이지 않는다. 신뢰사회를 만드는 데는 '노블리스 오블리제'가 제일 중요하지만, 우리 사회의 노블리스(귀족)들은 오블리제(의무)에는 별로 뜻이 없어 보인다. 그러니 목마른 시민들이 먼저 나서야 한다. 살고 있는 지역에서 함께 만나고 행동하면서 신뢰를 만들어가려고 한다. 함석헌 선생의 시처럼 ‘그 한 사람’이 중요하다. 지역에서 신뢰와 행복의 마중물을 만들 사람이 행복코디네이터이다.
Q. 행복코디는 어디서 무엇을 하는가?
A. 행복코디는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을 중심으로 해당 지자체가 해야 할, 혹은 했으면 하는 복지정책을 제안하고, 이것이 실행될 수 있도록 행동도 한다. 또 긴급하게 도움이 필요한 이가 있으면 행정이나 주민들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 있도록 한다. 가끔 도움의 손길이 미치지 못해 안타까운 소식을 듣는 경우가 있는데, 이런 것들은 막아보자는 뜻이다. 해당 기초 지자체의 영역을 벗어나는 일이면 몇 개의 지역이 모여 광역 차원에서 정책을 만들거나 국가 차원에서 필요할 일도 할 수 있다.
Q. 행복코디의 장점은 무엇인가?
A. 무엇보다 지역에서 좋은 분들은 만날 수 있고, 함께 행복을 만드는 창조자라는 자부심을 가질 수 있다. 코로나 시대의 대안은 '로컬택트', 즉 동네에서의 만남이라고 한다. 그리고 신뢰와 자유를 바탕으로 활동이 이뤄진다. 행정기관과 일을 하다 보면 무수히 많은 서류로 존재 증명을 해야 하지만, 여기서는 자유롭고 창조적인 활동으로 존재 증명을 하면 된다.
Q. 행복코디에게 인센티브가 있는가?
A. 지역에서 발생하는 후원기금이 주된 역할을 할 예정이다. 주민들이 자신의 지역에서 좋은 행복코디를 1명씩 키웠으면 좋겠다. 후원기금 중의 절반은 코디의 활동비로 사용될 예정이며, 나머지는 지역사업비로 사용될 예정이다. 복지국가소사이어티에서 사업별로 활동을 지원하려고 한다. 연구사업 등에 참여하면 연구비를 지급 받을 수도 있고, 지자체와 협력 등을 통해 다양한 사업을 발굴해나갈 예정이다.
Q. 행복서포터즈는 무엇인가?
A. 행복서포터즈는 행복코디를 지원하고 활동을 함께 해 나가는 지원자다. 돈의 여유가 있는 사람은 돈으로, 시간의 여유가 있는 사람을 시간을 내서 행복코디와 함께 살고 싶은 지역을 만들어가는 동반자다. 서포터즈로 활동을 하다가 코디를 할 만한 개인적 여건과 준비가 되면 코디로 신청할 수 있다. 그리고 해당 지역에서 어떤 사업을 할 것인지, 누구를 코디로 뽑을 것인지는 서포터즈에서 결정한다. 복지국가소사이어티는 활동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고, 결정은 지역에서 자체적으로 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Q. 행복코디, 서포터즈를 통해 무엇을 기대하는가?
마을민주주의와 지역복지를 통해 시민들의 행복감이 높아졌으면 좋겠다. 故노무현 대통령이 이야기했던 것처럼, 깨어있는 시민들의 조직된 힘이 만들어지지 않고서는 우리 사회가 질적으로 도약하긴 어렵다. 지역에서 시민들이 스스로 행복을 찾고, 조직화할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할 것이다. 정체와 퇴행을 거듭하며 그들만의 리그로 전락하고 있는 여의도 대의민주주의의 한계를 너무나 많이 보았기 때문에 직접민주주의의 강화를 통해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에 새로운 활력도 불어넣을 예정이다. 시민들이 행복을 직접 찾기를 기대한다. 자세한 내용은 홈페이지(www.welfarestate21.net) 둘러보고 많은 참여와 신청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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