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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철 정의당 대표가 당면한 과제들과, 결코 회피할 수 없는 싸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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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김종철 정의당 대표가 당면한 과제들과, 결코 회피할 수 없는 싸움

[장석준 칼럼] 정의당이 민주당에 맞서 이뤄야 할 것

정의당에 김종철 대표 체제가 들어섰다. 김종철 대표는 1970년생으로 더불어민주당이나 국민의힘 대표들에 비해서는 확실히 젊을 뿐만 아니라 정의당 안에서도 비주류라 평가받던 흐름에 속한 인물이다. 그런 그가 대표에 당선됐다는 사실은 총선 이후 정의당을 혁신하려는 당원들의 의지와 열망이 어느 정도인지 잘 보여준다. 부디 정의당 당원들의 이런 과감한 선택이 진보정당뿐만 아니라 한국 정치 전반에 새 바람을 불러일으키는 출발점이 되길 바란다.

하지만 정의당의 새 집행부에게 덕담만 건네기에는 앞으로 정치 일정이 참으로 만만치 않다. 불과 몇 개월 뒤면 대한민국에서 가장 큰 두 도시(서울, 부산)에서 광역자치단체장 보궐선거가 실시되고, 다시 1년 뒤에는 대통령선거와 전국 동시 지방선거가 잇달아 있다. 총선에서 큰 타격을 입은 지 얼마 안 되는 소수정당이 의미 있는 성과를 내기에는 너무 빠듯한 일정이고, 힘에 부치는 시험의 연속이다.

새로 진용을 짠 정의당은 이런 험난한 도전 속에서 과연 어떤 정치적 목표를 이뤄내야 하는가? 이 시대에 우리는 무엇을 기준으로 진보정당의 진퇴를 평가해야 할까? ― 그것은 바로 사회 변화의 주체를 복원 혹은 다시 구성하는 일이다. 촛불 항쟁 이후 오히려 더 큰 혼란에 빠지고, 더 나아가 해체되고 있기까지 한 그 주체를 되살리는 것이야말로 가장 중대한 당면 과제다.

사회 변화의 주체가 되기 위한 세 가지 조건

20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좌파에게 사회 변화의 주체는 명백해 보였다. 자본주의가 발전할수록 노동계급이 변혁의 주역으로 떠오른다는 것이 정답이었다. 그러나 오늘날은 사정이 복잡해졌다. 노동계급은 여전히 사회 변혁을 논할 때에 가장 먼저 떠올리는 집단이지만, 그렇다고 현실의 노동자들을 가리키기만 하면 사회 이론부터 정치 전략까지 모두 해결되는 시대는 더 이상 아니다.

우리 시대에는 일종의 '일반화' 작업이 필요하다. 과거에 노동계급이 사회 변화의 주인공이라 식별됐던 주된 이유이자 이후에 노동계급의 속성으로 전제됐던(때로는 시대 변화에도 불구하고 무비판적으로 전가됐던) 조건들을 추출해보자. 대략 다음 세 가지 조건을 들 수 있지 않을까.

첫째 조건은 자본주의에서 흔히 '경제'라 불리는 시장 안의 선택이 아니라, '정치'를 통해 자기 문제를 해결해나가려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기존 지배 질서의 재생산을 조금이라도 뒤흔들고 바꾸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조건이다. 노동 시장이든 부동산 시장이든, 대중이 시장 안의 경쟁을 통해 자기 문제를 해결해나갈 수 있다고 믿는 한, 지배 질서는 끊임없이 재생산된다. 이런 전망 안에서 이뤄지는 모든 선택은 기존 질서의 지속과 안정을 완성시켜주는 사슬의 마지막 고리가 될 뿐이다.

그것과는 다른 영역, 다른 경로, 다른 행동 방식을 통해 문제를 바라보고 해결하려는 노력이 우선 있어야 한다. 이제껏 그런 노력들이 쌓여 만들어진 장이 '정치'이고, 따라서 사회 변화의 주역이 발 딛고 설 가장 근본적인 토대는 '정치'에 대한 믿음과 기대, 이를 향한 열정의 발산이다.

둘째 조건은 타자를 경쟁 상대로 여기는 '경제' 영역의 일상 규범과는 정반대로, '정치'를 통한 문제 해결을 위해 광범한 연대를 구축하려 한다는 것이다.

시장에서는 경쟁이 일상 규범이다. 여기에서 타인이란 따돌리고 물리쳐야 할 상대일 따름이다. 그렇기에 이 규범에 승복한 대중은 점점 더 작은 부족으로 잘게 나뉘길 반복한다. 그러나 '정치' 영역의 논리는 전혀 다르다. 이 영역에서는 '나'가 아니라 '우리'의 힘이 필요하다. '정치'를 통해 현상태를 바꾸려면 더 많은 타인들이 '우리'로 결집해야 하며, 변화의 폭과 깊이가 광대할수록 '우리'의 경계는 한없이 넓어져야 한다. 즉, 경쟁이 아니라 연대가 승부를 결정하며, 그래서 변화를 바라는 모든 정치는 자본주의 사회의 평균 수준을 넘어서는 윤리의 가능성을 함축한다.

마지막 조건은 연대의 힘을 발휘하는 적극적인 수단으로서 자발적 결사체들을 조직하며 그 활동에 익숙해져야 한다는 것이다.

'정치' 영역에서 연대는 흔히 투표 연합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무력하다. 선거가 없는 일상 시기에도 가시적이며 실제 왕성히 활동하는 자발적 결사체들(혹은 연합, associations)이 있어야 하고, 다시 이들 사이의 긴밀한 연대가 있어야 한다. 평소에 이런 문화에 익숙한 대중만이 정당, 노동조합, 협동조합 등등의 조직을 역동적으로 활용하며 심원한 변혁 과정을 열 수 있고 그 힘겨운 과정을 견뎌나갈 수도 있다. 또한 진정으로 새로운 사회를 그들의 손으로 설계하고 키워 나갈 수도 있다.

우리 시대 위기의 근원인 지구자본주의를 극복하자면, 어느 사회에든 이 세 조건을 구비한 대중이 형성돼 있어야 한다. 그래야 어떤 방향으로든 변화가 시작될 수 있다. 나는 미래 좌파의 대안이 '민주적 생태적 사회주의'라 생각하지만, 그 방향이든 아니면 20세기 전통에 좀 더 미련을 보이는 두 흐름, '사회민주주의'나 '혁명적 사회주의'든 다 마찬가지다. 세 조건을 만족시키는 대중이 성장해 있지 않다면, 개혁이건 혁명이건 어떤 변화도 불가능하다.

오늘날 상황을 보면, 세 조건을 모두 구비한 대중을 찾기 쉽지 않다. 특히 둘째 조건과 셋째 조건은 역사상 유례없이 해체된 상태다. 다만,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대서양 양안의 여러 나라들에서 첫째 조건만은 많이 복구됐다.

그러나 이것이 꼭 보다 나은 미래의 출발이라고만 할 수는 없다. 둘째, 셋째 조건을 동반하지 않은 첫째 조건의 복원은 샹탈 무페(Chantal Mouffe)가 말하는 '포퓰리즘 국면(populist moment)'을 낳았다(<좌파 포퓰리즘을 위하여>, 이승원 옮김, 문학세계사, 2019). 연대 문화나 자발적 결사체 전통과 멀어진 대중은 일단은 극우 포퓰리즘에서 자신의 정치적 무기를 찾고 있다.

민주주의의 오랜 퇴행 끝에 다시 '정치'를 발견한 대중은 과연 그에 걸맞는 연대의 추구, 자발적 결사체들의 복원-활성화로까지 나아가게 될까? 이것이 21세기의 커다란 물음이다. 물론 한국 사회도 여기에서 예외가 아니다.

2020년대 벽두의 한국 사회에서 진보정당의 사활적인 과제

촛불 항쟁 직후에 나를 포함한 많은 이들이 한국 사회에 '정치'의 계절이 새롭게 돌아오길 기대했다. 대중이 '정치'를 재발견하되, 대서양 양안 국가들과는 달리 극우 포퓰리즘이 아닌 형태로 '정치'를 복원해 신자유주의 이후의 세계에서 길을 열어가길 바랐다. 지금 우리 현실에 비춰 보면, 불과 3년 전의 이 바람은 얼마나 천진난만했던가!

촛불 항쟁 직후에도 서로 반대되는 조짐들이 함께 나타나기는 했다. 한편에서는 미투운동이 있었고, 비정규직을 중심으로 한 노동조합 조직 확대가 있었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는 비트코인 투기 열풍이 불었다. 촛불 항쟁의 자연스러운 귀결로서 '정치'를 통한 문제 해결을 시도하는 흐름이 있었는가 하면, 지난 20여 년간 한국 사회에 뿌리 내린 시장 경쟁 논리의 연장과 확대에서 출구를 찾으려는 흐름이 있었다.

지금은 어떤가? 후자가 전자를 완전히 압도해 버렸다. 부동산 투기 시장은 불패의 역사를 이어가고 있다. 이에 자극받은 젊은 세대는 '영끌'이라는 신조어를 유행시키며 주식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주식 시장을 발판 삼아 부동산 시장에 입성하겠다는 것이다. '정치'에서 해법을 찾기는커녕 신자유주의 전성기에 그랬던 것보다 더 많은 이들이 자기 삶을 시장 경쟁과 일치시킨다. 그것도 미래 변화의 열쇠를 쥔 청년 세대일수록 더 그렇다.

3년 사이에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가? 다른 요인도 있겠지만, 가장 큰 책임은 역시 문재인 정부-더불어민주당에 있다. 이른바 '촛불 정부'는 부동산 시장 과열을 막겠다고 떠들지만, 정작 더 큰 열성을 보이는 것은 부동산 시장 붕괴를 막는 쪽이다. 그러면서 젊은 세대의 주식 시장 열풍에 박수를 보내며 '한국형 뉴딜'마저 금융 상품으로 만들겠다고 공언한다. 사회 개혁의 기대감을 짓밟아 '정치'를 통한 문제 해결 경로를 닫는 대신 다들 '경제'인이 되어 인생의 승부를 보길 장려한다. 무엇보다 정권 담당자들 자신이 일급의 자산 시장 투자자 아닌가.

혹자는 문재인 정부-더불어민주당을 '포퓰리즘'이라 진단한다. 그러나 이는 몇 가지 증상의 유사성을 확대 해석한 오진이다. 2008년 이후 자본주의 중심부의 포퓰리즘은, 극우 포퓰리즘조차 신자유주의의 '경제'적 해법에 대한 실망 혹은 단념을 전제로 '정치'의 가능성을 타진하려는 몸부림에 바탕을 둔다. 현 정부-여당의 선택은 정확히 그 반대다. '정치'에 대한 대중의 관심과 기대를 애써 봉쇄하면서 '경제'적 탈출구 추구를 적극 권장한다. 이는 2017년 이전뿐만 아니라 2008년 이전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낡은 해법의 시대착오적 고수다.

이것은 어리석을 뿐만 아니라 사악하기까지 한 선택이다. 왜 '사악'한가? 지금의 혼란을 더욱 악화시키는데다 이 혼란을 극복할 주체의 성장마저 가로막고 방해하기 때문이다. 위에 정리한 세 가지 조건을 갖춘 대중이 시급히 성장해야 할 이 때에 오히려 가장 많은 미래 가능성을 지닌 세대로 하여금 낡은 도박판에 희망을 걸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러다 필연적으로 이 도박판의 한계가 드러나면, 많은 이들이 뒤늦게, 가장 그릇된 방식으로 '정치'에 다시 호소하게 될 것이다. 이때에 비로소 한국 사회에는 극우 포퓰리즘의 시대가 열릴 것이다. 촛불 항쟁 이후 역사의 전개로서 이보다 더 비극적인 경우는 없을 것이다.

바로 이 대목에 지금 한국 사회에서 진보정당이 해야 할 바가 있다. 당직 선거를 통해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입장을 명확히 새로 정한 정의당이 반드시 수행해야 할 역사적 과업이 있다. 그것은 '정치'가 희화화된 상황에서 투기판 문이라도 두드릴 수밖에 없게 된 이들이 하루빨리 다시 모종의 '정치'에 기대를 걸도록 만드는 일이다. 그리하여 문재인 정부-더불어민주당이 열고 있는 역사의 가장 나쁜 전개 경로를 닫고, 사회민주주의든 생태사회주의든 바람직한 사회 변화를 실현할 주역들의 씨앗을 지키는 일이다.

이 글에서 자세히 짚기에는 한계가 있지만, 그 주된 전장은 현재 투기 시장의 때 아닌 팽창이 벌어지고 있는 바로 그곳들이 될 것이다. 주거/부동산, 노후 대책, 수도권 집중, 그린 뉴딜/생태 전환 등등이 중첩되는 영역들. 이 영역들에서 투기 시장 동참과 대별되는 '정치'적 해법을 제시하고, 이것만이 지속 가능한 대안이며 현실에서 충분히 실현될 수 있음을 설득해야 한다. 이런 내용들을 중심으로 잇단 선거에 임해야 한다.

정의당 당직 선거에서 나온 공약이나 의제들을 보면, 어느 정도 감을 잡고 있는 분위기다. 부동산을 포함한 '기본자산' 개념이 제시되거나 수도권 집중 해소를 위한 권역별 거점 육성 같은 구상이 나온 것이 그러한 사례다. 이제 이러한 맹아들을 좀 더 과감하고 단단한 대안들로 발전시켜야 한다.

이는 진보정당뿐만 아니라 한국 민주주의 전체의 운명과도 직결된, 참으로 시급하고 중대한 과제다. 결코 회피할 수 없는 싸움이다.

▲정의당 김종철 신임대표 등 6기 지도부가 11일 경기도 남양주 마석모란공원 전태일 열사 묘역을 찾아 참배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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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준 전환사회연구소 기획의원은 오랫동안 진보 정당 운동의 정책 및 교육 활동에 참여해왔으며, 자본주의 위기에 맞선 진보적 사회과학을 재구성하고자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에서 연구 및 출간 사업을 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레프트 사이드 스토리 : 세계의 좌파는 세상을 어떻게 바꾸고 있나>, <사회주의>, <장석준의 적록 서재>, <신자유주의의 탄생 : 왜 우리는 신자유주의를 막을 수 없었나>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 <국가 대 시장 : 지구 경제의 출현>, <안토니오 그람시 : 옥중수고 이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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