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 전방도서 지역에서 어업지도 활동을 하던 해양수산부 공무원이 북측 해역에서 북한군의 총격으로 사망하고 시신이 불태워진 사건에 대해, 여야는 한목소리로 "야만적 행위", "만행"이라고 북한을 규탄했다. 다만 야당에서는 청와대와 정부의 대응에 대해서도 비판·지적의 목소리를 냈다.
여야는 24일 오후 본회의 직후 국회 국방위원회를 소집해 긴급현안질의를 진행했다. 서욱 신임 국방부 장관은 "비무장 국민에게 총격을 가한 천인공노할 만행을 국방장관으로서 규탄하고, 해명과 책임자 처벌 조치를 촉구한다"며 "국민이 북한 해역에서 이런 참상을 겪은 데 대해 유감스럽게 생각하고 재발 방지 노력을 하겠다"고 밝혔다.
서 장관은 여야 의원들이 '해당 공무원이 북측 해역에서 최초 식별된 22일 오후 3시 30분으로부터 6~7시간 뒤에 총격을 당해 사망했는데, 그 시간 동안 우리 당국이 왜 대처하지 못했나'라는 취지의 질책성 질의를 하자 "첩보를 모아 정보화하는 과정이었다"며 당시로서는 정확한 사실을 확인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는 취지로 설명하면서 "그 중에 식별이 된 것인데, 저희도 북한이 이렇게 천인공노할 일을 저지를 수 있다는 판단은 못 하고 있었다"고 답했다.
서 장관은 신원식 의원과 민홍철 국방위원장이 '실종자가 북측에서 발견됐다면 북측에 신병 인도 등을 요구했어야 하지 않느냐'고 재차 따져묻자 "그 다음날(23일 오후 4시) 유엔사를 통해 통지가 됐다"며 "그 부분은 실시간 조치가 이뤄지지 않았다"고 답했다.
서 장관은 '이 공무원을 처음 발견한 이후 사살할 때까지 6시간 동안 북한군은 뭘 했느냐'는 질문에는 '정보 사항이어서 비공개로 보고하겠다'는 취지로 답변하고 다만 "나중에 (첩보를) 종합해보니 스토리가 연결되는 게 있었다"고만 말했다.
서 장관은 실종 신고가 접수된 후 해군·해경 정찰자원을 동원해 대대적 수색 작업을 벌였다며 '늑장 대응'이라는 비판을 반박하고, 북측 해역에서 실종자가 파악된 후에는 "북에서 구조해 송환할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고 했다.
서 장관은 더불어민주당 김병기 의원과 안보 당국의 대처 과정에 대한 질의응답을 하던 중, 23일 새벽 1시 청와대에서 열린 관계장관회의에서 어떤 대응조치가 논의됐냐는 물음에 "대북통지문을 발송해서 이게 사실인지 여부를 밝히자"는 방안이 제안됐다고 밝혔다.
민주당 김병주·김민기 의원 등이 '군 당국에서 해당 공무원이 NLL을 넘어가는 것을 왜 식별해내지 못했느냐', '경계 실패 아니냐'는 지적을 하자 서 장관은 "서북도서는 한강 하구처럼 TOD 등으로 꼼꼼하게 확인하는 체제는 아니다. 연평도·백령도의 해병 감시장비로 함정 움직임, 적의 경비함을 중심으로 확인하는 경비체계여서 사람 한 명이 빠져 움직이는 것에 대한 감시는 우리 장비로 할 수 있는 작전이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서 장관은 사망자가 월북 의도를 갖고 있었다고 앞서 합참 등 군 당국이 밝힌 근거가 뭐냐는 국민의힘 강대식 의원의 질의에 "구명조끼를 입고 있었고, 부유물을 갖고 있었다. (또) 신발을 가지런히 놓고 실종됐다"며 "월북 의사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는 정보를 종합해서 보고드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서 장관은 '부유물'의 상세 사항에 대해서는 "첩보를 종합한 결과, 사람 1명이 올라갈 수 있는 정도이고 길이는 사람 키보다 작아 무릎 아래까지는 보호가 안 되는 크기로 생각한다"고 밝혔다.
서 장관은 강 의원이 '가정이지만 사망자가 실족해서 바다에 빠진 후 표류해서 북한 해역으로 갔어도, 살기 위해 월북 의사를 거짓으로 밝힐 수도 있지 않느냐'고 묻자 "그럴 수도 있다고 보는데, 현재까지의 정보 판단은 월북으로 보고 있다"고 했다.
서 장관은 북한의 민간인 사살 및 시신 훼손 행위가 9.19 군사합의 위반 아니냐는 물음에는 "(국회에) 오기 전에 조문을 전부 한 번 살펴봤는데, 조문 조항에 정확히 부합하는 것은 아니지만 9.19 합의의 정신에 위배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여야, 北 비난은 한목소리…정부 책임 추궁 놓고는 옥신각신
여야 국방위원들은 북한의 행태에 대해 강한 분노를 표시했다. 민주당 간사인 황희 의원은 "전쟁 때도 이런 일은 하지 않는다. 월북 의사까지 표현한 민간인에게 총을 쐈다. 강력히 대응해야 한다"며 격분한 반응을 보였고, 김민기 의원은 여당 의원임에도 "국방부가 '강력 규탄'을 하는 정도로는 안 된다"고 주장해 서 장관으로부터 "그 이상의 조치에 대해 검토해 나가겠다"는 답을 받았다.
민주당 김병주 의원과 국민의힘 강대식 의원은 "국방위 차원에서 북한 규탄 결의안을 발의해 북한을 규탄하자"는 주장을 공통적으로 내놓기도 했다. 결국 이날 오후 7시경 여야 간사 간 합의로 '대한민국 해양수산부 공무원에 대한 북한의 총격 등 무력도발 행위 규탄 결의안'이 마련돼 국방위 전체회의에서 상정·가결됐다.
여야 지도부도 북한 비판에는 한목소리를 냈다. 이낙연 대표 등 민주당 지도부는 이날 오후 서 장관으로부터 상황 보고를 받고 "해상에서 표류 중이던 비무장 상태의 민간인에게 의도적인 총격을 가한 후 시신을 불태운 북한군의 행위는 어떤 이유로도 용납될 수 없는 만행이며 이에 대해 강한 유감을 표명한다"는 공식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은 "이번 사건은 남북 정상 간 합의한 판문점 선언과 평양 공동선언 정신에 정면으로 위배될 뿐만 아니라 남북관계 발전과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정착을 기대하는 우리 국민들의 기대를 저버린 행위"라며 "북한의 이러한 만행을 강력히 규탄하고 반인륜적 행위에 대한 사과와 책임자 처벌을 강력히 요구한다"고 밝혔다.
민주당은 "이번 사건으로 무고하게 사망한 우리 국민의 명복을 빌며 그 유가족들께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전한다"며 "정부는 관련 사실을 신속하고 소상하게 국민께 설명해 드리고, 군은 북한과 인접한 경계에서 우리 국민이 위협받는 일이 없도록 강력한 대책을 수립하기 바란다"고 했다.
제1야당인 국민의힘은 이날 의원총회와 규탄대회 등을 통해 북한을 비판했다. 다만 국민의힘은 "정부는 이번 사건과 관련, 북한에 대해 강력한 규탄과 함께 정확한 경위를 밝혀내고 응당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면서 한국 정부에 대해서도 "국민이 북한의 손에 잔인하게 죽어간 만행에 대해 청와대가 인지하고도 대통령이 종전선언을 UN연설에서 발표하기 위해 민간인 총격사건 공개를 늦춘 것이라면, 국가가 국민을 지켜야 하는 최소한의 의무와 책임을 방기한 것"이라며 "이에 대한 명확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규탄대회 결의문을 통해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의원총회 후 "상황을 파악하고도 유엔총회에서 종전선언을 하자고 했다면 국민을 속인 것일 뿐 아니라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상황"이라고 직접 말했고, 김은혜 대변인도 논평에서 "문재인 정부가 이 사실을 끝까지 숨기려한 정황이 드러나고 있다. 국민의 실종과 사망 시점까지 청와대가 상황을 인지하며 보고를 받았을 가능성이 큼에도 대통령 유엔 연설 전까지 철저히 비공개에 부쳤다"고 의혹을 제기했다.
야당은 군 당국이 밝힌 월북설에 대해서도 이의를 제기했다. 국민의힘 국방위 간사인 한기호 의원은 의원총회 보고에서 "국방부 입장은 월북이라는 것인데 진상을 알아봐야 한다"며 "가족들은 (월북이) 아니라고 반발하고 있다"고 했다. 배준영 대변인은 "아이가 둘 있는 40대 해양수산부 공무원 가장이 도대체 어떤 연유로 혼자 월북했다고 단정하는 것인지 국민적 의혹은 커져가고 있다"고 주장했다.
김 대변인도 "실상이 드러나자 정부는 피살된 희생자를 부랴부랴 월북자로 낙인찍고 코로나 위험 때문일 것이라 북한을 비호하고 있다"며 "정권 안위에만 급급한 이들은 고인의 존엄, 충격에 휩싸였을 유가족의 슬픔은 전혀 안중에 없다"고 비난했다.
앞서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은 이날 오전 "북한의 야만적 행태에 커다란 분노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며 "국민이 피살된 중대 사건임에도 정부가 이렇게 깜깜이로 모를 수 있는지 답답하다. 그 동안 홍보한 '핫라인' 등 소통채널은 허구였느냐"는 지적을 했다.
청와대는 앞서 유엔 연설은 지난 15일 사전 녹화돼 18일 유엔에 이미 발송됐다고 밝힌 바 있다. 국방위원인 민주당 홍영표 의원은 위원회 회의에서 "'군에서 시간끌고 은폐하지 않았느냐'고 하는데 답답하다"며 "여야가 힘을 모으고 북한을 규탄하는 게 먼저인데 '대통령 유엔 연설 때문에 은폐했다'고 정쟁으로 가는 게 안타깝다"고 야당의 의혹 제기에 불쾌감을 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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