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통합당이 13일 정강정책 개정안 및 21대 총선에 대한 평가를 담은 백서를 공개했다. 두 문건 모두 통합당 '김종인 비대위' 체제의 성격을 분명히 한 것으로 평가된다. 요체는 강경보수 노선과의 단절 및 중도로의 확장이다. 정강정책 개정안에는 경제민주화와 기본소득 등 전향적인 정책 제안을 담았고, 총선백서에는 '탄핵에 대한 명확한 반성 입장이 부족했다'는 지적을 일부 담았다. 통합당은 또 오는 21일까지 대국민 공모를 통해 당명 개정도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통합당 정강정책개정특위(위원장 김병민 비대위원)는 이날 오전 당 비대위에 '당 10대 기본정책' 제정안을 보고한 뒤, 언론 브리핑을 갖고 그 내용을 공개했다. 10대 정책은 개정위가 지난달 20일 공개한 강령 개정안의 각론 격이다. (☞관련 기사 : 통합당 강령 초안 나왔다…광주민주화운동, 6월항쟁 담아)
그간 통합당은 자유한국당 시절부터 강령 총론만을 채택했고, 분야별 세부 내용은 없는 상태였다. 새누리당 시절인 2012년 2월 '10대 약속'을 당 기본정책으로 채택했었으나, 탄핵 사태를 거치며 2017년 2월 개정 채택한 강령은 '우리의 사명'이라는 제목 하에 7대 핵심가치를 담은 총론만이 남았다. 반면 더불어민주당은 총론 아래 13개 장(章)의 분야별 정강정책을 두고 있었고, 정의당도 '정의로운 복지국가 7대 비전', '내가 행복한 생애 강령' 등 세부 정책 방향을 채택해 공개하고 있었다.
통합당이 이날 공개한 '10대 기본정책'은 크게 △평등·공정 △경제혁신 △경제민주화 △노동 △정치개혁 △사법개혁 △환경 △복지 △'양성평등' △외교안보 등의 분야로 구성됐다.
특히 통합당은 기본소득 도입을 가장 앞머리에 배치했다. 통합당은 "국가는 국민 개인이 기본소득을 통해 안정적이고 자유로운 삶을 영위하도록 적극적으로 뒷받침해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대비한다"는 내용을 평등·공정 관련 내용을 담은 장인 '모두에게 열린 기회의 나라'에 포함시켰다. 관련 장에서는 "모든 공직자는 예외 없이 병역기피, 체납과 탈세, 각종 범죄기록을 투명하게 공개"한다는 내용과 "편법과 반칙의 입시비리 무관용 원칙 적용" 등의 내용도 담았다.
3번째 장인 경제민주화 관련 부분에서는 "급변하는 시대의 흐름에서 소외되는 취약계층 및 사회적 약자와의 동행을 위한 정책을 적극적으로 수립한다"면서 "공정하고 효율적인 시장경제 질서를 수립해 경제민주화를 구현한다"는 제안을 실었다. 이를 위해 "시장에 참여하는 모든 경제주체 간 불공정 행위를 엄중 처벌"하고 "조세정의 확립을 위한 세금운용 현황 투명 공개 및 탈세·탈루 근절 강화" 등의 정책을 추진한다고 통합당은 밝혔다.
노동 분야에서는 "플랫폼 노동자, 프리랜서, 긱워커, 온라인 원격 근무 등 새로운 노동 형태의 대유행에 대비"하고 "고용 안전망을 강화하며 노동 유연성 확보가 병행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겠다고 밝혔는데, 특히 "산업재해를 예방하고 안전하고 쾌적한 노동 환경을 만들기 위해 현장 중심의 실효성 있는 대책을 마련"한다는 대목은 눈길을 끌었다.
강령·정강정책에 '산업재해'라는 표현을 담고 있는 것은 현재 원내정당 중 정의당 정도로, 통합당보다 진보적으로 평가받는 민주당·국민의당 강령에도 '산업재해'라는 문구는 등장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복지정책 분야에서 "동물의 생명권 보호 및 동물학대 근절을 위한 제도적 기반 마련"을 명시한 점도 눈에 띤다. 동물권 관련 내용 역시 현재 원내정당 가운데 정의당만 강령에 이를 담고 있다.
5장 정치개혁 관련 부분에서는 "민주적 절차를 가장한 독재와 다수의 횡포가 발생하지 않도록 한다"는 문재인 정부를 겨냥한 듯한 선언 아래 "대통령이 임명하는 직위를 대폭 축소", "당 내에 예비내각 구성", "당론투표 최소화 및 헌법과 양심에 따른 의정활동 보장" 등의 내용을 담았다. 김병민 위원장은 언론 브리핑에서 '당론투표' 부분을 설명하면서 금태섭 전 민주당 의원이 당 윤리위원회에서 징계를 받은 일을 반면교사로 들기도 했다.
당내 의견이 분분했던 "국회의원 4선 연임 금지"도 이번 발표안에 포함됐다. 통합당은 "국회의원의 기득권 혁파 및 국민 눈높이에 맞는 정치개혁 과제 법제화"의 주요 내용으로 의원 4선 연임 금지와 함께 지방의회 청년 의무 공천, 피선거권 연령 인하 등을 정기국회에서부터 법제화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또 청와대 민정수석실과 인사수석실 폐지, 대통령 비서실 집중 권한의 부처 환원, 광역자치단체장-교육감 러닝메이트 제도, 기초-광역의회 통폐합 등도 통합당이 추진할 정치개혁 과제로 명기됐다. 권력형 비리 사건과 언론에 대한 권력기관 개입 범죄에 대해서는 공소시효를 폐기하는 방안도 추진한다. 사법개혁 관련 내용으로는 "법관 퇴직 후 일정 기간 이내 정치권 진출 금지"를 추진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성평등 관련 내용은 "남녀 모두가 행복한 양성평등사회"라는 제목으로 정리됐는데, 이 가운데 "정치 등 공적 영역에서 성별 대표성이 확보될 수 있도록 남녀 동수를 지향"한다고 밝힌 대목은 상당히 급진적 내용이다. 민주당은 현재 강령상 "여성과 청년 등의 정치참여 기회를 확대"한다는 선언 아래 당헌에서 "중앙당 및 시도당의 주요 당직과 각급 위원회 구성, 공직선거의 지역구 후보자 추천에 있어서 여성을 100분의 30 이상 포함해야 한다"는 규정을 두고 있다.
통합당은 또 관련 장에서 "성폭력이 용납되지 않는 사회 구현을 위해 모든 영역에 엄격한 성윤리를 적용한다"면서 "성범죄에 대한 양형 강화", "아동 장애인 등 약자에 대한 성범죄의 경우 피해자 중심주의 확고히 견지", "디지털 성범죄, 데이트 폭력, 스토킹 등 다양한 성범죄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응", "2차 가해 방지 등 피해자 보호를 위한 실효성 있는 매뉴얼 마련" 등의 내용을 담았다.
통합당은 이같은 내용의 10대 기본정책 초안을, 앞서 발표한 강령 개정안과 함께 "8월말~9월초까지 정리"(김병민 위원장)할 예정이라면서 이후 의원총회를 통해 당내 의견을 수렴하고 상임전국위·전국위 승인 절차를 밟기로 했다. 통합당은 또 오는 21일까지 당명 공모를 진행하고, 오는 24일까지 당선작을 추린 후 이달 말일에 새 당명을 채택·발표한다는 계획이다.
총선백서엔 "탄핵 이후에도 국민 뜻 못 헤아려" 반성…김종인 "MB·박근혜 구속 사죄"
통합당은 이날 정강정책 개정과는 별도로, 21대 총선 평가를 담은 총선백서를 작성해 공개하기도 했다. 통합당은 백서에서 "이번 총선은 민심과 이반된 당의 착각이 현실에서 깨어져 나가 버린 사건"이라고 규정하며 "전직 대통령의 탄핵 이후에도 국민들의 뜻을 제대로 헤아리지 못하고 뚜렷한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면서 보수통합과 대정부 투쟁에만 매몰된 채 국민들의 마음을 얻지 못한 것이 아닌가"라는 반성을 담았다.
통합당은 "당에서는 이번 총선에 대해 '조국 사태' 등 정부의 실책에만 기대어 근거 없는 자신감만을 갖고 '보수통합만 하면 대정부 투쟁 기조로 승리할 수 있다'고 믿었던 것 같다. 하지만 대다수 국민들은 지난 탄핵 이후 지속적으로 중도층으로의 외연 확장 실패 속에서 당을 현 정권을 대신할 수 있는 대안세력으로 보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특히 통합당은 "탄핵은 여전히 한국 정치 지형에 있어 유효한 변수"라며 "여러 출마자들이 어김없이 상대당 후보들로부터 전직 대통령 탄핵에 대한 입장을 내놓을 것을 강요받았다. 이른바 쉽게 ‘탄핵 프레임’에 빠지게 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들은 "통합당에는 아직도 새누리당·자유한국당 이미지가 남아 있었다. 이번 총선에서도 그 이미지를 소환하는 몇 가지 장면이 나타나 다시 탄핵의 그림자를 드리우게 만들었다"면서 이같이 지적했다.
통합당은 "보수 집결이 지리멸렬해진 시기를 탄핵 때부터였다고 보는 시각도 팽배하다. '스윙 보수층'의 이탈이 촉발된 것도 이 시기"라며 "보수의 분열 이유를 탄핵에서 찾는다면, 이탈한 보수층을 끌어오기 위해서라도 필히 넘어야 할 산으로 인식하고 정리해야 한다는 과제가 남아있다"고 제안했다.
다만 총선 백서 역시 "탄핵에 대한 명확한 입장 부족"을 패인 중 하나로 지목하면서도 "총선에 출마했던 후보자들 중에는 탄핵에 대한 정리가 당 내에서 먼저 선행되어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고, 그 정리 작업을 주도할 인물이 필요하다는 의견, 매우 민감한 문제라는 의견까지 다양한 입장이 피력됐다"고 당 내외의 여러 의견을 종합하는 식의 서술을 담았을 뿐 정작 '명확한 입장'을 내놓지는 못했다.
이날 김종인 통합당 비대위원장은 비대위 회의 후 기자들과 만나, 자신이 최근 총선백서제작특위로부터 백서 초안을 보고받는 자리에서 '전직 대통령 탄핵·구속에 대해 당이 사과해야 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는 보도가 나온 데 대해 "내가 여기(당에) 오기 전부터 하던 이야기인데, 당에서 내세웠던 두 분 전직 대통령이 사법적 판단을 받고 있기 때문에 도덕적으로 국민께 죄송한 마음을 갖고 있고 그에 대한 일정한 사죄를 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당내 일각에서 전직 대통령 사면 주장이 나온 데 대해 김 위원장은 "사면은 대통령이 자기 통치를 하는 과정에서 필요에 의해 하는 것인데, 당에서 이러쿵저러쿵 얘기하는 것이 별로 의미가 없다"며 "사면은 요청해서 되는 게 아니다. 대통령 본인이 판단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결정나는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주호영 통합당 원내대표도 앞서 이날자 <동아일보> 인터뷰에서 "광복절에 특별사면을 요구하겠다는 계획은 가지고 있지 않다"고 한 바 있다.
다만 주 원내대표는 전날 <중앙일보> 인터뷰에서는 "(보수단체의 8.15 광화문 집회에 대한) 당 차원의 입장은 정해지지 않았고, 자발적으로 참여할 사람은 참여하는 쪽으로 의견을 모아가고 있다"면서 "고민 중인데 나는 개인 자격으로 나가려 한다"고 했었다.
김종인 위원장이 두 전직 대통령 관련 당의 공식 사과 필요성을 언급한 것이나, 정강정책특위·총선백서특위에서 장외 강경보수 세력과 절연하고 중도를 지향해야 한다는 취지의 방향성을 설정한 것과는 거리가 있다. 통합당은 이날 총선백서에 "(총선 패인으로 지적된) '막말 논란'에 대한 당의 우왕좌왕하는 모습은, 보수통합 과정에서 중도층의 표심을 잡기 위해 '좌클릭'을 거듭해온 통합당이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인 세월호 문제를 건드린 후보를 제명할 경우 극우 성향의 '집토끼'를 잃을 수 있다는 불안감이 반영됐기 때문이라는 의견도 있었다"고 적었다.
한편 총선백서에 황교안 전 대표에 대한 직접적 비판이 담긴 점도 눈길을 끌었다. 통합당은 백서에서 "당 대표도 막말 논란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며 황 전 대표의 '텔레그램 n번방 호기심', '키 작은 사람 투표용지 못 든다' 발언 논란을 언급하거나 "당 대표의 종로 출마로 지도부 공백은 불가피해졌고, 공관위가 인재영입 권한까지 행사하다가 최고위와 충돌한 점은 정치적 조율의 부재라는 많은 비판을 받았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서 당 대표도 정치에 입문한 경력이 일천하고 선거 경험이 없어 당을 장악하는 능력과 강력한 리더십이 부족하다는 비판도 나왔다"는 서술을 싣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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