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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푼돈 기본소득'은 위험한 '가짜 기본소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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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푼돈 기본소득'은 위험한 '가짜 기본소득'이다

[복지국가SOCIETY] '가짜 기본소득'이 더 위험한 이유

요즘 전국 어디에서나 텔레비전 방송 광고 등을 통해 경기도 ‘청년기본소득’ 홍보를 접할 수 있다. 경기도는 몇 달 전에는 코로나19 재난에 대응하는 정부의 확장 재정정책인 재난지원금을 ‘재난기본소득’이라고 명명하고, 이를 전국 단위의 각종 언론과 방송을 통해 홍보했다. 이 모든 것이 ‘가짜 기본소득’ 광고와 홍보다. 이재명 지사의 정치적 슬로건인 기본소득을 전국적 정치 이슈로 띄우기 위함이다. 이런 현상은 참으로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재난기본소득이나 청년기본소득이란 용어가 정명(正名)이고 진실에 부합한다면, 경기도민의 혈세를 사용한 홍보를 굳이 비판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문제는 정치적 목적으로 정명(正名)이 아닌 ‘가짜 기본소득’을 전 국민에게 홍보하는 데 있다. 경기도는 이재명 지사 취임 이후 ‘가짜 기본소득’의 제작소이자 유포의 원천이 되었다. 이제 ‘농민기본소득’이라는 이름의 ‘가짜 기본소득’이 탄생을 예고하고 있다. 안타까운 일이다.

‘가짜 기본소득’이란 무엇인가?

기본소득은 일반 유권자들에게 ‘보통사람의 기본적 생계 보장을 위해 지급하는 현금’이다. 의도가 선한 정책으로 이해될 수 있다. 기본소득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포퓰리스트들이 방송과 언론 등 각종 매체에 광고와 홍보를 집중함으로써 획득하려는 기본소득에 대한 이미지가 바로 이런 것이다. 기본소득을 이렇게 일반명사로 이해하는 경향은 보통사람들 속에 널리 확산해 있다. 우리나라에서 행해진 기본소득에 대한 단순 여론조사(사실상 ‘일반명사로서의 기본소득’에 해당하는 이미지 조사에 다름 아님) 결과를 보면, 찬성과 반대 견해가 팽팽하게 나온다.

하지만 기본소득 담론의 구체적 내용에 대한 심층적 논의와 공론화의 과정을 거치게 되면 상황은 달라질 것이다. 이렇게 할 경우, 기본소득에 대한 유권자들의 지지는 크게 줄어들 것임이 분명하다. 이런 과정을 통해 유권자들이 ‘일반명사로서의 기본소득’이 아니라 ‘고유명사로서의 기본소득’ 담론에 담긴 주요 내용들을 제대로 이해하게 되면 기본소득 담론의 현실적 적용성과 유용성이 기존의 보편적 복지국가 노선에 크게 못 미칠 뿐만 아니라, 논리적으로도 한계가 뚜렷하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안타까운 것은 ‘고유명사로서의 기본소득’ 담론의 핵심 내용을 논리적으로 제대로 비판하려는 전문가적·정치적 목소리가 국민에게 전달될 통로가 너무나 미약하다는 사실이다. 이에 비해, 경기도정을 장악한 이재명 지사는 거대한 능력(정치적 영향력과 홍보비 집행력)으로 전국적 수준의 각종 방송과 언론을 통해 연일 ‘기본소득은 정책적으로 선하고 의도가 좋다’는 식으로 ‘일반명사로서의 기본소득’ 홍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기본소득은 특정한 실질에 상응하는 고유한 명칭이고, ‘실질적 자유의 세계’를 구현하겠다는 철학과 비전을 가진 오래된 담론이다. 기본소득의 실질은 다섯 가지로 꼽을 수 있다. 첫째, 보편성이다. 자산조사 없이 소득과 재산이 많든 적든 사회구성원 모두에게 현금을 지급한다. 둘째, 무조건성이다. 근로 등의 조건이나 심사 없이 모두에게 현금을 지급한다. 셋째, 개별성이다. 가구 단위가 아니라 각 개인에게 현금을 지급한다. 넷째, 정기성이다. 매달 지속적으로 현금을 지급한다. 다섯째, 충분성이다. 기본적인 생활이 가능할 정도로 충분하게 현금을 지급한다. 이런 특성들을 모두 갖출 때라야 기본소득이라는 명칭이 허락된다. 기본소득 제도의 정통 주창자들에 의하면, 여기서 하나라도 빠질 경우 기본소득이 아니다.

푼돈 기본소득이 가짜 기본소득인 이유

위의 기본소득 요건들 중 다섯째는 충분성의 요건인데, 이게 ‘완전기본소득’의 핵심을 이루는 내용이다. 국내총생산(GDP)의 25%를 모두에게 똑같이 나눠주는 것을 완전기본소득이라 한다. 이 정도의 현금을 지급할 때라야 사회구성원 모두에게 ‘실질적 자유’를 보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GDP를 2000조 원으로 간주하면, 그 25%는 500조 원이다. 5200만 국민에게 똑같이 나눠주면 월 80만 원이 된다. 이 금액은 우리나라 국민기초생활보장 제도의 현금 급여인 1인 가구 생계급여(52.7만 원)와 주거급여(서울 26.6만 원, 광역시 17.9만 원)를 합한 금액과 비슷하다.

우리나라 중앙정부의 연간 재정 규모가 512조 원임을 고려해볼 때, GDP의 25%인 500조 원을 추가로 마련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래서 기본소득 옹호자들은 기본소득 재원 마련의 현실적 어려움을 고려해 완전기본소득으로 가기 위한 중간 전략으로 1인당 GDP의 10~15%를 지급하는 ‘부분기본소득’을 제안했다. 우리나라에서는 모두에게 매달 32~48만 원을 지급하면 부분기본소득이 성립된다. 월 32만 원씩 지급하려면 GDP의 10%인 200조 원이, 월 48만 원씩 지급하려면 GDP의 15%인 300조 원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부분기본소득을 실시하기 위한 재원 200~300조 원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 이 부분에 대해서는 좌파나 우파가 공히 인정하는 방법이 하나 있다. 기존 정부재정의 구조조정이다. 다만 좌파는 재정의 구조조정 외에 증세를 통해 비교적 큰 규모의 추가 재원을 마련하자는 쪽이고, 우파는 재정의 구조조정을 통해 필요 재원의 대부분을 마련하고 증세는 최소화하자는 입장이다. 어쨌든 우리나라에서 부분기본소득을 도입하려는 기본소득 옹호자들은 좌파나 우파나 공히 GDP의 10~15%에 해당하는 연간 200~300조 원이 필요함을 인정한다.

그런데 이 부분(충분성의 요건)에서도 경기도 발 ‘가짜 기본소득’은 다르다. ‘푼돈 기본소득’이 경기도의 전략이다. 6월 5일, 이재명 지사는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증세나 재정건전성 훼손 없이 기본소득이 얼마든지 가능하다”며 공개토론을 제안했다. 그는 첫해 연간 20만 원으로 시작해 매년 조금씩 증액하여 수년 내에 연간 50만 원까지 만들면 재정 부담은 연간 10~25조 원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이 지사는 일반회계예산의 조정을 통해 증세 없이 기본소득을 도입할 수 있다고 했다. 이럴 경우 5200만 국민에게 나눠줄 현금은 첫해엔 월 1만6000원이고 수년이 지나도 월 4만 원에 불과하다. 그리고 그 후에 증세를 추진하자는 것이 이 지사의 입장이다.

문제는 월 1만6000원이 우리나라의 부분기본소득 금액인 월 32만 원의 5%에 불과한 ‘푼돈’이라는 사실이다. 수년 후에 받게 될 월 4만 원도 부분기본소득인 월 32만 원의 12.5%에 그친다. ‘20% 알코올’을 소주라고 할 때, ‘1% 알코올’은 소주인가 물인가? 확실한 건 이것이 가짜 소주라는 사실이다. 결과적으로 이재명 지사가 제안한 증세 없는 ‘푼돈 기본소득’은 가짜 기본소득이다. 이 지사는 국토보유세로 연간 15~20조 원을 걷어 국민 모두에게 기본소득을 지급하겠다고 주장했다. 이럴 경우, 국민 1인당 월 2만4000~3만2000원씩 돌아간다. 거금인 연간 15~20조 원을 국민 모두에게 나눠주다 보니 이렇게 푼돈이 되고 만 것이다.

푼돈 기본소득이 더 위험한 이유

이런 황당한 푼돈 나눠주기 식의 가짜 기본소득 주장에 대해서는 기본소득 옹호자 그룹 내부에서 자체적으로 정화 작업을 진행하는 게 옳다고 생각한다. 이는 누가 보더라도 부끄러운 일이기 때문이다.

기본소득의 핵심 요건 중에서 현실적 재정 부담을 이유로 충분성의 요건을 슬며시 빼버린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 충분성의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 푼돈 기본소득은 기본소득 담론의 본질적 취지에 어긋나기 때문이다. 기본소득 담론의 본질적 취지는 ‘구성원 모두의 실질적 자유’ 구현이다. 증세 없이 월 1만6000원씩, 또는 국토보유세를 걷어 월 2만4000~3만2000원 씩을 각 개인에게 나눠준다고 해서 우리 국민의 실질적 자유가 구현될 수 있겠는가.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실질적 자유의 구현이라는 기본소득 담론의 철학과 비전을 상실한 푼돈 기본소득은 가짜 기본소득이므로 배척하는 게 논리적으로 옳을 것이다.

충분성의 요건을 인정받는 완전기본소득이나 부분기본소득은 제대로 된 복지국가에서는 실현되기 어렵다. 필자는 이게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본다. 크게 두 가지 트랙에서 그렇게 생각한다. 한 가지는 기본소득이 복지효과, 경제효과, 재분배효과 측면에서 논리적으로 보편적 복지(사회보장)보다 현저하게 성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다른 한 가지는 기본소득이 실현되려면 완전이든 부분이든 막대한 재정이 요구되는데, 이것을 마련하려면 큰 정치적 비용을 치러야 한다는 사실 때문이다. 가령, 최저 수준의 부분기본소득을 실시하려고 해도 연간 200조 원이 필요한데, 이것을 조달하려면 기존의 재정에서 100조 원을, 증세로 100조 원을 마련해야 한다. 우파 기본소득의 경우엔 200조 원 대부분을 기존 재정에서 구조조정으로 마련하려 할 텐데, 이것 역시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논리적으로나 현실적으로 완전기본소득이나 부분기본소득은 아무리 유능한 정치 지도자라고 할지라도 실현하긴 어렵다. 하지만 푼돈 기본소득은 경우가 다르다. 푼돈 기본소득 옹호자들이 정권을 잡게 된다면, 이재명 지사의 주장대로 증세 없이 연간 10조 원 정도는 얼마든지 마련할 수 있을 것이고, 결국 국민 모두에게 월 1만6000원씩 나눠줄 수 있다. 이 돈 연간 10조 원은 전 국민 고용안전망에 지출될 수도 있고, 아동수당의 대상과 지급액 확충에 사용될 수도 있고, 장애인 복지나 노인 복지에 투입될 수도 있는 소중한 정부 재정이다. 이렇게 푼돈 지급으로 쓸 일이 아니다.

보육·교육·의료·요양 등의 사회서비스에는 또 얼마나 많은 재정 소요가 기다리고 있는지,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알고 있다. 저출산 고령화 시대의 사회서비스는 양·질적 확충의 측면에서 엄청난 재정을 필요로 한다. 우리나라의 보편적 복지 수준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의 절반에 불과하다. 돈 쓸 일이 너무나 많음에도 불구하고, 정부 재정의 제약 때문에 지출을 미루고 있다. 우리는 보편적 복지국가들의 전례를 따라 우리나라의 상황에 맞도록 정부 재정을 합리적·확장적으로 투입해야 한다. 그런데 보편적 복지를 위한 정부의 소중한 재정을 푼돈 기본소득으로 나눠주는 데 써버린다는 게 말이 되는가.

푼돈 기본소득은 기존의 보편적 복지와 뚜렷하게 경합한다. 이는 완전기본소득이나 부분기본소득이 보편적 복지의 상당 부분을 대체(현금성 복지는 대체되고 사회서비스는 사실상 위축됨)하는 거대한 변화를 초래하는 것과 큰 대조를 이룬다. 푼돈 기본소득은 복지국가가 추구해야 할 ‘실질적 보편주의’(사각지대 없이 모두 포괄 + 적정 보장성)라는 보편적 복지의 길을 경합적으로 저해하고 방해하게 된다. 가짜 기본소득이라는 정치적 포퓰리즘이 우리나라 정치과정에 자리를 잡게 해선 안 될 것이다.

청년기본소득이 가짜 기본소득인 이유

앞서 언급한 기본소득의 요건들 중에는 보편성과 무조건성도 있다. 특정 인구나 집단·계층 등에 국한해 현금을 지급하는 것은 기본소득이 아니다. 보편성과 무조건성의 요건에 어긋나기 때문이다. 이재명 지사의 경기도 청년기본소득은 대표적인 가짜 기본소득이다. 그는 ‘청년기본소득 조례’(2018년 11월)에 근거해 경기도에 거주하는 만 24세 청년 모두에게 지역화폐로 분기마다 25만 원씩, 연간 총 100만 원을 지급하고 있다. 경기도의 청년기본소득은 월 8만3000 원짜리인데, 만 24세 청년들에게만 지급된다.

월 8만3000원은 최소한의 부분기본소득인 월 32만 원의 4분의1에 불과해 기본소득의 충분성 원칙에 어긋난다. 더 중요한 것은 생산연령인구를 연령별로 구획해 차별하는 것은 기본소득 보편성의 원칙에 어긋난다는 사실이다. 게다가 일반적으로 청년의 연령을 18~34세라고 한다면, 24세 때만 지급하는 현금은 청년 모두에게 주는 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청년에게 기본소득이라는 용어를 붙이는 것은 어떤 경우라도 형용 모순이다. 걱정스럽게도, 여의도 정치권에서는 청년의 지지(표)를 의식해 무책임·무분별하게 청년기본소득이란 용어를 일반명사처럼 사용하고 있다.

자문해볼 필요가 있다. 아동의 경우처럼 청년이 인구학적으로 경제사회적 약자인가? 만약 그렇다면, 우리는 일정한 연령의 청년에게 보편적 사회수당인 아동수당처럼 청년수당을 지급할 수 있을 것이다. 필자의 판단으로는, 누구라도 청년을 인구 집단으로서 사회경제적 약자로 간주하진 않을 것 같다. 실제로 그들은 약자가 아니다. 그래서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청년수당을 제공하진 않는다. 청년기본소득이라는 이름의 가짜 기본소득을 지급하지도 않는다. 그런데 우리나라 정치권에선 청년기본소득을 거론하는 경우가 많다. 옳지 않은 일이다.

청년기본소득 대신에 제대로 된 보편적 청년 복지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 실질적 보편주의가 제도적으로 작동하는 선진 복지국가의 사례를 참고하면 된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입학한 청년에게는 무상 대학등록금(보편적 사회서비스에 해당)에 더해 학생수당을 지급하고, 여기에 더해 무이자에 가까운 학생대출을 실시하면 된다. 스웨덴 등의 보편적 복지국가들은 그렇게 하고 있다. 대학등록금은 무료이고, 월 50만 원 정도의 학생수당이 모두에게 지급되고, 대학생이면 누구나 거의 무이자에 가까운 학생대출로 월 90만 원 정도를 받는다. 이 대출금은 졸업 후 25년에 걸쳐 상환하면 된다.

고등학교나 대학교를 졸업하고 취업 전선에 나서는 경우라면, 누구라도 국가가 제도적으로 운용하는 전 국민 고용안정망의 지원을 받는다. 국가는 취업할 때까지 청년들에게 직업훈련·취업알선의 제공과 함께 최저생계가 가능한 수준의 직업훈련 수당을 지급한다. 우리나라는 어떤가? 반값 등록금에 더해 학생대출이 실시되고 있고, 취업지원과 함께 직업훈련 수당이 초보적 수준에서 실시되고 있다. 그런데 왜 실질적 보편주의를 향해 더 나아가지 못할까? 정부 재정의 제약 때문이다. 재정의 확충(증세)을 통해 마련된 돈을 여기에 써야 한다. 지금 여의도 정치권은 실체 없는 가짜 기본소득인 청년기본소득을 논할 때가 아니다. 그 시간에 제대로 된 보편적 청년 고용·복지 정책을 마련하는 데 힘을 쏟아주시길 바란다.

농민기본소득도 가짜 기본소득이다

이재명 지사는 경기도민 모두에게 10만 원의 재난지원금을 지급했다. 그는 여기에 ‘재난기본소득’이란 이름을 붙였다. 코로나19와 같은 거대한 재난 상황에서 정부가 돈을 푸는 것은 당연한 확장 재정정책이다. 중앙정부뿐만 아니라 다수의 지자체들도 돈 풀기 정책을 재난지원금 또는 이와 유사한 명칭으로 불렀다. 그런데 이재명 지사는 고집스럽게 재난기본소득이란 명칭을 사용했다. 결과적으로 이 지사는 정치적으로 큰 이득을 봤다. 재난으로 상황이 어려울 때 정부가 나눠주는 현금을 국민이 막연하게 기본소득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생겼기 때문이다. ‘일반명사로서의 기본소득’ 확산에 성공한 것이다.

재난 상황에서 정부가 지급한 돈은 확장 재정정책의 하나인 재난지원금일 뿐이지, 기본소득이 아니다. 정부와 상당수의 지자체가 지급했던 재난지원금은 가구 단위의 일시적 지원이므로 기본소득의 핵심 요건에 해당되지 않는다. 실제로 많은 지자체들은 소득하위 50%에게만 지급했다. 그런데 경기도는 모든 개인에게 10만 원씩 지급했다. 이는 기본소득의 보편성, 무조건성, 개별성의 원칙에는 부합한다. 하지만 정기성과 충분성의 원칙에는 어긋난다. 재난 대응을 위한 일시적 현금 지급은 지속적으로 지급된다는 정기성의 원칙에 위배되고, 10만 원을 12개월로 나눈 월 8300원은 충분성의 원칙에 부합하지 않는다.

나아가 이재명 지사의 경기도는 조만간(7월 중으로) 농민기본소득 조례안을 도의회에서 처리할 예정이다. 농민기본소득도 정명으로서의 기본소득이 아니다. 거론되는 금액(월 5만 원)이 부분기본소득에 견줘보더라도 지나치게 적고, 무엇보다 생산연령인구 등 모두를 포함해야 한다는 기본소득의 보편성 원칙에 어긋난다. 결국, 농민기본소득은 가짜 기본소득이다. 생산연령인구를 포함한 모든 인구 중에서 농업에 종사하는 사람만을 구획해서 일정액을 지급하는 것은 취업을 앞둔 청년들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기본소득의 요건에 해당되지 않는다.

다만, 특정 지역의 농민 전체를 경제사회적 약자로 간주한다면 이들에게 복지국가의 보편적 사회수당 프로그램을 적용할 수는 있다. 이 경우, 농민 모두에게 보편적으로 지급되는 월정 금액은 농민기본소득이 아니라 복지국가의 사회수당 프로그램인 농민수당으로 명명하는 게 옳다. 실제로 우리나라에서 농민수당을 지급하는 지자체는 늘고 있다. 농촌의 인구 감소와 지역의 소멸을 막으려는 노력이다. 지속 가능한 농업・농촌과 대다수를 차지하는 중·소농을 보호・육성하기 위해 농민수당이 필요하다는 논리가 갈수록 힘을 얻고 있다.

지난해 보건복지부는 사회보장심의위원회에서 농민수당이 복지 제도에 해당하는지를 심의했는데, “농업인 소득안정망 확충을 위한 국가의 정책 방향에 부합하고, 농업 인구의 지속적 감소 및 소득 불안정을 해소하기 위한 지자체 차원의 사업 추진 필요성을 인정”한다고 언급했다. 농민수당이 새로운 농업 정책의 하나라는 해석이다. 우리나라의 농업소득은 농가당 평균 1295만 원이고, 이전소득(농민수당과 공익직불금 등)은 1144만 원이다. 이전소득이 농가의 전체 소득을 지탱하는 구조라는 뜻이다. (☞관련기사 : 포스트 코로나 뉴 노멀의 중추, 농업)

백혜숙 위원에 의하면, 농민수당은 지역 경제 활성화와 더불어 농민과 지역 중소상인이 상생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기 위해 지역화폐(전남 해남군의 경우 농가당 연간 60만 원)로 지급한다. 2019년 전남 해남군을 시작으로 2020년 5월 현재 농민수당 조례가 제정된 지역은 30곳으로 늘어났다. 조례에 사용된 명칭은 농·어민수당, 공익수당, 경영안정자금, 농업농촌 공익적 가치 지원 등인데, 지역의 특성에 따라 명칭이 다르다. 올해 농민수당은 전국 기초지방자치단체의 약 4분의 1에 해당하는 57개 지역에서 시행될 예정이다.

그런데 이재명 지사는 굳이 광역 지자체인 경기도 차원에서 이 사업을 추진하려고 한다. 당장 경기도 고양 출신의 더불어민주당 원용희 도의원이 문제를 제기했다. 농민기본소득 조례안을 반대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는 언론보도가 잇달았다. 경기도 전체 인구의 2~3%에 불과한 농민을 대상으로 경기도가 농민기본소득을 실시하려는 것은 기본소득의 보편성 원칙을 정면으로 거스른다는 게 그의 비판 요지다. 백혜숙 위원의 언급처럼, 농민수당은 해남군이 시행했듯이 기초 지자체가 자체의 재량사업으로 실시하는 게 옳다. 그런데 이재명 지사는 이런 상식을 모두 뒤로 한 재 ‘농민기본소득’이라는 이름의 가짜 기본소득을 굳이 경기도 차원에서 실시하기 위해 농민기본소득 조례안을 통과시키려고 한다.

6월 24일, 경기도의회는 제344회 정례회 마지막(4차) 본회의를 열고 ‘경기도 기본소득 기본 조례안’을 처리했다고 한다. 기본소득 기본 조례안은 경기도가 기본소득 정책의 종합계획을 5년마다 수립하고, 실행계획은 매년 평가한 뒤 다음연도의 실행계획에 반영해 시행토록 하는 내용이 담겼다고 한다. 경기도는 앞으로 기본소득을 확대해 시행하더라도 청년기본소득이나 재난기본소득을 추진했을 때처럼 건건이 지원 조례를 제정하는 절차를 거치지 않아도 된다고 한다. 가히 경기도 발 가짜 기본소득이 양산될까 두려워진다. 광역 지자체의 정책이 논리적으로 가짜라면, 이 얼마나 끔찍한 일인가!

이재명 지사는 경기도에서 2021년 세계 최초로 농촌기본소득 실증 실험을 추진한다고 발표했다. 경기도는 농촌기본소득 사회실험을 위한 첫 단계로 사회실험 설계용역을 진행 중이라고 한다.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이재명 지사가 기본소득의 전국적 의제화에 시동을 걸었다는 보도가 나왔다. 6월 21일, 경기도는 재난기본소득 지급 이후 전 국민적 관심을 받고 있는 기본소득 의제의 전국화를 위해 가칭 ‘기본소득 지방정부협의체’를 구성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7월 31일까지 전국 지자체를 대상으로 협의체 참가 신청을 받는다고 한다.

이재명 지사의 정치적 성공이 쭉 이어진다면 머지않은 장래에 우리나라는 가짜 기본소득 공화국이 될 듯하다. 기본소득 옹호자들 내부의 자정 작용이 시급하다. 가짜를 가짜라고 말해야 한다. 하지만 이는 쉬운 일이 아닌 것 같다. 이미 상당수의 기본소득 옹호자들이 이재명 지사의 가짜 기본소득에 눈을 감고 있는 것 같기 때문이다.

이재명 지사는 청년기본소득, 재난기본소득, 농민기본소득, 그리고 ‘푼돈 기본소득’을 조례나 정책 제안으로 제출했고, 거대한 홍보비를 이들 가짜 기본소득 광고에 아낌없이 지출했다. 온 국민에게 가짜 기본소득을 설파했다. 정직이 최선임을 인정한다면 이제라도 모두 거둬들여야 한다. 여의도 정치권도 깊이 있게 성찰하길 권한다. 지속 가능한 보편적 복지국가의 미래를 준비할 시간이 무한정 주어진 게 아님을 알기 때문에 정책 결정권을 위임받은 분들에게 더욱 간절하게 호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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