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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최근 기본소득 논의가 놓치고 있는 것들

[기고] 기본소득이 실질적 자유 확대에 진정 기여할 수 있나

기본소득 논쟁이 본격화하고 있다. 이재명 경기지사에 이어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이 논쟁에 동참했고, 박원순 서울시장,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도 각자의 생각을 내놓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내부에서도 논란이 시작됐다.

핀란드의 기본소득 실험 이후, 국내 학계는 정치권 논쟁 훨씬 이전부터 기본소득에 관한 찬반양론을 전개했다. 이상이 복지국가소사이어티 공동 대표와 정원호 경기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양재진 연세대 교수, 유종성 가천대 교수 등이 각자의 기본소득 철학을 이미 <프레시안>을 통해 전한 바 있다. 지난 2017년에도 이 같은 논란을 정리한 <프레시안>이 다시금 기본소득 찬반과 관련한 입장을 ‘불붙은 기본소득 논쟁’으로 묶어 중계하는 까닭이다. (☞불붙은 기본소득 논쟁 묶음 바로 보기)

이와 관련해 이상준 한국직업능력개발원 선임연구위원의 기고를 게재한다. <프레시안>은 기본소득에 관한 논쟁에 열려 있다. 기고를 희망하는 분은 이메일 eday@pressian.com 으로 글을 보내주시면 된다. 편집자.

1. 기본소득의 의의

기본소득의 탄생배경, 정당성 논리는 단단하다. 더불어 정책내용까지도 단순하여 무엇보다 매력적인 주제이다. 토마스 무어의 <유토피아>에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오늘날 기본소득의 역사와 배경은 반박이 불가할 정도로 탄탄하다. 기본소득이 왜 필요한가의 철학적 담론, 논리, 이론 등도 이념적으로 반대편에 서지 않는 이상 딱히 반박할 빈틈을 주지 않는 듯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의문 몇 가지가 든다. 첫째 실질적 자유의 구체성이다. 둘째, (첫 번째 문제의식에서 연유했지만) 개인의 공동체에 대한 기여 가능성이다. 이것은 꼭 호혜주의에 기반한 문제의식이 아니라, 더불어 살아야 하는 인간의 기본적 존재 이유에 대한 질문이다. 세 번째, 관료주의와 정부의 역할에 대한 부분이다.

전통적인 인적자본 이론은 사람을 경제적 수단이자 자원(resource)으로 인식한다. 개인은 합리적 의사결정을 통해 노동시장 신호에 맞추어 교육 투자를 결정한다. 개인은 투자 수익을 극대화하여 자신의 소득증대와 국가 경제성장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한다. 교육투자는 취업 또는 고용을 통해 자신만의 성공방식을 추구하는 것으로, 노동시장에서 경쟁을 통한 지위 획득이 곧 개인의 능력(competency)으로 인정받는 도구다.

인적자본이론에서 능력은 절대적 개념이 아닌 상대적 개념이므로 '좋은 직장'으로 대표되는 노동시장 내 성공을 위해서는 타인과의 경쟁에서 승리해야 하며 승리를 위해서는 '노오력(또는 극한의 성실성)'도 불사해야 한다. 노동시장 진입에 성공하지 못한 것은 오롯이 개인의 노력 부족과 산업 수요에 부응하지 못하는 기술을 가진 개인의 책임이 된다.

인적자본 체제가 지속되려면 노동시장에서 완전고용이 보장되어야 하나, 전통적인 완전고용은 케인스주의 퇴장과 함께 사라졌다. 대신에 저임금 일자리의 창출로 완전고용의 성과를 누리고-반대로는 실업률을 낮추는 방식의 정책-자 하는 정책은 결과적으로 노동시장의 양극화와 소득의 양극화로 이어져 비정규직과 정규직, 전문직과 단순직과의 임금격차를 더 벌리고 있다.

특히 인공지능 시대를 맞이하여 노동력 과잉화는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과잉 노동공급은 지금보다 소득의 양극화를 더 부추기고 개인은 줄어든 실질 소득의 만회를 위해 시간빈곤에 시달려 삶의 질은 나날이 악화될 전망이다. 오늘날 전 세계 신자유주의적 국가는 국민 삶의 질 향상을 위한 대책으로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인 근로연계형복지(workfare) 정책을 주로 실시하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 국가가 일자리 정책에 대한 명확한 방안도 없으면서, 좋은 일자리를 만들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국민보다는 산업과 기업 지원에 중점을 두는 정부 관료들의 면피성 정책, 여러 가지 많은 것을 시도해 보았다는 정치 권력자들의 '정책 알리바이'를 만들어 줄 뿐이다. 즉 대부분 근로연계형복지 정책은 정치인과 관료들의 정치공학적 셈법일 뿐이다.

이러한 범지구적 인적자본이론의 퇴행에 맞서 논의되고 있는 것이 바로 필리프 판 파레이스(Philippe Van Parijs)를 필두로 하는 기본소득이다.

기본소득이 필요한 이유 중의 하나는 전통적인 가구 모델에 기반한 복지사회 해체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세계 대부분 국가는 가부장 남성 중심 가구단위의 복지체계를 구축했다. 이들을 위한 고용안정은 에스핑 엔더슨(Esping Anderson)이 지적한 것처럼 가장 자녀의 노동시장 진입을 가로막는 아이러니를 연출하고 있다. 인적자본이론은 가구 중심의 노동공급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 선택에 의한 투자 수익을 극대화하는 것이므로 청년, 여성들이 노동시장에서 탈락하거나 실직했을 때 가구 단위의 복지는 아무런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

즉 인적자본이론 관점에서 볼 때 복지는 가구가 아닌 개인의 단위로 이어져야 한다. 또한 인공지능 시대의 과잉 노동공급은 실직이 개인의 능력 문제가 아닌 경제, 노동시장 구조의 문제이며 자본가의 입장에서 볼 때도 지속적인 소비 창출을 위해서라도 개인별 복지지원 또는 기본소득 지급은 매우 필요하다. 극단적으로 모든 노동공급을 로봇이 한다하더라도 경제행위의 하나인 소비는 로봇이 아닌 사람에 의해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기본소득을 받는 사람은 무엇을 지속적으로 하며 살아야 할까라는 문제에 도달하게 된다.

2. 실질적 자유 –충분성, 선한 의지

판 파레이스는 그의 저서 <모두에게 실질적 자유를>(조현진 옮김, 후마니타스 펴냄) 한국어판 서문에서 "자유는 형식적 자유가 아니라 실질적 자유이며, 어떤 것을 할 수 있는 순전한 권리가 아니라 그것들을 할 수 있는 capacity 다"라고 말하고 있다. 또한 같은 책에서 그는 기본소득 제안은 임금관계(Wage Regime) 변화를 동반하는 것으로 볼 수 있으며, 금전적 대가와는 무관한 삶의 질, 자기실현, 인간관계의 보존에 역점을 두는 녹색운동과 조화를 이룬다고 명시하고 있다(p.77). 아울러 기본소득이 주어진다면 돌봄이나 가사노동, 종교 및 공동체 활동 같은 사회적 활동가치가 부각될 수 있다는 기대도 내비치고 있다.

문제는 기본소득 수령자의 이러한 기여가 개인의 선한의지(good will)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기본소득을 받은 수혜자는 여전히 인적자본 관점에서 경쟁을 통한 개인 수익률 극대화를 위해 소비할 수 있다.

소득이 개인의 실질적 자유를 실현하기 위한 무엇보다 가장 필요한 수단인 것은 맞다. 그렇다면 세계기본네트워크(BIEN:Basic Income Earth Network)가 제시한 기본소득 5대 조건에 들어있지는 않지만, 소득의 충분성은 더더욱 중요하다. 판 파레이스는 <21세기 기본소득>(홍기빈 옮김, 흐름출판 펴냄)에서 이러한 문제 때문인지는 몰라도 1인당 국내총생산(GDP)의 25% 정도를 기본소득으로 선택하자고 제안한다(pp.35~36). 한국의 2019년도 일인당 국민소득을 연간 3만 달러로 가정할 때 월 2500달러가 되며 이를 원화로 환산하면 현재 기준 300만 원에 해당된다.

가처분 소득의 60% 아래로 빈곤을 정의하는 유럽 기준으로 볼 때, 가구별 중위소득은 4인 가구 기준으로 276만8000원 정도 되며 개인별로 환산하면 70만 원가량이다. 즉 판 파레이스는 기본소득이 이 정도는 되어야 개인의 실질적 자유가 가능하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이 기준에 따르면, 코로나19로 인한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도입된 '긴급재난지원금'의 4인 가족 기준 100만 원은 턱 없이 부족하다.

실질적 자유의 구체성을 보자. 판 파레이스는 <21세기 기본소득>에서 "기본소득 도입은 형식적인 참여라는 조건을 강제하는 것과 상관없이 반드시 공동체에 대한 기여에 가치를 부여하는 공동담론과 결합되어야만 한다"고 말하고 있다(p.471). 기본소득 지지자의 대다수는 기본소득 도입이 유상 노동 외에 사회적으로 유용한 활동의 활성화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는 듯하다.

3. 정부의 역할, 행정비용과 관료주의

기본소득의 장점 중 하나는 자산조사와 같은 막대한 행정비용 절감이다. 기본소득 도입은 조세 및 소득이전 시스템을 단순화하고 조건부 수당에 대한 의존을 줄여 관료적 작업을 줄인다. 여기서 드는 의문이 있다. 과연 관료들은 관료적 작업을 줄이는 행정의 효율성을 좋아할까?

행정학의 조직 팽창 이론에서 대표적 학자인 파킨슨(C. N. Parkinson)은 공무원이 부하 직원을 증가시킴으로써 위신을 높이고자 하는 심리가 있으며, 이는 부하직원의 증가로 이어지고 다시 업무의 증가로 이어진다는 이론을 제시한다. 즉 관료들의 집합체인 정부, 행정조직은 자신의 조직이 축소되거나 업무가 없어지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행정의 비효율은 문제지만, 자신의 조직이 없어지는 것은 더 큰 문제인 것이다.

기본소득이론에서 정부의 역할은 뚜렷하지 않다. 단순히 기본소득을 전 국민에게 주는 은행 창구 역할 외에 정부가 할 일은 딱히 없다. 기본소득 재원 마련은 기본소득 도입 여부와 관계없이 정부와 국가가 하는 일이기 때문에, 기본소득만을 위한 일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기본소득론자들은 기존의 간섭적 온정주의에 의해 이루어진 각종 사회보장 프로그램과 기금, 인프라의 이용을 암묵적 상수로 인식하는 듯하다. 그렇다면 과연 기본소득 지급 시 기존의 사회보장, 보호, 인프라, 교육 및 훈련 프로그램이 더 늘어날 것인가, 아니면 줄어들 것인가?

4. 실질적 자유 확대를 위한 work

기본소득 지급의 효능 여부는 단순히 행정 조직만의 문제가 아니다. 기본소득론자들은 온정적 간섭주의에 의거한 기존의 사회보험과 각종 인프라의 중요성을 인정한다. 교육이나 사회기반시설 기금, 사회의 일부분만이 관심을 가지고 소비하는 항목들에 들어가는 재원에 필요한 공적 자금 등은 실질적 자유지상주의 관점에서 정당하다고 인식하고 있다(모두에게, p.94).

이를 좀 더 확장하면 교육기관뿐만 아니라, 도서관, 문화시설, 체육시설, 의료, 복지 기관, 공공취업알선기관(고용복지플러스센터), 요양원, 장애인시설, 공공쉼터 등 사회·공공의 서비스는 기본소득제 도입 이후에도 여전히 필요하다. 어쩌면 사회가 변화하면서 개인의 요구는 지금보다 더 다양화하여 국가와 정부가 일일이 다룰 수 없는 상황이 올 수 있다.

더 직설적으로 표현하면 기본소득이 국가의 기본 정책으로 설정되었다 할 때, 기존의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에 종사하던 사람과 조직, 공공 조직의 업무는 개인의 실질적 자유 쟁취와 배치될 가능성이 존재한다.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가.

과거 개발 성장 시대에는 개인의 권리와 자유, 사회적 요구에 대한 개념이 다양하지 않았다. 정부는 '진흥원', '공단' 등의 조직을 꾸려 사회 구성원이 원하는 행정 업무를 진행해왔다. 그러나 앞으로 국민의 요구는 다양해질 것이며 프로그램의 패턴은 수시로 변화할 것이다. 사회 정책 프로그램이 다품종 소량생산의 형태로 이루어질 것으로 전망되는데 이 모든 것을 고정적 관료조직인 공무원 조직이 무한정 다룰 수는 없다.

이는 앞에서 언급하였듯이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일에 참여하는 것이 개인의 낙관적 선한의지에 전적으로 의존할 때조차도 기존의 각종 프로그램과 예산과 인력은 유지될 수 있느냐는 물음으로 전환될 수 있다.

기본소득은 소득재분배 정책이 아니며 임금 체제의 변화와 개인의 실질적 자유의 확대를 위한 수단이자 목적인 개념이다. 누구에게 얼마를 주느냐는 논의는 당장의 달콤한 열매일 수 있으나, 결국 소득재분배 효과가 있느냐 없느냐, 세금을 어떻게 거둘 것이냐의 지엽적인 문제에 시달릴 수 있으며, 최악의 상황에는 저임금 보조금의 성격으로 전학하여 21세기 판 스피넘랜드법이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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