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과 미래통합당을 이끄는 수장들이 3일 '재'대면했다. 이틀 전 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직무를 시작한 김종인 위원장이 이해찬 민주당 대표를 취임 인사차 예방하면서다. 화기애애하게 시작된 대화였으나 21대 국회 원(院)구성 문제를 놓고는 불꽃 튀는 신경전이 이어졌다.
김 위원장은 이날 오전 국회 민주당 대표실로 이 대표를 찾아와 악수한 후 먼저 "경제 상황도 코로나로 인해 상당히 변화가 커야 한다"며 "여야가 나라 발전을 위해 협조할 수 있는 자세를 가져야 하지 않나"라고 말문을 열었다. 정부가 준비 중인 3차 추가경정예산안에 대한 협조를 시사하며 여당 대표를 떠보는 듯한 반응이었다.
이 대표는 별달리 반색하는 기색 없이 "코로나 방역은 어느 정도 관리가 되는데, 백신 치료제가 아직 개발이 안 돼서 걱정"이라며 "경제 문제가 생각보다 상당히 타격이 큰 것 같다. 이번에 경제 문제를 극복 못 하면 지금까지 해온 것이 너무 많이 훼손될 것"이라고 담담하게 받았다.
김 위원장은 재차 "전 세계가 한번도 겪어보지 못한 상황이기 때문에, 각 나라가 전부 비상한 (대응을) 하고 있다"며 "(한국도) 여기에 대해서 비상한 대책을 세우지 않으면 잘못하면 우리나라가 선진국으로 가지 못하고 최악의 상황을 맞기 때문에 조치를 빨리빨리 해야 한다"며 "그런데 보면 제가 최근에 느끼는 것이, 한 번도 정부 재정이 경제정책에 역할을 해 본 게 없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여기에는 반응을 보였다. 그는 "(재정 당국이) 너무 국가부채율 중심으로 사고를 하니까…"라며 동조하는 취지로 발언했다.
김 위원장은 그러자 "경험도 없고, 국가 부채에 대한 두려움만 있다"고 재정 당국 비판에 가세하며 "재정 관리에 예산이 중심이 될 수밖에 없어서 국회가 거기에 대한 역할을 충분히 해야 한다"고 원구성 문제를 간접 언급했다. 3차 추경 등 적극 재정을 하기 위해서는 소극적인 재정당국을 국회가 견인해야 하니 어서 예결위를 구성해서 예산 심사에 나서자는 우회적 압박으로 풀이됐다.
김 위원장은 사전 환담이 끝나고 이어진 공식 모두발언에서도 "코로나 사태를 겪으면서 일단 처음 방역 체제는 우리가 성공한 사례이지만, 초기에는 방역에만 집중했다면 지금은 코로나로 인한 경제·사회 문제를 동시에 (준비)해야 한다"며 "지금에서부터는 정부의 재정 역할이 중요하다. (그러려면) 국회가 정상적으로 잘 작동이 돼야 한다"고 말하고 "제일 중요한 게 개원 문제인데, 이 대표가 7선이고 관록이 많으니까 과거 경험을 봐서 빨리 정상적인 개원이 되도록 해달라"고 말했다.
그러나 원구성 문제에 대해서는 민주당 지도부는 전혀 앙보가 없었다. 이 대표는 "김 위원장 말씀대로 경제 문제가 많이 어렵다"며 "다행히 김 위원장께서 3차 추경은 일리가 있다고, 잘 검토해서 처리하겠다고 말씀하셨다"고 하면서도 원구성 문제에 대해서는 "20대 국회와는 다른 모습을 21대 국회가 보여줘야 서로 간 신뢰를 받는 것이다. 마침 이번에 (김 위원장이) 비대위원장을 맡았으니 새로운 모습을 기대한다"고 했다.
이 대표는 "(개원은) 6월 5일이 기본"이라며 "법을 지켜가면서 협의할 것은 협의하자.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고 충분히 소통만 하면 가능하다"고 했다. 이후 비공개로 이어진 대화를 마치고 나온 김 위원장은 '법사위원장은 어느 당에서 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있었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그런 구체적 얘기는 안 했다"고 했다.
이어 기자들이 '추경안의 기본 필요성은 공감한다고 했는데, 그린뉴딜 정책에도 공감하는지'를 묻자 김 위원장은 "아직은 구체적인 그것(예산안)을 보지 못해서 뭐라 얘기할 수 없다"고만 했다. 질문 내용에 따른 원론적인 언급이기는 하나, 추경 등 적극재정 필요성을 강조하던 것과는 다소 달라진 인상을 줬다. 그는 '이 대표를 만난 소감을 말해 달라'는 질문에는 답을 하지 않고 집무실로 들어갔다.
1940년생인 김 위원장과 1952년생인 이 대표는 연령 면에서 동세대로 볼 수는 없지만, 각 진영에서 현재 활동 중인 정치인 가운데 가장 경륜이 높은 원로 인사들로 꼽힌다. 두 사람 사이에는 이런 저런 얽힘도 많았다.
이들은 과거 1988년 총선 당시 서울 관악을 선거에서 맞붙은 바 있다. 당시 민주정의당 현역 의원이었던 김 대표에게, '운동권' 출신 이 대표가 민주화 바람을 타고 승리를 거뒀다.
2016년 총선을 앞두고 김 위원장이 민주당 비대위 사령탑으로 활동할 당시에는 사실상 그가 주도권을 행사한 총선 공천에서 이 대표가 배제(낙천)됐고, 이 대표는 이에 불복해 무소속 출마 후 당선돼 20대 국회로 복귀했다.
김 위원장은 이날 이 대표를 만난 자리에서 "4년 전에는 내가 이 자리(이 대표 자리)에 앉아 있었다"며 "새로 오니까 기분이 이상하다"고 '더불어민주당 비대위 대표' 경력을 언급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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