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대 국회 개원을 앞두고 여야가 원(院)구성 문제로 정면 충돌 양상을 보이고 있다. 원구성이란, 국회의장단과 17개 국회 상임위 위원장단을 선출하는 절차를 말한다. 통상 의석 비율대로 여야가 나눠 맡는 것이 관행이었으나, 177석이라는 절대다수당이 된 더불어민주당이 전 상임위와 예산결산특별위원회까지 독식하겠다는 엄포를 놓으면서 야당은 반발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는 2일 기자간담회에서 "상임위원장 자리는 협상 대상이 아니"라며 "원구성도 안 하고 (상임위를) 몇대 몇으로 나눈다고 하는 것은 앞뒤가 다른 얘기"라고 말했다. 김태년 원내대표도 의원총회에서 "낡은 관행은 단호히 끊어내야" 한다면서 "국민에게 책임을 다하기 위해 국회법에 정해진 날짜에 반드시 국회를 열겠다. 오는 5일 본회의를 열고 국회의장단을 선출하겠다"고 선언했다.
민주당 박성준 원내대변인은 의총 결과 브리핑에서 "오늘 임시국회 소집요구서를 제출하고, 오는 5일에 의장단을 (본회의에서) 선출하겠다는 안건을 의원총회에 올려 의원들이 만장일치로 의견을 모았다"고 밝혔다. 박 원내대변인은 '통합당과 협의가 안 되면 통합당은 빼고 본회의를 열 것이냐'는 질문에 "그렇게 하겠다는 것"이라고 확인했다. 민주당은 실제로 이날 소집요구서를 제출했다.
국회법 절차에는 '의장단 및 상임위원장단은 국회 본회의에서 투표로 선출한다'고만 돼 있어, 과반 의석을 확보하면 모든 자리를 가져가는 것도 불가능하지는 않다. 다만 정치권에서는 민주당이 실제로 18개 위원장을 독식하려는 것이라기보다는 2004년 이후 늘 제2당 몫으로 배정했던 법사위원장 자리와, 20대 국회에서 야당이 맡았던 예결위원장 자리를 다시 가져오려는 것이 진짜 속내가 아니겠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미래통합당은 강하게 반발했다. 통합당 역시 이날 21대 첫 의원총회를 열었는데, 이 자리에서 주호영 원내대표는 "지금까지 전체 개원 협상이 타결되지 않은 채 의장단을 뽑은 경우는 없다"며 "더구나 민주당이 80석 정도밖에 되지 않았던 18대 국회에서도 일방 개원은 없었다"고 지적했다. 주 원내대표가 언급한 2008년 18대 국회 개원 당시 의석은 여권의 한나라당 153석, 자유선진당 18석, 친박연대 14석이었고, 야권은 민주당 81석, 민주노동당 5석, 창조한국당 3석이었다.
주 원내대표는 의총에서 "만약 민주당이 전 상임위를 가지고 간다든지, 5일에 일방적 개원을 한다든지, 법사위의 체계자구심사권을 없앤다든지 하는 경우 저희는 도저히 묵과할 수 없다"며 "(그럴 경우) 향후 일정에 협조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주 원내대표는 이어 이날 오후 별도 기자 간담회를 열고, 18대 국회 당시 민주당 대변인이었던 노영민 현 청와대 비서실장의 논평을 찾아내 기자들 앞에서 읽기도 했다. 주 원내대표 인용한 노 실장의 당시 논평은 "도대체 아직도 뭐가 더 부족한가. 대한민국의 3대 선출권력(대통령, 국회, 지방권력)은 이미 여당이 싹쓸이했다", "이제 그나마 몇 안 되는 야당 몫의 상임위원장까지 독식해서 그야말로 의회독재를 꿈꾸는 것인가", "다수당이 상임위를 독식했던 것은 과거 독재정권 시절인 12대 국회까지였다. 결국 과거 독재정권 시절로 돌아가겠다는 것이다", "이러다가는 아예 국회를 없애자고나 하지 않을까 모를 일이다" 등의 내용이었다.
주 원내대표는 간담회에서 "18대 국회 때는 지금 통합당 의석보다 당시 민주당 의석이 훨씬 적었음에도 불구하고 위원장은 의석 비율로 나눴다"며 "입으로는 상생·협치를 외치며 실제로는 '법대로'를 내세워 일방적으로 끌고가면 의회민주주의는 파괴되고 대한민국은 입법 독재, 민주당 1당 독재 국가가 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주 원내대표는 "5일에 일방적으로 국회의장을 뽑겠다고 하는데, 저희 법률 검토에 의하면 교섭단체 합의 없이 의장단을 뽑을 수 없다"며 "만약 5일 본회의를 강행하면 권한 없이 본회의를 연 점에 대해 묵과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주 원내대표는 정부·여당에서 추진하는 3차 추가경정예산안과 관련해서도 "한 해에 세 번 추경을 하는 것도 납득이 어렵지만, 야당과 상의도 없이 제출하고 '6월 안에 해야 한다'니 국회가 통과의례만 해주는 거수기냐"고 날을 세우며 "(1·2차 추경) 집행이 어떻게 됐는지 보고부터 하고 3차 추경의 효과가 뭔지, 재원 대책이 뭔지 논의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5일에 일방적으로 법에 없는 의장을 뽑아놓고 진행하면 6월안에 원 구성이 안 되는 것이고 그러면 그 자체가 협조가 안 되는 것"이라고 경고했다.
김종인 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도 원구성과 관련해 '관례를 따라야 한다'는 입장을 강조했다. 김 비대위원장은 이날 오후 강기정 정무수석을 접견한 자리에서 "내가 보기에 문제될 것도 없는 것 같은데, 지난 30년간 국회가 국회가 관행대로 한 대로만 하면 될 것 같다"며 "거대 여당이 포용적인 자세로 해 달라"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강 수석이 "국회에서 빨리 예결위가 구성돼야 (추경을 처리)하는데…"라며 추경 관련 협조를 당부하자 "그러니까 국회를 빨리 개원할 수 있게 해 주셔야 하지 않느냐"면서 이같이 말하고 "강 수석께서 여당에 영향력을 행사해서 협상이 잘 되게 해 달라. 여야가 협력을 잘 하도록 조정 역할을 잘 해달라"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공개 대화 이후 이어진 비공개 차담에서도 강 수석에게 "177석이라는 거대 의석을 보유하고 무슨 걱정이 그리 많나"라며 "민주화 이래 30년간 해온 관행은 지키는 것이 원칙이다. 서로를 위해 그것이 좋다. 억지로 없던 것 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고 통합당은 전했다.
김 위원장은 다만 추경안 자체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코로나 사태에 상당한 재정을 투입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10조~20조 가지고는 안 될거라고 봤기 때문에 3차 추경은 할 수밖에 없다고 본다"며 추경안 내용을 보고 협조할 부분은 하겠다는 취지로 언급했다.
그는 "코로나가 지금 제2단계에 들어가니까, (정부가) 방역에만 신경을 쓰는데 경제·사회 문제까지 같이 비슷한 시각에서 봐야 한다"면서 "코로나 사태로 인한 경제 회복 문제, 국민 생활 안전 등 부분은 적극적으로 협력을 하겠다"고 했다. 김 위원장은 강 수석을 통해 문재인 대통령에게 "(취임 축하) 난을 보내줘서 감사하다. 코로나 사태를 극복하시느라 수고가 많으시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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