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가 20일 본회의를 열어 고용보험 가입 범위를 예술인까지 확대하는 고용보험법 개정안 등 130여 건의 법안을 의결했다. 이날 통과된 법안은 대부분 여야 간 큰 이견이 없는 무쟁점 민생 법안이다. 최악의 국회로 평가되는 20대 국회가 오는 29일 종료를 앞두고 만들어낸 마지막 성과물인 셈이다.
국회는 이날 오후 본회의에서 고용보험법 개정안을 재석 161인에 찬성 154인, 반대 1인, 기권 6인으로 가결했다. 개정안에 따르면, 공공기관·기업 등과 용역계약을 맺고 일한 65세 이하 예술인은 의무적으로 고용보험에 가입되며, 9개월 이상 고용보험료를 낸 상태에서 실직할 경우 종전 급여의 최대 60%가량을 실업급여로 지급받을 수 있게 된다.
고용보험 확대는 정부가 코로나19 비상경제대책의 일환으로 추진하는 사업이다. 당초 정부·여당은 예술인 외에 보험설계사 등 특수고용직 노동자도 고용보험에 가입시키는 방안을 이른바 '전국민 고용보험'이라는 이름 아래 추진했으나, 야당과의 협상 과정을 거치며 이번 개정에서는 예술인만 포함시키고 특수고용직 등은 추후 논의하기로 했다.
'구직자 취업촉진 및 생활안정지원에 관한 법률' 제정안도 이날 본회의를 통과(재석 150, 찬성 147, 기권 3)했다. 이 법률안은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 3주년 연설에 담긴 '국민취업제도' 실시를 위한 근거법으로, 저소득층(중위소득 이하 가구) 구직자에게 최장 6개월간 월 50만 원씩의 구직촉진수당을 지급할 수 있게 하는 내용이다.
코로나19 방역 조치 관련 법안들도 여야 합의로 통과됐다. 출입국관리법 개정안은 단기체류 외국인 숙박신고제를 도입하고 위반시 해당 외국인과 숙박업자에게 50만 원 이상의 과태료를 부과하도록 한 내용을 골자로 한다. 이 법안에는 출입국 과정에서 현재 사용되고 있는 지문·얼국 외에 홍체·정맥 등 생체정보를 이용한 본인 확인이 가능하도록 하는 내용도 담겼다.
여야가 막판 합의를 이뤄 '마지막 본회의'의 마중물 역할을 한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 기본법(과거사법)' 개정안도 통과됐다. 이 법안은 2010년말 해산된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 활동을 향후 2년간 재개해 형제복지원 사건 등 미진한 과거사 문제에 대한 진상조사를 실시하도록 하는 내용이다.
다만 피해자에 대한 배상·보상 규정은 일단 빼고 청문회 등 위원회 활동을 통한 진상 규명만 먼저 가능하게 하자는 야당의 주장을 여당이 수용함에 따라 이번 개정에서 배·보상 근거 규정은 빠졌다. 과거사법에 대한 본회의 의결 결과는 재석 171인에 찬성 162표, 반대 1표, 기권 8표였다.
부마민주항쟁의 정의를 현행 '1979년 10월 16일부터 10월 20일까지'에서 '20일을 전후해 발생한 사건'으로 개정하고, 진상규명위원회 활동 기간을 1년 연장한 '부마민주항쟁 관련자의 명예회복 및 보상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안도 이날 본회의에서 재석 171인에 찬성 166인, 기권 5인으로 가결됐다.
그밖의 민생 법안으로는 △공인인증서 폐지를 골자로 한 전자서명법 개정안 △대학교수 등 고등교육기관 교원의 노조 설립에 대해 법적 근거를 마련하는 내용의 교원노조법 개정안 △묵시적 계약갱신 거절의 통지기간을 현행 임대차기간 종료 '6개월 전부터 1개월 전까지'에서 '2개월 전까지'로 단축하는 내용의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안 등이 통과됐다.
'n번방 방지법'도 통과됐으나…실효성 미비, 기본권 침해 논란도
이른바 'n번방 사건' 방지법으로 불린 전기통신사업법 및 정보통신망법 개정안도 본회의를 통과했다. 다만 이 법안들에 대해서는 시민사회에서 통신비밀 침해 우려가 제기됐고, 법사위 심의 과정에서도 진통이 있었다.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은 현행 22조5의 2항에 "불법촬영물 등이 유통되는 사정을 신고, 삭제 요청 또는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기관·단체의 요청 등을 통해 명백히 인식한 경우에는 지체 없이 해당 정보의 삭제, 접속차단 등 유통방지에 필요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규정을 신설하고 이를 어길 경우 매출액의 3%에 해당하는 과징금을 부과하고 3년 이하 징역, 1억 원 이하 벌금형에 처할 수 있게 하는 내용이다.
또 이 개정안은 "국내에 주소 또는 영업소가 없는 부가통신사업자" 즉 텔레그램 등 해외 사업자에 대해서는 국내 대리인을 서면으로 지정하도록 했다. 국내 대리인을 지정하지 않을 경우 2000만 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게 했다.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은 텔레그램 등 외국산 메신저와 '다크웹' 등을 겨냥해 "국외에서 이뤄진 행위라도 국내시장 또는 이용자에게 영향을 미치는 경우"를 이 법률 적용 대상으로 추가 규정했고, 정보통신 서비스 제공자에게 불법촬영물 등에 대한 유통방지 조치를 의무화해 이를 어길 경우 최대 2000만 원의 과태료를 부과하는 것이 골자다.
시민단체 '오픈넷' 대표인 박경신 고려대 교수 등은 지난 18일 기자회견을 열고 "(불법촬영물 등의 유통에) 정부가 책임을 지지 않고 통신사업자들에게 '이용자를 감시하라'고 부추기는 조항"이라며 "국제 인권 기준에 어긋난다"고 비판했다. 오픈넷은 또한 "이 법이 'n번방 방지법'이라면 텔레그램까지 적용돼야 하는데, 사실상 국내 메신저만 사찰하는 '카카오톡 사찰법'이 됐다"며 "사업자 처벌만 강화하고, 정부 차원의 모니터링 등 대책은 없다"고 지적했다.
이날 오전 열린 법사위 전체회의의 체계·자구 심사 과정에서도 같은 취지의 비판이 나왔다. 민주당 금태섭 의원은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에 대한 대체토론에서 "신설 조항은 처벌 규정인데 (그 대상 행위를) 대통령령에 위임하는 것은 죄형법정주의 위반 아니냐"며 "현실적으로 통신비밀 침해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금 의원은 또 "비공개 통신은 어차피 (개정안에 의하더라도) 볼 수 없는 것 아니냐"고 꼬집으면서 "실제로 피해자 구제에는 도움이 안 되면서 내용이 애매한 법이 생기는 것이 아닌가"라고 했다.
금 의원은 "마치 국회가 실효적 대책을 세운 것처럼 하고 넘어가는 게 아닌가 실무를 해본 법률가로서 의문이고, 이 법으로 피해가 줄어들 것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고, 오히려 (온라인성범죄 모의자들이) 텔레그램 등 외국 사업자로 빠져나가게 되는 것 아니냐"고 우려했다.
한상혁 방송통신위원장은 이에 대해 "성착취물을 찾아내는 조치는 기술 수준에 따라 변화하는 것이라 구체적으로 규정할 수 없어 영에 위임한 것"이라며 "(비공개 대화는 어차피 볼 수 없다고 하지만) 성착취물의 생산은 비공개 대화방에서 이뤄지더라도, 그게 공개된 인터넷 공간에 유통돼 피해가 커질 수 있다"고 반론을 폈다.
한 위원장은 "(불법촬영물 등이) 비밀 대화방에 유통되는 경우 (피해가) 거기서 한정되겠지만, 인터넷으로 옮겨질 경우 피해가 확산되기 때문에 국민들이 신속한 개정을 여망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다만 한 위원장의 이같은 말은, 개정된 법률에 의하더라도 성착취물 생산지인 비공개 대화방을 '원점 타격'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단지 '2차 피해' 방지를 위한 방안에 불과하다는 점을 시인한 것이기도 하다.
한 위원장은 '정부는 손을 놓고 사업자에게 책임을 미루는 것 아니냐'는 시민사회 일각의 지적에 대해 "정부도 하겠지만 사업자들도 모든 수단을 동원해 성착취물의 유통을 방지해야 한다는 차원에서 (법 개정을) 하는 것"이라며 "문제를 제기하는 시민단체들도 법안의 정당성과 필요성에 대해서는 공감하는 것으로 안다"고 거듭 주장했다.
여상규 법사위원장은 "전기통신사업법에 대해 3명의 위원이 실효성과 관련한 문제 제기를 했고, 하지만 (해당 의원들도) 이 법은 빨리 통과시켜 집행하는 게 좋겠다는 의견"이라며 "위원들의 의견을 정부에서 유념해 집행하면 될 것 같다"고 토론을 종료하고 의결했다.
법사위에서 이같은 논의 과정을 거쳐 오후 본회의에 부의된 두 법안은 각각 재석 178인에 찬성 170인, 반대 2인, 기권 6인(전기통신사업법), 재석 177인에 찬성 174인, 기권 3인(정보통신망법)으로 가결됐다.
이 두 법안과 함께 '정보통신 3법'으로 묶였던 방송통신발전기본법은 법사위의 법안체계심사 과정에서 보류됐다. 이 법안은 국가 재난사태 발생시 민간 데이터센터(IDC)의 데이터가 소실되는 것을 막기 위해 IDC에도 기타 방송통신시설과 마찬가지로 재난관리 기본계획 등을 수립하도록 의무화하는 내용이다.
이 법은 주무 상임위인 과기방통위에서 위원장 대안으로 가결됐으나, 법사위에서는 김도읍·장제원·정점식 의원 등 야당 의원들과 함께 여당의 송기헌 간사와 김종민 의원 등도 비판적 의견을 제시했다. IDC에 대한 규제가 정보통신망법과 이 법에 나눠져 있는 것은 법안 체계상 맞지 않다는 이유다. 여 위원장은 "이 법안은 의원들 의견에 따라 보류하도록 하겠다. 21대 국회에서 개정안을 내서 처리하기 바란다"고 했다.
국회는 또 아동 성착취물 처벌 조항에서 '벌금형'을 삭제하고 징역형만으로 처벌하도록 한 '아동·청소년의 성 보호에 관한 법률(아청법)' 개정안도 통과시켰다. 이 역시 'n번방 사건' 관련 법안으로 볼 수 있다.
개정안에 따라 아동·청소년 성착취물 배포·제공·전시자에 대한 처벌은 기존의 '7년 이하 징역 또는 5000만 원 이하 벌금'에서 '3년 이상의 징역'으로 강화됐고, 아동·청소년 성착취물을 '소지'한 자를 1년 이하 징역 또는 2000만 원 이하 벌금에 처하게 한 종전 규정도 '소지·시청'한 자를 1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도록 개정됐다.
이 개정안은 또한 종전의 '아동·청소년 이용 음란물'이라는 용어를 '아동·청소년 성착취물'로 변경해 경각심을 높이고, 아동·청소년에 대한 강간·강제추행 등 범죄는 예비·음모죄도 처벌하도록 했다.
다만 아동청소년 성착취물로 얻은 범죄수익을 검찰 기소나 법원 판결 없이 몰수·추징하도록 하는 범죄수익은닉규제처벌법 개정안은 전날 법사위 논의 과정에서 탈락했다. 현행 형법상 몰수는 주형(主刑)에 부가하는 형이어서, 주형이 선고되지 않았는데 별도로 몰수만 선고할 수 있게 하는 것은 법리상 맞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