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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나라'의 고속철도, 그 운명은…

[데스크 칼럼] KTX 민영화, 퇴임 후 측근 재취업 비책?

가상의 섬 '소도어 섬'을 달리는 <꼬마기관차 토마스와 친구들>은 영국의 동화작가가 쓴 그림 동화를 원작으로 한 애니메이션이다. '뽀통령'이라고까지 불리는 <뽀로로>와 마찬가지로 어린이들 사이에선 매우 인기가 많다. 이 애니메이션엔 '사장님'이 등장한다.(원작에는 역장(fat controller)으로 나온다) 토마스와 그의 친구들은 이 '사장님' 마음에 들지 못할까봐 늘 전전긍긍한다. 맡은 일을 잘한 꼬마기관차는 '사장님'께 칭찬을 받고, 일을 제대로 못한 꼬마기관차는 꾸중을 듣는다. '사장님'이란 용어로 번역된 것은 지극히 한국적 정서가 반영된 결과이겠지만, 공교롭게도 이 애니메이션이 만들어진 영국은 철도의 종주국이면서 철도 민영화의 나쁜 선례를 보여주는 나라다. 미국이 의료 민영화의 나쁜 선례를 보여주는 나라이듯 말이다.

영국의 철도 민영화 그 결과는…

영국의 철도 민영화 사례는 최근 이명박 정부가 KTX 부분 민영화를 추진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다시 주목받고 있다. 영국 정부는 1995년부터 2년에 걸쳐 철도산업을 100여 개로 쪼개 분할 매각하는 방식으로 민영화했다. 1979년 대처가 집권한 이래로 '과격한 민영화'를 추구해온 영국도 철도를 민영화 하는 데는 적잖은 시간이 걸렸다. 그만큼 논란이 많았다. 영국 정부가 내세운 민영화 논리는 현재 이명박 정부가 얘기하는 것과 똑같다. "경쟁체제 도입"을 통해 "효율성을 극대화"하겠다는 것. 이를 통해 "적자(정부 지원금)를 최소화"하고 "요금을 인하하고 서비스 질을 높일 수 있다"는 약속도 나왔다. 이명박 정부도 KTX에 경쟁체제를 도입하면 철도공사의 적자를 줄이고 해당 노선의 요금을 15-20%가량 줄일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잘 알려지다시피 영국 정부의 주장은 현실이 되지 않았다. 요금은 철도 민영화 2년 만에 14%나 올랐다. 2000년 들어선 요금이 평균 2배가 올랐다. 서비스의 질도 결코 좋아지지 않았다. 열차 연착률은 1996년 8.9%에서 2004년 19.4%로 두 배나 늘었다. 정부 보조금은? 공사 시절보다 3배 늘어났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대형사고'였다. 민영화가 완료된 첫해인 97년 열차 충돌 사고로 7명이 목숨을 잃었고, 2년 뒤 또다시 31명이 사망했다. 2000년 10월 햇필드에서 대형 탈선 사고가 발생했다. 이 사고로 5명이 사망했고, 철로 시스템 자체가 마비돼 6개월간 사실상 열차 운행이 멈추는 '철도대란'이 일어났다. 2년 뒤인 2002년에도 탈선 사고가 발생해 7명이 사망했다. 이처럼 사고가 발생한 이유는 민영화된 시설공단인 레일트랙(Railtrack)이 비용을 아끼느라 선로유지보수 업무를 2,3차 하청화 시키고, 선로 틈이 발견돼도 방치했기 때문이다. '레일트랙'이 비용을 아끼느라 대형 사고가 이어져 수십명이 목숨을 잃는 동안 민영화된 회사의 주주들은 대박이 났다. 영국 정부가 민영화를 신속히 추진하기 위해 레일트랙의 주식은 저가로 상장됐고, 철도산업의 특성상 사실상 독점산업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높은 수익을 담보할 수 있었다.

민영화의 결과가 철도 사고로 이어지고, 이에 대한 비난 여론이 들끓자 영국 정부는 2002년 시설 부문인 레일트랙을 재국유화했다. 정부 스스로가 민영화 실패를 인정한 결과다. (영국 철도 민영화 부분은 오건호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연구실장이 2009년에 쓴 '영국 철도 민영화 10년'을 참조했다.)

'수상한' MB정부의 '괴상한' KTX 민영화 이유

민영화의 본질은 공공이 운영하기 때문에 경영 효율성이 떨어져 적자가 나는 부분을 민간을 활용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이명박 정부가 추진하겠다는 KTX 부분 민영화는 좀 이상하다.

정부는 2015년에서 2018년에 걸쳐 서울 수서에서 출발해 부산까지 가는 노선과 수서에서 출발해 전남 목포까지 가는 노선을 만들어 이를 민영화하겠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현재만 해도 KTX는 연간 3000억 원 가량의 운영 이익금을 내고 있다. 수서에서 출발하는 노선이 만들어지면 이익은 더 늘어날 수 있다. 연간 2000억 원에 달하는 철도공사의 적자는 새마을호, 무궁화호 등 일반 철도에서 나는 적자 때문이다. KTX의 수익으로 그나마 적자를 메우고 있는 상황이다. 이익이 나는 KTX 노선을 민간에 주겠다는 것은 민간기업엔 특혜를 주고 철도공사의 적자는 국민의 혈세로 메우겠다는 것이냐는 비판이 가능하다.

특히 말만 '경쟁체제 도입'이다. 민영화하겠다는 KTX 노선은 기존 노선과 80%가량 중복된다. 기존 경부선과 호남선에서 출발역만 더 목이 좋은 수서역으로 바뀌는 것 외에는 별반 차이가 없다. 철로를 따라 달리는 철도의 특수성 때문에 이 경우 경쟁은 불가능하다. 그저 겹치지 않게 시간을 나눠 차량을 운행하는 수밖에 없다. 철도가 민영화된 일본에서도 지리적 분할로 경쟁체제가 유지될 뿐, 간선노선이나 동일노선에서 경쟁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게다가 우리나라는 철도 길이가 3000여 km에 불과하다. 운영권을 나누기엔 너무 짧다. 시장 자체가 협소해 나눠 먹을 게 별로 없다는 얘기다. 또 정해진 궤도를 달리는 철도의 특수성 때문에 철도산업 자체가 독점화될 수 밖에 없고, 따라서 민영화 도입이 적절치 않다고 많은 전문가들이 지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명박 정부는 KTX 민영화를 밀어붙이고 있다. 그것도 '빛의 속도'로. 정부는 지난해 연말 대통령 업무보고로 시작된 KTX 민영화를 6개월 내에 사업자 선정을 완료하겠다며 속도를 내고 있다.

여기에 <프레시안>이 최근 단독 입수해 보도한 대우건설의 사업제안서 2건을 겹쳐보면 현 정부가 KTX 민영화를 급작스럽게 밀어붙이는 이유에 더욱 의구심이 생긴다. 대우건설은 동부그룹 등과 컨소시엄을 구성해 민영화하려는 KTX 운영권을 따내려고 했다. 정부의 KTX 민영화 계획이 발표되기 두달 전 작성된 대우건설의 사업제안서를 보면 마치 '예언서'를 읽는 것 같다. 정부와 사전 교감이 있었다거나, 아니면 정부가 대우건설의 제안을 대폭 수용했다고 하지 않으면 설명되기 힘들만큼 대우건설 제안과 정부 계획은 비슷하다. 그래서 현재 정부가 엄청난 속도로 KTX 민영화를 밀어붙이는 게 사실상 사업자를 선정해 놓았기 때문이 아니냐는 생각이 든다.

특히 KTX 민영화를 추진하는 핵심인사들 중 다수가 이명박 대통령의 측근들이다. 소위 '고대 라인'이다. 대우건설에는 TK-고려대 인맥인 서종욱 씨가 사장으로 있다. 또 대우건설의 모기업으로 금융지원 허가를 할 수 있는 산업은행장은 MB 최측근인 강만수 행장이다. 일각에선 현 정부가 KTX 민영화를 고집하는 게 측근 챙기기 등 다른 의도 때문이 아니냐는 비아냥도 나온다. 영국의 레일트랙처럼 민영화된 KTX 노선을 운영하기 위한 회사가 생기면 여기에 측근들이 '낙하산'으로 내려갈 수 있을 뿐 아니라, 영국의 사례에서 봤던 것처럼 이 회사는 사실상 '독점기업'으로 엄청난 이익을 챙길 수 있다. 음모론을 더 확장시켜 보자면 비난 여론 때문에 포기했지만 이 대통령의 퇴임 후 사저 부지로 매입한 곳도 내곡동이었다. 이 인근에 이 대통령의 큰형인 이상득 의원도 적잖은 땅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도됐다. 수서에 KTX역이 생기면 이 인근은 역세권으로 엄청난 개발 이익이 예상된다. 이는 건설자본이 KTX 운영권에 눈독 들이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프레시안>의 보도로 정부와 담합설 등 의혹이 증폭되자 대우건설은 19일 KTX 민영화 입찰을 포기하겠다고 급작스럽게 밝혔다. 불과 한달 전만 해도 서종욱 사장은 기자 간담회 자리에서 동부건설과 컨소시엄을 구성해 KTX 운영 사업에 참여할 계획이라고 말했었다. 정부가 무리하게 국가기간산업이라고 할 수 있는 부분의 민영화를 밀어붙이고, 언론 보도 등을 통해 사업 주체로 이 대통령 측근들이 포진한 회사를 둘러싼 정황이 나오고, 이 회사가 비난 여론에 떠밀려 사업 포기를 선언하는 과정은 현 정부가 정권 초부터 야심차게 밀어붙였던 '인천국제공항 민영화' 논란과 똑같다. 수익률과 서비스, 경영 면에서 모두 세계 수위를 차지하는 인천공항을 뜬금없이 민영화하겠다는 정부 계획 뒤에는 이상득 의원의 아들이 근무했던 맥쿼리가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이 일었고, 논란이 일자 맥쿼리는 인천공항 민영화 사업에 참여할 뜻이 없다고 밝혔다.

대우건설이 사업 참여 포기 의사를 밝히고, 정부도 사업자 선정을 4월 총선 이후로 미루겠다고 하면서 KTX 민영화 사업 자체가 무산될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무리한 시간표로 졸속 추진이 될 수 밖에 없었다는 점에서 정부가 민영화 계획 자체를 포기한다면 다행이다. 다만 한가지 떨쳐버릴 수 없는 의문은 왜 유독 이명박 정부에서 민영화를 둘러싼 이런 소모적인 논쟁이 반복되는가다. 참고로 외환위기의 여파로 김대중 정부에서 포항제철 등 일부 공기업에 대한 민영화가 완료된 후 노무현 정부에서는 단 한건의 공기업 민영화도 이뤄지지 않았다. 국민의 혈세로 유지되던 국가의 자산을 민간으로 이양하는 의미인 민영화는 사회적 합의가 결코 쉽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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