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역사의 산물이자, 심오한 심리의 산물이며, 복잡한 관계의 산물이다. 얼굴을 마주하고 나누는 솔직하고 대담한 대화의 산물이다." (<대화를 잃어버린 사람들>, 황소연 옮김, 민음사 펴냄)
사람이 테크놀로지를 만들고, 테크놀로지는 사람을 길들인다. 테크놀로지가 인간의 공감을 공격 중이다. 미국의 성인들은 평균 6분 30초에 한 번꼴로 휴대폰을 확인한다. 유아용 변기에는 디지털 기기를 담는 구멍까지 있다.
존 매케인 상원의원이 시리아 청문회 도중 좌불안석하다가 아이폰으로 포커 게임을 했다. 사진이 보도됐다. 매케인은 트위터에 딱 걸렸다는 내용의 농담을 날렸다.
"스캔들! 세 시간이 넘는 상원 청문회 중 아이폰 게임을 하다 걸리다. 최악의 상황!"
보스턴에 위치한 대형 로펌은 조종석이다. 젊은 변호사들은 노트북, 컴퓨터나 태블릿PC 여러 대의 휴대폰 등 테크놀로지 장비들을 주르륵 늘어놓은 채 이어폰을 끼고 있다.
"커다란 걸로. 파일럿처럼 말이죠. 그들은 책상을 조종석으로 바꿔 놓았어요."
이들 '파일럿'들은 갖가지 방법으로 얼굴을 맞대는 대화를 회피한다. 사랑도, 이별도 가족 간의 대화조차도 온라인에 의지한다.
언젠가 철학자 에마뉘엘 레비나스는 인간의 윤리는 얼굴의 존재에서 탄생했다고 주장했다. 얼굴은 "나를 죽이지 말라"는 뜻이었다. 그런데 지금 지구상의 저녁 식탁, 거실, 회의장, 길거리 어느 곳이건 새로운 '침묵의 봄(Silent Spring)'이 한창이다.
"내 집에는 의자가 세 개 있다. 의자 하나는 고독을 위한 것이고, 의자 두 개는 우정을 위한 것이며, 의자 세 개는 사교를 위한 것이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
소로는 세 개의 의자를 말했지만, '인간과 기술 간의 인터랙션 연구'를 하고 있는 MIT교수 셰리 터클은 네 번째 의자를 생각한다. 소로는 대화가 무르익으면 손님을 바깥의 자연 속으로 데려갔다.
"네 번째 의자는 철학적 공간이다. 소로는 자연이었지만, 오늘날 우리는 우리 손에 의해 탄생한 제2의 자연, 즉 가상의 인공 세상도 접하고 있다. 우리는 그 세상에서 대화를 위한 공간으로 자처하는 기계들을 만나고 있다. 네 번째 의자는 이러한 의문을 제기한다. '기계와 이야기할 때 우리는 누구인가?'"
첫째 아이가 지난 학기 고등학교 철학 시간에 실존주의를 배우게 됐다. 여러 실험 중 나흘간의 '휴대전화 반납'을 선택했다. 나는 불안했지만, 아이는 행복감을 느꼈단다. 생각과 대화의 자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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