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정부는 대통령제 민주 정부의 한 퇴행적 형태를 가리킨다. 대통령이 자신을 보좌하는 임의 조직인 청와대에 권력을 집중시켜 정부를 운영하는, 일종의 자의적 통치 체제로 정의할 수 있다." (<청와대 정부>, 박상훈 지음, 후마니타스 펴냄) 청와대 정부의 다른 얼굴은 의회와 정당, 내각 등 책임 정치의 중심 기관들이 청와대 권력의 하위 파트너가 되는 것이다. 이런 청와대 정부의 원형은 박정희 정부에서 만들어졌다.
당연하게도 박근혜 전 대통령은 내각과 정당이 중심이 되는 '책임 정부'의 기반을 무시했다. 청와대가 내각을 통할했다. 대통령 비서실장과 수석들의 역할은 정부 전반을 압도했다. 검찰이 통치권의 전면에 나서는 일까지 이르렀다.
애당초 "(박 전 대통령은) 공적 영역도 전부 가족 자산으로 보기 때문에, 일견 매우 공적이라는 착시를 일으키면서 실제로는 아예 퍼블릭이 증발하는 아주 독특한 사사로움이었다. 그에게 공적 헌신을 기대하기는 어려웠다." (<천관율의 줌아웃(암울했던 2012~2107)>, 미지북스 펴냄) 그저 '아버지(박정희)의 나라'를 상속받은 삿된 "소유권 정치"(최재천)일 뿐이었다.
이를 좀 더 품위 있게 해석하자면, '위임 민주주의(delegative democracy)'였다. 의회와 정당이 무력하거나 잘 제도화되어 있지 않은 상황에서 박 전 대통령은 스스로 민주 권력 내지는 국민주권이 자신에게 직접 위임된 것으로 간주해 임의대로 대통령직을 수행했다.
"불행하게도 청와대는 대통령제를 유사 군주정으로 이끄는 역할을 한다. 대통령을 국민주권의 구현자로 여기고, 의회나 정당들로부터 간섭받지 않는 국가 지도자이기를 바란다. 대통령을 대신해 자신들이 모든 것을 관장하고 지휘하지 않으면 일이 되지 않을 것 같은 강박관념은 '청와대가 권력이 되는 정부'를 낳는다." 백마를 타고 나타나는 대통령, 강력한 청와대, 일사불란한 통치 시스템에 대한 염원이 이를 거들었다.
미국 백악관에도 비서실(WHO)이 있다. 청와대 비서실 격이다. 미국 대통령은 급여를 받는 이들 백악관 스텝의 목록을 매년 의회에 제출한다. 2017년 현재, 377명이었다. 미국의 진보적 정치학자들은 이 숫자도 지나치게 많다고 생각한다. 더구나 백악관과 청와대의 권력 운용 실태는 애당초 동등비교가 불가능하다. 미국은 철저한 '책임 정부'다.
그래서 박상훈이 묻는다. 현 행정부는 어떠할까. '책임 정부'일까, '청와대 정부'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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