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지루한 스무날이었다. 그리고 지겨운 스무날이기도 했다. 박원순 변호사가 범야권 단일 후보로 선출되고 난 뒤 무소속 시민후보로 서울시장 선거를 치르기로 최종 결정한 10월 7일부터 당선자가 확정된 10월 26일 자정 한 시간 전까지 그랬다. 마치 이 나라 시민으로서 기본 지능을 테스트 하는 듯이 날마다 쏟아지는 야비한 마타도어에 뇌를 유린당하면서 이제 '배신당한 5년'이 '더러운 대미'로 완결되지 않는가 하는 초조함과 불안스러움을 마치 항상 들고 다녀야 하는 업무 가방처럼 끼고 살아야 했던 스무날이었다.
대한민국 집권 여당이 아예 자원 저격수를 앞세워 시장 후보는 말할 것도 없고 당대표까지 나서서 쏟아내는 이른바 '네거티브 공세'는 막강한 현실권력을 담보로 비상식적인 언사를 마치 상식에 합당한 '검증'인 것처럼 위세를 얻었다. 조금만 생각해 보면 말도 되지 않는 말인데도, 집권 여당과 미모의 여성 후보자가 날을 세워 내미는 터에 그들의 권위와 신뢰에 눌려 한 번쯤은 그들의 참소가 혹여 맞는 것은 아닐까, 내가 알고 있는 것이 틀린 것은 아닐까, 하는 당혹스러움에 과연 무엇이 진실인지를 거듭거듭 자문하고 반문해야 했다. 사실 어처구니없는 비방들이었다.
시민의 지능을 테스트하기 위한 원초적 비방들
박원순 후보가 병역을 기피하기 위해 30년 전 징용에 끌려간 작은 할아버지의 양손으로 자기를 입적하였다고 했다. 그런데 이렇게 병역을 기피하기 위해 호적을 조작했다던 때가 박 후보가 열세 살 때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박 후보는 이미 열세 살 때 장차 병역을 기피하기 위한 준비까지 완벽하게 마쳤다는 것이다.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참소라도 대한민국 여당의 대표까지 거들고 나서면 한 번쯤은 그게 사실이 아닐까 하는 의아심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박 후보가 월세 250만 원짜리 강남 아파트에 산다는 것이 집중적으로 부각되자 보통 시민을 위한 시정을 펼치겠다는 약속의 진정성에 커다란 흠집이 났다. 나는 아주 가까운 젊은 지인이 바로 이 점을 들어 보통 시민들을 위한다면서 하필 강남에서 월세 250만 원짜리 집에 살아야겠냐며, 박원순의 이중성에 대한 의심을 풀지 않는 것을 보고 강한 정당의 마타도어가 얼마나 위력적인가를 세삼 실감했다. 인간 박원순이 과거 벌어들였던 엄청난 수익을 버는 대로 기부하고 자기보다 더 돈이 급한 사람들에게 선뜻선뜻 내주는 대신 다른 전문직 종사자처럼 집안과 자기를 위해서만 쓰고 저축했다면, 강남에서 월세 250만원이 아니라 십 수억 짜리 고급 아파트에 살 수도 있었다는 사실은 아예 은폐되었다. 아무리 기부 의식이 강한 사람이라도 적어도 인생의 낙을 하나는 가질 수 있다고 할 때, 2만 권에 달하는 책을 소장하면서 그것을 보관하기 위해 그 정도 집쯤은 자기 능력으로 건사할 수 있다는 데 대한 최소한의 아량은 40억 원 재산가인 나경원 후보의 진영에서 기대할 수 없었다.
박 후보가 역사문화연구소, 참여연대, 아름다운 가게, 희망제작소 등, 세울 때마다 한국 사회와 국가에 새로운 기풍과 참신한 발상을 보이면서 한국 민족사와 민중사 연구, 시민정치, 기부문화, 그리고 시민적 집단지성 형성 등 그 분야마다 획기적인 업적을 남겼다. 이런 활동을 단지 이상적으로 꿈꾸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적인 활동체로 가동시키는 데 사람과 돈을 모으는 것이 얼마나 결정적으로 중요한 지는 일해 본 사람이면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런 단체들의 돈은 재력가 혼자서 조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뜻에 공명하는 사람들의 협동, 즉 협찬으로 모금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는 것은 단체 활동의 기초에 속하는 상식이다. 보통 시민들이 어떤 일을 하는 것은 항상 이런 협찬의 정신에 입각할 때 가장 건강한 모습을 띤다. 그런데 여당 대표는 이 협찬이 마치 돈 있는 사람들을 상대로 한 강요와 구걸의 행태인 양 흠집을 냈다. 그리고 특히 재벌로부터 협찬을 끌어낸 것이 마치 범죄 집단의 비호를 대가로 거래한 것인 양 온갖 비방을 퍼부었다.
10·26 재보선이 금품 수수와 불법이 판치는 부정부패 선거가 아니었던 것은 분명했다. 그러나 그것은 대의제 민주주의의 근간이 되는 정당이 유권자들의 표를 낚아채기 위해 정신적으로 우리나라 정치공동체의 금도까지 깰 정도로 망가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전형적 '추태 선거'였다. 나경원 후보와 한나라당, 그리고 여당 초선의원들와 외곽 지원자들로 이른바 저격수들은 대한민국의 정치언어를 있는 대로 오염시켰다. 그런 선거전술은 그들이 사용하는 더러운 언어로 경쟁자를 비하하고 싶어하는 자기네 세력의 결집도를 극대화시키는 데 성공하였다. 나아가 박원순 후보에 대한 마타도어를 제대로 검증할 여건을 갖지 못한 상당수 청년 시민들로 하여금 정치에 대한 혐오성 상처를 입히기도 하였다. 하지만 압도적 유권자들, 특히 20대~40대에 이르는 우리나라의 척추세대는 고맙고도 다행스럽게 이런 마타도어에 넘어가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시민들은 어떻게 해서든 항변 의사의 결집을 봉쇄하려는 선관위의 꼼수 앞에서 넌더리를 쳐야 했다. 지지자를 규합하고 확산하는 온갖 방식들이 이런저런 이유로 금지되는 것을 보면서 사람들은 그 말을 알아듣는 자신의 지성을 원망해야 했다.
▲ 박원순 서울시장. ⓒ프레시안(최형락) |
네거티브 공세가 그것을 제기한 쪽, 특히 나경원 후보 개인에게 부메랑으로 되돌아 간 것에 대해서는 더 이상 얘기하지 말자. 중요한 것은 시민후보 박원순을 향해 결집된 극단적 기대와 극악한 비방들 안에 앞으로 이른바 한국 보수세력이 절대 되물릴 수 없는 우리나라 미래 정치에 대한 보편적 지표가 아주 구체적으로 합의되었다는 사실이다.
한나라당은 자신들이 결코 그럴 수 있는 처지에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거의 자해적으로 박원순 후보에 대해 병역 의혹을 제기했다. 그리고 청문회였더라면 박 후보가 결코 청문회를 통과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독기를 부렸다. 박 후보에 대한 병역 의혹이 얼마나 터무니 없는 것인가는 일반 시민이 더 잘 판단하겠지만, 이런 극단적인 비방을 통해 현 집권 여당은 국가에 대한 의무를 다하지 못한 사람은 결코 권력을 잡아서는 안 된다는 원칙에 극단적으로 동의했다. 이것은 곧 그 동안 병역을 비롯해 투기, 위장 전입 등 온갖 의혹을 무릅쓰고 집권당이 국회 청문회에서 통과시켜 준 장관급 인사가 전적으로 잘못 되었음을 공개적으로 시인하였다. 이것이 이번 10·26 재보선에서 한국 보수세력이 자가당착적으로 인정해 준 역설적 동의점이다.
그 다음 한나라당은 박원순 후보가 그의 시민활동 중에 재벌들로부터 협찬을 이끌어낸 것에 대해 극단적인 혐오감을 표시하면서 대중적 공분을 이끌어내려고 몸부림쳤다. 그가 재벌의 협찬을 받은 것이 잘못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나라당은 한국 경제와 사회에서 무소불위의 사회권력을 휘두르는 재벌에 대해 그 어떤 통제와 개혁이 필요하다는 것에 대해 더 이상 강력할 수 없는 동의를 공개적으로 선언한 셈이 되었다. 이로써 이번 재보선을 통해 재벌은 한국 정치판에서 그 어떤 정파로부터도 더 이상 공개적 지원을 기대할 수 없게 되었다. 이것이 이번 재보선에서 재벌정당 한나라당이 자가당착적으로 확약해 준 또 하나의 정치적 동의점이다.
일부 서민에게 박원순 후보는 강남에서 월세 250만 원짜리 집에서 산다는 것도 혐오의 대상이 되었으며, 한나라당은 바로 이런 점을 들어 박 후보가 서민적이지 않으며 이중적이라는 인상을 주게 하려고 전력을 다해 선전했다. 이것은 곧 돈을 번 사람이라면 월세 250만 원짜리 집 정도에서도 살아서는 안된다는 것을 강하게 전제하지 않으면 내세울 수 없는 주장들이었다. 결국 한나라당은 우리나라 사회의 불평등 구조가 부당하며, 그것을 위해서 이른바 강남 부자들에게 무엇인가 손을 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에 그 이상 더 강력할 수 없게 동의해 준 셈이다. 이것이 이번 선거가 확보한 또 다른 동의점이다.
이제 핵심은 정치, 시민정치이다
MB 정권이 집권한 5년은 한 마디로 '배신당한 5년'이었다. 이 정권이 약속한 '전국민 부자 만들기'는 집권하자마자 경제 정세에 대한 무지와 정책적 무능이 뒤범벅이 된 고의적 선거술이었음이 드러났다. 이번 10·26 재보선을 통해 이 배신당한 5년을 되찾을 수 있는 확실한 교두보가 마련된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박원순 자신의 약속은 말할 것도 없고, 그 박원순에게 극악한 비방을 자행한 경쟁세력의 마타도어를 통해서, 우리나라 시민들의 시선이 단지 '배신당한 5년을 되찾는' 수준을 넘어서고 있다는 것이 분명해졌다.
오세훈 전임 시장의 오기로 주민투표가 강행되었던 올해 8월까지만 하더라도, 우리 정치에 해박한 정치전문가들이나 정치평론가들 사이에서 '안철수'와 '박원순'은 살아있는 정치적 실존으로 전혀 포착되지 않았다. 미래는 오직 '박근혜'와 '반(反)-박근혜'의 이항대립으로만 짜여졌다. 하지만 '안철수'라는 이름이 <오마이뉴스>를 탔던 그 순간부터, 시민사회의 기층에서 응결되어 있던 시민, 그것도 청년 시민들의 정치적 용암이 걷잡을 수 없이 분출되고 있다.
이제 핵심은 정치, 그것도 시민정치이다. 박원순과 안철수라는 촉매제가 등장한 현재, 시민정치가 국가의 기조가 될 본격적 움직임은 지금부터 시작이다. 지금까지 이 두 인물을 포함하여 대선 주자로 거론되었던 모든 정치체들은 바로 이 거대한 흐름 앞에서 스스로의 정치적 삶과 죽음을 결정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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