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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달장애인 부모들이 삭발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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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달장애인 부모들이 삭발한 이유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올해 성인 발달장애인 예산, 박근혜 때보다 삭감

지난 4월 2일, 전국장애인부모연대(이하 부모연대) 3000여 가족이 모인 가운데, 209명의 발달장애인 부모와 당사자들이 청와대 들머리에서 눈물의 삭발식을 하였다. 어느새 보름이 넘은 지금도 부모들은 '발달장애 국가책임제'를 요구하며 보름째 천막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부모들은 치매 환자와 가족을 국가가 책임지고 지원하겠다는 문재인 정부의 공약처럼, 발달장애인도 국가가 책임져 달라고 요구한다. 한 집안에 치매 환자가 발생하면, 그 자신 뿐만 아니라 남은 가족들도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해진다. 그래서 요양보험이 도입되었고 치매에 대한 국가책임 필요성을 누구나 수긍한다.

가족의 고통

치매 환자와 유사하게 돌봄과 부양 부담이 큰 이들이 발달장애인이다. 그 부담은 자녀의 일생을 통해 지속되고 부모가 눈 감는 마지막 순간까지 계속된다. 아니 자신의 사후 자녀를 걱정하며 편히 눈을 감지 못하는 게 모든 발달장애인 부모의 심정이다.

▲ 종로장애인복지관 앞에서 천막 농성 중인 부모들. ⓒ박인용

자녀와 함께 스스로의 삶을 포기한 가족들도 있다. 2013년 서울 관악구에서 17세 된 자폐성 자녀를 둔 아버지가 “이 땅에서 발달장애인을 둔 가족으로 살아가는 건 너무 힘들다. 힘든 아들을 내가 데리고 간다”는 유서를 아내와 남은 자녀에게 남기고, 장애인 자녀를 살해한 후 스스로 삶을 마감하였다.

작년 6월 대전에서는 어머니의 고통을 덜어 주려고 발달장애인 동생을 살해하고 자살을 시도한 형제가 5년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자식에 의해 자식을 잃고 남은 자식을 감옥에 두어야 하는 무고한 어머니의 고통에 대해서 우리는 무엇을 말할 수 있을까.

이 모두가 발달장애인에 대한 부양과 돌봄 부담을 온전히 가족에게 짐 지우는데서 온 비극이다. 성인기 발달장애인에 대한 지원이 부족하고 부양의무제가 온존하는 현실이 가족의 정상적인 생활을 가로막는다.

문재인 정부 발달장애인 정책의 한계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 시기 장애인계의 숙원이었던 부양의무제 및 장애등급제 폐지, 장애인 연금 확대, 발달장애인 예산 확대 등의 요구에 적극적으로 답변하였다. 2017년 4월 문재인 후보는 전국장애인부모대와 장애인 교육 및 복지 정책 협약식을 가졌다.

당시 ▲특수교사 법정 정원 확보 등 장애 학생 교육권 보장 외에 ▲발달장애인을 위한 주간활동서비스 제도화 및 활동지원서비스 제공 시간 확대 ▲발달재활서비스 이용 대상 및 지원 금액 확대와 질 관리 체계 구축 ▲장애인 부모 동료 상담 지원, 양육 정보 제공 시스템 구축 및 장애인가족지원센터 운영 지원 확대 등을 약속했을 때, 부모들은 환호했다.

그러나 대선 공약에는 장애 학생 교육권 보장 약속만이 삽입되었고, 성인 발달장애인을 위한 복지 정책 내용은 거의 생략되었다. 게다가 공약집에 '발달장애인'이라는 용어를 언급하지도 않아 발달장애인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물론 대선 공약에는 긍정적인 정책도 있다. 생애맞춤형 소득 보장에 포함된 장애인연금 확대, 장애등급제의 폐지, 장애인 고용지원 강화, 활동지원 및 의료지원 확대, 지역사회 정착을 위한 탈시설지원센터 설치 등이 그렇다. 그러나 복지 분야별 재정소요액을 제대로 다루지 않았고 복지 확대를 위한 증세도 빈약해 실행 의지가 있는지 의문이 뒤따랐다. (☞관련 기사 : 문재인, 재원 방안 준비된 것 맞나?)

문재인 대통령 취임 후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이 '장애등급제 및 부양의무제 폐지 공동행동'의 광화문 농성장을 방문해 장애인 정책에 대한 기대를 불러일으켰다. 장관의 약속으로 장애등급제 폐지, 부양의무자 기준의 단계적 폐지, 장애인수용시설 폐지 등 3개 의제에 대해 민관협의체를 구성하였다.

지난 3월 5일에는 국무총리가 장애인정책조정위원회에서 22개 중점 과제와 70개 세부 과제가 담긴 '제5차 장애인정책종합계획'을 발표하였다. 하지만 정책 수립 과정에서 장애인 당사자의 참여를 통해 의견을 수렴했다고 했음에도, 발달장애인 영역은 관련단체 대표 1명의 형식적 참여만 있었고, 발달장애인 당사자나 부모단체의 의견 수렴 과정도 없었고 정책에도 반영되지 않았다.


제5차 계획에는 부모연대와 협약한 정책안이 거의 빠졌으며, 2015년 이미 시행된 '발달장애인법'을 이행하는 계획도 담겨 있지 않다. 박근혜 정부에서 제정된 발달장애인법에 근거해 수립된 광역 발달장애인지원센터 예산 외에는 이행 예산이 전무해 부모들은 배신감을 느낄 지경이다. 이에 부모연대는 2018년 성인 발달장애인 지원 예산이 85억 원에 불과해 박근혜 정부 때 수립한 예산(90억 원)보다도 삭감된 규모라고 비판하고 있다.

장애인단체들도 장애등급제폐지 법률시행(2019.7), 탈시설지원센터 설치(2019~2020) 등이 입안되어 있으나, 이를 실행하는 예산 계획이 없고 장애인연금 및 수당 확대 등 핵심적인 예산 반영이 2022년까지 유보되어 있어 임기 내에는 실질적으로 달라진 게 없다고 성토하고 있다.

발달장애인을 왜 시설에 가두나?

2015년 발달장애인법이 시행되기 전까지, 국가가 발달장애인 가족들에게 제시한 정책은 '시설화'였다. 시설화(Institutionalization)는 겉으로는 발달장애인에 대한 시설보호지만, 실제로는 장애로 인한 책임을 발달장애인 자신에게 지우는 것으로 발달장애인의 인간다운 삶을 억압하고, 막대한 사회적 비용을 가져온다.

시설화는 장애인에 대한 차별적인 분리정책으로 장애인 가족이 할 수 있는 역할을 포기하게 만들고, 지역사회 안에서의 통합(inclusion)을 가로 막는다. 또한 당사자의 욕구에 거스르므로 비효율적일 뿐만 아니라 지역사회 거주보다 더 많은 비용이 들어간다. 예컨대 서울지역 시설거주 장애인 1인당 비용은 연간 3000만 원을 상회하는데, 지역사회 거주보다 훨씬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하는 셈이다.

전현일 국제발달장애우협회 대표에 의하면, 미국에서 12년에 걸친 탈시설 비용 연구에서 탈시설 초기에는 지역 사회 거주가 시설 거주보다 더 많은 비용이 들었으나, 5년 후에는 그 차이가 좁아지다가 12년 후에는 같아졌다고 한다. 장기적으로 시설 거주보다 적은 비용으로 지역 사회에서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다고 판명되었다.

복지 선진국의 경우 다른 장애와는 다르게 중증장애인, 또는 발달장애인 전담 행정부서가 있고 별도의 예산이 편성된다. 예컨대 미국의 경우 발달장애인이 복지 수혜 대상자의 35%를 차지함에도 케어 예산의 대부분인 75%를 차지한다. 독일은 치매 노인을 비롯해 고령의 노인은 중증 장애인으로 진단되어 장애인 복지 서비스를 똑같이 받는다.

발달장애인을 위한 지원은 다른 장애보다 더 많은 재정이 소요되고 전문적인 서비스가 필요하다. 그래서 우리나라도 복지 특별법으로서 발달장애인법을 이미 제정하였다. 미국 발달장애인법의 지원을 받아 온 전현일 대표는 한국에서도 발달장애인 전담 부서를 별도로 만들고 케어 예산의 75% 이상을 발달장애인을 위해서 투자해야 한다고 의견을 보내왔다.

'발달장애 국가책임'은 자녀를 국가에 떠넘기고 편하게 살겠다는 주장이 아니다. 발달장애인에 대한 돌봄 부담을 국가가 나누어 최소한 가족을 지켜 달라는 것이다. 그것은 자녀를 원치 않는 시설에 보내지 않고, 부모의 역할을 제대로 하고 싶다는 부모된 바람이다. 그리고 자녀를 남겨두고 마음 편하게 눈감을 수 있게 해 달라는 절절한 요구다.

▲ 청와대 앞 1인 시위하는 발달장애인 당사자. ⓒ박인용

발달장애인법 이행 예산 확보해야

'발달장애인법'은 발달장애인의 권리를 보장하고 인간다운 삶을 실현할 수 있는 유일한 법적 장치이며, 이를 이행할 때만 당사자와 가족의 고통을 줄일 수 있다. 부모연대는 지난 정부에서 제정된 발달장애인법에 근거한 예산이 새 정부에서 최소한 단계적으로 실행되어야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발달장애 국가책임제'는 발달장애인 부모들이 입법 운동을 통하여 만든 발달장애인법을 이행하라는 촉구이며, 문재인 대통령이 협약한 발달장애인 공약을 이행하라는 요구다. 부모연대가 요구하는 정책안은 연간 1100억 원의 예산을 반영한 것으로 표와 같다.

▲ <표> 부모연대 2018년 정책 제안 및 예산 요구안.

발달장애인법 제정 당시 국회와 정부 자료를 보면, 매년 565억 원~1112억 원, 5년간 총 4168억 원으로 소요 예산을 추계하였다. 이러한 예산 규모는 초기에 상당한 재정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예산 사용을 효율화하고 발달장애인의 삶의 질을 확보하는 길이므로 과감한 예산 확보가 요구된다.

예를 들어 서울시는 부모단체의 요구를 수용하여 2015년 부터 '발달장애인정책 태스크포스(TF)팀'과 '탈시설정책 TF팀'을 운영하고 2017년 '발달장애인 지원 기본계획'을 세웠다. 계획에 따라 5년간 1100억원 규모의 관련 예산을 실행하고 있는데, 발달장애인법에 규정된 지자체의 책무를 다하는 실천으로 평가된다.

문재인 정부도 성인 발달장애인 지원 예산(현재 85억 원)을 연간 1000억 원 규모로 대폭 확대하여, 부디 발달장애인법에 규정된 최소한의 '국가의 의무'를 준수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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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드는 복지국가>는 시민들이 복지국가 만들기에 직접 나서는, '아래로부터의 복지 주체 형성'을 목표로 2012년에 발족한 시민단체입니다. 건강보험 하나로, 사회복지세 도입, 기초연금 강화, 부양의무제 폐지, 지역 복지공동체 형성, 복지국가 촛불 등 여러 활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칼럼은 열린 시각에서 다양하고 생산적인 복지 논의를 지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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