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지난 11월 29일 화성 15형을 쏘고 '핵 무력 완성'을 선포했다. 고각 발사로 최대고도 4475km에 950km 거리를 53분간 비행했으니 정상적인 발사였다면 1만 2000km는 족히 날아갔을 것이다. 7월에 두 차례 발사한 화성 14형의 예상 사거리는 8000~1만km 정도로 미국 본토의 서부에 도달하는 수준이라면 화성 15형은 미 본토 어디든 도달할 수 있는 능력이다.
무엇보다 주 엔진이 한 개뿐인 화성 12형이나 14형과 달리 화성 15형은 두 개다. 그만큼 추진력이 배로 늘어났다. 외형상으로도 같은 2단인 화성 14형과 비교해 전체 길이가 2m 가량 길어졌고 직경이 커졌다. 직경이 켜졌으니 당연히 내부 체적이 증가해 그만큼 연료량이 늘어나 사거리가 더욱 연장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자체 생산했다는 바퀴 축이 9개인 이동발사차량 역시 덩치가 커진 화성 15형의 이동 및 발사가 용이하도록 설계되었다.
단지 대기권 재진입 기술에 대해서는 추가 검증이 필요하다. 북한이 아직 한 번도 대륙간 탄도 미사일(ICBM)을 정상 각도로 발사해 보지 않았다는 점에서 실제와 동일한 대기권 재진입 환경에서 실험을 해 본적이 없어 일부에서는 북한이 대기권 재진입 문제를 해결하는데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고각 발사와 정상발사 시 큰 차이는 없다. 오히려 고각 발사시가 더 열악한 환경일 수 잇다는 점에서 지금까지 고도 1000km 이상의 수차례 고각 발사를 통해 대기권 재진입 기술과 관련된 유의미한 데이터의 축적과 진전이 있었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지금까지 북한이 단시간 내 ICBM을 하나씩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대기권 재진입 기술 역시 거의 막바지거나 이미 해결해두고 공개만 하지 않았을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아직은 북한이 화성 14형과 15형을 정상적 발사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는 점에서 상당한 기술적 진전에도 불구하고 기술적 완성이라고 평가하기는 시기상조다. 그렇다고 이번 핵 무력 완성 선포 자체를 북한의 조급함이나 단순한 엄포만으로 보기도 어렵다.
분명한 것은 화성 15형은 충분한 크기와 무게를 지닌 탄두를 실고도 미국 본토 전역을 도달할 수 있는 물건임에는 틀림없다. 아직 100점 만점에 100점은 아니지만 핵 무력 과목이라는 성적표에서 90점 이상으로 '수'를 받아들 수 있을 정도라고 보여진다.
핵 무력의 기술적 완결 입구에서 정치적 선언
'핵 무력 완성'이란 핵무기를 가지려는 국가가 그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수준의 능력을 갖게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북한의 핵이 생존 자체를 위한 목적이든 현실 타파를 위한 수단이든 미국을 향하고 있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북한이 핵 무력을 완성했다는 것은 자신이 만든 핵폭탄을 ICBM에 실어 미국에 전달할 수 있는 능력을 보유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충분한 사거리와 탄두 중량에도 불구하고 이번 화성 15형 발사가 미국에 도달할 수 있는 확실한 능력을 보여주었는지에 대한 평가는 여전히 유보적이다.
북한이 화성 14형이든 15형이든 미국 본토 타격이 가능한 완전한 모습을 보여주지 않은 상황에서 핵 무력 완성을 선포했다고 미국이 굴복하고 나올 가능성은 없다. 지금 당장 미국을 압박해 대화국면 전환을 기대하고 대북정책의 변화를 기대하기란 어렵다. 김정은이 그것을 기대하고 핵 무력을 선언했을 만큼 그렇게 어리석어 보이지는 않는다.
오히려 북한은 올해 신년사에서 ICBM 시험발사가 마감 단계에 진입하였다고 언급하였다는 점에서 2018년 신년사를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북한은 2018년 신년사에서 2017년을 핵 무력을 완성한 해로 평가할 것이다. 공화국 창건 70주년을 맞이하는 2018년에는 핵 무력 완성을 강성국가 건설 완성으로 이어나가자는 투쟁구호를 제시하고, 핵 무력 완성이라는 자신감을 내세워 일년 동안 수행해 나갈 분야별 주요 과제를 제시할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북한의 핵 무력 완성 선언은 역대 최강의 제재에도 불구하고 핵 무력을 통해 안보 우려를 해소하고 정권의 정당성과 안정성 확보에 보다 매진하려는 대내적인 정치적 선언으로서의 의미가 우선이 아니었을까 한다. 화성 15형 발사 이후 '민족의 대경사'로 치켜세우며 연일 대대적 선전전과 행사를 벌이고 있는 점에서 내부적 의도가 강하다는 점을 읽을 수 있다.
그렇다고 대외적인 적략적 의도가 없는 것은 아니다. 대외적으로는 핵 무력을 내세워 평화공세로 나올 가능성도 매우 높다. 북한이 평창 동계올림픽에 참가하겠다고 할 수도 있다.
화성 15형 발사 이후 김영남 북한 최고위 상임위원장이 방북 중인 러시아 하원의원단에 "핵보유국 인정을 전제로 미국과 협상을 시작할 수 있다"고 한 것이나 펠트만 UN 사무차장의 방북을 승인한 것을 보면 지금 당장은 아니지만 향후 국면전환을 위해 유리한 환경을 조성하려는 숨은 의도가 있었을 것이다.
'핵 무력의 령마루'를 향해…'모라토리움'은 없다
북한이 핵 무력 완성을 선포했으니 더 이상 핵실험이나 미사일 발사하지 않겠다는 '모라토리움'을 선포할 것이라는 이야기도 나온다. 그러나 자신감이 충만한 북한이 스스로 공개적으로 모라토리움을 선언하고 나올 가능성은 그다지 높아 보이지 않는다. 설령 평창 올림픽에 참가한다고 해도 추가적인 미사일 발사를 중단할 가능성은 그다지 높지 않다. 그 역시 중요한 협상카드인데 그것을 스스로 버리고 나올 이유가 과연 있을까 한다.
북한이 선포한 핵 무력 완성이 진정한 100점짜리 기술적 완결이 아니라면 북한이 먼저 나서서 미사일 시험 발사를 중단하겠다고 이야기할 까닭이 없다. 북한은 핵 무력 완성 선포에도 불구하고 자위적 핵 무력의 질량적 강화를 명분으로 핵 무력의 입구에서 '령마루'를 향해 계속 나아갈 것이다. 기술적 완결을 위해서는 지난 9월 유엔총회에 참여한 리용호 외무상이 이야기 한 것처럼 화성 14형과 15형을 일본 열도를 넘어 6000~7000km 비행해 대기권으로 정상적으로 재진입 후 태평양 상에서 탄두(기폭장치)를 폭발시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
북한은 완성 발표 이후에도 계속되는 시험 발사를 정당화하기 위해 전력화, 대량 생산, 실전배치 및 숙달 훈련 등의 단계로 세분화를 하여 기술적으로 미비점을 보완해 나갈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실패시 '핵 무력 완성 선언'이 무의미하게 될 수 있다는 점에서 2018년 신년사 이전 연내 실시에는 오히려 상당히 신중을 기할 가능성이 높다. 핵 무력 완성 선언에 이어 2018년에는 핵무기 대량생산과 실전배치에 본격적으로 돌입하게 되었음을 선언하고 실제 북한 다수 지역에 ICBM 배치를 의도적으로 노출할 수 있다. 또 보다 많은 핵무기를 만들기 위한 양적 증가를 위해 폐연료봉 재처리 및 농축시설 확장하는 모습을 보여 줄 가능성도 있다.
최근 틸러슨 미 국무장관이 북한과의 첫 만남은 전제조건 없이 진행될 수 있다고 발언한 것은 주목할 만한 변화이다. 그러나 북미간 첫 만남이 이루어졌다고 엄청난 결과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미 트럼프 행정부와 북한 간 접촉 및 대화가 있더라도 서로의 요구사항을 현저히 낮추거나 수용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
그래도 만나면 언젠가는 사이에 작은 물길이 트고 큰 강이 되어 흐른다. 처음부터 큰 강은 바라지도 않는다. 2018년에는 남북이든 북미든 만나 작은 물길이라도 트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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