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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이숙정을 옹호하고 싶은 당신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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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그래도 이숙정을 옹호하고 싶은 당신에게

[기고] CCTV를 몇번 다시 돌려봐도 전 피해자 편입니다

CCTV 다시 돌려보기 1. 이숙정 씨가 한나라당 시의원이었다면

선택이 어려운 갈등의 순간,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기 가장 쉬운 방법은 나머지를 같은 조건이라고 두고 한 가지 변수만 바꿔보는 겁니다. 설 연휴 첫날, 제가 일하는 진보신당 대변인실의 판단이 그랬습니다. (☞ 관련 진보신당 논평 : 이숙정 성남시의원, 의원직 사퇴하고 제대로 처벌 받으라)

이숙정 성남시의원의 주민센터 폭행건과 관련해 논평을 낼 것인가, 말 것인가의 문제는 약간의 망설임이 있는 복잡한 문제였지요. 같은 진보정당 지방의원의 문제지만, 이게 노회찬 고문처럼 정치인 1인으로서 사과할 일도 아닌듯하고, 입장을 낸다면 어떤 입장을 내야할까? 민주노동당도 당혹스러울텐데 비판 입장을 내면 이후 관계가 어색하진 않을까? 지방의원 1인의 일탈 행위를 갖고 꼬투리 잡는 것으로 보이진 않을까?

그래서 우리는 한 가지 조건만 바꿔봤어요. 이숙정 씨가 민주노동당 의원이 아니라 한나라당이나 민주당 지방의원이라면? 답은 간단했지요. 선거 때마다 주민 앞에서 충실한 일꾼이 되겠다며 장담하던 이들이 주민센터 직원에게 군림하며 폭행한 일입니다. 전국민이 인터넷과 뉴스를 통해 접한 일, 이미 민주노동당 대표까지 나서 사과한 일, 설연휴 내내 친척들이 모여 토론을 벌이는 시간 입방아에 오를 일, 입장을 표명하지 않는 게 더 이상한 일이지요.

만약 한나라당 시의원이 그런 짓을 했다면, 우리는 입에 거품을 물고 상욕을 입에 올리며 비판하지 않았을까요? 구제불능 정당이네, 본질이 드러났네. 저런데 투표한 사람들이 반성해야 되네... 진보신당도 마찬가지겠죠? 당대표 안상수가 성희롱 발언을 해 물의를 빚었을 때 한나라당의 그 수많은 성희롱 건을 떠올리며 '성희롱당'이라고 비판한 것처럼 이젠 '폭력정당'이냐며 날선 비판을 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숙정'과 '민주노동당'이 연일 인터넷 검색어 1, 2위를 다투던 설연휴, 그동안 지방의원들이 저지른 사건 사고들을 거론하며 "왜 민노당에만 가혹하냐"는 주장이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주민센터에서 보낸 설선물을 거부하는 과정에서 민원을 불친절하게 대하는 직원의 문제를 따진 것'이라는 이 씨의 인터뷰가 나오면서, 그녀가 진보정당 지방의원로서 활동하는 중 당했을 설움에 대한 동정까지 이러저러한 '이숙정 의원 옹호론'이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같이 이 씨의 행동을 두둔할 생각은 없지만 이건 좀 심한 것 아니냐는 것이었어요.

CCTV 다시 돌려보기 2. 이숙정 씨가 자기를 왕따시킨 동료의원에게 서류를 집어던졌다면... 그녀의 팬이 됐을 겁니다

▲ 이숙정 성남시의원(민주노동당)ⓒ연합뉴스
어떤 분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피해자가 공공근로 여성 노동자인게 무슨 상관이냐고, 너희는 화낼 때 상대방이 누구인지 계급을 확인하고 내냐고. 일반적으로 사람의 분노는 상대방이 자기보다 약자일 때 더 걸러지지 않고 표출되는 법이에요. 우리 머릿속 CCTV 영상 속에 그 여성노동자 자리에 동장이라도 아니 시의회 의장이라도, 아니 동료 의원이라도 앉혀볼까요? 이숙정씨는 하이힐을 벗고 종이를 집어던질 수 있었을까요?

이숙정 씨는 민주노동당 의원으로서 '한나라당이나 민주당이나 공무원들 모두 나를 힘들게만 하고 괴롭히려만 한다'고 했어요. 당선 자체가 쉬운 일이 아닌 소수정당의 지방의원으로서, 지역 토호들로 빼곡한 지방의회에서 진보정당 의원들에게 이런 왕따의 설움은 이제 익숙해 보이기까지 한 슬픈 현실입니다. 진보신당 모 구의원은 의정비 인하 운동을 벌이다 동료 의원들에게 "또라이" 소리까지 들었다고 하죠. 진보정당 모 전 시의원은 명절 때마다 그 거부하고 싶은 선물을 돌려보내기 위해 매년 사비를 지출했다고 합니다.

이 씨가 초선 진보정당 의원으로서 느꼈을 설움과 억울함, 어찌 모르겠어요? 안타깝지만 지금 진보정치의 실력과 대중의 인정이 그만큼이라고 인정하고 자신을 시의회로 보내 준 주민들께 감사하며 감내해야 할 일이었습니다. 그토록 부당한 상황에 노출됐던 이 씨가 만약 자신을 왕따시키며 보수정치의 철옹성같은 태도로 일관하는 시의회 의장이나 동료 의원에게 종이를 집어던졌다면, '너 나하고 맞짱뜨자, 내 뒤엔 노동자, 서민이 있다' 며 하이힐을 집어 들고 서류를 집어던졌다면 전 아마 그녀의 팬이 됐을 겁니다.

이라크 전쟁을 일으킨 조지 부시 전 미국 대통령에게 이라크 기자가 신발을 집어던졌을 때, 이를 '부당한 폭력'이라고 하는 비난한 사람은 별로 없었습니다. 그 나라 민중의 영웅이 됐고, 침략전쟁의 전범에게 복수의 신발을 던진 귀여운 재치를 발휘한 기자로 기억합니다. 이렇듯 폭력은 그 대상이 누구냐에 따라 통쾌한 복수가 될 수도 있고, 천인공노할 행패가 될 수도 있는 겁니다.

제가 감정이입하는 대상은 이숙정 의원이 아니라 피해자입니다

국민이 느낀 분노와 진보신당 당직자인 제가 느낀 충격의 결이 다를 수는 있겠습니다. 저는 이숙정씨가 가해한 폭력의 대상이 공공근로 노동자만 아니었어도 그렇게 분노하지 않았을 거에요. 영상을 통해 확인한 대로 나이 어린 여성만 아니었어도 그토록 화나지 않았을 거에요. 나이 어린, 젊은, 여자, 비정규직은 어디서나 그런 식으로 취급 받아요. 이숙정 씨가 비정규직인지는 몰랐을 거라고요? 맞아요. 하지만 어린 여자라는 건 대번에 알죠.

여전히도 사무실로 걸려오는 전화는 남자 사람을 찾고요, 어린 여성은 주변화되고 간단한 노동 외엔 못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죠. 동료 의원들 사이에서 진보정당 의원이라고 무시당했다고 생각했을 이숙정 씨가 "이젠 동사무소 경리애(!)도 나를 무시하는구나"라고 생각하고 더 분노했을 거라는 생각까지 미치네요. 다른 사람이 무시하는 건 참아도 피해자 같은 낮은(?) 지위의 사람이 무시하는 건 참을 수 없었나 보죠.

CCTV 돌려보기 3. 젊은 여성 노동자가 아니라 중년 남성 노동자였다면

이숙정 씨가 여성이라서 더욱 가혹하게 비판받는다는 지적이 있더군요. 우리 사회의 어떠한 비판이든 여성들에게 특히나 여성정치인들에게 더욱 가혹하긴 합니다. 2008년 TV토론에서 촛불시위를 비판하는 비슷한 내용의 말을 주성영 한나라당 의원이 하는 것과 나경원 한나라당 의원이 하는 건 비난의 급부터 달랐습니다. 주성영 의원은 MB를 위해 몸바쳐 돌아가신(?) '열사'로 희화화 되는 반면, 나경원 의원은 '이 년', '저 년' 등 쌍욕이 막 나오죠. 헌데 이 문제는 그렇게 넘어갈 문제는 아닌 듯합니다.

그럼 반대로 피해자 자리에 남성을 앉혀 볼까요? 전 솔직히 말하면 그 땐 폭력 자체가 성립할 것 같지 않다는 직관을 조심스레 말씀 드릴게요. 만약에 성립했더라도 지방의원 대 주민센터 공공근로 노동자라는 권력적 불균형은 달라지지 않기 때문에 문제에 대한 분석은 다르지 않습니다. 물론 대한민국에서 나고 자란 남성으로서 그 상대가 누구든 폭력의 피해자가됐다는 걸 공개하는 건 '남자답지 못한 일'로 치부되니 이 사건이 공개되지 않았을 가능성도 있네요.

진보정당 의원이라서 가혹한 비판은, 감사히 받아들일 일입니다

이번 건으로 민주노동당 뿐만 아니라 진보신당 또한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거 잘 알아요. 벌써 일선에서 열심히 뛰고 있는 진보정당 지방의원들이 이 일로 인해 피해 받지 말았으면 한다는 생각이 떠오릅니다.

이숙정 씨가 민주노동당 의원이라 가혹하게 비판받는다는 지적도 있었습니다. 이 씨가 한나라당이나 민주당 의원이었다면 '그런가보다' 하고, 어디서 자질 없는 지방 의원이 사고 한 번 제대로 친 걸로 국민은 넘길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반대로 국민이 그만큼 진보정당에 대해 다른 건 몰라도 인간에 대한 존중, 노동자에 대한 존경 등 최소한의 예의를 기대하고 있는 겁니다. 여전히도 전국의 지방의회에서 소수지만 분투하고 있는 진보정당 의원들에게는 그만큼의 기대가 있습니다. 이건 국민이 갖고 있는 미래 정치 세력에 대한 기대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래 저래 머릿속 CCTV를 몇번씩 돌려봐도, 저는 같은 진보정당 당원인 이숙정 씨가 아니라 피해자 편에 설랍니다. 그리고 이숙정 씨가 자신의 잘못을 제대로 뉘우치고 새로운 모습을 보여준다면 지금의 본인에 대한 비판도 사람들 속에서 잊혀질 수 있음을, 그리고 그건 자기 노력의 몫이겠지요.

피해자는 성인인데 왜 아버지가 나서냐는 둥, 피해자가 일부러 이숙정 의원을 무시해 전화를 불성실하게 받았다는 둥, 피해자에 대한 음해도 이 나라 인터넷 문화의 저질도와 비례해 올라오더군요. 당장 설연휴가 끝나면 피해자의 노동조건은 어찌될지, 다시 출근할 엄두도 내고 있지 못하는 상황이 아닐까 조심스레 예측해 봅니다. 그 일을 당하고 나서 화장실에 가서 울었다는 그녀에게,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며 공공근로로 알바를 하고 있었다는 그녀에게, 지금의 상처가 '부디 넘어지지 않고 넘을 수 있는 산이었으면' 하는 바람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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