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경쟁력의 비밀, '대중 흡입력'
박근혜는 적극적 지지자들은 많지만 확산성은 크지 않다고 평가된다. 2007년 한나라당 대선 경선 후 지금까지의 우여곡절에도 불구하고 지지도가 25%~30%를 안정적으로 유지하고 있는 것도 그의 지지자들이 웬만한 정치상황에는 꿈쩍도 않는 충성도 높은 지지자들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충성도 높은 25%~30%의 고정적 지지자들의 존재, 이것이 바로 박근혜 경쟁력의 핵심이고 모든 정치인들이 부러워하는 박근혜 경쟁력의 비밀이다.
정치인은 스킨십에 목숨을 건다. 한 번이라도 손을 잡은 유권자는 절반 이상 지지자가 된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든 유권자의 손을 전부 잡지는 못한다. 시간적, 공간적으로 절대적인 제한이 있어서다. 확산성이 중요한 이유다.
어떤 정치인이건 대중을 지지자로 만들어내는 흡입력을 갖고 있다. 대권주자반열에 오른 정치인들은 대중흡입력의 다양한 요소, 즉 나름의 매력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 중에서도 박근혜의 대중 흡입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충성도 높은 지지층이 그냥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대중 흡입력을 매력이라 한다면 박근혜는 다른 정치인들에 비해 몇 배 더한 매력을 갖고 있다 하겠다.
대중이 박근혜에게 느끼는 매력은 1차적으로 그의 외모와 행동거지에서 비롯되는 것 같다. 50대 후반에 접어들었지만 박근혜는 단아하고 맵시 있다. 서글서글한 미소와 품위 있으면서도 겸손한 태도는 대중에게 사랑받는 스타의 요소를 고루 갖추고 있다. 그는 스타킹이 '빵꾸나서' 창피했던 경험 같은 에피소드를 약간의 여성적 수줍음에 얹어 얘기하곤 하는데 이런 '소탈한' 화법은 적대적 감정을 갖는 사람들의 마음까지 녹여버릴만큼 호소력이 강하다.
▲ 2007년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 당시 시민과 악수하는 박근혜 전 대표 ⓒ뉴시스 |
싸울 때와 물러날 때를 아는 '타이밍 감각'
박근혜의 흡입력은 타이밍에 대한 특유의 감각에서도 잘 드러난다. 정치는 워낙 변화가 많고 유동적이라서 시의적절한 타이밍을 잡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같은 행동, 같은 말에도 충격효과나 파급효과가 극대화되는 결정적 시점이 있다. 박근혜는 이 '결정적 시점'을 포착하는데 남다른 감각을 갖고 있는 듯하다. 미디어법 파동 때 절충안을 제시한 시점이나 세종시 수정안에 대한 본회의 반대토론을 감행한 시점은 발언의 파급효과가 최고점에 도달한 때이다.
타이밍 감각이 진짜 중요한 때는 전쟁과 평화의 갈림길에서다. '지금이야말로 싸울 때'라든지 '지금은 타협할 때'와 같은 전략적 선택은 그 자체도 중요하지만 타이밍을 어떻게 잡느냐에 따라 성패가 결정되기도 하는데 이 대목에서 박근혜의 감각은 김영삼, 김대중 같은 대중정치인의 감각에 근접한다.
YS가 절정의 타이밍 감각을 보여준 것은 내각제 각서 파동 때였다. 3당 합당을 하면서 김영삼, 노태우, 김종필이 내각제 개헌에 합의 했다는 이른바 '내각제 각서'를 민정계가 공개한 직후 YS는 일체의 당무를 거부하고 마산으로 내려가 칩거 투쟁을 벌였다. 조금만 지체했더라면 YS는 권력을 위해 물밑거래도 마다않는 정략 정치인으로 매도당했을 것이다. 이 마산 칩거투쟁에서 승리한 YS는 승기를 잡아 대권까지 거머쥐었다. 절체절명의 위기를 일생일대의 승부처로 전환시킨 타이밍과 대세감각은 과연 YS라 할만 했다.
DJ의 타이밍감각은 영국에서 돌아와 정계은퇴선언을 번복하고 감행한 정계복귀에서 빛을 발했다. DJ는 대권 4수라는 초유의 승부수를 아무도 예측하지 못한 시점에 터뜨렸다. 엄청난 비난이 빤히 예상되었음에도 DJ는 밀어붙였고 정계복귀에 성공했다. DJP연합도 DJ의 빛나는 승부감각을 엿보게 하는 대목이다. 만전에 만전을 기한 1997년 대선에서 DJ는 선거 직전 DJP연합을 이루어냄으로써 한편으로는 DJ대세론을 확산시켰고 다른 한편으로는 사회일각의 '안티 DJ' 분위기를 우회적 방식으로 해소하는데 성공했다.
박근혜도 정치 초년병 시절 이회창과 결별해 탈당했다 복당한 적이 있다. 승부호흡은 선보였으나 진검승부로까지 나아가지는 못했던 셈이다. 이에 비하면 세종시 승부는 제대로 승부를 걸어 끝까지 갔던 경우라고 할 수 있다.
긴박한 승부호흡은 관전자들이 손에 땀을 쥐고 집중하게 만들고 때로는 응원을 넘어 함께 행동하게 만든다. 박근혜는 승부호흡을 아는 정치인이고, 승부를 할 때의 팽팽한 긴장감을 감당할 줄 아는 정치인이다. 이것이 박근혜가 대중의 관심을 흡입하는 또 다른 비결이다.
타이밍에는 승부를 할 때의 타이밍만 있는 것이 아니라 승부를 멈출 때의 타이밍도 있다. 8.21 회동은 박근혜가 싸움을 시작할 때의 타이밍 뿐만 아니라 싸움을 멈출 때의 타이밍 감각도 갖고 있음을 잘 보여준다. 8.21 회동 후 전개된 계파구도의 완화와 바닥에서 불기 시작한 '박근혜 대세론', 더 나아가 친이계의 '반 박근혜 분위기 희석' 등은 박근혜가 싸움을 멈출 때의 긍정적 효과를 어떻게 정치적 성과로 수렴할 수 있는지를 알고 있음을 보여준다.
박근혜는 세종시 이슈에서 싸움할 때의 타이밍과 일단 싸움이 시작됐을 때 리더가 어떻게 강렬한 투쟁의지를 보여주어야 하는지를 보여주었고 8.21 회동을 통해 싸움을 멈춰야 할 타이밍을 어떻게 잡아야 하는지, 그리고 싸움을 멈춘 후 어떻게 상대의 기세를 누그러뜨리고 안정시켜야 하는지를 알고 있음을 또한 보여주었다.
이렇듯 타이밍 감각은 단순히 시점을 선택하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싸울 때와 멈출 때, 나아갈 때와 물러날 때에 걸맞는 행보감각이 필요한 것이다. 박근혜의 타이밍 감각이 대중흡입력을 발휘하는 이유도 그에 걸맞는 행보감각과 결합되어 있기 때문이다.
'무심결'에 나오는 '압축적 화법'
박근혜가 발휘하는 대중 흡입력의 마지막 요소는 그의 화법이다. 박근혜의 화법은 화려하기 보다는 소박한 쪽이고 자극적이기 보다는 무미건조한 쪽이다. 조어를 좋아하지도 않고 장황하지도 않다. 그의 화법은 압축적이지만 일부러 압축한다기 보다는 꼭 필요한 만큼만 말하는 방식이다.
"대전은요?"(2005년 지방선거 유세 중 커터칼에 '테러'를 당한 후 내놓은 첫 마디)
"참 나쁜 대통령"(노무현 전 대통령의 '원포인트 개헌' 시도에 대해)
이런 말은 의식적으로 압축한다고 해서 만들어지는게 아니다. 홍보전문가들이 머리를 짜낸다고 나오는 것도 아니다. 말하는 사람이 골똘하게 생각한 끝에 무심결에 나오는 한마디다.
'무심결에' 나온다는 것이 중요하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무심결에 나오는 한마디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심금을 울리는 이유는 이 한마디에 농축되어 있는 화자의 진정성이 울림을 주기 때문이다. 박근혜의 어법이 압축적이라고 느껴지는 것은 그의 말에 그의 감성과 정치적 판단이 응축되어 있기 때문이다.
박근혜, '충성도 → 확산성'으로 갈 가능성이 있다
정치는 99% 말로 이루어진다. 군사 권위주의시대에는 정치가 때로 폭력이나 정보기관의 위협과 공작에 의해 이루어진 경우도 있었지만 민주주의 사회에서 대부분의 정치는 정치인들의 말에 의해 이루어진다. 권력을 독점하고 있는 대통령의 주요한 통치 수단도 말이다. 적어도 국민을 상대로 통치를 할 때 대통령은 말아닌 다른 수단에 의존하지 못한다. 공무원들이라면 인사권이라는 수단도 있고 이익집단들에게는 법이라는 수단도 있겠으나 국민 전체를 대상으로 할 때는 말아닌 다른 것에 의존할 수 없다.
정치는 고도의 상징행위다. 정치인의 말은 상징행위의 직접적 표현이다. 그러므로 화법과 어법이 대중적 흡입력이 있다는 것은 단순히 말 잘하는 정치인이 아니라 상징적 통치행위라는 정치의 본질에 잘 부합하는 특성을 갖추고 있다는 뜻이 된다. 이것은 정치 지도자가 갖추어야할 가장 중요한 자질과 품성이다.
소통은 진정성이 바탕이 될 때 비로소 가능해지는데 대중적 흡입력이 있는 화법을 구사할 수 있는 정치인은, 그리하여 말의 진정성을 느끼게 만들 줄 아는 정치인은 소통을 통해 더 많은 대중적 지지를 끌어낼 수 있다. 이에 반해 아무리 노력해도 대중의 일체감을 끌어내지 못하고 겉도는 것처럼 느껴지는 화법을 구사하는 정치인이 있다면 그에게 소통은 도달할 수 없는 벽처럼 어려운 일이 될 것이다.
최근 미니홈피, 블로그에 이어 트위터가 정치적 소통의 효과적인 수단으로 떠오르고 있다. 140자 이내의 짧은 문장과 한 두컷의 사진으로 속도감 있게 소통하는 트위터의 핵심은 감성적 교감이다. 실시간 소통이라는 동시성과 현장성을 주 무기로 하는 트위터에서의 소통은 설사 그 소재가 하드한 정치라 하더라도 전달 방식은 소프트할 수밖에 없다.
박근혜는 미니홈피와 블로그, 트위터를 직접 한다. 당연히 매일 매시간 할 수는 없다. 때로 며칠 동안 못할 때도 있고 하더라도 짧은 인사말 이상을 하지 못할 때도 많다. 그래도 미니홈피, 블로그, 트위터를 찾는 사람들은 기분나빠하지 않는다. 비록 짧은 인사 글이라도 박근혜가 직접 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대중의 이 같은 믿음과 기대를 알기 때문에 박근혜는 이 작업 즉, 대중과의 직접적 소통만은 자신이 직접 하려 하는 것이다.
이처럼 머릿 속에 선명하게 그려지는 정황이 대중으로 하여금 박근혜와 감성적으로 교감하는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스타와 팬 사이에 형성되는 내밀한 공동체 정서 같이. 이것이 박근혜 대중성의 비밀이다. 바로 이것이 박근혜 지지자들의 높은 충성도가 확산성으로 전화할 충분한 가능성을 갖고 있다고 평가되는 대목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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