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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만드는 대학의 비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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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만드는 대학의 비극

[기자의 눈] 중앙대 대학 평가 자료 조작 사건, '꼬리 자르기' 안 된다

이 말을 해야겠습니다. "내 이럴 줄 알았지." '중앙대학교 대학 평가 자료 조작 사건'을 보자마자 든 생각이었습니다.

'가짜 자료' 만든 직원이 '의욕 과다'인 이유는?

사건부터 간단히 설명하겠습니다. 지난 6월 8일, 세계적으로 유명한 대학 평가기관 영국의 QS(Quacquarelli Symonds) 사가 올해도 어김없이 세계 대학 순위를 발표했습니다. 그런데 이 명단에 중앙대학교가 빠져있었습니다. 2015년 461위, 2016년 386위로 무려 75위나 껑충 뛰었던 터라 올해 성적이 기대됐었는데 말입니다.

순위표에서 중앙대를 찾을 수 없던 건 등수가 떨어져서가 아니었습니다. QS는 "중앙대학교에 유리한 비정상적인 데이터 흐름을 발견해 올해 전체 순위에서 중앙대학교를 제외했다"고 공식적으로 밝혔습니다.

문제가 된 것은 평가 지표 가운데 하나인 '졸업생 평판도' 부문 자료였습니다. 이 졸업생 평판도 자료는 기업체의 인사 담당자들이 직접 작성하는 게 원칙입니다. 그러나 중앙대는 교직원인 대학 평가 담당자가 대신 작성해 QS에 제출했습니다. 한마디로 '가짜'를 만들어 낸 것이지요. 중앙대 측은 "한 직원이 좋은 점수를 얻으려는 의욕이 과했다"며 해당 직원을 징계 조치할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중앙대 구성원들은 참담하다는 반응입니다. SNS에 올라온 중앙대 학생들의 글을 보니 '쪽팔린다', '자괴감이 든다'는 내용이 주를 이룹니다. 중앙대 총학생회는 14일 "우리 대학은 부끄러운 현실을 마주하게 되었다"는 탄식 섞인 성명을 냈습니다. 그러면서 학교 측이 총장단·기획처장·평가팀장·실무자 등 연석회의에서 약속한 세 가지 사항을 공개했습니다. △총장 명의의 사과문 게시, △해당 실무자, 관리자 인사조치 공개, △재발 방지를 위한 관리체계 보완입니다.

ⓒ중앙대학교 서울캠퍼스 총학생회 페이스북

제가 직접 회의에 참석하지 않았으니 구체적으로 어떤 이야기가 오갔는지는 모릅니다. 그러나 세 가지 공약을 보고 있자니 어쩐지 허전한 감이 듭니다. 이보다 더 근본적인 논의가 필요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입니다.

학교 측은, 혹은 연석회의 참가자들은 이번 사태의 핵심 문제를 한 직원의 '부정 행위'로 보는 듯합니다. 그런데 제 생각은 다릅니다. 이번 사태가 과연 한 직원의 그릇된 윤리의식 때문만으로 벌어진 일일까요.

19일, 중앙대 교수협의회가 성명을 내 총장단 사퇴를 요구했습니다. "이제 우리 중앙대학교는 국내를 넘어 세계적인 비리대학으로 낙인 찍히게 됐다"면서, "언론과 외국기관 등 외부평가에 치중하면서 정작 대학의 근본적인 목적과 내실은 철저히 훼손됐다"고 지적했습니다.

"언론과 외국기관 등 외부평가에 치중하면서 정작 대학의 근본적인 목적과 내실은 철저히 훼손됐다." 저는 이 대목에 이번 사태의 진짜 원인이 담겨있다고 생각합니다.

평가에 목매는 대학, 고통받는 학생과 교수

3년 전, "대학 평가, '등수 놀이'의 그림자"라는 제목의 기획 기사를 썼습니다. 당시 만난 교수와 학생들로부터 "외부평가에 치중하면서 정작 대학의 근본적인 목적과 내실이 철저히 훼손됐다"는 이야기들을 수없이 들었습니다. 이미 지면에 소개된 '하소연'들을 다시 읽어보겠습니다.

"모든 대학이 대학 평가를 중심으로 목표로 움직인다. 취업 안 되는 과는 밀어주지 말아야 한단 얘기가 대학 사회 안에서 공공연하게 나온다. 그러니 철학을 대하는 학생들의 태도도 공격적으로 변한다. 철학 얘기를 한마디라도 하려고 하면, '선비 납셨네, 유토피아 좋죠' 이런 식이다. 대학을 떠나고 싶다."(사회학자 오찬호 작가)

"소위 경쟁력 높인다는 이름으로 학생들의 복지 증진에 힘을 쏟기보다는 지표를 높이기 위해 투자하는데, 정작 학생들에게 돌아오는 게 없다"(서울 소재 A 대학 송진태(가명) 교수)

"학교에서 영어 강의를 늘리려고 별 수를 다 써요. 이름만 영어 강의인 수업이 되게 많아요. 완전 사기죠."(서울 소재 B 대학 김종민(가명) 학생)

각 대학이 대학 평가에 목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 된 지 오랩니다. 국내 모 언론사는 '경쟁 코드'를 심어 각 대학과 국가 경쟁력을 키우겠다는 명분 하에 지난 1994년부터 매년 각 대학을 평가해왔습니다. 취업률, 외국인 교수(학생) 비율, 교수 논문 수, 강의실 수, 평판도 등을 점수로 매겨 각 대학을 줄 세우는 것입니다.

좋은 학생을 모으려는 대학은 순위 높이기에 혈안이 되고, 그야말로 '평가'를 위한 투자에 집중합니다. 그 결과, "취업 안 되는 과는 밀어주지 말아야 한단 얘기가 대학 사회 안에서 공공연하게" 나옵니다. "이름만 영어 강의인 수업"을 개설해 학생들의 불만족을 초래하거나, 한국어문학 수업마저 영어로 수업하는 어이없는 일도 생깁니다. 교수들은 연구 실적 올리랴 강의 준비하랴 이중고에 시달립니다. 강의실 수를 늘리려 쓸데 없는 '유령 건물'을 만드는 일도 허다합니다.

진리의 상아탑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대학은 갈 길을 잃었습니다. 그러니, 대학 평가를 잘 받기 위한 '가짜 자료 제출 사건'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지금의 대학 사회를 보여주는 하나의 징후일 따름입니다. "이럴 줄 알았다"는 탄식이 나올 수밖에요.

▲2014년 대학평가 거부 운동에 참여한 대학생들의 시위. ⓒ프레시안(서어리)

직원 징계를 통해 '꼬리 자르기'하는 것으로는 이번 사태의 재발을 막을 수 없습니다. 해당 직원의 '의욕 과다'를 부른 근본적인 문제를 찾아야 합니다. 대학 평가, 여기에 목 매는 지금의 대학 현실을 돌아봐야 합니다.

"평가가 명백히 존재하는데 외면할 수 없지 않느냐." 각 대학은 이렇게 항변합니다. 오히려 대학이 대학 평가 제도의 피해자라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평가에 동조하며 오히려 결과를 홍보 수단으로 활용해온 사실 또한 부인할 수 없습니다. 각 대학은 '대학 줄 세우기'의 피해자이자 가해자의 얼굴을 하고 있는 셈입니다.

구연상 숙명여대 교수는 <프레시안> 인터뷰를 통해 바로 이 지점을 지적했습니다.

"<중앙일보> 평가는 문제다. 그러나 언론사 대학 평가는 언론사의 권리이다. 이걸 비난할 수는 없다. 나는 대응의 문제라고 본다. 총장들은 이 문제들을 다 알고 있다. 그런데 가만히 있는다. 특히 상위권 대학은 앞장서서 중앙일보를 지지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왜 그럴까. 대학 평가 결과는 총장으로서 명예와 직결된 일이다. 그래서 학생이 어떻게 되든, 우리말이 어떻게 되든, 일단 우리 대학 순위만 올라가면 된다는 식이다. 총장들이 묵인·방조를 하면서 이제 대학 평가 자체가 사회적 권력이 됐다. 누구도 그 권력을 제어할 수 없다. <중앙일보> 평가는 이제 저절로 구르는 마차가 되어버렸다."

지금 중앙대가, 한국의 대학이 만든 것은 '가짜 자료'만이 아닙니다. 가짜 강의, 가짜 대학입니다.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사회에 개혁의 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가짜를 도려내는 게 개혁입니다. 누군가 칼을 들이밀기 전에, 가짜가 되어버린 대학 스스로 개혁의 방향을 찾아야 할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관련기사 : 대학 평가, '등수 놀이'의 그림자

① 고대생들이 <중앙일보> 대학 평가 거부한 까닭
② '등수'에 목매는 대학, '교육'은 나 몰라라
③ "<중앙>을 구르는 마차로 만든 게 누구인가?"
④ SKY 출신 아니면 학벌주의 비판도 못한다?
⑤ "철학 이야기에, '선비 납셨네'?…암울한 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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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어리

매일 어리버리, 좌충우돌 성장기를 쓰는 씩씩한 기자입니다. 간첩 조작 사건의 유우성, 일본군 ‘위안부’ 여성, 외주 업체 PD, 소방 공무원, 세월호 유가족 등 다양한 취재원들과의 만남 속에서 저는 오늘도 좋은 기자, 좋은 어른이 되는 법을 배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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