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대학평가는 대학의 본질을 훼손하고 있습니다. 고려대학교 총학생회는 <중앙> 대학평가를 받아들이지 않겠습니다. 대학을 서열화할 수 있다는 '마음', 대학을 기업화해도 무방하다는 '마음', 모든 대학에 천편일률적인 기준으로 평가해도 된다는 '마음',…. 대학의 본질을 해치는 그 '마음'을 받아들일 수는 없습니다."
지난달 22일 고려대학교 총학생회의 <중앙> 대학평가 거부 선언 이후, 대학가에 대학평가 보이콧 바람이 불었다. 고려대를 비롯해 경희대·국민대·동국대·서울대·성공회대·연세대·한양대 등 서울 소재 8개 대학 총학생회가 나섰다.
이들이 언론사 대학평가를 반대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요약된다. △잘못된 지표로 평가해 대학 교육의 본질을 훼손한다는 것, △지나치게 순위를 강조해 대학 서열화를 더욱 조장한다는 것.
대학평가 거부 선언에 대한 여론 분위기는 대체로 '긍정'과 '공감'으로 모아진다.
대학생들의 거부 선언이 반향을 일으키자, 지난 9일 한 포털사이트에서는 언론사 대학종합평가에 대한 설문을 벌였다. 그 결과, 참가자 3256명 가운데 반대 의견이 2584명, 79%로 636표를 얻은 찬성 의견(20%)을 크게 앞질렀다. 댓글은 '학생들의 용기 있는 결단을 지지한다'는 식의 내용이 주를 이뤘다.
"<중앙> 대학평가가 대학을 몰락시키고 있다"
"대학의 '간판'보다 실력에 주목하는 본지 평가는 교육의 질을 올리고 연구 역량을 강화하려 노력하는 대학을 발굴해 소개한다. 그간 <중앙>이 대학가에 심은 '경쟁 코드'는 학생을 위한 교육 여건 개선과 국가 경쟁력의 근간인 대학 연구력 향상에 기여하고 있다."
이는 <중앙> 대학평가 홈페이지에 올라온 인사말이다. <중앙>은 '경쟁 코드'를 심어 각 대학과 국가 경쟁력을 키우겠다는 명분 아래 지난 1994년부터 매년 각 대학을 평가해왔다. <조선일보>, <경향신문>, <동아일보>가 각각 2009년, 2010년, 2013년 대학평가 시장에 뛰어들었지만, 역사와 영향력 측면에서 <중앙> 평가는 여타 언론사들을 압도한다.
<중앙>이 주목하는 것은 '경쟁'으로 나타난 '성과'다. 각 대학 총학의 잇따른 거부 선언, 그로 인한 부정적인 여론에도 <중앙>은 지난 6일, 결국 예정대로 2014년도 대학평가 결과를 공개했다. 1면에는 "동국·건국·시립대 약진"이라는 제목의 머리기사와 함께 1위부터 20위까지 순위를 정리한 표를 게재했다. 아울러 6·7·8면에서는 기업식 구조 개혁으로 '성공'한 중앙대, 과감한 성과평가시스템 도입 등으로 '소리 없는 체질 개선'을 추구한 동국대 사례 등을 지면에 소개했다. 기사 곳곳에 '실적', '개혁', '평가'라는 낱말이 반복해 등장했다.(☞관련 기사 : "대학 서열화 부추기는 '중앙', '질병' 권하는 언론")
중앙대학교 고부응 교수는 지난해 발표한 논문 '대학 순위평가와 대학의 몰락'에서 <중앙>의 대학평가가 각 대학이 성과에 목매도록 유도하고, 결국 "대학을 몰락시키고 있다"고 주장했다.
"대학 운영진이 대학의 순위를 상승시키기 위해 평가 지표를 확인하고 평가 지표에 맞추어 교수와 학생, 그리고 대학시설을 관리할 때 대학의 사명인 새로운 지식 추구와 지적 성장은 대학의 수행 과제에서 관심거리가 되지 않는다. (…) 교수가 쓰는 논문의 중요성은 그 내용에 있지 않다. 편수에 있다."
고 교수의 주장은 "언론사 대학평가가 대학 교육을 망친다"는 각 대학 총학의 입장과 궤를 같이한다.
<중앙>으로부터 올해 호평을 받은 동국대 재학생 정원빈 총학생회장은 6일 중앙일보 사옥 앞에서 열린 규탄 기자회견에서 "동국대는 오늘 역대 최고 성적인 11위에 올랐다. 국제화 부문이 상승한 결과"라며 "그러나 무분별하게 영어강의를 증설해 학생들은 모국어로 공부하기도 힘든데도 영어 강의를 듣고 있다"고 했다. <중앙>이 내민 평가 기준과 학생들의 평가 기준이 다름을 지적한 것이다.
사실 <중앙> 대학평가에 대한 공개 비판, 반대 운동은 최근에서야 일어난 일이 아니다. 지난 2010년 9월 경희대·고려대·서강대·서울대·숙명여대·연세대·이화여대·한양대 교수협의체 연합회가 대학평가 반대 결의문을 냈다. 같은 해 10월에는 한국대학교육협의회가 전국 대학 총장 명의로 '언론사 대학평가에 대한 대학의 입장'이라는 결의문을 발표한 바 있다. 그러나 이같은 시도들은 잠시 여론의 이목을 끌었으나 실질적인 변화를 이끌어내는 데 실패했다.
고 교수는 <프레시안>과의 통화에서 대학생들의 대학평가 거부 선언에 대해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평가를 거부한다는 것 자체가 대학 교육이 얼마나 피폐해졌는지를 증명하는 일"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그러면서 "더 많은 대학 교육 주체들이 대학평가 거부에 동참해야 한다"고 했다.
김승환 전북교육감 역시 "중앙일보가 2012년 전국시도교육청 평가를 시도했지만 전북교육청이 거부해 무산된 적이 있다"며 "여러분도 참가 대학을 더 모아 더욱 적극적으로 거부 의사를 피력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관련 기사 : "서울대 못 가서 자살…왜 이렇게 사나")
"대학평가 거부가 과연 대학 서열화에 대한 거부일까?"
<중앙> 등 언론사의 대학평가가 대학 교육을 왜곡시키고 있다는 데에는 큰 이견이 없다. 따라서 대학 교육 정상화 측면에서 각 학교 총학의 대학평가 거부 운동은 지지를 얻고 있다. 그러나 이 운동은 대학 서열화 극복 방안 측면에서 볼 때는 다소 회의적인 시각이 따른다.
'대학·입시거부로 삶을 바꾸는 투명가방끈들의 모임(투명가방끈모임)'은 고려대 총학의 '선언' 사흘 뒤인 지난달 25일, "한 언론사의 대학순위 매기기에 대한 비판만 있을 뿐, 대학 서열화를 조장하는 본질적 요소인 획일적 입시제도, 기득권 학생들의 특권의식, 그리고 사교육업체의 대학순위 매기기(배치표)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사람을 서열화할 수 있다는 '마음', 사람을 도구화해도 무방하다는 '마음', 모든 사람을 천편일률적인 기준으로 평가해도 된다는 '마음', 사람을 양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는 '마음'…. 이런 마음들이 우리 사회에서 사라지지 않는 한 입시경쟁 고통, 대학 서열화, 질 낮은 대학교육은 영원할 것"이라고 했다.
언론사 평가에 대한 비판만으론 공고한 학벌주의의 병폐를 말끔히 씻어내기 어렵다는 얘기다.
청소년 인권 운동가 공현 씨는 "학생들 스스로 학벌주의를 깨기 위해 노력하지 않는다면 대학평가 거부 운동이 대학 서열화 반대 의미로 받아들여지기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고려대 총학생회는 이같은 지적을 환영한다는 입장이다.
고려대 총학 측은 "대학평가에 대한 우리의 지적이 기존의 학벌주의를 은폐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라며 "오히려 우리의 지적이 학벌주의, 대학 서열화의 문제에 대한 공론화와 공감을 이끌어내길 바란다"고 밝혔다.
대학평가 거부 운동에 동참한 경희대·동국대·성공회대·한양대 총학생회는 지난 11일 80여 명의 학생과 함께 대학 서열화에 대해 고민하는 교육 포럼을 연 바 있다. 최종운 고려대 학생회장 역시 "대학평가와 대학 서열화 문제를 주제로 토론회를 준비 중이며 투명가방끈모임 회원들을 초청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언론사 대학평가 거부 운동은 병든 대학을 치료할 수 있을까. 이들은 또 학벌주의 사회를 허무는 물줄기를 만들 수 있을까. <프레시안>은 대학평가 거부 운동의 의미와 한계 등을 짚어보고, 바람직한 대학과 대학생의 상을 그려보고자 한다. 편집자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