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역 10번 출구 여성 살해 사건 1주기이자 국제 성소수자 혐오 반대의 날인 17일, 여성이라는 이유로 살해당한 피해자를 기리고 여성 혐오를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기 위해 1000여 명의 시민(주최측 추산)이 강남역 일대를 비롯해 전국 곳곳에 모였다.
27개 여성·성평등 단체가 연합한 범페미네트워크는 강남역 여성 살해 사건 1주기를 추모하기 위해 17일 서울 신논현역에서 추모 문화제를 갖고, 강남대로까지 행진해 여성과 성소수자 차별 금지를 외쳤다.
강남대로 한복판서 "여성 혐오 멈춰라" 구호
이날 오후 7시 신논현역 6번 출구 교보타워 앞은 고인을 추모하기 위해 검은색 옷을 입은 참가자들로 가득했다. 고인의 부모도 추모 문화제에 참여했다.
'우리의 두려움은 용기가 되어 돌아왔다'는 주제로 열린 문화제에 참여한 이들은 오후 7시 35분경부터 마스크를 쓰고 사건이 발생한 노래방 건물 앞으로 침묵 행진을 시작했다. 사건 발생 장소 앞에서 약 10여 분간 묵념으로 고인을 위로한 이들은 곧이어 강남역 10번 출구 앞으로 행진했다.
1년 전과 마찬가지로 10번 출구 앞에 포스트잇을 붙이고 국화를 헌화한 이들은 강남대로로 나가 마스크를 벗고 목소리를 높이는 퍼포먼스를 벌였다. 주최측에 따르면 '살아남은 여성들이 목소리를 낸다'는 의미의 퍼포먼스다.
이들은 이어 오후 8시 25분경부터 구호를 외치며 강남역 4번 출구 앞까지 행진한 후, 신논현역 앞으로 되돌아왔다. 이들은 "살아남은 우리가 세상을 바꾼다", "여자라서 맞지 않는 세상을 만들자", "평등해야 안전하다", "여성 혐오 멈춰라"는 등 각 참여 단체에서 취합한 구호를 외치며 강남대로 1개 차선을 빌려 행진했다. 행진을 지켜보는 적잖은 시민이 이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거나, 어떤 의미의 행진인가 관심을 보였다. 사건을 잘 알고 주위 사람에게 행진의 의미를 설명하는 이들은 물론, 주변 사람에게 관련 이야기를 들은 후 "그런 일이 있었느냐"며 놀라는 시민도 있었다.
행진 구호 중에는 더 구체적 요구도 있었다. 이들은 낙태죄 폐지, 성별임금격차 해소 등도 요구했다. 최근 논란이 되는 군 인권 문제를 꼬집으며 "퀴어라서 감옥 가지 않는 세상을 만들자"는 구호도 나왔다.
약 한 시간여 가까운 시간 행진한 이들은 오후 9시 10분경 신논현역 앞에 집결해 발언 대회를 이어갔다. 이들은 여성으로서 일상적으로 겪는 공포를 나누고 여성주의가 삶에 미친 영향을 이야기하며 공감대를 이어갔다.
전국 각지에서 다양한 행사 열려
이날 행사는 전국 각지에서 열렸다. 부산 서면 레스모아 앞에서는 오후 7시 30분부터 추모 문화제가 열렸고, 대구 대구백화점 앞 광장에서도 저녁 6시 30분부터 고인을 추모하기 위한 거리전시회가 열렸다.
이날 오후 12시에는 여성·인권·시민사회단체 공동행동이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계단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기자회견 참가자들은 1년 전 강남역 10번 출구에 붙은 3만여 장의 포스트잇 문구에서 따온 경구를 그대로 포스트잇 모양 천에 인쇄해 들고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좋아하는 치마를 입고 밤거리를 다니고 싶다' '여성 폭력이 사소하지 않은 사회를 바란다' '위협이 존재하지 않는 세상을 꿈꾼다' 등의 문구가 가득했다.
기자회견에서 이들은 "경찰과 정부는 사건을 조현병 환자의 묻지마 범죄로 규정해, 여성 혐오를 정신장애인 혐오로 바꿨다"며 "여성의 추모 움직임을 혐오하는 온라인 폭력이 자행됐다"고 비판했다.
이어 이들은 오후 3시와 오후 5시에는 각각 신촌 유플렉스 광장과 홍대 걷고싶은거리 앞에서 30분간 침묵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지나가는 시민이 추모의 글을 붙일 수 있도록 현판도 마련했다.
강남역 여성 살해 사건은 지난해 5월 17일 유명 노래방이 위치한 상가 내 주점 종업원 김모(34, 남) 씨가 23세 여성 A씨를 흉기로 살해한 사건이다. 김 씨는 화장실에서 남성 6명이 출입하는 동안 대기하다, 처음 들어온 여성을 살해했다. 당시 경찰은 김 씨의 조현병 경력을 근거로 여성 증오살인이 아니라는 입장을 밝혔으며, 묻지마 범죄 유형에 가깝다고 설명해 여성계의 공분을 샀다.
그 후 1년…얼마나 달라졌나
1주기 추모 문화제에 참여한 이들은 참사 1년이 지나도록 우리 사회 무엇이 달라졌는가를 물었다.
그 사이 전남 신안군 흑산면 흑산도에서 학부형 등 주민 3명이 외지인인 초등학교 교사를 집단 성폭행했다. (2016년 5월 21일) 지난 1월 14일 오전 2시에는 서모 씨(26, 남)가 지나가던 여성 두 명을 돌로 무차별 가격했다. 2015년 기준 성별이 확인된 강력범죄 피해자 중 여성 비율은 89.4%다.
한국여성의전화에 따르면 지난해 남편·남자친구 등 친밀한 관계의 남성에게 살해당한 여성은 최소 82명이며, 살해당할 뻔했다 살아남은 여성은 105명이다. 피해 여성의 자녀나 부모·친구 등이 중상을 입거나 사망한 사례는 51명이다. 지난 15일 한국여성의전화는 '친밀한 관계에 있는 남성에게 살해당한 여성 통계 분석' 자료에서 이같이 밝히며 "경찰청 범죄통계에 따르면 지난 5년간(2011년~2015년) 2039명의 여성이 살해당하거나 살인미수로 살아남아 약 21시간 30분마다 1명의 여성이 살인범죄의 피해자가 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 9일 한국노동연구원이 발표한 '성별 임금격차 해소를 위한 정책과제' 자료를 보면, 전체 여성 노동자 평균임금은 남성의 63.4%다.
지난 2월 발표된 여성경제활동 지수에 따르면 한국의 남녀임금격차는 36.7%로 OECD 최고 수준이다. 유력 대선 후보가 성범죄를 모의한 전력이 드러나도 전혀 문제 되지 않는 게 현실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성평등 공약은 남녀임금격차를 OECD 평균인 15.3% 수준으로 완화하겠다는 내용이다. OECD 평균 수준으로 불평등한 국가를 만드는 것도 쉽지 않은 게 현재 한국의 수준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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