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역 살인사건 1주기를 맞아 정치권에서도 추모와 연대의 목소리가 나왔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SNS에 글을 올려 '해시태그' 붙이기 운동을 제안했다. 원내 정당 가운데서는 정의당이 당 대변인 명의 공식 논평을 냈고, 여성운동가 출신 더불어민주당 정춘숙 의원 등은 '젠더 폭력 방지 기본법(가)' 제정을 준비 중이라며 관심을 촉구했다.
박원순 "성평등, 안전한 사회 첫걸음"
박 시장은 17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성평등이야말로 안전한 사회로 가는 첫걸음"이라며 "서울시에서 '안심 귀가 스카우트', '안심보안관', '안심 택배', '안심이 앱' 같은 정책을 실시하고 있지만, 동시에 성평등에 대한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박 시장은 "'여자라는 이유로 두려움에 떨고 싶지 않습니다', '당신을 도와주지 못해서 미안합니다' (등) 시민들이 포스트잇에 남긴 메시지가 약 3만5000건이었다"며 "서울시 여성가족재단은 이 글을 모아 여전히 간직하고 있고, 여성이 안전한 도시를 만드는데 중요한 자료로 활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박 시장은 이어 "기록해야 기억할 수 있고, 기억해야 성찰할 수 있다. 우리가 함께 성찰해야 다시는 이런 사건이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라며 "여성,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차별과 편견을 공존과 사랑의 정서로 바꿔내야 한다. 서로에 대한 존중과 믿음을 동력 삼아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가야 한다"고 강조하고 "저도 서울시도 그 길에 함께 하겠습니다"고 덧붙였다.
박 시장은 "강남역 여성 살해 사건 1주기를 맞아 '우리의 두려움은 용기가 되어 돌아왔다'라는 추모 문화제가 열린다고 한다. 함께 하는 걸음의 일환으로 저도 해시태그를 달아 본다"며 "여러분도 해시태그와 함께 동참의 메시지를 적어주시는 건 어떨까"라고 시민들의 참여를 제안했다. 이 해시태그에는 영화감독 변영주 씨와 작가 손아람 씨 등이 참여했고, 정치권에서도 더불어민주당 남인순, 권미혁 의원 등이 참여했다.
한국여성단체연합 상임대표를 지낸 여성운동가 출신인 남인순 의원은 이 해시태그와 함께 올린 글에서 "새벽 1시에 밖에 있었던 것도, 혼자 화장실을 간 것도, 여자로 태어난 것도, 어느 것도 고인의 잘못은 없습니다"라는 추모 메시지를 인용하며 "1주기를 맞았지만 피해자 가족들의 슬픔은 여전할 것이다. 피해자와 가족들께 다시 한 번 추모와 애도의 마음을 전한다"고 밝혔다.
남 의원은 "이 사건을 계기로 한국 사회에서 '여자'라서 맞을 수 있고, 심지어 죽을 수도 있는 끔찍한 일들이 발생한다는 점을 다시금 깨닫게 되었고, 여성들이 겪고 있는 차별과 폭력이 폭로되기 시작했다"며 "또한 이 사건을 목격한 우리의 슬픔과 분노는 두려움에 굴하지 않고, 폭력에 압도되지 않고, 여성들이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만들자는 정치적인 행동으로까지 나아갔다"고 평가했다.
남 의원은 "강남역을 뒤덮었던 포스트잇, 신촌 등지에서 진행된 필리버스터처럼 증언하고 공론화시켜야 한다"며 "성차별을 이해하고 성평등을 지향하는 것이 여성뿐 아니라 남성들도 규정된 성 고정관념으로부터 해방시켜주고, 우리가 우리 원래 모습대로 살 수 있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성평등한 사회를 만들어가기 위한 노력을 모아가야 할 때가 지금"이라고 강조했다.
남 의원은 "지난 대선 기간 동안 문재인 대통령과 민주당은 여러 제도적 개선책을 준비하고 발표했는데, 반드시 실천하겠다"며 "앞으로 여성과 약자들이 폭력에 노출되지 않도록 성평등 인식을 확산하고 젠더폭력방지국가행동계획을 수립하는 등 국가 차원의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했다.
정춘숙·권미혁 등 "젠더폭력방지기본법(가) 제정 준비 중"
한국여성민우회 대표를 지낸 권미혁 의원도 '우리의 두려움은 용기가 되어 돌아왔다' 해시태그를 단 글을 올려 고인의 명복을 빌면서 "박근혜 정부는 '여성 대상 강력범죄 및 동기 없는 범죄 종합대책'을 마련했지만 (이는) 공중화장실 문제, 치안 강화에만 집중했지 근본적으로 여성과 사회적 약자에 대한 혐오범죄와 폭력을 근절할 수 있는 해결책은 아니었다"고 지적했다.
권 의원은 "스토킹, 인신매매, 데이트 폭력, 사이버 성폭력, 여성에 대한 증오범죄 등 점점 다양해지는 여성 대상 폭력 문제 해결을 위해 우리 사회 모두 힘을 모아야 할 때"라며 "문재인 정부는 대선 공약을 통해 '지속 가능하고 성평등한 대한민국'을 약속했다"고 강조했다.
권 의원은 구체적으로 "젠더 폭력으로부터 안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젠더 폭력 방지 기본법(가)' 제정, 가정폭력 피해자 안전과 생존권 보장, 성매매 여성 비범죄화 및 성 착취 근절, 디지털성범죄·스토킹·데이트폭력 처벌강화 등 여성 폭력 근절을 위한 정책을 약속했고, 성평등위원회 설치, 성평등 및 인권교육 강화, 공공부문 여성 대표성 확대 등 실질적 성평등사회를 약속했다"고 열거하면서 "저 역시 문재인 정부의 성평등 정책이 성공적으로 실현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한국 여성의 전화' 상임대표를 지낸 정춘숙 의원은 이날 국회 기자회견을 열어 '젠더 폭력 방지 기본법(가)' 제정 계획에 대해 밝혔다.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간사인 정 의원은 강남역 사건에 대한 시민사회의 대응에 대해 "여성을 차별하는 사회구조 전반에 대한 문제 제기였고, 성평등한 사회로 변화해야 한다는 강력한 요구"라고 의미를 부여하며 "문재인 대통령은 '젠더 폭력으로부터 안전한 사회를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그 중 첫 번째 공약인 '젠더 폭력 방지 기본법(가)'은 한국여성의전화에서부터 제안해 온 입법 과제로, 이미 법안 발의를 위해 관련 단체들과 논의를 시작했고 내용을 구성 중"이라고 설명했다.
정 의원은 이와 함께 △젠더 폭력 방지 기본계획 및 연도별 수행 계획 수립 근거 마련, △젠더 폭력 방지 정책의 실질적 근거가 될 일관성 있는 국가 통계 구축, △젠더 폭력의 특수성이 반영된 피해자 지원 시스템 마련, △폭력 예방 교육 제계 재정립, △'성평등과 인권'을 공교육 정규 과목에 편입, △증오범죄, 데이트폭력, 디지털 성폭력 등 피해자 보호 체계 강화, △젠더 폭력 범죄자 처벌 강화와 2차 피해 최소화 대책 마련 등을 정책 과제로 들었다. 하겠습니다.
정 의원은 "여성에 대한 차별과 혐오로 인한 여성폭력·살해사건은 끊이지 않고 있다. 검찰청 자료에 의하면 성별이 확인된 강력 흉악범죄 피해자 중 여성 비율이 89.4%(2015)로 여성 안전은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다. 여성들에게는 '모든 곳이 강남역'"이라고 문제의 심각성을 강조하며 "여성 혐오범죄는 여성만의 문제가 아니라 혐오와 차별에 노출된 모든 소수자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정 의원은 "박근혜 정부는 강남역 여성 살인사건을 '묻지마 사건'으로 규정하고, 공중화장실 남녀 분리, 정신질환자에 대한 관리 강화 등을 대책이라고 내놓았다"며 "국가는 여성 인권 보장의 책무를 가지고 있는데 사건의 본질을 왜곡하고 우리 사회 여성에 대한 폭력과 혐오의 심각성을 은폐하고 있는 것"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정의당 "1년 지난 지금, 공격·혐오 크게 달라지지 않아"
정의당은 이날 원내 정당 가운데 유일하게 대변인 논평을 내어 "강남역 여성 살해 사건은 한국 사회에서 여성들이 어떤 위치를 갖고 있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줬다"고 짚으며 "사건의 원인을 둘러싸고 '묻지마 살인'과 여성혐오에 대한 논쟁이 일었고, 이후 잠재되어 있던 여성들의 목소리도 함께 커져 갔다"고 평가했다.
추혜선 정의당 대변인은 "1년이 지난 지금, 여성을 비롯해 사회 전반에 뿌리내린 약자에 대한 공격과 혐오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문제 의식은 짙어지는데, 우리 사회의 해결 의지는 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하며 "사건 1주기를 맞아, 정치권과 국민 모두가 우리 사회에 드리워진 다양한 혐오의 원인과 여기서 파생되는 범죄 대책을 더 심도 있게 논의해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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