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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대북정책, 출발이 나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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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대북정책, 출발이 나쁘지 않다

[한반도 브리핑] 이제는 북한이 '전략'적으로 인내 할 때

고비를 넘겼지만, 안심하기는 이르다. 언제든지 또 고비가 올 수 있다. 봄이 와도 봄같이 않았던 지난날과 다르지만, 여전히 한반도의 봄은 살얼음판이다. 미중 정상회담이 끝나고, 트럼프 정부의 대북정책이 윤곽을 드러냈다. '최대의 압박과 포용'(Maximum Pressure and Engagement). 새로운 접근법이라고 주장하지만, 과거의 실패한 흔적도 겹쳐있다.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최대의 압박과 포용

트럼프 정부는 두 달 이상의 대북정책 검토를 끝냈다. 구체적이지 않지만, 방향은 분명하다. 대북정책의 목표는 북한의 핵 위협을 종식하는 것이다. 북한의 정권교체를 추구하지 않겠다고 분명하게 말했다. 대북정책의 목표가 '북한문제'가 아니라, '북핵 문제'라는 점은 주목할 만 하다. 인권문제를 비롯한 도덕적 접근의 중요성은 약화될 것이다. 북핵 문제를 해결하려면 김정은 정권을 상대할 수밖에 없다.

그럼 어떻게 북한의 비핵화를 추진할 것인가? 트럼프 정부의 외교정책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힘을 통한 평화'다. 과거 레이건 행정부 시대의 구호다. '경제와 군사적' 힘을 통한 평화는 국제협력이 아니라 미국의 일방적 주도를 강조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과거처럼 'UN을 통한 접근'을 시간 낭비라고 생각한다. 시리아 폭격이 결정되는 과정을 보면 알 수 있다.

물론 북핵 문제는 좀 다르다. 트럼프 정부는 한반도에서 '군사적 해결이 잃을 것이 많다'는 점을 이해했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 주석을 만났을 때,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 문제가 간단치 않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고 말했다. '쉽지 않은 문제'라고 조금씩 깨달아 가는 것은 긍정적이다. 문제가 복잡하면, 해법 또한 단순하지 않기 때문이다.

트럼프 정부가 고심해서 내놓은 대책은 '최대의 압박과 포용'이다. 목적은 물론 북한을 회담장으로 데려오는 것이다. 여기서 'Engagement'라는 단어의 뜻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 개념은 원래 클린턴 정부의 외교정책에서 사용했다. 개입해서 미국의 영향력을 확장(Engagement and Enlargement)한다는 뜻이다.

김대중 정부는 이 개념을 햇볕정책의 기본원리로 삼았다. 서독의 동방정책에서 사용했던 '접촉을 통한 변화'라는 개념과도 일맥상통하다고 판단했다. 그런데 'Engagement'를 번역할 때, 개입은 너무 공격적이고, 관여는 뜻이 잘 전달되지 않아, 포용이라는 단어를 선택했다.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는 포용정책을 영어로 'Engagement policy'로 표현했다.

그러면 트럼프 정부가 포용정책을 선택한 것일까? 우리가 아는 그 포용정책 말이다. 포용정책에 대한 편견만큼이나 성급한 기대는 하지 않는 것이 좋다. 포용정책은 알고 보면 외교의 기본이다. 접촉을 해야 상대의 의도를 파악할 수 있고, 나의 의도를 전달할 수 있고 그래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당연히 그 결과는 나의 이익을 확대하는 것이다. 그래서 Engagement라는 개념은 새로운 접근이 아니다. 소극적이지도 않고, 부드럽지도 않고, 유화적이지도 않다. 오바마 정부도 Engagement의 필요성을 부정한 적이 없다.

▲ 지난 7일(현지 시각) 미중 정상회담이 열린 플로리다 주 마라리고 리조트에서 도널드 트럼프(왼쪽) 미국 대통령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악수를 나누고 있다. ⓒAP=연합뉴스

트럼프 정부의 중국 역할론 : 오해와 기회

물론 트럼프 정부에서 '포용'은 나중이고, 우선은 '최대 압박'이다. 겁을 줘서 흥정을 유리하게 하겠다는 생각이다. 압박을 어떻게 할 것인지는 미지수다. 우선적으로 트럼프 정부는 '중국이 압박을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무역 현안을 양보해서라도 중국이 북한을 압박해서 북핵 문제를 해결했으면 한다.

중국이 협력하지 않으면, 트럼프 정부는 독자적으로 압박을 하겠다는 입장이다. 예를 들어 북한과 거래하는 중국기업을 제재하는 '세컨더리 보이콧'(secondary boycott) 같은 것 말이다.

'중국역할론'과 '미국 독자제재론'은 정반대의 정책이다. 세컨더리 보이콧으로 겁을 주려면 미중 양국의 무역 분쟁을 감수해야 한다. 세컨더리 보이콧을 소극적으로 집행하면 효과가 없다. 북중 양국의 무역거래는 아주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고, 소비재를 거래하는 중국기업은 '글로벌 기업'이 아니기 때문이다. 간단한 문제는 아니다.

중국은 우선적으로 트럼프 정부의 '중국 역할론'을 반길 것이다. 북한 문제를 미중 양국이 협력해서 풀어가는 것이 나쁘지 않을 것이다. 다만 중국이 그럴 능력이 있느냐는 다른 문제다.

트럼프 정부는 중국의 역할을 과대평가하고 있다. 1866년 미국의 상선 제너럴셔먼호가 대동강에서 불탔을 때 미국이 청나라에 항의하듯이, 혹은 1968년 미국 정보함 푸에블로호가 원산 앞바다에서 나포되었을 때 미국이 소련에 사태 해결을 촉구하듯이, '중국 역할론'은 오해와 편견의 결과다. 중국은 주선하고 조정하고 중재할 수 있지만, 북핵 폐기의 상응조치를 제공할 수 없다. 어떻게 중국이 북한의 안전보장을 제공하겠는가?

중국 입장에서 '중국 역할론'은 장기적으로 부담이지만, 단기적으로 기회다. 중국은 미국과의 대화를 계속하면서, 미국이 북중 관계 역시 간단치 않다는 점을 이해하기를 바랄 것이다. 중국 입장에서 양국 지도자가 북한의 비핵화라는 공통의 목표를 갖고 긴밀하게 대화를 나누는 현재의 상황은 기회다. 지도자 차원의 신뢰가 쌓이고 외교관계가 깊어지는 것이 중국은 나쁠 것이 없다고 판단할 것이다.

인내의 약점과 강점

'최대 압박과 포용' 정책을 보고 미국 민주당 쪽 전문가들은 의문을 제기한다. 새로운 정책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그들은 오바마 정부의 정책과 뭐가 다르냐고 묻는다. 오바마 정부 역시 '제재를 강화해서 북한을 회담장으로 데려오려고 노력했다'는 점을 강조한다. 트럼프 정부가 '최대압박'의 구체적인 정책으로 제시하는 세컨더리 보이콧을 비롯한 금융제재 역시 오바마 정부에서도 검토했던 수단이다.

그러나 오바마 정부와 트럼프 정부의 차이는 확실하고 분명하다. 결정적 차이는 인내심이다. 트럼프 정부 인사들은 한목소리로 '전략적 인내'는 실패했고 끝났다는 점을 강조한다. 트럼프 정부가 오바마 정부의 '전략적 인내'라는 개념에서 중시하는 것은 전략이 아니라, 인내다. 북핵 위협을 임박했다고 보기 때문에, 인내할 여유가 없다는 입장이다.

트럼프 정부가 북핵문제를 최우선 과제로 인식하는 것은 환영할 만하다. 다만 인내심이 부족한 점은 불안하다. 북한이 트럼프 정부의 특수성을 이해해야 할 것이다. 북한이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해서 과거처럼 협상력을 높이기 위해 일단 억지력을 강화하자고 생각한다면, 한반도 정세는 언제든지 악화될 수 있다. 지금 북한에게 필요한 것이 바로 '전략적 인내'다. 중국이 강력하게 주장하는 '일단 잠시 동안이라도 가만히 있어봐라'는 요구를 받아들여야 한다.

북핵 협상은 쉽지 않다. 'Engagement'의 수많은 사례와 비교해 보면 이 문제가 얼마나 복잡한지 알게 될 것이다. 과거의 북핵 협상은 결과적으로 실패했다. 실패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지를 좀 더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대타협(Grand Bargain)으로 부르는 '한방의 협상'은 일방적이거나 비현실적이다. 북핵문제는 관계가 달라져야 하고, 관계는 금방 좋아지지 않기 때문이다.

앞으로 트럼프 정부의 북핵 문제에 대한 인식은 계속 변화하고 달라질 것이다. 이념적 편견에서 자유롭다는 점은 확실한 장점이다. 장사꾼의 지혜에서 가장 빛나는 것은 실용이다. 이익이 되면 하고, 이익이 없으면 안하는 것이다. 북핵 문제는 실용적 접근을 유지할 수 있으면 얼마든지 출구를 찾을 수 있다.

북핵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과정에서 트럼프 정부에게 이익의 구조를 제시하는 것은 한국 차기 정부의 과제다. 북핵 문제를 둘러싼 상황이 빠르게 변한다. 과거와 많이 달라졌다. 아주 길고 어두웠던 터널을 벗어날 수 있을까? 너무 서두르지만 않는다면, 북핵 문제의 성격을 이해한다면, 과거의 실패에서 교훈을 찾을 수 있다면, 분명 출구를 찾을 수 있다. 트럼프 정부의 출발이 그렇게 나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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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철

김연철 인제대학교 통일학부 교수는 성균관대학교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이후 삼성경제연구소 북한연구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에서 활동했으며 2004년 7월부터 2006년 1월까지 통일부 장관 정책보좌관을 역임했습니다. 저서로 <냉전의 추억>, <북한경제개혁연구>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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