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권이 끝났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대한민국 헌정 사상 최초로 탄핵당한 대통령이 됐다.
3월 10일 오전 11시 헌법재판소는 대심판정에서 재판권 전원 일치 의견으로 박 전 대통령 파면을 결정했다. 이로써 국회의원 234명이 가결시킨 박 전 대통령 탄핵은 최종 확정됐다. 박 전 대통령은 선고 즉시 파면된다. 헌정 사상 최초다.
헌정 사상 최초 대통령 파면
예상보다 짧은 시간이었다. 당초 언론은 탄핵소추 사유가 13가지(이는 헌법재판소의 준비변론 기일에서 5가지 쟁점으로 압축됐다)에 이른다는 점을 근거로 선고까지 약 한 시간가량 걸릴 것으로 내다봤다. 하지만 실제로 걸린 시간은 23분이었다. 재판관들은 선고 직후 곧바로 퇴청했다.
박 전 대통령 파면 사유는 최순실의 국정 개입이었다. 이정미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은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며 "헌법상 성실한 직책 수호 의무 및 성실 의무를 위반했다"고 밝혔다.
이 권한대행은 "피청구인(박 전 대통령)의 행위는 최서원(이하 최순실)의 이익을 위해 대통령 지위와 권한을 남용한 것으로 공정한 직무 수행이라고 할 수 없으며 헌법과 국가공무원법, 공직자윤리법을 위배한 것"이라며 "재단법인 미르과 케이스포츠설립 등을 통해 최순실의 이익 행위에 직·간접적으로 도움을 줘 기업 재산권 침해, 기업 경영 자유를 침해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피청구인의 지시 및 방치에 따라 직무상 비밀에 해당하는 많은 문건이 최순실에게 유출된 점은 국가공무원법 비밀 엄수 의무를 위배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헌재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핵심인 박 전 대통령과 최순실의 공모 및 직권남용을 중대 헌법 및 법률 위배 행위로 판단한 것이다.
헌재는 "대통령은 헌법과 법률에 따라 권한 행사는 물론, 공무수행 결과를 투명히 공개해 국민의 평가 받아야 한다"며 "그러나 피청구인은 최순실의 국정 개입 사실에 관한 의혹 제기를 비난했고, 이로 인해 국회 등 헌법기관의 견제나 언론 감시 장치가 제대로 작동될 수 없었다"고 평가했다. 이어 "피청구인은 미르와 케이스포츠 설립, 플레이그라운드와 더 블루케이, KD코퍼레이션 지원 등을 통해 최순실의 사익 추구에 관여하고 지원했다"고 법 위배 경과를 설명했다.
헌재는 "피청구인의 헌법과 법률 위배 행위는 재임기간 내내 지속됐고, 국회와 언론 지적에도 사실을 은폐하고 관련자를 단속했다"며 "그 결과, 피청구인 지시에 따른 안종범, 김종, 정호성 등이 부패 범죄 행위로 구속되는 중대 사태에 이르렀다"고 설명했다.
미국의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의 사례가 떠오른다. 닉슨 전 대통령은 워터게이트 사건을 은폐하려 하다가 탄핵 소추에 몰렸고, 결국 자진 사임을 택했다. 박 대통령이 법률 위배 행위를 해놓고도 '은폐'한 것을 헌재가 지적한 것은 의미심장하다.
헌재는 특히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공정한 수사를 위해서도 파면이 불가피하다고 내다봤다.
헌재는 "피청구인의 위법 행위는 대의민주주의와 법치주의 훼손으로, 피청구인은 대국민담화에서 진상규명을 위해 수사에 최대한 협조하겠다고 했으나 검찰과 특검의 조사에 응하지 않았고, 청와대 압수수색도 거부했다"며 "피청구인의 일련의 언행을 보면 법 위배 행위가 반복되지 않도록 해야 할 헌법 수호 의지가 드러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헌재는 "이는 국민의 신임을 배반했으므로, 헌법상 용납되지 않을 중대 법 위배 행위"라며 "헌법 질서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과 파급 효과가 중대하므로 피청구인을 파면함으로써 얻는 헌법 수호 이익이 압도적으로 커, 재판관 전원 일치 의견으로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고 밝혔다.
세월호 사태는 탄핵소추사유로 인용 안해
다만 헌재가 탄핵 소추 사유 전부를 인용한 것은 아니다. 헌재는 박 전 대통령의 인사권 남용 의혹, <세계일보> 탄압 의혹, 세월호 사건 시 성실 의무 위배 여부는 탄핵 사유가 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문화체육관광부 공무원에 관한 부당한 인사권 남용 의혹에 관해 헌재는 "이 사건의 증거를 종합해도 피청구인이 최순실의 사익추구에 방해됐다는 이유로 인사 조치를 했다고 보기는 부족하다"며 "유진룡 전 문체부 장관의 면직 이유나 김기춘 비서실장이 6명의 1급 공무원으로부터 사직서를 제출받은 이유 역시 분명하지 않다"고 밝혔다.
'정윤회 문건' 유출 및 보도로 인한 <세계일보> 압력 의혹에 관해서는 "<세계일보>가 정윤회 문건을 보도한 사실과 피청구인이 이런 보도에 관해 '외부 유출은 국기 문란 행위고 검찰이 진실을 밝혀야 한다'며 문건 유출을 비난한 사실은 인정된다"면서도 "이 사건의 모든 증거를 종합해도 <세계일보>에 구체적으로 누가 압력을 행사했는지 분명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특히 세월호 참사 당시 박 전 대통령이 업무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점을 탄핵 사유로 인정하지 않은 부분은 앞으로도 일부 논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세월호 7시간 의혹' 규명 여부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헌재는 "국가는 개인이 가진 불가침의 인권을 보호할 의무가 있고, 피청구인은 국가가 국민의 생명과 신체 안전을 보호할 의무를 충실히 이행할 수 있도록 권한을 행사하고 직책을 수행해야 할 의무를 부담한다"고 전제했다.
하지만 "국민 생명이 위협받는 재난상황이 발생했다고 해 피청구인이 직접 구조 활동에 참여하는 등 구체적이고 특정한 행위 의무까지 바로 발생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어 헌재는 "피청구인은 헌법상 대통령으로서 직책을 성실히 부담할 의무를 지니지만, '성실' 개념은 상대적이고 추상적이어서 탄핵소추사유가 되기는 어렵다"며 "세월호 참사 당일 피청구인이 직책을 성실히 수행했는지 여부는 탄핵 판단 대상이 아니"라고 설명했다.
헌재, 고충 토로
헌재는 이번 탄핵 심판의 역사성과 중대성에 관해 큰 고심을 했다고도 밝혔다.
이 권한대행은 "저희 재판관들은 지난 90여일간 이 사건을 공정하고 신속하게 해결하기 위해 온 힘을 다했다"며 "저희 재판관들은 휴일을 제외한 60여일간 매일 재판관 회의를 진행했고, 그간 세 차례의 준비기일과 17차례의 변론기일을 열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증거 조사된 자료는 4만8000여쪽에 달하며 당사자 외 분들이 제출한 탄원서 등 자료도 40박스 분량에 이른다"며 이번 사건 심판의 어려움을 강조했다.
이 권한대행은 "국민 모두 아시다시피 헌법은 대통령을 포함한 모든 국가 기관의 존립 근거이고, 국민은 헌법을 만드는 힘의 원천"이라며 "재판부는 이 점을 깊이 인식하면서 역사의 법정 앞에 선 당사자 심정으로 이 선고에 임했다"고 강조했다.
또 "저희 재판부는 국민으로부터 부여받은 오늘의 이 선고가 혼란을 종식하고 화합과 치유의 길로 나아가는 밑거름이 되기를 바란다"며 "어떤 경우에도 헌법과 법치주의는 흔들려선 안 될, 우리 모두가 지켜가야 할 가치"라고 설명했다.
이번 헌재 심판이 또 다른 갈등의 원인이 되거나, 헌법을 흔드는 행위의 근거가 되어서는 안됨을 명확히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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