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에 하나라도 헌법재판소가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국회의 탄핵 소추를 기각한다면, 우리 국민과 정치권은 어떻게 해야 하나? 여권의 유력 대선 주자에 이어, 여야 4당 원내대표가 헌재 결정에 무조건 승복하겠다고 합의했다.
국민의 대의기관인 국회가 234: 56의 압도적 표차로 탄핵 안을 통과시켰다. 국민의 압도적 다수가 요구하는 탄핵을, 선출되지 않은 권력인 헌재가 기각시켜도 국회와 정치권은 속수무책으로 있어야 하는가?
대통령이 헌법과 법률을 중대하게 위반한 증거가 넘쳐나는데도 헌재가 어떤 결정을 내리든 우리 국민은 이를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 단언컨대 우리 국민은 만약 헌재가 잘못된 결정을 내리면 이에 승복하지 않고 거리로 뛰쳐나올 것이다. 그러면, 국회와 정치권은 가만히 있고, 국민들만 나서야 하는가?
물론 헌재가 탄핵을 기각할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본다. 그러나 최근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낙관만 하고 있을 수는 없다는 불안감이 든다. 사실 법리적으로 보나 민심으로 보나 탄핵의 정당성과 사유는 시간이 감에 따라 더욱 강화되었으면 되었지 약화되지는 않았다. 특검 수사와 국회 국정조사를 통해서, 헌재와 법원의 재판을 통해서 대통령과 최순실 일파에 의해 자행된 권력 사유화와 국정 농단의 실상이 더욱 극명하게 드러났고 움직일 수 없는 증거들이 축적되었다. 그러나, 국회 탄핵 의결 당시 혼비백산했던 친박 세력이 재결집하여 소위 태극기 집회를 키워왔을 뿐 아니라 새누리당은 자유한국당으로 당명을 바꾸면서 아직도 원내 제2당의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탄핵 심판에 내세울 대리인단을 구성하는 것조차 힘들었던 대통령 측이 이제는 몇몇 원로 법조인들의 탄핵 반대 광고를 이끌어내고 전직 헌법재판관(박 대통령 당선자 시절 헌재 소장 후보가 되었으나 국회 인사 청문회에서 낙마했던)을 대리인단에 참여시키고 있다. 헌재 재판관 중에 반대 의견을 내는 사람이 나와도 이상할 것이 없다는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다. 여기에다 정치권에 헌재 결정 무조건 승복 약속을 받아냄으로써 헌재의 부담을 줄여주고 있다. 대통령 측은 최대한 탄핵 심판을 지연시키고 나아가 기각 결정을 이끌어내려는 작전을 치밀하게, 온 힘을 다해 추진하고 있는 듯하다.
소장 대행으로서 오는 3월 13일 퇴임을 앞두고 있는 이정미 재판관, 주심 강일원 재판관을 비롯한 헌재 재판관들이 헌법 수호를 위한 굳건한 의지와 지혜를 발휘할 것을 기대한다. 대통령 측의 지연작전에 흔들림 없이 조속히 변론을 종결하고 3월 13일 이전으로 선고 일자를 확정함으로써 불확실성을 제거해줄 것을 바란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만약에 헌재가 대통령 측의 지연 작전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끌려가다가 3월 13일을 넘기거나, 재판관 9인중 2인이 빠진 7인체제에서 추가적인 결원으로 인해 탄핵 심판 결정을 하지 못하는 불능 상태에 빠지거나 (결정을 위해서는 최소 7인의 재판관 필요), 탄핵 안에 대해 기각 결정을 내리는 (탄핵 인용에는 최소한 6인의 찬성이 필요하므로 7인중 2인만 반대하면 기각) 최악의 경우에 대비하여 자유한국당을 제외한 정치권이 단호한 계획을 세워야 한다.
만에 하나라도 아무런 대비책 없이 탄핵이 기각되는 상황을 맞이한다면, 이 나라는 도대체 어떻게 될 것인가? 걷잡을 수 없는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될 것이다. 격분한 시민들이 대통령 즉각 퇴진과 헌재 해체를 외치며 거리로 쏟아지고 기존의 평화적 촛불집회가 유지되기가 쉽지 않을 것이며, 경찰력등 공권력과의 충돌 사태를 피하기 어려워질 수도 있다.
헌재가 어떤 결정을 내려도 승복하겠다고 공언한 야권 지도자들은 이런 상황이 되면 정치적 지도력을 발휘하기 어려워질 것이다. 정치권이 정치적인 해결책을 내세우지 못하면 국민은 헌법적 기본권인 저항권을 행사할 수밖에 없지만, 극심한 혼란을 피하고 평화적인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정치권이 해결책을 내놔야 한다. 필자는 야3당과 바른정당까지 포함한 4당의 대표들과 유력 대선 주자들이 시급히 머리를 맞대고 플랜 B를 준비할 것을 촉구하며, 나름대로 몇 가지 대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헌재가 부당하게 탄핵을 기각하는 경우 국회는 즉각 헌재의 결정이 불법 부당하며, 이로써 제6공화국 헌정 체제에 종언을 고할 수밖에 없음을 선언해야 한다. 바른정당이 탄핵기각시 의원직 총사퇴를 결의한 의지를 평가하며, 야3당도 이에 동참해야 할 것이다. 다만,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무조건 사퇴하는 것은 무책임하며, 국회에서 정치적 해결책을 마련한 후 이것이 마무리되는 시점에서 총사퇴하고 새로운 국회의원 총선거를 대통령선거와 함께 실시하도록 할 것을 제안한다.
첫째, 국회는 즉각 박근혜 대통령을 다시 탄핵해야 한다. 일사부재리의 원칙을 형식적으로 충족하는 방안으로 지난 번 탄핵 사유에 포함되지 않은 문화계 블랙 리스트에 의한 학문과 예술의 자유, 표현의 자유 등 헌법을 위반한 것을 근거로 하여 새로운 탄핵 소추안을 통과시키는 것이다. 그러면, 헌재의 탄핵 기각으로 대통령 직무에 복귀한 박근혜 대통령은 헌재의 새로운 탄핵 심판이 진행되는 동안 다시 직무가 정지될 것이다.
둘째, 국회는 현직 대통령과 국회의원들의 임기를 조속히 종료시키고 이에 따른 대통령 선거와 국회의원 총선거를 곧바로 실시하도록 하는 미니 개헌안을 통과시켜 국민투표에 부쳐야 한다. 현행 헌법상 개헌 안 발의 후 최소한 20일 간의 공고 기간이 필요하고 국회에서 개헌안 의결 후 국민투표에 회부하는 데 10일 이상 소요될 것을 고려하면 개헌을 완료하는 데 30~40일이면 될 것이고, 개정 헌법에 의한 대통령 및 국회의원 선거를 이로부터 60일 이내에 치르면 국가적 혼란을 최소화할 수 있다. 현직 국회의원의 임기는 새 국회가 구성될 때 종료시키되, 현직 대통령의 임기는 개헌 안 발효 즉시 종료시키면 된다. 또한, 대통령을 잘못 보좌한 책임이 있는 국무총리가 아닌 선출직으로서의 정통성을 지닌 국회의장이 대통령 직무대행을 하도록 개정하는 것도 필요할 것이다.
셋째, 새 대통령과 국회의원의 임기 및 개헌 일정에 합의하는 것이다. 대통령과 국회의원 임기가 달라서 선거 주기가 맞지 않음으로써 발생하는 비효율성과 여소야대 분점정부의 일상화 문제 등을 극복하기 위해 차기 대통령 임기 단축에 대한 논의가 이미 진행되어 왔다. 일부 대선주자들은 당선되면 자신의 임기를 3년으로 단축해서 국회의원 선거주기와 맞추도록 하겠다고 공언하기도 했다. 또한, 제왕적 대통령 5년단임제를 어떤 방식으로든 (의원내각제, 이원정부제, 대통령 권한 축소를 전제로 한 4년중임제 등) 고쳐야 한다는 대다수 국민의 합의가 이루어졌고, 모든 대선주자들이 개헌의 필요성에 동의하고 있다.
다만, 개헌의 구체적 내용에 대해서는 정치권 내에서의 합의도 없고 국민여론도 아직 모아지지 않았으므로, 촛불 시민 혁명을 제도화하는 개헌의 일정에 대해서만 정치권이 합의해서 가령 1년 내 (2018년 지방선거 시) 또는 2년 내에 개헌을 통해 제7공화국을 출범시키도록 하고, 이에 따라 이번에 뽑는 대통령과 국회의원의 임기는 1년 내지 2년으로 하는 일종의 과도정부와 과도국회를 구성하는 것이다. 정치권에서 합의만 되면, 이런 내용을 이번 개헌시 헌법 부칙에 명시함으로써 과거 개헌을 약속한 대통령이 이를 번복해온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도록 할 수 있을 것이다.
나아가 과도정부는 야3당을 축으로 바른정당까지 함께 하는 연정 내지 협치를 통해 제왕적 대통령제의 극복을 위한 개헌은 물론 '이명박근혜 정부'의 적폐 청산과 재벌 개혁 , 불평등 해소 등 개혁 과제를 수행하는 것이 가능할 것이다. 5년 임기의 대통령을 독식하려는 치열한 경쟁이 4당간의 협력을 어렵게 하고 있지만, 1~2년 간의 과도정부로 협치를 하자는 공감대가 이루어지면 의외로 쉽게 합의가 이루어질 수도 있으리라 본다. 과도정부의 대통령에 대해서는 연임 제한을 풀어주는 것도 고려할 수 있을 것이다.
이상 첫째와 둘째 방안을 최소한으로 하고, 가능하면 세 번째 방안까지 탄핵 기각 시의 정치적 해결책으로서 자유한국당을 제외한 4당이 합의해서 공표할 것을 촉구한다. 물론 헌재가 탄핵을 인용하여 헌법수호기관으로서의 임무를 다할 것이 틀림없다고 믿지만, 만에 하나라도 벌어질 수 있는 최악의 상황에 대해 정치권이 속수무책으로 있어서는 안 된다. 필자의 제안을 참고로 하여 4당 지도자들과 유력 대선 주자들이 더 좋은 아이디어와 지혜를 짜내어 정치적 불확실성을 줄이고 국민들을 안심시켜 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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