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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시민들, 자국이 1%를 위한 나라임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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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시민들, 자국이 1%를 위한 나라임을 깨달았다"

[트럼프 시대] 이혜정 교수 인터뷰 ①

오는 1월 20일 '미국 우선주의', '백인 우선주의'를 주창한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의 대통령으로 취임한다. 전 세계가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불확실성의 시대로 접어든다는 의미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끄는 미국은 앞으로 세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또 불확실성의 시대에 우리는 어떤 주체적 대응을 할 수 있는가?

<프레시안>은 대표적인 미국 전문가 이혜정 중앙대학교 정치국제학과 교수와 만나 트럼프 당선의 배경을 짚어보고, 트럼프 시대에 맞닥뜨리게 될 세계와 한반도의 미래를 전망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혜정 교수는 트럼프가 출현하게 된 구조적 배경에 주목한다. 이 교수는 "미국 국민들 사이에 그동안 정치·경제·사회·문화적인 불안정이 있었다. 이것이 트럼프라는 인물이 나올 환경을 만들었다"며 "그는 미국 내에서 온갖 문제가 다 불거진 다음에 나온 결과물"이라고 설명했다. 한마디로 "유권자의 입장에서 트럼프의 개인적 악덕보다 구조적 악덕이 더 싫었다는 결론"이라는 것이다.

우선 정치의 붕괴다. 이 교수는 "트럼프가 공화당 내부 경선에서 1등을 차지한 것 자체가 이미 미국 정치가 뒤집힌 증거"라고 했다. 냉전 종식 후 <역사의 종언>으로 미국 체제를 극찬했던 프랜시스 후쿠야마조차 정치제도를 비판할 정도로 미국 정치가 엉망이 됐다는 것이다.

이는 중산층 삶의 붕괴로 이어졌다. 이 교수는 "1980년대 이후 미국 내 가구소득은 전혀 늘어나지 않았다"며 "신자유주의는 경제적 불평등, 양극화를 극대화했고, 2007~2008년 부동산 거품이 꺼지면서 중산층의 삶도 추락했다"고 했다.

이 교수는 특히 트럼프와 힐러리 클린턴의 당락을 가른 쇠락한 공업지대 러스트 벨트(Rust Belt)에 주목하며 "러스트 벨트는 '마약 벨트'로 변하고 있다는 우려마저 나오고 있다"며 "중하층들은 이민자들로 인해 자기들 일자리가 날아간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또한 세계화로 인해 국가별 차이가 줄어든 결과 "중국 중산층은 20~30년 전과 비교해 구매력 기준으로 80%가 향상된 반면, 미국 중산층은 20~30년 전 수준 그대로"라며 "이런 점 때문에 미국에서는 세계화의 결과가 대체 무엇이냐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라고 했다. 보호무역주의를 천명하며 중국과 무역 갈등을 예고한 트럼프의 행보는 이런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

여기에 인종문제까지 결합되면서 미국 백인 중하층은 트럼프에 대한 전폭적인 지지를 보냈다. 이 교수는 "미국이 여기까지 오게 된 배경에는 정치‧경제와 사회, 문화적으로 중첩돼있던 문제들이 경제적으로 더 이상 견딜 수 없는 상태로 치닫게 된 데에 있다"며 "'흑인 대통령 행정부의 경제 정책이 과연 무엇이었느냐'라는 인종주의적 반발도 있었다"고 꼬집었다.

이 교수는 "신자유주의적인 자본주의가 돌아가면서 교육의 사다리를 올라가지 못하면 사회에서 성공할 수 없는 구조가 만들어졌다. 여기에 제조업의 비중은 점점 줄어들기만 했다. 없는 집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먹고 살기 위해 군대를 택했다"며 사실상 계층 이동이 막힌 미국 사회의 단면을 꼬집기도 했다.

이 교수는 결국 "복지는 찾아보기 힘들어졌고, 사람들은 더 이상 미국이라는 환상만을 가지고 살아갈 수가 없게 됐다. 미국이 잘 사는 국가이긴 하지만 그 중에 어떤 미국인들이 잘 사느냐는 다른 문제가 돼버렸다"고 지적했다. 잘 사는 나라에서 발생한 못 사는 중하층 서민들의 분노와 반란, 그것이 트럼프를 만들어냈고 트럼프 시대의 미국이 당면한 '생얼'이라는 것이다.

이 교수와의 인터뷰는 지난 16일 <프레시안> 박인규 이사장과 대담 형식으로 진행됐다. 2회에 걸쳐 게재한다.

▲ 중앙대학교 이혜정 교수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 :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자가 미국 시간으로 20일 제45대 대통령에 정식으로 취임한다. 트럼프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린 셈인데, 누구도 트럼프의 당선을 쉽게 예측하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이번 미국 대선도 그렇고 지난해 한국 총선,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선거(브렉시트) 모두 이른바 사회의 '지도층'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일반 국민들 사이에서 일어나고 있는 변화를 제대로 짚어내지 못했던 것 같다.

이혜정 : 개인적으로는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가 근소하게 이길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클린턴이 승리한다고 해도 미국의 국내 정치가 분열되고 몰락한 것만은 분명하다고 봤다. 트럼프가 공화당 내부 경선에서 1등을 차지한 것 자체가 이미 미국 정치가 뒤집힌 증거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미국 우선주의를 강조하고 나온 후보였다. 물론 미국은 언제나 미국 우선주의를 택해왔다. 다만 미국 자체의 이익과 세계 자본주의를 관리하는 책임 사이에서 조화를 추구해 왔는데, 트럼프는 이를 상호 배타적인 요소로 규정했다. 이 대목이 트럼프 당선을 결코 가볍게 여길 수 없는 이유 중 하나다.

프레시안 : 트럼프 당선이 미국의 민낯을 생생하게 보여준 것으로 본다. 관련해서 트럼프를 당선시킨 요인으로 이 교수는 백인 우선주의, 미국 우선주의, 그리고 트럼프 우선주의 이렇게 세 가지 요소들이 작동했다고 분석했다. (☞관련 기사 : 도전받는 미국 패권, 무너지는 한미동맹)

이혜정 : 사실 트럼프 당선자는 기존에 우리가 알던 미국, 특히 '아름다운' 미국으로 인지되고 있는 한국 입장에서 보면 굉장히 낯선 인물이지만 철저히 미국적인 인물이기도 하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그가 갑자기 등장한 인물이 아니라는 데 있다.

미국 국민들 사이에서는 그동안 정치·경제·사회·문화적인 불안정이 있었다. 이것이 트럼프라는 인물이 나올 환경을 만들었다. 즉, 그는 미국 내에서 온갖 문제가 다 불거진 다음에 나온 결과물이라고도 볼 수 있다.

지난 2013년 10월 미국의 연방정부가 폐쇄됐다. 안 그래도 워싱턴 D.C에서 기성 정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불만을 가지고 있던 미국 국민들은 이 사태를 겪으면서, 좌우를 막론하고, 미국이 뭐가 얼마나 잘못됐기에 여기까지 왔느냐는 일종의 '자괴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이러한 미국 내부의 문제는 외교에도 영향을 미쳤다. 존 케리 국무장관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아시아로의 귀환'(Pivot to Asia)에 중요한 한 해였던 2013년, 한국과 일본 등 아시아 국가를 순방했다. 그러나 케리에 이어 예정됐던 오바마 대통령의 아시아 국가들을 방문은 연방정부가 폐쇄되면서 취소됐다.

당시 존 케리는 이 상황을 두고 '다시는 이런 일이 있으면 안 되겠다. 아시아를 한 바퀴 돌고 왔는데 아시아 국가들이 모두 미국의 민주주의를 걱정하고 있더라. 이게 무슨 창피냐'라는 식으로 말했다. 동맹들이 미국을 걱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시퀘스터(sequester, 미국 연방정부의 예산 자동 삭감 조치)는 미국 민주주의와 미국 정치가 얼마나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지를 보여주는 증거다. 당시 국가 재정에 문제가 생긴 미국은 여야가 예산에 대해 합의를 보지 않으면 재정절벽으로 떨어지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정말 다 같이 빠져 죽는 상황이 돼버렸다. 당시 미국의 신용등급이 떨어지는 일마저 발생했다.

미국의 패권을 유지하려는 세력에는 자본주의를 유지해야 한다는 분파와 안보 국가로서의 미국이 중요하다면서 전 지구적으로 군사 개입을 해야 한다는 분파가 있다. 결정적일 때 항상 군사주의를 제어한 자본주의 분파 쪽이 우세했다. 미국은 베트남에 대한 개입을 계속하다가 어느 순간 달러가 위험하다는 판단이 들어 멈추기도 했다. 그랬던 미국에서 이러한 결과가 나온 것이다.

트럼프가 셀 수 없는 막말과 추행, 기행을 했음에도 정치 전면에 등장하고 대통령에까지 당선된 것은, 그가 이상하다기보다는 미국 정치가 갈 데까지 갔기 때문이라고 해석하는 것이 적절해 보인다. 학계에서도 이러한 평가는 꾸준히 제기돼왔다.

실제 이즈음 스탠퍼드 대학교 프랜시스 후쿠야마 교수가 본인의 입장을 바꿔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는 '비토크라시'(vetocracy, 거부권을 뜻하는 veto와 민주주의의 Democracy를 합해서 만든 합성어)라는 단어로 미국의 헌정 질서 자체가 잘못됐다고 주장했다. 미국의 현재 정치 제도에서 비토를 할 수 있는 지점이 너무 많다는 지적이었다.

후쿠야마는 <역사의 종언>에서 냉전이 종료된 이후 서구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를 넘어선 대안적인 사회 체제는 없다고 했다. 그가 주장한 실제 모델은 미국이었다. 그리고 이건 조지 W. 부시 독트린에 그대로 반영됐다. 그랬던 그가 정면으로 입장을 바꾼 것이다.

물론 미국의 초당파적인 외교가 수명을 다했다는 것은 트럼프가 등장하기 전 이미 학술적인 관심사였다. 오바마 등장 이전부터 초당파적인 합의는 깨졌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이러한 평가가 적절한지 여부는 대통령이 행정 명령에 얼마나 의존하는지를 살펴보면 확인할 수 있다. 행정명령을 많이 사용했다는 것은 미국의 민주주의가 돌아가지 않는다는 증거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오바마 대통령의 경우를 살펴보면 2008년 오바마 당선 당시 민주당은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이 행정명령을 너무 많이 실행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오바마의 재선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공화당과 2010년 출연한 티파티의 파상 공세에 밀린 오바마는 겨우 재선에 성공했고, 의회를 장악한 공화당과 함께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었다. 결국 오바마 대통령은 의회와 합의를 포기하고 2014년부터 본격적으로 행정명령을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물론 이러한 미국 환경이 어떻게 트럼프라는 불꽃으로 번지게 됐는지는 또 다른 문제다. 하지만 위의 사례에서 보듯, 이미 기존 정치권은 망가져 버린 상태였다.

여기에 사회적으로 널리 퍼진 인종주의적인 요소도 트럼프를 만들어 낸 주요 원인으로 꼽히고 있다. 10년마다 발표하는 인구센서스를 보면 1910년 전체 인구 대비 이민자 비율은 14.7%였다. 가장 적었을 때가 1970년에 4.7%를 기록했고, 2010년에는 이 비율이 12.9%로 올라갔다.

노동인구 대비 이민자 비율은 전체 인구 대비 이민자 비율보다 더 높다. 불법 이민자까지 포함하면 이 수치는 더 높아질 것이다. 트럼프가 이민자 문제를 집요하게 파고들 만한 사회적 환경이 만들어진 상황이었다.

공화당의 몰락과 트럼프 등장

프레시안 : 일단 트럼프 대통령을 탄생시킨 일차 관문은 공화당 대선 경선이었다. 공화당이 티파티에 휘둘린 채 민심을 제대로 담아내는 정당이 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인가?

이혜정 : 트럼프 같은 말도 안 되는 후보가 왜 공화당에서 선두권으로 부상했을까에 대해 기존 언론인 <뉴욕타임스>나 <워싱턴포스트>는 출마 인원이 많아서 교통정리가 늦었고, 서로 치고받는 도중에 줄줄이 낙마하면서 주류가 원했던 젭 부시 전 플로리다 주지사나 마르코 루비오 상원의원을 내세울 상황이 되지 않았다고 분석했다.

▲ 11일(현지 시각) 미국 뉴욕 트럼프타워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가 기자회견을 가졌다. 그는 이 자리에서 본인과 관련한 음란한 내용의 루머에 대해 사실이 아니라고 강력하게 반발했다. ⓒAP=연합뉴스

이건 공화당의 주류, 기득권(Establishment) 세력이 무너진 것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강고한 기득권 세력이 돌파당한 지점은 공화당 경선이었다. 공화당 주류는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처럼 작은 정부를 지향하는 세력과 안보를 굳건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세력, 그리고 문화‧사회적으로 보수주의 색채를 가지고 있는 세력 등 크게 3가지 정도로 분류된다. 그런데 2010년 티파티가 대거 들어오면서 공화당이 극우화돼버렸다.

시퀘스터 문제만 해도 사실 안보를 중시하는 보수들 입장에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었다. 미국이 군사적으로 전 지구적인 개입을 하는 과정에서 군사 부문의 예산도 일률적으로 삭감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티파티는 그게 뭐가 문제냐는 식으로 반응했다. 그렇게 공화당은 계속 우경화되고 존 베이너 하원의장마저 티파티의 압력으로 사퇴하면서 사실상 지도부의 부재 상태가 발생했다.

베이너의 뒤를 이은 폴 라이언 하원의장은 2012년 미트 롬니와 러닝메이트로 부통령에 출마했던 인물이다. 그는 사실 2020년 대선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갑자기 끌려 들어와서 하원의장을 맡게 됐다. 지도부를 대체할 준비가 돼 있지 않은 상태였다.

프레시안 : 공화당 지도부가 밀었던 후보가 경선을 통과하지 못한 것도 이러한 요인이 작용한 것인가?

이혜정 : 거기에 또 하나의 문제가 있다. 인종 문제다. 공화당 지도부는 부시 전 지사와 루비오 의원을 내세웠는데, 이 두 사람이 모두 히스패닉과 관련이 있다. 젭 부시 전 지사의 경우 부인이 히스패닉이고 루비오 의원은 본인이 쿠바 이민자 2세다. 그런데 공화당 예비경선에 참여한 열성 기층 공화당원(Republican base)들은 매우 인종주의적인 성향을 띄었다.

결국 티파티의 지지를 받은 테드 크루즈 상원의원만이 남았는데, 그는 노동 계층이나 경제적 문제에 대한 해법이 없었다. 결국 공화당에서 트럼프가 승리한 것은 경제적 요인과 인구 구성상의 요인 등이 섞여 있었던 것이다. 정치적 문제는 늘 있던 사안이었고.

프레시안 : 오바마 대통령이 들어오면서 미국 내에서 인종 문제가 더 불거진 것 같다.

이혜정 : 일단 오바마 입장에서는 이번 선거 결과가 상당히 짜증났을 것이다. 트럼프는 쇠락한 공업지대라고 불리는 '러스트 벨트(Rust Belt)'에서 승리하면서 대통령에 당선됐는데, 사실 이 지역을 경제적으로 구제하려 애쓴 사람은 오바마 대통령이었기 때문이다. 반면 2012년 공화당의 대선후보였던 미트 롬니 전 주지사의 경우 금융위기가 확산되던 2008년 "디트로이트를 파산하게 놔두라. 미국 자동차 업계에 작별 키스를 하라"고 주장했던 사람이다.

러스트 벨트 중하층 백인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준 쪽은 자동차 산업 구제를 통해 러스트 벨트를 살리려 했고, 이에 더해 건강보험 개혁까지 추진한 오바마 정부였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작년 대선에서 러스트 벨트 유권자들이 민주당이 아닌 공화당 트럼프를 택했으니, 폴 크루그먼 프린스턴대 교수가 이해할 수 없는 결과라고 한탄하는 것이다.

지난 10일(현지 시각) 시카고에서 고별 연설을 가진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의 민주주의가 위협을 받고 있다면서 이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연대감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현재 미국에는 이 연대감을 깨뜨리는 여러 요인들이 있다는 것이 오바마의 주장이었다. 그 첫 번째가 경제적인 불평등인데 이건 트럼프가 이야기하는 미국 우선주의와 연관돼있다.

두 번째는 인종의 문제였다. 오바마 당선 이후 인종주의적 갈등을 극복하는 새로운 미국 정치가 펼쳐질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지만, 오바마 집권 기간에는 인종 문제가 지나간 이슈가 돼버리는 '포스트 레이셜(Post racial)'이 아니라 인종 문제가 가장 심각해지는 '모스트 레이셜(most racial)'이 돼버렸다. 정치학자인 마이클 테슬라가 저서 <Post-Racial or Most-Radcial?>에서 이를 잘 지적했다.

실제 오바마 대통령이 내놓은 건강보험개혁안(오바마 케어)에 대해 백인 중산층은 자기들이 벌어놓은 돈을 가지고 복지혜택을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들에게 국가가 돈을 쓴다는 식으로 생각했다. 미국의 인종주의와 민주주의 고쳐지지 않는 핵심적인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러한 부분이다.

20세기 초에 등장했던 뉴딜 정책은 백인에 대한 복지를 늘리는 것이었다. 그런데 1960년대 중반부터 이른바 '뉴딜 연합(New Deal Coalition)'이 깨지기 시작했다. 흑인들이 주축이 된 민권운동이 일어났고 1965년에는 이민법이 개정됐다.

20세기 전반 미국의 성장, 특히 중산층의 성장은 이민을 통한 것이 아니었다. 1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미국은 이민 문호를 완전히 닫았다. 이민자가 많아졌을 때 문을 닫은 셈인데, 당시 미국은 기존의 인구 집단 분포를 보고 여기에 맞춰서 각 인종별로 쿼터를 주는 방식으로 이민자를 통제해왔다.

1929년 시작된 미국의 대공황 이후 이민자에게 문을 닫은 미국 내에서는 백인 중산층이 커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이후에는 인종적‧사회적‧문화적으로 별다른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1965년 이민법을 개정하면서 인종별로 쿼터를 없앴고, 가족 중에 이민자가 있으면 그 사람이 나머지 가족을 초청할 수 있는 이른바 '초청이민'이 시작됐다.

이때부터 라틴계와 아시아계가 미국 이민자의 주를 이루기 시작했다. 또 1964년~65년에 흑인민권법이 생기면서 흑인들이 정치 참여가 시작됐다. 이 때부터 민주당과 공화당의 거대한 '바꿔치기'가 일어나는데, 기존 민주당을 지지했던 지역이 공화당 지지로 바뀌게 된 것이다.

원래 민주당은 북부의 백인 노동자와 남부의 인종 차별주의적인 백인 인종주의자의 연합이었다. 그중에서도 남부 출신 의원들이 정치 경험이 많은 다선 의원들이었고 이 사람들이 의회를 장악하고 있었다. 인종 차별만 된다면 아무런 불평도 하지 않았던 이들이 1960년대에 들어서면서 사회적 변화가 일어나고, 이에 따라 복지에 대한 반발도 제기되기 시작했다.

그때까지 복지는 당연히 백인만 누리는 것이었다. 1965년 린든 존슨 당시 대통령이 의료보험제도를 만들 때 65세 이상과 빈곤층에 일정 부분 혜택이 있었다. 그런데 미국의 백인들은 빈곤층에 혜택을 주면, 이건 당연히 백인 외에 다른 인종들에게 간다고 생각했다. 이에 백인들이 '열심히 벌어서' 소수 인종들이 복지 혜택을 받는 상황에 대한 반발이 일어났다.

▲ 중앙대학교 이혜정 교수 ⓒ프레시안(최형락)

트럼프 당선, 20년 동안 곪았던 상처가 터졌다

프레시안 : 결국 경제적 불평등이 미국 우선주의를 낳았고 인종 문제까지 퍼지면서 백인 우선주의가 등장했다고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미국 우선주의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을 비롯한 자유무역을 하지 않겠다는 건데, 미국이 만들어놓고 미국 대통령이 하지 않겠다고 하는 것도 사실 좀 황당하다.

신자유주의 경제체제가 국가 간 격차는 완화시켰지만, 국내 간 격차는 악화시켰고 이것이 미국 중산층에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나오는데, 미국 우선주의를 낳은 지난 30년 동안의 신자유주의의 성적표와 인종주의 문제점을 짚어본다면?

이혜정 : 신자유주의를 미국 패권의 측면에서 본다면 금태환을 중지한 것이 중요한 지점이다. 그 이전에는 1달러 당 금 35온스로 가치가 고정되어 있었다. 그렇게 될 수 있었던 것은 미국과 나머지 국가의 경제적 격차가 워낙 컸기 때문이다.

미국을 제외한 다른 국가가 경제적으로 미국을 쫓아올 때 미국은 항상 '통상 라운드'를 가졌다. 상대 국가가 경제적으로 커졌으니까 미국이 이야기하는 이른바 '상호주의' 원칙에 따라 공평한 경쟁을 할 때가 됐다는 주장이다.

1971년 리처드 닉슨 당시 대통령이 달러의 금 태환을 중지하면서 이매뉴얼 월러스틴 같은 학자들은 이때 이미 미국의 패권이 끝났다고 생각했다. 한편 다른 학자들은 금태환 중지 이후 '브래튼우즈 체제 시즌2' 에도 미국이 여전히 기축통화를 가지고 있다는 이점을 최대한 살려서 통화 패권을 지속했다고 본다.

이 입장에서 보면 미국은 사실 미국 우선주의를 하지 않은 적이 없다. 미국은 달러의 고정 환율을 포기하면서도, 플라자 합의처럼 다른 나라의 팔을 비틀어왔다는 것이다. 미국이 처음에는 일종의 시혜적인 패권의 모습을 보였다면 이후에는 자국이 가지고 있는 국제사회에서의 구조적 우위를 최대한 활용하는 약탈적인 패권 국가로 바뀌는 것이다.

그런데 국제사회에서 우위를 점한 상황에서도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미국 내 가구 소득은 전혀 늘어나지 않았다. 그러자 신자유주의에 대한 첫 번째 반발이 1992년 대선으로 나타난다. 당시 로스 페로 후보가 무소속으로 출마하면서 조지 H.W. 부시 현직 대통령이 재선에 실패했다.

신자유주의를 지지하는 세력들도 바뀌기 시작했다. 1950~1960년대까지 미국의 노동조합은 민주당에 기울어져 있었다. 그리고 이들은 자유무역을 지지했다. 그런데 1970년대부터 신자유주의적인 일종의 정치‧경제적 구조조정이 시작됐다. 이후 1990년대에 오면 노조는 신자유주의에 반대했지만, 이미 노조의 조직률과 정치적 힘은 떨어져 있었고 공화‧민주 양당이 신자유주의로 수렴하면서 노조의 경제적 이익이 정치 의제화될 수 있는 통로가 없어졌다.

이와 함께 1980, 90년대 미국에서 민주당과 공화당은 총기 규제나 낙태, 여성주의와 소수자 등 문화 및 가치의 문제를 가지고 '문화 전쟁'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대립 양상을 보였다. 1960년대 민주당을 지지하던 남부의 백인들은 민주당이 복지를 중시하고 흑인 민권 운동을 지지하는 모습을 보이자 대거 민주당을 이탈했다. 공화당은 이들을 받아들였는데, 지금은 공화당은 거의 90%가 백인이고 민주당은 50%가 좀 넘는 사람들만 백인이다.

인종적, 경제적인 것뿐만 아니라 문화적인 요인도 섞여 있다. 시골에 사는 백인들에게는 사냥을 하는 '총기문화'가 있는데, 여기에 가장 큰 장애물이 총기 규제 문제다. 미국에서 총기 규제는 굉장히 중요한 문제다. 예컨대 지난 대선 과정에서 유력 주자로 떠오른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의 경우 힐러리 클린턴으로부터 총기 규제에 적극적이지 않다는 비판을 받았다. 샌더스가 소극적이었던 이유는 출신 지역인 버몬트 주가 총기 문화를 지닌 시골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화 전쟁의 밑바닥에는 계급적인 이유가 깔려 있었지만, 이러한 문제들이 전면에 드러나지 않으면서 계속 쌓여왔다. 1992년 빌 클린턴 민주당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고 미국이 일정 부분 경기를 부양하고 나니 구조적인 문제들이 정치 의제화되지 못하고 계속 곪아있었다. 트럼프는 바로 이 지점을 치고 들어왔다. 당신들과 같은 '잊혀진(forgotten)'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어주지 않았다면서, '나는 당신들의 대변자가 되겠다(I'm your voice)'고 공약한 것이다.

20년이 넘게 곪아 왔던 상처들이 2012년~13년부터 드러나기 시작했다. 이 시기부터 미국 중산층의 삶이 얼마나 무너졌는지에 대한 많은 이야기가 나왔다. 그리고 이는 가장 최근에 트럼프가 했던 기자회견에도 드러난다. 그는 이 기자회견에서 처방되는 마약류의 약품들이 문제라면서 제약회사들에 대한 협박을 하기도 했다.

트럼프가 이러한 발언을 하게 된 이유는 현재의 러스트 벨트 상황과 연관돼있다. 지금 러스트 벨트는 '마약 벨트'로 변하고 있다는 우려가 나올 지경에 이르렀다. 알콜 중독, 자살, 마약 중독 등 '절망의 질병'이 러스트 벨트를 휩쓸고 있다. 이러한 절망의 질병이 높을수록 트럼프를 찍었다는 조사 지표가 나오기도 했다.

러스트 벨트를 포함해 중간 가구 소득을 기준으로 보면 80년대 이후 정체되어 있었다. 신자유주의는 경제적 불평등, 양극화를 극대화했고, 2007~2008년 부동산 거품이 꺼지면서 중산층의 삶도 추락했다. 살던 집은 뺏기고 장기 실업에 상태에 들어갔다. 그런데 이민자는 마구 들어오고 있었다. 물론 자본가의 입장에서 이민자는 인재를 들여오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실제 실리콘 밸리에서는 인도나 중국의 인재들이 없으면 안 되는 상황이기도 하다. 따라서 자본가들 입장에서 이민을 허용하지 않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는 것이다. 미국이 이민 때문에 먹고 사는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미국의 제도가 전 세계의 인재들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이는 것도 이점이라면 이점일 수 있다.

그런데 미국의 중하층들은 이민자들로 인해 자기들 일자리가 날아가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했다. 사회의 중하층에 있는 사람들이 주로 접하는 이민자들은 저임금의 불법 이민자들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공화당 지도부는 이민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둥 공화당 기층 중하층 백인들의 입장에 전혀 맞지 않는 이야기를 해댔다. 그런데 어느 순간 트럼프가 '짠'하고 나타나서 이민자들이 나쁜 사람들이고 멕시코 국경에 장벽을 쌓는다고 말했다. 러스트 벨트의 중하층 입장에서는 너무나 속이 시원한 이야기가 아닐 수 없었다.

▲ 디트로이트 인근에 위치한 폐쇄된 자동차 공장 ⓒ위키피디아

결국 미국이 여기까지 오게 된 배경에는 정치‧경제와 사회, 문화적으로 중첩돼있던 문제들이 경제적으로 더 이상 견딜 수 없는 상태로 치닫게 된 데에 있다. 여기에 '흑인 대통령 행정부의 경제 정책이 과연 무엇이었느냐'라는 인종주의적 반발도 있었다.

2010년과 2015년 공화당 지도부가 무너지는 각각의 흐름이 이 세 부분에서 중첩됐던 문제들이 쌓여오다가 어느 순간 임계점을 넘어버린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트럼프를 공화당 대선 후보로 밀어 올렸다.

그러면 트럼프는 본선에서 어떻게 이길 수 있었을까? 클린턴 진영은 트럼프의 개인적인 자질 공격에 집중했다. 트럼프는 여기에서 밀릴수록 주류, 기득권에 대한 공격으로 맞서면서 부패를 전면 청산하겠다고 선언했다.

결국 유권자의 입장에서 트럼프의 개인적 악덕보다 구조적 악덕이 더 싫었다는 결론이 나온다. 트럼프가 가지고 있는 자질의 부족 문제가 너무 크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이미 기득권 세력으로 규정된 클린턴은 선택할 수 없었던 것이다. 누가 변화를 가져올 것이냐는 질문에 미국 유권자들은 트럼프라고 답한 것이다.

결론적으로 이번 선거를 통해 미국 사회가 지니고 있는 민낯이 그대로 드러난 건데, 미국은 민족주의‧민주주의‧자본주의 재건의 과제를 쥐고 있다.

민족이라는 문제는 역사‧문화적인 공동체를 의미하는데, 예전 미국은 이민의 문호도 막았고 백인 중산층이 기본이 되는 나라였기 때문에 인종주의와 미국 내 민족주의가 별문제 없이 진행됐다. 그런데 지금 추세라면 2060년이 되면 백인 구성이 전체 인구의 50% 이하로 줄어든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이민 문호를 닫아야 했을 때처럼 해결을 해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된 상황이다.

다음으로 미국은 인종주의 문제를 해결한 적이 없다. 오바마 대통령은 고별 연설에서 미국 민주주의의 두 번째 위험 요인은 인종주의 문제라고 지적하면서, 이 문제는 미국이 건국되면서부터 제기됐던 사안이라고 말했다.

맞는 말이다. 미국에는 항상 인종 문제가 잠재적으로 있었는데 이게 불거질 때마다 겨우 넘어갔었다. 냉전이 끝났을 때도 바로 튀어나온 사회적 현상이 LA 흑인 폭동이었다. 냉전 이겼다고 좋아했는데 이후 인종주의가 나온 것이다. 미국은 전쟁 등 통합을 강조할 수밖에 없는 시기, 즉 10~15년 정도만 인종주의를 통제할 수 있다는 학계의 주장도 있다.

인종차별, 미국의 원죄

프레시안 : 인종문제는 미국의 원죄 같은 건데, 1960년대 이후에 민권 운동도 나오면서 어느 정도 풀린 것처럼 보였는데 21세기에 다시 불거졌다.

이혜정 : 인종주의는 항상 미국의 저변에 깔려있는 일종의 '지병'같은 것이다. 이걸 잘 관리하면 일정한 임계치를 넘어서지 않는데, 관리가 될 때가 있고 안 될 때가 있다.

미국식 신자유주의와 세계화의 전도사였던 미국 칼럼니스트 토마스 프리드만은 최근에 냉전이 끝나면서 미국이 이겼다고 생각했는데, 돌이켜보니 소련이 있었기 때문에 어느 정도 관리됐던 것들이 다 날아갔다고 지적했다. 즉, 소련이 미국 체제를 공격할 수 있는 인종문제 같은 경우 냉전 시기 때는 잘 관리가 됐는데, 이제 소련이 없어지니까 이러한 관리를 하지 못하게 됐다는 분석이다.

앞서 말한대로 미국이 인종문제를 자제하고 통제할 수 있었던 또 하나의 요인은 전쟁이었다. 전쟁을 하면 미국은 동원체제였기 때문에 인종문제를 억누를 수 있었다. 반대로 인종적 소수자가 미국인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전쟁에 나가서 싸워야 했다.

그런데 전쟁이 끝나자 국민들을 통합시켜야 한다는 의식이 떨어지고 경제가 조금씩 나빠지는 동시에, 이를 통제할 수 있는 정치권의 규율이 옅어지는 등의 일들이 겹쳐졌다. 이러면서 인종 문제가 발생했고, 결과적으로 현시점에서 가장 강하게 터졌다고도 볼 수 있다.

그러면서 인종주의적으로 흑인들이 사는 곳이 범죄 소굴이라는 이야기도 하는데 사실 러스트 벨트가 현재 이런 상황에 놓여 있다. 티파티가 등장한 이후 미국 백인 중산층이 얼마나 많이 힘들어졌는지를 보는 학문적 접근들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확인해 보니 백인들 가정에 아버지는 없고 어머니는 마약 중독이고, 아이는 학교 적응을 못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이 발견됐다.

이에 오바마 대통령이 최근 고별연설에서 내세운 경제적 불평등 해소 방법의 첫 번째는 교육이었다. 미국 중산층이 망한 이유가 의료비와 교육비 때문인데, 세계화가 되면서 상당수의 공장들이 미국 밖으로 빠져나갔다. 전 지구적인 소득 분위로 보면 미국의 하위층은 실질 소득으로는 변화가 없지만, 중국과 인도의 실질 소득은 올라갔을 정도였다.

이렇게 미국 내에서 양극화가 심해지기 시작했다. 대학을 갈 수 있는 아이들은 실리콘 밸리와 워싱턴 D.C, 월스트리트에 진출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아이들은 꿈도 꾸기 힘든 상황이 됐다. 미국 주립대학의 교육 예산도 줄어들면서 격차는 더 벌어졌다.

교육기회의 균등을 중시했던 오바마 대통령은 유치원부터 이렇게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미국은 이미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 공교육이 완전히 무너진 상황이다. 처음부터 좋은 학교를 가지 않으면 상급학교 역시 좋은 곳으로 갈 수가 없다. 고등학교만 나와서 할 수 있는 것은 제조업에 취직하는 건데 제조업의 감축, 공장 이전 등으로 이들을 받아줄 일터가 없다. 그러니까 삶이 무너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 중앙대학교 이혜정 교수 ⓒ프레시안(최형락)
러스트 벨트가 마약 벨트가 돼버리고 교육‧지역‧인종적으로 분열되면서 미국이 역사상 이렇게 분열된 적이 없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오죽하면 집 주소를 보면 그 사람이 대충 어떤 일을 하는지, 어느 정도의 생활을 하는지 한눈에 다 알아볼 수 있을 정도라는 이야기도 나온다. 미국이 이미 갈 데까지 갔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다.

프레시안 : 혹자는 미국의 국력이 역사상 최고조에 이르렀을 때가 1950년대였다고 이야기한다. 그런데 냉전이 끝나면서 미국 정치 체제와 생활 방식이 전 세계적으로 퍼지면서 이겼다고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타락하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이것 중 하나가 신자유주의에 의한 백인 중산층의 몰락인데, 비백인 인종들이 늘어나면서 이에 대한 백인들의 인종주의적 반란이 있었고, 이를 통제해야 할 정당은 무너져 버렸다. 특히 공화당의 몰락이 매우 유의미해 보이는데 이렇게 되면 미국을 재건할 동력은 민주당에서 나올 수밖에 없을 것 같다.

하지만 민주당도 한계가 있었다. 인종적인 다양성을 중시하고 경제적 약자들에 대한 대책을 나름대로 세우려고도 했지만 미국 유권자들에게 만족할만한 수준은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혜정 : 그렇다. 대선 경선 과정에서 클린턴은 TPP를 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중산층의 삶이 이렇게 피폐한데 자유무역을 통해 얻은 게 무엇이냐는 공격에 답하지 못하고 결국 TPP를 접겠다는 식으로 나온 것이다.

트리클 다운(Trickle-down, 낙수효과)에 대한 기대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겠지만, 내가 이렇게 살기가 어려운데 미국이 패권 국가면 뭐하냐는 불만도 현재 미국 내에서 팽배한 것으로 보인다.

사실 어느 나라 국민으로 태어나느냐에 따라 개인이 누릴 수 있는 경제적 혜택에 차이가 나는 것이 사실이다. 선진국 국민은 자신이 태어난 곳이 선진국이라는 이유로 다른 나라 국민들에 비해 상당한 이점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세계화가 되면 국가에 의한 통제가 완화되며 국가별 차이가 줄어든다. 지금 중국 중산층은 20~30년 전과 비교해 구매력 기준으로 80%가 향상된 반면, 미국 중산층은 20~30년 전 수준 그대로다. 바로 이런 점 때문에 미국에서는 세계화의 결과가 대체 무엇이냐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다.

프레시안 : 이미 1990년대부터 미국 내에서는 경고음이 나오고 시작했다. 1960년대에는 고등학교만 졸업해서 공장에 취직하면 그 돈으로 아이들 학교까지 보냈는데 1980년대부터는 불가능하다는 하소연이었다.

그런데 클린턴에 이어 집권한 아들 부시 대통령은 네오콘과 함께 엄청난 돈을 전쟁에 쏟아부었다. 이 부분에 대해 미국은 별다른 반성이나 비판지점이 없는 것 같다. 자기들이 세계를 위해 희생했다고 생각하지, 세상에 대한 반성은 없어 보인다.

이혜정 : 오바마는 이라크 전쟁에 반대하면서 전국적인 정치인으로 성장했다. 이라크 전후의 혼란, 모병의 어려움이 경제적 위기와 겹치면서 이라크 전쟁에 대한 미국 내 여론이 악화되기도 했었고, 트럼프의 경우에도 이라크 개입을 기성질서가 실패한 대표적인 원죄로 비판한다. 하지만 미국의 역할에 대한 본질적인, 비판적인 성찰은 여전히 부족하다고 볼 수 있다. 이건 미국만 그런 건 아니다. 한국에서도, 어느 나라에서도 나라의 치부를 공개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을 꺼리기 마련이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미국이 가지고 있는 위선의 한계가 드러났다는 부분이다. 아들 부시인 조지 W. 부시의 선거 구호 중 하나가 온정적인 보수주의였다. 그때는 빌 클린턴 집권 이후 무역 흑자 상태가 이어져서 이를 어떻게 쓸지 고민했던 때였다. 부시는 2000년 대선을 국내 이슈로 치렀다. 그때 이민법 개정, 의료비 문제 등의 이야기가 나왔다. 당시 나온 이민법은 미국의 교육이 워낙 엉망이니까 재능이 있는 사람들을 고용하려면 인도나 중국의 인재를 데려와야 한다는 생각에서 이민법 개정이 요구됐다.

예를 들어 첨단무기에 의존하는 군사 분야의 경우, 그 기반은 과학기술인데 이는 이 분야에서 고등 교육을 받은 인력을 필요로 한다. 고급 인력을 받아들여야 군산복합체가 작동한다는 얘기다. 그러나 대부분의 고급 인력은 이민자를 통해 수급받을 수밖에 없다. 러스트 벨트에서 고등학교만 나온 학생들은 이런 산업에 종사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신자유주의적인 자본주의가 돌아가면서 교육의 사다리를 올라가지 못하면 사회에서 성공할 수 없는 구조가 만들어졌다. 여기에 제조업의 비중은 점점 줄어들기만 했다. 자본주의 논리를 적용하면 이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없는 집에서 태어난 아이들에게 신분상승의 유일한 통로는 대학교육의 기회를 제공하는 군대가 돼버렸다는 지적이 있다. 1970년대 베트남 전쟁 이후 가장 큰 군사적 효과는 모병제로 전환됐다는 점이다. 이라크 전쟁을 치르면서 미국은 모병제를 유지하기 위해 학력과 범죄 전력, 신체 기준 등을 낮췄다. 그리고 군대를 통해 시민권 장사를 하고 월급을 올렸다. 그러면서 재정이 더 악화됐고 감당하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 그래도 군대를 가는 수요는 끊임없이 나왔다. 먹고 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군대였기 때문이다.

상위 1%가 소득의 과실을 다 가져가면서 미국 사람들은 우리는 이 지경이 났는데 독일은, 유럽은 왜 그렇지 않은 것이냐에 대한 의문을 가지게 됐다. 이렇다 할 노조가 없는 미국에서 복지는 찾아보기 힘들었고, 사람들은 더 이상 미국이라는 환상만을 가지고 살아갈 수가 없게 됐다. 미국이 잘 사는 국가이긴 하지만 그 중에 어떤 미국인들이 잘 사느냐는 다른 문제가 돼버렸다. (2편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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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호

외교부·통일부를 출입하면서 주로 남북관계를 취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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